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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쓰는 데 10년 걸린 이유? 겁나서"...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고민
[인터뷰] 책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저자 박래군을 만나다

(서울=오마이뉴스) 박정우 기자 = 박래군이라는 이름을 빼놓고 대한민국 인권운동을 말할 수 있을까. 어느덧 33년째, 그는 늘 있어야 하는 곳에 있었다. 가장 슬픈 곳에 있었고, 가장 낮은 곳에 있었고, 가장 참혹한 곳에 있었다. 밀양이 그랬고, 쌍용차가 그랬고, 강정마을이 그랬고, 용산이 그랬으며, 세월호가 그랬다. 누구는 이제 좋은 세상이 왔다고 하지만 박래군은 여전히 바쁘다. 여전히 온갖 현장을 다니고, 그를 찾는 곳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최근 신간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를 출간했다. 2011년에 구상하기 시작해 10년 만에 겨우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인권의 시각으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조망한 이 책은 여행기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역사서인 동시에 대한민국 인권 실태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책 속 저자의 말처럼 우리나라 현대사는 국가 권력이 자행한 폭력과 범죄,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저항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박래군의 삶과도 닮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박래군만이 쓸 수 있는, 혹은 박래군이 반드시 써야만 하는 책은 아니었을까?

19일 성산동에 있는 인권중심 사람 센터에서 박래군 소장을 만났다.

"원동력? 결국 사람"


▲ 박래군 소장 사진 ⓒ 박정우

- 여전히 바빠 보인다. 최근 근황은 어떤가?
"본업이 '인권재단 사람'에서 일하는 것인 만큼 이곳의 일들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고, 그 외에 가장 핵심적으로 하는 것은 4‧16재단과 관련된 일이다(그는 현재 4‧16재단 운영위원장이기도 하다). 주로 하는 일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추모 기억 사업, 피해자 지원 사업, 안전문화 확산 운동 같은 것들이다. 그 외에도 '열린군대를 위한 시민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데 올해 한국전쟁 70주년이라 전시회를 비롯해 준비하는 것들이 있고, 노동자들을 옥죄는 손배·가압류를 막고 피해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손을잡고)' 운영위원이라 해야 하는 것들이 있고. 이래저래 하는 일은 많다. 여전히 정신없이 살고 있다.(웃음)"

- 이렇게 '정신없이' 산 지도 올해로 33년째다. 박래군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진짜 솔직히 말하면 가장 큰 이유는 자꾸 일이 생기니까 하는 거다.(웃음) 인권과 관련해서 크게 할 일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정말 끊임없이 사건이 생기고, 그에 따라 대응해야 하는 일이 있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니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거지.

두 번째 이유는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사람이다. 사실 이 일을 30년 넘게 하고 있는데 당연히 지치고 화날 때도 많다.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나지 않을 때도 있고,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 맞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한편으로 같이 화내고, 같이 상처받고, 같이 절망하는 사람이 늘 있었다. 결국 사람 때문에 힘들고 사람 때문에 피곤하지만, 또 사람한테 위로받고 감동 받으면서 그 힘으로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동생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도 있고(박래군의 동생인 고 박래전 시인은 1988년 군사 독재에 항거하면서 분신했다. 박래전 시인의 죽음은 박래군이 인권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되었다).

책 만드는 데 10년 걸렸던 이유


▲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도서 이미지 ⓒ 박정우

- 최근 신간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를 펴냈다. 이 책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인권운동 하는 사람으로서 예전부터 우리나라의 인권 문제가 발생하게 된 구조와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늘 있었다. 사실 인권이라는 것은 굉장히 보편적인 개념이지 않나. 공격받을 만한 것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권 얘기하면 종북 좌파로 몰리는 식의 대립 구도가 우리나라 인권의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벽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이게 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는데, 나름대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현대사를 되짚어보기도 하고,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러다 2011년 가을에 보름 동안 인권 현장 답사를 하면서 결국 답은 현장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이나 자료만으로 느낄 수 없는 생생함이 거기 있었던 거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걸 좀 더 구체화시켜서 많은 사람과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그 시작이 아닐까 싶다."

