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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문익환과 나란히 해야 할 이름 '박용길'
[독서에세이] 민주화 투사로 조명한 '봄길 박용길'을 읽고

(서울=오마이뉴스) 이인미 기자 = 부부 중에서 남편이 유명하면 아내는 남편만큼 빛나지 않게 되는 입장에 놓이는 것 같다. 힐러리 클린턴도 그랬고, 미셸 오바마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힐러리와 미셸의 유명세가 낮진 않았지만, 냉정히 판단해보자. 남편들만큼은 아니다.

영부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남편과 동일 분야에 종사하되 통상적으로 남편보다 뒤에 언급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여성들이 더러 있다. 클라라 슈만, 헬렌 니어링 등. 아니, 부부가 같이 활동했는데 활약상을 알 수 없는 아내들도 없지 않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아내와 아펜젤러 선교사의 아내 같은 분들이다. 그들이 스스로 빛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남편의 빛에 묻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여성들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박용길(봄길)이다. 윤동주의 친구이자, 용정의 명동촌 출신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아내다.


▲ 책표지 <봄길 박용길> 박용길 지음, 정경아 엮음, <봄길 박용길>, 삼인출판사, 2020. ⓒ 삼인출판사

6월 1일, 문익환의 생일에, <봄길 박용길>이란 책이 나왔다.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여러 곳에서 몇 편 발표됐다. 그 리뷰들은 대체로 봄길을 또다시 남편 문익환의 '업적'에 '연결하여' 언급한다. 남편의 통일운동이 그 사람 혼자가 아니라 부부가 같이 이룬 일로 느껴지도록 이끈다. 예를 들어 <'늦봄' 버팀목 돼준 '봄길' 93년의 삶>, <'문익환'이란 거목을 품었던 대지 같은 삶 '봄길 박용길'> 등이다.

그러나 이 책은, 봄길을 남편 늦봄의 '업적'에 연결시키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내로서 봄길이 남편의 업적에 기여한 바는 물론 크고 의미있다. 가히 '내조의 여왕'으로 불릴 만하다. 봄길은 남편의 버팀목으로서 존재하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허나 이 책은 그 부분도 다루되, 그것 이외에 봄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더 집중하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이는, 이 책의 기획의도에서 이미 표방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사랑하는 남편의 뜻을 계승하겠다는 의지가 있던 것은 분명하지만 봄길의 삶은 그 이상이었다. 이 책에서는 교회여성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 시대에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한 투사로서, 통일의 여성사도로서 박용길의 독자적 위상을 발굴하고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 15쪽

박용길은 문익환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문익환과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다. 기독교계의 기준으로 볼 때 두 사람의 경력은 청년기엔 완전히 똑같았다. 신학공부 이력으로만 보면 (문익환보다 한 살 어린) 박용길이 오히려 선배였다(50쪽). 두 사람은 일본에서 같은 교회를 다니며 활동했다. 박용길은 전도사로, 문익환은 신학생 봉사자로.

'박용길은 원래 목사를 꿈꾸었다. 하지만 당시 여성들은 신학교를 졸업해도 목사가 될 수 없었다.' - 89쪽

일본의 한 작은 교회에서 두 사람은 요즘 말로 하면 '썸'을 타다, 저마다 고국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생이별이었다. 문익환의 집은 용정의 명동촌에, 박용길의 집은 경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장거리연애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용길은 갑자기 평생 독신 여전도사로 살겠다는 선언을 발표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한 남자의 이름을 포함하는 '조건문'이 붙어있었다. '문익환과 결혼할 수 없다면···.'

예비신랑이 병약해도, 그래서 단 6개월을 산다 할지라도 나는 문익환과 결혼해야겠다고 주장한 '당돌한 20대 여성' 박용길. 그녀는 마침내 결혼을 쟁취한다(1944년). '될성부른 나무' 문익환의 진가를 그 어린 나이에 '똑바로' 알아볼 만큼 안목을 갖춘 여성 박용길!

결혼 이후 늦봄은 목사가 되었다. 부부가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남편 한 사람만 목사가 됐다. 목사가 된 이후 남편은 한국전쟁 기간에 일본 주재 유엔극동사령부에서 미군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학교의 책임자로 일했다. 그동안 봄길은 뭘 했을까? 엄마로, 아내로 살았다. 그곳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 노릇도 병행하며.

웃음 없는 시대에 웃을 수 있었던 사람

봄길은 결혼 후 엄마 노릇을 할 때도 봄길답게 했고, 아내 노릇을 할 때도 봄길다움을 잃지 않았다. 더 발전시켜나갔다. 여기서 봄길다움이란 무엇일까? <봄길 박용길>을 읽다 보면, 봄길다움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봄길다움의 첫 번째는 '꼼꼼한 역사기록'이다.

