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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모두가 함께 먹어라"
[읽는설교] (고전 11:20-34) '차별'이 화두인 시대, 성찬의 의미

(올랜도=코리아위클리) 황용기 목사(올랜도새길교회) = 지금 미국은 백인 우월주의와 짝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고 삽니다.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여기에 대해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본류도 아니고 실용적 선택도 아닙니다. 크리스천들의 배타적인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 주는 왜곡된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권력을 안팎으로 과시하며 차별하며 무자비하고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가부장적 권위를 숭배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꾸준히 쌓아 온 세계관입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꾸짖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님이 꾸짖습니다. 사도바울의 편지를 받는 고린도교인들은 안식 후 첫날 모였습니다. 가정교회입니다. 집주인은 가정교회에 먼저 믿은 자들과 새신자들을 초청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유대인들이 있고 헬라인도 있습니다. 집주인처럼 중산층 혹은 부유 고위층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자유 시민도 있고 노예도 있습니다. 모두 크리스천입니다.

교인들은 안식 후 첫날을 기다립니다. 이 날은 1주에 1번 모이며 주의 만찬일로 정해져 있습니다. 동시에 교인들의 공동 식사날이기도 합니다. 전자는 주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후자는 보통사람 누구나 먹는 저녁 식사입니다.

이런 모임에서는 60-70명이 거뜬히 모여 주의 만찬식을 거행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유력한 교인 집에서 모였습니다. 어떤 집은 밖에서 안쪽으로 보면 안마당이 보이는 오이코스(oikos)입니다. 어떤 집은 다세대 가구들이 2~7층에 살고 1층에 가죽 제품 작업실과 영업매장을 겸하는 인슐라(insula, 상가가 딸린 다층아파트)입니다.

중산층 이상의 오이코스는 구조상 가운데 안채 뜰이 있고 사방으로 침실, 주방, 하인실, 여인실이 마당을 감싸고 있습니다. 잔치를 위해 먹을 수 있는 식탁방도 있습니다. 각자 가지고 온 음식을 여기에 가져다 놓습니다. 주의 만찬 후 모두 모여 함께 먹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실 적에 성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즉 '나를 기념하라, 기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미지를 벽에 그려 놓은 공동체도 있을 것이고, 십자가를 상징으로 모시는 공동체도 있을 것입니다.

그 앞에서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예식이 주의 만찬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징적 예식 행위에는 반드시 스토리가 전해 내려옵니다. 예수님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 스토리를 듣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으심을 기린다, 뜻을 받들겠다, 다시는 실패할 수 없다와 같은 다짐과 결기가 있고 의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식을 매주 했다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기념식이 아니었습니다. 떡과 포도주라는 재료를 가지고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의미 상징을 사용했습니다. 주의 만찬이 샘물이라면 많은 교훈을 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성찬은 '교리'가 아니다

적어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만찬과 관련하여 긴히 말하려 했던 것은 역사적 논란이 되어 온 화체설이나 임재설이나 상징설이 아닙니다. 떡과 잔이 예수님의 몸과 피로 실제처럼 변한다, 혹은 이 자리 주님이 함께 하신다, 혹은 상징적으로 그러하다는 교리적 주장을 하려던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의미는 따로 있습니다. 빈궁한 자, 약한 자, 병든 자, 잠자는 자를 방치한 것을 꾸짖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빈궁한 자'와 '약한 자'라는 말 사이에 '주의 만찬' 텍스트가 놓여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은 주의 만찬의 숨겨진 비의를 들어 차별주의를 꾸짖습니다. 잘 안보거나 못보고 지나가는 지점입니다.

당시 분위기를 상상력을 동원하여 복기해 봅니다. 주의 만찬 테이블은 안마당에 있고 대표가 떡을 가지고 축사했을 것입니다. 식사가 시작됩니다. 넉넉한 음식은 아니지만 각자가 가지고 오거나 집주인이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눠 먹습니다. 식후에 포도주 잔을 들고 축사하고 다같이 마시며 주님의 보혈을 기념합니다.

