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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여기는 플로리다
 
[여기는 플로리다 2] 탬파 베이에는 해적선이 출몰한다
지난 29일 플로리다 탬파 베이에 해적선이 출몰했다. 대포를 울려대며 육지에 상륙한 해적들은 우선 시청을 점거하고 시장을 무력하게 만든 다음, 시장과 함께 거리에 나왔다.

그들은 베이쇼어 블러바드에서 '시 탈환' 을 기념하는 승리의 퍼레이드를 벌이며 보물상자를 열어 반짝 반짝 빛나는 구슬 목걸이들을 관중들에게 던졌다.

그리고 도시는 한동안 노래와 춤, 그리고 술의 향락으로 빠져들어 갔다.

1백년 지켜온 해적 축제 '가스파릴라'


▲ 2004년도 가스파릴라 행사 홍보 포스터
해적 축제 '가스파릴라'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탬파 다운타운에서 열렸다. 올해로 101번째 열리는 연례 축제행사 가스파릴라는 이 지역서 오랫동안 전해지고 있는 '해적 신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현재 탬파베이 풋볼팀의 이름이 부캐니어스(Buccaneers·해적들) 인 것도 이 신화와 무관하지 않다.

가스파릴라 축제는 1904년 처음 시작됐다. 현재 탬파트리뷴지의 모체인 탬파모닝트리뷴지 매리 루이스 더지라는 사회부 편집인이 '가스파' 라는 해적 이야기를 당시 일반인들에게 소개했고, 탬파시는 마침 이 지역에서 준비중에 있던 '5월의 축제'에 주민들의 흥미를 유도하고자 그 해적 이야기를 축제의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이후 5월의 축제는 가스파릴라 축제로 대체되고 몇 차례 고비를 넘기며 꾸준히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1991년 수퍼볼 게임 즈음에 열린 축제는 미 전국의 눈길을 받게 되고, 이때부터 축제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은 더욱 고조되기에 이르렀다. 2001년 수퍼볼 게임 당시엔 75만명의 군중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가스파릴라는 '플로리다의 마르디 그라'... 해적 가스파 신화에 뿌리

그렇다면 뉴올리언스의 세계적인 축제 '마르디 그라' 와 같은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가스파릴라 축제의 원조 '가스파' 는 누구인가?

해적 가스파에 대한 인적사항은 사실 정확하지 않다. 회자되어 오는 내용들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드레 마셀 단스의 '가스파릴라 신화와 플로리다 역사' 라는 책 내용에 따르면 마지막 해적 호세 가스파(Jose Gaspar)는 본래 스페인 해군 장교였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멕시코만을 무대로 활동한 가스파는 수십척의 배를 침몰시킨 스페인 황실 해군 장교였으나 나중에 해적으로 돌아선 인물이다. 65세가 되도록 바다를 누비며 수십년동안 해적 생활을 한 그는 플로리다가 미 연방주에 합류할 때 즈음 해적활동은 접기로 마음 먹는다. 미 해군들의 해적소탕작전으로 인해 더이상 활동하기가 곤란했던 것.

어느날 그는 해안가에서 그동안 모아 둔 금화들을 20여개의 보물상자에 담아 부하들과 나눌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멀리서 지나가고 있던 거대한 배가 눈에 띄었고, 망원렌즈를 길게 빼내어 갑판위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니 부유한 영국 상선이 아닌가?

가스파는 '해적 청산 기념' 이라 생각하고 그의 해적배인 '플로리다 블랑카'를 띄우고 '마지막 해적질' 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정거리에 들어온 영국 상선은 갑자기 깃발을 내리더니 새로운 깃발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은 뜻밖에도 미 합중국의 깃발!

가스파의 가슴이 철렁한 순간, 상선 갑판에 줄지어 쌓아놓은 물품위의 덮개가 벗겨졌다. 이번엔 대포들이 물품대신 나열돼 있는 것이 아닌가! 대포들은 가스파의 배를 향해 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가스파 일당도 대항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양측간의 싸움은 한동안 치열했으나 군함을 상대하기엔 '플로리다 블랑카' 는 열세일 수 밖에 없었다.

가스파의 배는 드디어 침몰하기 시작했다. 살아 남은 해적들은 바닷물에 뛰어내렸고 미 해군 함대는 바다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플로리다 블랑카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마지막까지 자신의 배를 지키고 있던 가스파는 갑자기 돛대 꼭대기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 해군 함대를 향해 "가스파릴라는 적의 손에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닻 체인을 손목에 칭칭 휘감더니 바다로 뛰어들고 말았다.

한편 살아남은 가스파의 부하들 중엔 멕시코만 위쪽에 위치한 뉴올리언스로 도망가 다시 해적에 입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미 해군은 가스파에 대한 공격사실을 지역 공관에 보고해 실제 사건으로 남게 됐지만, 그에 관한 각종 흥미거리들은 살아남은 부하들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가스파의 부하들이 퍼뜨린 이야기는 민간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고 결국 가스파릴라 신화로 자리 잡게 됐다.

가스파의 보물은 어디에?

사람들이 가스파에 대해 흥미 있어 하는 까닭은 단지 그의 드라마틱한 종말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미 해군함대와 싸우기 직전, 서부해안 근처 어딘가에 보물을 숨겨놓았다는 사실도 한 몫 하고 있다.


▲ 행사 퍼레이드 차량 (사진: Tampa Bay Convention & Visitors Bureau)
다시 안드레 책 내용으로 돌아가 보면, 영국 상선이 나타나자 가스파는 자신의 배에 올라타기전 부하 일부를 해안에 남겨놓고 보물상자를 지키게 했다.