봄길은 육아일기를 썼다. 주안점은 아기에게 '일어난 모든 것'이었다. 아기가 뭐라 말했는지, 아기에게 뭐를 먹였는지, 아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꼼꼼히 기록했다. 말 그대로 '이 세상에 온 작은 사람'에 대한 역사서술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봄길은 그렇게 쓴 육아일기장들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두었다('통일의집' 박물관에 가면 지금도 관람할 수 있다).

육아일기 쓸 때만 봄길이 꼼꼼했을까? 그럴 리 없다. 봄길은 감옥에 있는 남편에게 쓰는 편지에서도 그 꼼꼼함을 발휘했다. 편지마다 일련번호를 붙이는 건 '기본'이었다.

[1977년 9월 18일] 밤 사이 안녕하시죠? 지금 아침예배 후 간단히 점심을 어머님과 김 장로님과 피아노 앞에서 나누고 피아노를 좀 치다가 펜을 들었습니다. 여러 모임에서 갑자기 부탁을 하기 때문에 의근이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196쪽

[1981년 11월 21일] 당신의 11월 서신이 도착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서른한 통을 보내고 한 통 받는 편지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며 큰 소리로 읽어드렸죠. 그래도 비중은 맞먹는 것일 거예요. 귀중한 글들이 꽉 들어차있거든요. -216쪽

봄길다움의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유쾌한 느긋함'이다. 봄길은 잘 웃는 사람이었다. 여신도회에서 일할 때 봄길은 '즐거운 오락' 시간의 중요성을 각별히 강조하곤 했다. 심각하고 무겁게 회의만 하고 헤어지지 않도록 주의했다(134~135쪽).

남편이 감옥에 있는 동안, 봄길이 공덕귀 여사 등 구속자 가족들과 함께 활동할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구속자 가족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합창단처럼 구치소 바깥 길거리에 도열해 노래를 불렀다. 봄길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 데모가. 그러니깐 남편들은 그 안에서 신나고. 그땐 우리 세상이었어. 꿀릴 데가 하나도 없었어. 하하하." -176쪽

구속자 가족들이 (요즘 식으로 '버스킹'하듯) 노래를 부르니 굉장한 구경거리로 알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사람들 중 내막을 알고는, "가족들이 갇혀 있는데 뭐가 그리 즐거워요?"라고 물었단다. 그때 봄길은 이렇게 답했다나. "우리가 뭐, 죄지었나요?"

이 같은 봄길의 유쾌함은 느긋함과 상당히 관계가 있다. 신혼 시절, 8.15해방 직후 가족들이 다함께 소련 군인들이 포진돼 있는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였다. 다들 벌벌 떨며 조심조심 이동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어느 순간 봄길이 사라졌다. 남편은 허둥지둥 아내를 찾아다니다 길 한복판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 먹고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흔한 느긋함? 아니다. 평균의 느긋함과 낙천성을 훌쩍 넘어서는 대범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봄길의 대범함을 할 수 있는 일화는 또 있다.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독재 치하, 봄길 자신이 체포되었을 때였다. 봄길은 조사받다가 저녁 때가 되니 "밤인데 자야죠" 말하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조사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만날 드러누워 있어서 어떡하냐"라며 의논을 할 정도였다(161쪽).

봄길은 엄혹하고 불길한 시대를 발랄한 유쾌함과 대범한 느긋함으로 뚫고 나갔다. 남편인 늦봄에게도 그런 유쾌함과 느긋함이 없지 않았지만, 봄길은 남편을 능가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 책표지에 아로새겨진 봄길의 웃는 얼굴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 앞에서 예쁘게 찍히려고 애써 지어낸 미소가 아니다. 진심으로 기쁘고 즐겁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환한 진짜배기 웃음이다. 온 얼굴이, 이 진짜배기 웃음을 위해 '합력'하고 있다.

명백히 봄길은 박정희 유신독재시대, 전두환 군부독재시대에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 걸고 운동한 여성활동가였다. 붙잡혀가고, 고문당하고, 투옥당하고, 쥐도새도 모르게 살해당하는 운명을 감당해야 했던 시기였다. 혈서를 쓰고자 (안중근 의사처럼) 손가락 한 마디를 잘라내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요컨대 봄길의 삶은 웃음이 자발적으로 나오기 어려운 삶이었다. 그런데도 봄길은 자주 활짝 웃었다. 봄길 박용길은, 웃을 수 있어도 웃었고 웃을 수 없어도 웃었다. 자신이 지닌 웃음의 능력으로 '힘껏' 웃었다.

사실 이 책 <봄길 박용길>은 작년(2019년, 삼일운동 100돌, 봄길 탄생 100주년)에 냈어야 했던 책이다. 기획하고 집필하고 의논하고 수정하다 보니 좀 늦어졌다고 한다. 그 때문에 출판기념회를 열며 출판편집위원들은 송구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의 주인공 봄길은 "괜찮아, 괜찮아" 하며, 하하, 웃을 것 같다. 특유의 유쾌함과 느긋함을 담아서, 표지 사진처럼.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6월 18일, 목 10:5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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