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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마르크스 덕후 공대생의 덕업일치 "후회 없습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을 펴내며

(서울=오마이뉴스) 임승수 기자 = 원래 작가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작가가 된 미래의 모습을 1초라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지요. 공대 출신답게 글쓰기 자체를 싫어했고 글도 못 썼습니다. 관심이 없으니 글 잘 쓰는 사람이 하나도 안 부러웠고요. 풋! 너는 글을 잘 쓰냐? 나는 수학에다 물리까지 잘한다,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그 일만 없었다면 지금까지 전공 관련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겠지요.

누군가의 글을 읽고 두뇌에 진도 9.0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주어진 일상에 충실한 공대생이라면 접할 기회가 없는, 무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었죠. 전공 공부가 재미없기도 했고, 대학생이라면 마르크스 정도는 읽어봐야겠다는 허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온서적이라고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으니 왠지 더 보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기에 이렇게 논란이 되는지, 그런 궁금함과 호기심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자본론>은 활자가 개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모피어스에게 빨간약을 받아먹고 세상의 참모습을 본 것과 같은 심정이었어요. 무언가에 홀린 듯 관련 도서들을 샅샅이 찾아 읽어 내려갔습니다. 절판되어 일반 서점에서는 구하기조차 힘든 1980년대 사회과학 서적들까지도 헌책방을 뒤져 구해 읽을 정도였지요. 그렇게 공대생은 마르크스 덕후가 되었습니다.


▲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표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을 다룬 책이다. ⓒ 시대의창

대학에 입학한 1993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020년입니다. 반도체 소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관련 업계에 종사하던 나는 2006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인문 사회 분야의 전업 작가가 되어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와 진보적 사상에 대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나름 덕업일치를 이룬 것이죠.

직장생활을 이어나갔다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는 훨씬 여유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후회는 없습니다. 통장에 꼬박꼬박 꽂히는 안정적인 수입을 잃은 대신 내가 원하는 삶, 즉 시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독자의 소중한 리뷰, 마르크스 <자본론> 강의를 듣기 위해 모인 노동자들의 진지한 눈빛,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소신껏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상황. 내가 작가의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돈보다 소중한 것들입니다.

이번에 신간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이 출간되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마르크스 철학이라니? 먹고사는데 '철학' 따위는 필요 없다고들 합니다. 돈 벌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웬 철학이냐는 게지요.

게다가 구닥다리 불온 인물 '마르크스'까지 덤으로 붙어 있으면 말 다했지요. 헌책방에서나 구할 수 있는 1980년대 사상 서적도 아니고 말이에요. 책 제목을 본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저자로서 어쨌든 관심을 가져달라고 애원하기 전에, 제 경험을 한 가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돈 벌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웬 철학이냐'라고 물으신다면

아내와 결혼한 2009년에 함께 오스트리아에 여행을 갔다가 빈에 있는 미술사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유명 박물관인 만큼 소장품 규모가 어마어마했는데, 대략 14~15세기 작품의 전시관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작품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소재가 전부 똑같더군요. 모두 기독교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예술품들 죄다 예수, 성모 마리아, 순교한 성인 등등의 모습만 담았습니다. 세상만사가 당시에도 다양했을 텐데 그 시대 서양에서는 거의 모든 예술가가 기독교에 대한 그림을 그렸던 겁니다. 별 다른 특별한 경험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 장소에서, '철학'을 느꼈습니다.

철학은 세계관(世界觀)에 관한 학문입니다. 세계관이란, 세계를 보는 관점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중세 서양 사람들은 기독교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았습니다.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었지요. 그러니 그림도 기독교 일색일 수밖에요. 십자군 전쟁도 하느님의 뜻이고, 마녀사냥도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만사 오케이! 이것이 세계관, 즉 철학의 위력입니다.

지금은 중세가 아니니 괜찮을까요? 현대 자본주의는 '돈' 중심 세계관이 대세입니다. 중세 서양에서는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돈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돈이 되면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의미한 일이 되지요.

회사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멀쩡한 노동자가 정리해고 당하고 수많은 청년 학생이 실업자로 전락합니다.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로는 이득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이윤추구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실업자로 방치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치 중세 서양에서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을 당연시했듯 우리가 그런 자본주의 사회의 상황들을 당연시한다는 점입니다.

현대사회에 대해 '철학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상 그 어떤 사회보다도 '돈'을 숭배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하느님'을 숭배하던 사회가 그랬듯, 맹목적으로 '돈'을 숭배하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할까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마르크스 철학은 곧 '마르크스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철학과 관점에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한 돈 중심 철학의 문제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요구되는 새로운 철학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은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 내용인 변증법적 유물론(1~6강)과 역사 유물론(7~12강)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썼습니다. 특히 책 후반부의 역사 유물론은 인간 사회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지에 대한 법칙, 즉 역사 발전 법칙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인류 사회의 발전 과정을 고찰하며 그 속에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그 법칙을 자본주의사회에 적용해 향후 인류가 어떤 사회로 나아갈지 예측했고요. 극심한 빈부격차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파괴로 자본주의 이후의 시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요구되는 엄중한 시기에 마르크스의 역사 유물론은 우리에게 역사의 발전 방향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마르크스 철학 어렵지 않냐고요? 걱정하시 마십시오. 오죽 쉽게 썼으면 제목에 '원숭이도 이해하는~'이 들어있겠습니까. 저의 전작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간혹 책 제목을 보고 '내가 이해 못 하면 원숭이만도 못하단 말이냐'라고 항의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읽어보신 분들은 재미있고 쉬웠다고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얼마 전 제 생일이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진보 사상에 대한 책 쓰면서 지금까지 버틴 저 자신에게 잘했다고 격려해주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신간은 나왔지만 홍보 방법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다가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남겼습니다.

"4월 11일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사회주의자, 좌파 작가로 지금까지 버틴 저 자신에게 잘했다고 격려해주고 싶은 날입니다. 마침 제 신간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도 출간되었네요. 생일날이라 안면에 철판 깔고 구걸하겠습니다. 책 진짜 좋습니다. 이 책만 읽으면 마르크스주의의 정수인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을 한 큐에 끝낼 수 있습니다. (뭔가 약장수 느낌이네요...) 코로나19 때문에 출판계 상황도 그야말로 대빙하기입니다. 책 싸 들고 지하철 타서 승객에게 직접 팔아볼까 싶은 충동도 느끼는 요즘입니다. 지금까지 사회주의자, 좌파 작가로 버틴 것도 여러분의 응원과 구매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도 좌파 사상의 대중화를 위해 열심히 복무하겠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권만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근래 없었던 엄청난 '좋아요'와 댓글이 달렸습니다. 다들 힘든 시기인데도 일부러 구매 인증샷을 남겨주시는 분도 많았고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정말 큰 힘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삶을 선택했을 때부터, 부자가 되겠다느니 출세하겠다느니 하는 생각은 진작 접었습니다. 세 끼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지요.

자신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꼭 자신이 거둘 필요는 없습니다. 후대가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씨를 뿌릴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라는 또 하나의 씨앗에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5월 01일, 금 5:2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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