- 구상에서 출간까지 10년이 걸린 셈인데, 출간 이후의 소회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우선 핑계 아닌 핑계를 좀 대야 할 것 같은데(웃음) 쓰면서도 계속 저자로서 겁이 많이 났다. 아무래도 현재진행형인 사건들도 있다 보니 관계된 사람도 많고, 당사자도 피해자도 있다. 게다가 제주 4·3항쟁 같은 내용은 역사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한 학자나 제주도민이 봤을 때 활동가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책까지 썼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래서 나름대로는 굉장히 오랫동안 준비를 했고, 동시에 기존의 여행서, 기존의 역사서와는 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싶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발로 뛰고,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고민하면서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 책을 만드는 데 10년이나 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한 얘기였고...(웃음)

덧붙여 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누가 아무리 얘기해도 본인이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은 이상 대부분 귀담아듣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기를 써보니까 이렇게 현장을 소개하면서 인권을 얘기하는 방식의 말 걸기가 좀 색다른 접근이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생기게 되었다. 무거운 주제지만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물론 잘 써야 가능한 부분이긴 하다. 그건 독자들이 판단해주시겠지."

- 이 책은 대체로 공간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구성인데, 그 속에서도 국가 폭력의 한가운데 있었던 개인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었다. 사실 역사적인 사건이나 그것에 대한 분석 같은 건 학자나 연구자들이 더 잘 쓸 거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딱딱한 연구서나 자료집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가 폭력의 현장에는 늘 사람이 있다. 그 폭력을 행하는 것도 사람이고, 피해를 당한 것도 사람인데 이걸 자료로 접근하면 그 사실을 잊게 된다.

결국 그곳에, 그때 그 자리에, 고통을 겪었고 생존권을 위협받았고 폭력에 희생되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거기 누가 살았는지, 당시 몇 살이었던 누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 최대한 판단을 배제한 채로 사실 그대로를 담으려고 했다. 이를테면 제주 4‧3항쟁 같은 경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걸 이념적인 대립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그때 희생당한 아이들이 무슨 이념이 있었겠나. 당시 제주도민들의 생존권의 문제가 있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그 어두운 굴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그곳에서 밥을 지었고, 감자를 삶았고, 아이를 돌봤다. 책을 통해 그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거지."


▲ 제주 4·3 당시 사람들이 굴에 숨어 먹고살았던 흔적 ⓒ 박정우

4·3, 5·18, 세월호...

- 광주 5‧18 관련 꼭지에서 오월어머니집 정현애 관장을 인터뷰한 것도 같은 맥락인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5‧18에 관해서는 관련한 자료도 많고, 책도 많아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수많은 전쟁이 승자 중심, 남성 서사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광주항쟁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여성의 역할은 주먹밥 만들어주는 역할 정도로밖에 다루지 않는다. 실제 그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을 제대로 조명해보고 싶었다.

그런 이유가 하나 있었고, 또 하나는 37년 만에 광주 성폭력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에 여성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도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관련해서 정현애 관장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 시민군이 탄 버스에 시장상인들이 주먹밥을 실어나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5·18유적지 조형물. ⓒ 박정우

- 책에 실린 모든 장소가 아픈 역사의 현장이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세월호 선체... 가장 쓰기 힘든 꼭지도 세월호 부분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이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그 아픔이 나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 글을 쓰려면 어찌 됐든 감정적으로 빠져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쉽게 풀어내지 못하겠더라.

게다가 세월호가 침몰하는 그 상황에 대해서 수없이 들었고, 자료도 많이 봤고, 시신을 수습한 민간 잠수사들을 통해 세월호 어디에는 단원고 누가 있었고, 어디엔 뭐가 있었는지를 알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선체에 들어가니까 그 참상과 아픔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음...

남영동 대공분실도 쉽지 않았다. 여러 번 가본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 같은 것이 있다. 들어갈 때마다 빨리 나오고 싶었다.

또 하나는 제주의 동광큰넓궤를 꼽을 수 있겠다. 제주 4‧3 당시 사람들이 피신해 들어갔던 굉장히 넓은 굴인데, 당시 그 까만 현무암 동굴에서 40일을 살았다. 여태까지 내가 만난 어둠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곳이었다. 먹방(감옥에서 특별한 조사가 필요한 수용자가 수감되는 곳)에도 있어 봤는데 그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둠이었다."


