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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여기는 플로리다
 
[여기는 플로리다 12] 디즈니 월드 1- 월트 디즈니, 미국 속에 '꿈의 왕국'을 이루다
사후까지 펼쳐지는 디즈니의 도전 어디까지 갈까

* 본 기사는 광고성 댓글이 너무 많아 순서를 무시하고 앞으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편집자)


(올랜도) 최정희-김명곤 기자 =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의 나래를 끊임없이 펼쳐주고 있는 월트 디즈니(1901~1966). 그는 타고난 재능으로 열아홉 살에 첫 애니메이션을 만든 이후 죽을때까지 오스카 상이 제정된 이래 전무 후무할 32개의 상을 받아 냈다.

그는 또한 자신의 꿈을 영화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자신이 창조한 만화 캐릭터들이 실제 현실밖으로 튀어나와 노니는 꿈의 공원을 실현시켰다. 뿐만 아니다. 디즈니의 꿈은 바다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플로리다 대서양에선 지금도 그의 꿈과 환상을 실은 배가 넓은 바다를 가로질러가고 있다.

디즈니사는 자사 테마공원 1호인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소재 디즈니랜드 개장 50주년을 맞아 5월 첫 주부터 18개월동안 이를 기념하는 행사 및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오는 9월에 개장되는 홍콩 디즈니랜드는 당분간 디즈니사의 관심이 가장 많이 집중될 곳이다. 또 플로리다 올랜도의 디즈니월드는 물론 캘리포니아, 프랑스, 일본 등에 산재해 있는 자사 테마공원의 시설들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디즈니사는 만지는 것 마다 황금으로 변했다는 고대 희랍 신화의 '마이다스 의 손' 을 이제는 '신천지' 를 향해 내 뻗고 있다. 바로 중국이다.

도대체 디즈니의 꿈은 어디까지 펼쳐질 것인가. 월트 디즈니는 잠들었지만 그의 꿈의 나래는 아직도 무한하기만 하다.

나이 속이고 군입대 앰블런스 운전사

월트 디즈니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6세 되던해 가족이 미주리주 캔사스 시티로 이주하는 바람에 그곳에서 7학년까지 다니다 '예술인 양성소'에 등록, 2년동안 예술적 재능을 닦는다.

그러나 16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때마침 세계 제 1차대전이 터지자 나이를 속이고 군에 입대, 2년동안 앰블런스 운전사노릇을 한다.

1919년 캔사스 시티로 다시 돌아온 디즈니는 영화제작자나 정치 만화가가 되고자 했으나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광고제작 스튜디오에 취직한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디즈니는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만화 영화를 틈틈히 제작, 극장가에 팔기 시작한다. 당시 그가 만든 영화는 1분짜리였으나 지역행정 이슈들을 비평하는 내용을 담아 곧 주위의 시선을 모은다.

1922년에 이르러 디즈니는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를 소재로 좀더 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고 실제 배우를 만화와 섞어 제작하기도 한다. 그리고 몇개 영화가 성공을 거두어 지역내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신감에 충만한 디즈니는 몇몇 동지들과 힘을 합쳐 스튜디오를 차리고 야망을 펼치기 시작한다. 디즈니는 처음 한동안 '앨리스 원더 랜드' 시리즈에 열중했으나 이익을 남기지 못하고 빈털털이가 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영화를 제작·배급해줄 재력가를 찾아 할리우드로 향한다.

이후 돈많은 제작사를 만난 디즈니는 자신의 형인 로이 디즈니를 끌어들여 스튜디오를 다시 차리고 자사 소속 배우들도 기용하기에 이른다. 그는 당시 제작사들과의 협상과정에서 25세라는 젊은 나이가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을 알고 이때부터 그의 유명한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25년 디즈니는 자신이 고용하던 릴란 바운스라는 여배우와 결혼했으며 그들 사이에 두 딸을 두었다. 행운은 계속 이어졌다. 새롭게 시작한 앨리스 시리즈가 빅히트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전념하며 재정을 형에게 맡긴다. 이때 '디즈니 형제 스튜디오' 라는 이름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로 변경, 현재 월트 디즈니 회사의 전신이 된다.

1927년 앨리스 시리즈는 끝나고 다음 애니메이션을 찾던 중 제작사에서 토끼를 주제로 한 시리즈를 요구했다. 디즈니는 '오스왈드' 라는 뚱뚱한 토끼 캐릭터를 창조했으나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 토끼를 장난꾸러기 소년 이미지로 바꿔 결국 '오스왈드 시리즈'도 성공가도를 달린다.

'미키 마우스' 탄생 가져온 제작사의 배신


▲ 미키 마우스를 그리고 있는 월트 디즈니
신바람이 난 디즈니는 제작사에 월급을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제작사는 디즈니의 요구를 단번에 거절하고 도리어 디즈니 동료 아티스트들을 몰래 만나 그들과 따로 계약을 해버린다.

제작사로부터 배신과 따돌림을 당한 디즈니는 낙심 하였지만 이 기회가 그에게는 평생의 전환점이 될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남은 동료들과 함께 '토끼 오스왈드'를 대신 할 캐릭터를 찾던 중 그의 사후에도 이름을 영원히 빛내줄 '미키 마우스'(Micky Mouse)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미키 마우스는 처음 '모타이머 마우스'(Mortimer Mouse)라 이름이 붙여졌으나 디즈니 부인은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던 중, 디즈니는 스튜디오에 휘파람을 불며 종종 나타났던 미키 루니라는 사람에게 캐릭터를 보여주다 아예 '미키'라는 그의 이름을 따다 붙여버린다.