이때 먼저 온 제국의 시민권자 크리스천이 이 질서를 무너뜨리고 먼저 먹어 치웁니다. 매여서 일을 해야 하는 노예나 저임금 노동자 같이 가난한 사람은 늦게 왔습니다. 음식이 동이 났습니다. 기다렸다가 골고루 나눠 먹었으면 배고플 일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마셔 취했습니다. 아주 무례한 행위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의 엄격한 노예제도 가운데 크리스천이 되면 한 형제요 자매로 여기게끔 하는 기독교는 새롭고 급진적인 종교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상종하길 꺼려하는 이방 여인이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를 먹을 수밖에 없는 옛그림이 초기 크리스천 공동체에서 여전히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양반들이 돌잔치 환갑잔치에 초대 받아 따로 음식이 쌓여 있는 곳에서 마음껏 먹는 반면, 머슴들과 거지들은 양반들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먹는 장면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분명한 것은 초기 가정교회 안에서 당대의 계급의식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선포한 의와 평등의 하나님 나라는 이미 선포되었고 그 나라는 지금 진행 중입니다. 이 때 먹는 문제로 같은 교회 안에 실족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꾸짖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느냐. 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주의 만찬인 떡과 잔을 먹고 마신다고? 교회 안에서 약한 자, 병든 자가 생기게 되고 심지어 영적으로 죽는 일까지 발생한다? 이게 말이 되느냐. 개혁이 되어야 할 세상 사람들의 계급문화에 안주하며 주의 만찬이라고 먹고 마시는 행위는 형용모순이 아니냐. 그러니 구원에 이르지 못할 정죄는 아니라 할지라도 매(징계)는 받아야 해. 정신 차려서 이제부터는 늦게 오는 형제자매들을 기다려서 같이 먹도록 해."

지금 바울은, 복음의 핵심이 공격받아 파괴되는 위기 국면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와 정반대의 저주 받을 일로 봤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의미를 살피지 못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거슬러, 이웃과 하나되기

주의 만찬이란 단순히 '기념'하는데 그 의의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의 만찬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忠)을 드러내는(顯) 현충 (顯忠)' 의식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신실함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다짐하고, 그렇게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톰 라이트는 '하나님 나라'를 말하면서 하나님 나라가 시저의 로마 제국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실함이 세상 속에 침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의 만찬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세상 속에 드러낸다는 말일까요?

주의 만찬은 이 세상의 힘에 대칭으로 맞서는 파워를 시연하는 것입니다. 흑백을 가르는 인종차별, 유대인에 대한 경멸, 남북이 서로 교환하는 증오의 언어들, 동성애를 정죄하는 종교권력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대칭 파워입니다. 도그마와 편견의 반대편에 우뚝 서서 한판 붙어 보자는 반차별주의(Counter-Classism) 선언입니다.

고로, 떡과 잔을 나누는 주의 만찬은 현재의 세상 관습과 문화와 권력에 반역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 속에 가난한 자, 병든 자, 여성들, 차별금지법에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들, 이방 헬라인, 노예들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성차별, 인종차별에 맞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의 만찬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비밀 같습니다. 엡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기독교는 민족 안에 갇힌 종교가 아닌 글로벌 종교입니다. 각 나라와 민족의 문화의 차이를 다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게 오늘날 종말론적 기독교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진정 복음에 올바로 서 있다면, 주의 만찬에 올바르게 참여한다면 차별을 반대하는 입법에 찬성해야 합니다. 주의 만찬과 차별은 양립할 수 없고 분연히 각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바울은 주의 만찬 텍스트 자체, 주의 몸과 잔을 먹고 마시는 자체가 나에게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 차별과 배제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먹고 마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베프시는 만찬에 내 옆의 가난한 이웃이 동일하게 초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만찬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분리하여 떠난 인간,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인간의 원초적 죄악을 회개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성찬은 연합(communion)'을 깨버린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기억함과 동시에 분리와 배제의 죄악됨을 회개하는 의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선포하고 함께 먹고 마시겠다는 실천의지를 표현하는 의식입니다. 바울은 차별과 배제의 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고린도 교회에 안타까움으로 이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 10대 무역국, BTS 뮤직, 기생충 영화, 코로나바이러스 국내 확진자 수를 하루 10명대 묶어 놓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나라입니다. 이 좋은 환경에 우리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마땅히 타문화 이민자 혹은 외국인을 보호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때 주의 만찬 참여는 언어, 문화, 종족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건축하는데 참여하는 것입니다. '샬롬'의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수동적으로 받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지적으로 이루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올려짐: 2020년 8월 07일, 금 9:3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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