이후 두목의 배가 가라앉는 것을 멀리서 본 부하들을 급히 서둘러 그 지역의 스패니쉬 거주지에 숨어 들어가 보게스라는 여성(신화에는 ‘레이디 보게스’ 로 고유명사화 됨)에게 약간의 보물을 집어주고 협박과 더불어 보물상자들을 맡긴다.

다음날 그들은 보물상자의 일부를 끌고 나와 당시 ‘피스 리버’ 로 알려진 강가 어느 지점에 파묻고 그들의 조그만 배를 불태운후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이후론 영원히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스패니쉬 거주지에선 '레이디 보게스' 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금화들이 유통되기 시작했으나, 정작 강가 어딘가에 묻혔다는 다량의 금화들은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가스파릴라, 3월 초까지

탬파베이 해적 축제 가스파릴라는 보통 1월 말에 시작해 그 열기의 기운이 3월 초까지 이어진다.

해적선들의 탬파베이 입성과 거리 퍼레이드는 이 축제의 서두를 알리는 팡파레다. 올해 해적선 입성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배들에 둘러싸여 탬파베이에서 다운타운 컨벤션 센터를 향해 들어왔고 해적들과 함께 팸 이오리오 시장은 베이쇼어 블러바드의 퍼레이드의 맨 첫차에 올라탔다.

해적들이 던지는 구슬목걸이로 인해 퍼레이드를 구경 나온 관중들은 비명을 지르며 환호했고, 아이들은 손을 각자 최대한 뻗어 구슬들을 쥐었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해가 뉘엿뉘엿 지면 이보르시티를 비롯한 탬파 다운타운은 가스파릴라들의 맥주 파티로 취해 가고 흥은 한껏 더 높아진다.

올해 '가스파릴라'는 퍼레이드 관람객들이 작년에 비해 더욱 증가될 것으로 기대돼 베이쇼어 블러바드 퍼레이드 구간을 확장하기도 했다.

'축제행사 비용 비싸다' 볼멘 소리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가스파릴라 축제에 대해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탬파 트리뷴지에 따르면, 퍼레이드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청소하는데 드는 비용만도 1백5십만불 가량이 소요된다고 한다. 또 베이쇼어 불러바드, 다운타운, 채널사이드, 그리고 이보르 시의 도로가 완전히 막혀 하루동안 도시 전체에 정체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

2003년 기준으로 2천3백만불 정도가 소요되는 축제 행사비용도 또한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팸 탬파시장은 “비용으로만 따질 수 없는 것이 가스파릴라 축제이다 라며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온 행사이며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포괄적인 행사이기도 하다” 라고 우선 단정 짓는다. 또 이 축제는 "뉴 올리언즈의 마디그라 처럼 탬파에도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해 주고 있다" 라고 전했다.

즉 가스파릴라 축제는 비용이 드는 만큼 그만한 가치가 있는 행사라는 것. 또 축제가 더욱 활성화 되면 타지의 관광객들을 끌어 들여 탬파 경제에 크나큰 이익을 안겨주고 결국 그 혜택이 주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팸 시장은 "이런 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탬파로서는 행운이다”라고 평가했다고 트리뷴지는 전했다.

역사의 요동과 함께한 가스파릴라

탬파베이 연례행사로 그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는 가스파릴라는 역사의 요동과 함께 출렁이기도 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때는 행사에 들어갈 비용이 전쟁비용으로 쓰여서 취소됐으며, 2차대전 중인 1942년때도 역시 같은 운명을 맞았다. 1991년대에는 수퍼볼 행사 덕분으로 미 전국에 널리 알려졌으나, 대신 흑인지도자들로 부터 ‘백인들만의 행사’ 라는 비난을 받았다. 당황한 주최측은 스폰서를 포기했으며 탬파시도 재빨리 '밤볼리오' 라는 생뚱한 축제를 개설했다.

하지만 이 축제는 주민 참여가 너무 저조해 이듬해에는 다양성을 보강한 가스파릴라가 다시 제자리를 찾기도 했다.

2003년 탬파베이의 미식축구팀인 부캐니어스의 슈퍼볼 우승과 함께 가스파릴라는 절정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절정의 분위기는 몇일 후에 있었던 콜롬비아 우주왕복선의 사고로 인해 찬물을 맞고 말았다.

지난해 가스파릴라 축제는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 행사를 벌였고 93개의 퍼레이드차와 15개의 고등학교 밴드 행진을 위해 40여만명의 주민들이 베이쇼어로 몰려 다운타운을 삐걱이게 만들었다.

해적 단체 ‘이 미스틱 크루’

탬파 가스파릴라 축제를 이끌고 있는 단체는 '이 미스틱 크루(Ye Mystic Krewe)'로 이 단체는 상당한 기부금을 낼 수 있는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정확한 액수는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년 5천불 이상을 기부하는 회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원들은 가스파릴라 축제때 해적선에 승선, 해적의 역할을 하며 그 해의 '왕'과 '왕비' 를 선출, 퍼레이드차에 태우고 행진한다. 회원들은 축제 저녁에 다운타운에 모여 방문객들과 함께 맥주 파티를 벌이고 이후 한 달동안 곳곳에서 파티를 이어 간다.

이후 3월 5일과 6일 다운타운 가스파릴라 페스티벌 아트쇼가 끝나면 해적들은 다음해까지 자취를 감춘다. / 최정희-김명곤 기자
 
 

올려짐: 2012년 3월 16일, 금 6:3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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