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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전교조 합법화... 교사인 내가 '반성문'을 쓰는 이유
[주장] 비정규직, 학벌 경쟁 등 현실 문제 해결 위해 전교조 반드시 변해야


▲ 전교조 권정오 위원장(오른쪽)과 조합원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법외노조 통보 취소 소송 상고심 승소 후 포옹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서울=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 '사필귀정' 맞다. 전교조는 7년 동안의 풍찬노숙을 마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촛불 항쟁 이후 시간 문제로 여겨온 터라 대법원의 판결이 새삼스럽진 않다. 해직을 감수하며 싸워온 집행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니 언뜻 낯설다. (관련 기사: 대법원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 7년 만에 다시 합법화 http://omn.kr/1ospt)

동료 교사들과 기쁨을 나누기보다, 전교조 조합원으로 살아온 지난 20년 가까운 삶을 반추해보고 싶었다. 조합원 여부와 상관없이 동료 교사들은 심드렁한 표정이었고, 대부분의 아이는 아예 무관심한 듯했다. 함께 박수를 치며 기뻐해야 할 때, 굳이 '반성문'을 쓰는 이유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


▲ 1989년 5월 28일 연세대에서 역사적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식이 열려 비합법 노조가 출범하였다. ⓒ 전교조

다시 합법화된 날, 서랍 속 낡은 전교조 배지를 꺼내 보았다. 초임 시절 전교조 조합원이 된 뒤 얼마 동안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다녔던 물건이다. 언제 서랍에 들어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신 지금 가슴의 같은 자리엔 6년째 세월호 노란 리본 배지가 달려 있다.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 아래 참교육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동그란 배지다. 얼굴 뒷배경은 빨간색과 파란색 선이 절반씩 위아래로 그어져 있다. 음과 양, 남과 여, 남과 북의 화합을 두루 상징하는 메타포다. '민족, 민주, 인간화'라는 전교조의 창립 취지를 그대로 담은 것이다.

고백하자면, 난 '전교조 세대'다. 특별하게 시기와 의미가 규정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1989년 전교조가 창립될 때, '한 방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학력고사를 앞둔 고3 수험생이었다. 3년 내내 학교 안팎이 어수선하던 시절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뒤 찾아간 모교는 아예 다른 학교가 돼 있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는' 곳이었다. 교실도, 운동장도, 교무실의 책상조차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지만, 정작 뵙고 싶었던 선생님들은 안 계셨다. 상당수가 해직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한참 지나서였다.

자연스럽게 전교조를 알게 됐고, 그 취지를 가슴에 품게 됐다. 지금이야 고루한 이념인 양 치부되고 있지만, '민족, 민주, 인간화'라는 명징한 세 단어는 당시 청년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병영을 방불케 했던 고등학교 현장에 대한 분명한 성찰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였고, 그것에 이르는 길이 곧 '참교육'이었다. 맹목적인 성적 경쟁을 부추기고 관료화된 구조에 상명하복을 강요당하는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교사들의 다짐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그 공감과 연대의 결과물이 전교조였던 셈이다.

대학 시절 내내 해직된 선생님들을 기억하며 전교조와 함께했다. 시위와 집회의 현장에서 노래인지 구호인지 모를 함성에 '참교육'에 대한 간절함을 담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목놓아 노래 불렀고,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을 부수자'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힘들었지만 보람찬 시절이었다. 가치를 공유한 이들끼리 자발적으로 연대해 불의에 맞서는 건, '투쟁'이 아니라 '엠티'(MT)에 가까웠다. 최루탄의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아스팔트 위에서도 함께 웃으며 서로의 어깨에 기댈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다.

그토록 염원하던 '민족, 민주, 인간화'를 몸소 실천할 기회가 일찍 찾아왔다. 전교조를 가슴에 품은 지 10년 만에 교사가 되어 아이들 앞에 선 것이다. 그들과 함께 통일을 꿈꾸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자유롭고 평등한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겠노라는 상상만으로도 설레었다.

다짐은 굳건했을지언정 실천은 성겼다. 권위주의 정권이 붕괴하고 사회는 민주화를 향해 내달렸지만, 학교 교육의 변화는 더디기만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관료화된 학교는 오히려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었고, 그 중심에 온존한 학벌 구조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교육과 교사를 '갈라치기'하다


▲ 2015년 11월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회의실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및 노동개악 저지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장에 붙어 있는 전교조 로고의 일부 글자가 떨어져 있다. ⓒ 이희훈

1997년 외환 위기(IMF)는 그러잖아도 휘청이던 학교 교육에 직격탄이 됐다. 각자도생의 무한경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학교는 이미 '참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기간제'라는 이름의 비정규직 교사가 양산되면서 수평적인 교사 집단마저 사분오열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전교조의 숙원이었던 합법화가 이루어진 때였지만, 엄혹했던 창립 당시의 결기를 보여주진 못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 불리던 외환 위기의 소용돌이 앞에 '민족, 민주, 인간화'라는 취지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치부됐다. 교육의 '이상'과 '현실'이 따로 놀게 된 시점이다.