▲ 목포항에 인양된 세월호 선체 ⓒ 박정우


▲ 남영동 대공분실의 일반적인 고문실 모습 ⓒ 박정우

내 세대는 이제 고인물... 앞으로는 후배들 지원할 것

- 책에 썼듯이 '이 책의 목적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전작의 제목이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이기도 하고. 박래군의 화두는 여전히 사람인가?
"인권이란 기본적으로 사람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인 만큼 사람을 떠나서는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본다. 다만 이 책을 준비하는 10년 동안 조금 변한 건 있다. 인권이란 인간은 모두 존엄하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개념인데, 가만히 보면 폭력을 저지르고 상상도 못 할 끔찍한 학살을 저지르는 것도 사람인 거다. 그들 대부분이 처음부터 나쁜 놈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어떤 경제적인 상황, 정치적인 상황들이 겹쳐지면서 잔인한 광기가 발생하는 인간으로 돌변하더라는 거지.

그렇다면 그 끔찍한 일들이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서 발생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는 작업을 하면서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조건을 제거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도 그렇다. 그런 피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조건을 바꾸거나, 제도적인 장치로 막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는 거다."

- 인권 기행의 두 번째 시리즈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설마 또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웃음)
"그건 아니고...(웃음) 사실 동학에서 시작해서 연도별로 쭉 갔으면 좋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이가 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동학 관련해서 현장을 여러 번 방문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공부를 좀 더 해야겠더라.

우리나라 인권 이론이 서양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동학을 인권이란 관점에서 보면 서양의 이론보다 훨씬 더 깊이가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동학을 설명하는 것과는 좀 다르게 동학농민운동을 중심으로 인권사를 풀어내고, 집강소를 통해서 자치 행정에 관해서도 써보고 싶었다. 이렇게 풀어내는 것이 지금은 무리라고 판단해 이번엔 부득이하게 빠지게 되었다.

그 외에도 천주교 순교지를 돌아보면서 우리나라의 종교적 자유와 연결해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고, 이 외에도 하고 싶은 곳은 많다. 실제로 답사했는데 빠진 곳도 더러 있다. 이런 곳들을 포함해 총 10곳 정도를 해서 2권을 쓰려고 한다. 언제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10년은 안 걸린다!(웃음) 출판사 대표와는 2권까지 낸 다음에 아시아를 하고, 남미까지 가자는 얘기를 했는데 책이 좀 팔려야 가능하려나.(웃음)"

- 올해 예순이 됐는데, 여전히 현장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전작인 <사람 곁에...> 에서도 밝혔지만 만 60세가 되면 현장 활동가로는 물러나고 후배들을 지원하고 싶다.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소설도 쓰고 싶고. 은퇴하겠다는 게 아니라 예전처럼 어떤 사건이 생기면 나서서 뛰어들고 이런 건 좀 안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 거지. 인권운동이나 사회운동 같은 것들이 다른 분야에 비해 제일 발 빠르게 변하고, 혁신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내 세대들은 너무 고인 물이 됐다.

그동안 우리 같은 86세대들이 너무 오랫동안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길을 열어준다는 차원에서 나부터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공공연히 밝혀왔는데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 어디 예순밖에 안 됐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하지를 않나...(웃음)

사실 인권운동 쪽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일하는 실무자들이 별로 없는 실정이기도 하다. 보통 5년이 고비라고 본다. 5년쯤 지나면 활동가로서 현장도 알고, 실무도 어느 정도 하고, 피해자를 만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조금 알게 되는 시기인 만큼 계속하면서 커나가면 좋은데,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쉽지 않다.

일은 많은데, 월급은 최저임금을 겨우 받을까 말까 하는 정도니까 전망이 안 보인다고 판단하는 거지. 뿐만 아니라 후배들이 들어와서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혼자서 지지고 볶으면 금방 지친다. 그런 점에서 나 같은 화석은 이제 뒤로 물러나서 후배들의 현실적인 문제 같은 것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일선에서 물러나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응원하겠다.(웃음)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이 책을 보시는 분들이 실제 현장을 꼭 가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그 엄혹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경제 활동을 하고, 먹고살았다. 인권 감수성이란, 공감 능력이란,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6월 06일, 토 2:5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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