미키 마우스 시리즈를 시작한 디즈니는 그러나 자신의 영화 배급자가 중간에 돈을 빼돌린 것을 알게 되고 결국 '부에나 비스타' 라는 배급회사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수익은 눈덩이 불어나듯 했다.

미키 마우스 시리즈가 가져다준 이익은 이제껏과는 달랐다. 애니메이션 성공이후 미키 그림이 그려진 상품들은 끝없이 등장했고, 그가 이어 만든 백설공주 피노키오 등 수많은 만화영화들의 주인공들도 덩달아 상품으로 되살아나 끊없이 디즈니에게 황금가루를 뿌려준다.

2차대전 후 임원들 공산주의 동조자로 몰아

한편 디즈니는 본래 정치만화에 뜻을 두었던 터여서 정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정부의 요청으로 군대 캠프 설치방법과 운용 등에 관한 내용을 만화로 만들었고 정부는 그 영화를 군 부대에 배포했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미 경제가 술렁이고 있는 동안 디즈니는 미 하원내 '비 미국적 행동 감시 위원회'에 상당수의 자회사 임원들을 공산주의 동조자로 고발한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디즈니가 회사 노조로 인해 타격을 입은 데 대해 격심한 증오를 품고 있다 당시 미국 사회를 휩쓸었던 매카시 선풍(맹목적 반공주의)을 이용했다고 보고 있다. FBI 는 1940년 디즈니를 공식 공보관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디즈니는 미정부의 우주개발에 참여, 미항공우주국(NASA)의 로켓제작 홍보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디즈니의 야망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영상매체에서 현실세계로 뛰쳐 나온다. 1955년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꿈의 공원' 디즈니랜드를 연 것. 그러나 애너하임은 지리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디즈니가 그의 꿈을 확장시키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곳 저곳을 물색하던 중 디즈니는 드디어 그의 눈길을 플로리다로 돌린다. 플로리다의 한 복판에 값싸고 널따란 '디즈니용' 부지를 찾아낸다. 호수와 숲이 많고 양쪽으로 바다가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올랜도였다.

그러나 그는 마치 모세가 가나안땅을 눈앞에 두고 미스바 광야에서 숨진 것처럼 디즈니 월드의 기초가 올랜도에 세워지기 바로 몇달 전인 1966년 12월 65세의 나이로 안타깝게도 세상을 뜨고 만다. 이어 그의 형 로이도 1971년 디즈니 월드 개장을 바로 눈 앞에 둔채 삶을 마감한다.

'가나안 땅' 눈앞에 두고 생애 마감

드디어 디즈니 월드 제1 테마파크 매직킹덤을 시발로 플로리다 에 세워지기 시작한 세계 최고의 꿈의 나라 '월트 디즈니 월드 리조트'는 매직킹덤(Magic Kingdom)외에도 에프콧 센터(Epcot Center)와 MGM스튜디오, 그리고 애니멀 킹덤 등 4개의 거대한 테마공원을 갖추기에 이른다.

매직 킹덤은 어린이 동심을, 에프콧 센터는 과학과 미래공동체, MGM 스튜디오는 '영화세상'을 그리고 1998년에 세워진 '애니멀 킹덤'은 동물의 세계를 각각 주제로 하고 있다.

플로리다 디즈니 월드는 타지역 디즈니 공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규모가 방대하다. 미국내에서 가장 넓은 싱글사이트 업체로 3천여 업종을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고용인만도 5만2천여명에 이르고 있는 것.

사실 '월트디즈니 월드' 란 이름으로 시작된 올랜도 디즈니 왕국은 이제 '월트 디즈니 월드 리조트' 로 불리우고 있다. 이 안에는 타이푼 라군, 블리자드 비치 등 물놀이 공원과 식당, 마켓, 전자게임 장소 디즈니 퀘스트, 그리고 예술 서커스단인 '서크 드 솔레이' 공연장 등이 밀집해 있는 '다운타운 디즈니' 가 있다. 또 매리엇이나 힐튼 호텔외에도 디즈니사 소속 호텔 컴플렉스가 25개나 자리잡고 있다.

리조트는 또 5개의 초일류급 골프장, 2개의 미니어쳐 골프 코스, 그리고 스파 스포츠콤플렉스 등 다양한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디즈니 왕국은 해상도 점령하려 한다

디즈니 왕국은 육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크루즈라인' 은 디즈니 월드가 있는 올랜도에서 1시간 거리의 포트 커네버럴을 출항지로 삼고 있으며, 고객을 자사 여객선인 '매직'호와 '원더'호 에 싣고 바하마와 카리브해로 나른다. 디즈니는 특히 바하마에 자사 소유 섬을 마련하고 여기에 독점 기항지를 삼고 있다.


디즈니사는 또 미라맥스, 터치 스톤등 여러 영화 배급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ABC, 디즈니 등 방송채널 그리고 레코드사, 서적 출판사 등 미디어 매체에도 광범위한 손길을 뻗치고 있는 거대한 '왕국'을 형성하고 있다.

'플로리다 디즈니 왕국'을 거론할 때 '셀리브레이션'시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가정과 이웃을 밀접하게 연결한다는 '뉴 어바니즘' (신도시) 개념을 도입한 신 주거지다. 디즈니 월드와 이웃해 있는 이 동네 울타리내에는 학교, 병원, 우체국, 쇼핑센터, 식당, 사무실등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일상생활이 그 안에서 이루어 진다.

디즈니가 살아 생전 꿈꾸었던 '미래 공동체' 는 이렇듯 플로리다에서 계속 성취돼 가고 있다. 그 꿈이 현실속에서 끝없이 이루어지다 보니 항간에는 그의 시신이 냉동되어 있다는 소문도 있으나 그는 화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려짐: 2012년 3월 16일, 금 6:2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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