보수언론이 앞장서서 화풀이하듯 전교조에 뭇매를 가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전교조의 이념 편향 교육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 인터넷 공간에서 무차별적으로 살포됐다. 이후 집권한 두 보수 정권에선 묵인과 방조를 넘어 이를 사실인 양 대놓고 부추겼다.

'거짓말은 처음엔 부정되고, 그다음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는 나치의 선전 장관 괴벨스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했다. 외환 위기 이후 고단한 삶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먹혀든 것이다. 정확히는 교육과 교사를 '갈라치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색깔론까지 덧씌워지면서 '민족, 민주, 인간화'라는 전교조의 강령은 시나브로 조롱거리가 됐다. 통일은 비현실적이고, 경쟁이 곧 교육의 본령이라는 주장마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민주화'라는 숭고한 가치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이들이 횡행했다.

집요하고 극악한 정치적 탄압에도 전교조는 참교육 실천 운동을 이어가며 의연히 맞섰지만, 이념 편향이라는 낙인은 굳어져만 갔다. 교사 집단을 남교사와 여교사로 나누기보다 전교조와 비전교조로 구분 짓는 게 더 익숙한 상황이 됐다. 전교조의 고립이 현실화하는 분위기였다.

보수언론에 부화뇌동한 여론의 뭇매는 계속됐지만, 전교조는 고립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전히 우군이 더 많다는 판단에서였을까. 부정적인 여론과 싸우고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선 더욱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야 했건만, 눈을 자꾸만 학교 밖으로 돌린 것이다.

당장 눈앞의 결과는 좋았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전교조 교사 출신 후보가 17개 시도 교육감 중 10명이나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여론의 냉담한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안마다 공세적으로 대응했고, 이는 전교조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진보 성향의 정권이 등장했고, 이른바 '교육 대통령'이라는 교육감까지 석권했으니, 모양새로만 보면 전교조는 우리 교육의 주류가 되었다. 드디어 강령을 현실화시킬 힘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걸 구현할 교사가 학교에 부족했다. '머리'만 있고, '손발'은 없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은 '진보적'인데, 실적은 '보수적'이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가 정책의 의도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계획이 숭고하고 치밀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정권과 교육감이 바뀌어도, 아이들이 느끼는 학교의 팍팍한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다.

일례로, 전교조 조합원의 수도 줄어드는 데다, 어느덧 평균 연령이 쉰 살에 이른다. 전교조는 이제 '전노조'(全老組)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웃픈' 이야기도 조합원들 사이에서 나오는 마당이다. 나이로만 치면, 교장과 교감보다 손위인 전교조 교사도 학교마다 적지 않다.

'머리'로부터 하달되는 진보적인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관행에 익숙해진 '손발'은 변화를 요구하는 '머리'를 따라갈 수 없다. 교육감을 당선시키는 것보다 후배 교사들이 전교조에 공감하도록 이끄는 것이 백 배 더 중요한 일임을 간과했다.

일부 조합원들의 일탈도 전교조의 노쇠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조합원 수가 줄어들자 여느 조직처럼 온정주의가 고개를 들었다. '교사 집단이기 앞서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동조합'이라는 말로 일탈을 두둔하면서 도덕적 권위를 내팽개치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

전교조는 반드시 변해야 한다

요즘 젊은 교사들에게 전교조는 교육 개혁을 선도하는 조직이 아니다. 나름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교사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저 이익 단체나 학교별 친목 단체로 여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전교조와 비전교조 교사의 차이를 모르겠다는 이도 있다.

한 초임 교사에게 전교조 가입을 권하다가 봉변을 당한 적도 있다. 그는 대뜸 학벌 타파를 외치면서도 당신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기숙학원에 보내는 조합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반문했다. 수업보다는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은 이들도 여럿이라며 힐난했다.

그때마다 전교조는 전가의 보도처럼 극소수의 문제라고 둘러댔다. 요즘엔 진보와 보수에 대한 비판의 잣대가 기울어져 있다며 도리어 성을 내기도 한다. 여느 직업보다 교직에, 여느 교사보다 전교조에 더욱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숙명인데도 말이다.

그는 가입 원서를 물리며 조언 한마디를 덧붙였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혐오하는 교사는, 실력이 부족한 교사 아니라 위선적인 교사라고. 알다시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죄가 대수롭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그의 위선적 행동 때문이라는 거다.

난 이번 판결을 '전교조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로 읽었다. 최근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몽니'를 보면서, 전교조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는 걸 깨달은 터다. 젊은 교사들과 손잡고 아이들의 고운 심성과 선한 의지를 북돋우지 못하는 한, 전교조의 미래는 단언컨대 없다.

끝으로 곧 복직하게 될 서른세 분의 선생님들께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올린다. 아울러 조합원으로서 전교조가 아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오늘 유독 전교조 배지의 '참교육'이라는 글씨가 도드라져 보이는 까닭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9월 11일, 금 5:5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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