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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20년 11월 26일, 목 12:15 am
[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한국 비판할 때 꼭 나오던 말, 이들이 바꾸고 있다
[2020 케이팝 월드 리포트] 한국인들의 문화적 역량은 어디서 온 것일까?


▲ 8만5천 명이 다녀간 케이팝 콘서트(케이콘) 2017 LA 컨벤션 전경 ⓒ CJ ENM

(서울=오마이뉴스) 임상훈 기자 = 세계화된 한국의 대중문화를 '한류'로 칭하는 것이 이제는 일반화됐다. 케이팝(K-pop)을 선두로 케이드라마(K-dramas), 케이뷰티(K-beauty), 케이무비(K-movie) 등 분야별 한류문화의 확장을 나열하는 표현도 점점 늘고 있다. 몇몇 분야가 최근 십 수 년 사이 세계무대에서 주목을 받게 되면서 점차 세계인의 관심이 한국 문화 전반으로 번져가고 있다.

한국의 다양한 대중문화가 세계 속에서 이처럼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길게 잡아도 20년 남짓. 아시아권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에 존재감을 과시하게 된 것은 그나마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몇몇 아티스트들은 심지어 주목받는 차원을 넘어 최고 수준의 자리에서 전 세계의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불과 10~20년만에

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현상은 이미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서구 비평가들에게 한국의 드라마는 국가 이데올로기나 사회의 전통 관념을 국민들에게 세뇌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대중매체 정도로 이해됐다. 실제 저개발국가에서 티브이 드라마가 정부의 효과적 계몽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 제작되고 수출되고 있는 다량의 한국 드라마들은 구성의 탄탄함, 스토리텔링의 풍부함, 소재의 참신함이 다른 나라의 드라마들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독특한 개성과 한국문화가 잘 스며들어 있는 고유성도 가지고 있다. 한류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보다 늦게 세계무대에 알려진 한국의 대중음악은 이제 그 지명도에서 드라마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남미, 북미, 유럽 등지에서 케이팝을 좋아하는 팬들은 부드러움과 강렬함이 어우러진 군무의 세련됨에 흠뻑 취한다. 음악적 완성도에서도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는 수준급이다. 어린 나이부터 합숙을 통해 체계적으로 익힌 이들의 율동과 창법은 잘 다듬어져 있어, 이러한 수련 방식에 대해 공장에서 기성품 찍어내듯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비판하는 평론가들마저도 그 완성도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을 한다. 무대를 꽉 채우는 화려한 군무는 관중을 흡입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국 영화가 세계인의 눈에 띈 것은 드라마와 음악보다 나중의 일이지만 이웃 일본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몇몇 작품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유사한 정서를 가진 문화권이라는 이점에다 몇몇 스타급 배우들의 인기도 한국 영화의 일본 흥행에 한 몫 한 것이 사실이다.


▲ 아카데미상 수상 발표후 기뻐하는 봉준호 감독 ⓒ CJ엔터테인먼트

프랑스 문화원을 해방구 삼아 드나들며 그들의 영화를 자양분으로 성장한 지금의 50대 감독들의 출현은 한국 영화를 단숨에 세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봉준호 감독의 2019 칸영화제 대상과 2020 아카데미상 4관왕 쾌거는 '봉준호 장르'라는 용어까지 등장시키면서 예술 분야에서 한국인이 먼저 간 새 길을 세계인이 뒤따를 수도 있다는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한류 바람을 이끄는 드라마, 음악, 영화에 이어서 음식, 미용 등 후발 분야들도 북미지역은 물론 유럽과 남미에 이르기까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점점 두터운 마니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문화적 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한국인들의 자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2000년대 들어 활짝 피어오른 한국인들의 문화적 역량은 어디서 온 것일까?

철학자들의 예언

한국 문화가 만개하기까지는 3세대에 걸친 한국인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그 열망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필요했다. 문화는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의 끝에서 비로소 꽃을 피운다. 자유를 포기한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문화를 만날 수 없다. 문화는 진부하고 평범한, 그렇지만 필연적인 우리의 일상을 넘어서 새롭고 특별한, 그렇지만 당장 필연적이지 않을 수도 있는 비상함을 찾아 나설 때 얻어진다. 그 비상함은 비움, 빈 공간, 즉 여유를 의미하며, 여유를 찾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문화는 만나기 어렵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여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화는 이처럼 찾아 나서야 가능해진다. 문화를 만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창조는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본래의 일상은 영원히 쳇바퀴를 돌 수밖에 없다. 문화는 이처럼 일상을 벗어나야 얻어지지만 그렇게 얻은 문화는 다시 일상을 바꾸기도 한다.

20세기 초 대중문화를 둘러싼 벤야민(Walter Benjamin)과 아도르노(Theodor Adorno)의 유명한 논쟁이 있었다. 과연 대중문화가 가능하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두 사람은 정반대의 전망을 내놓았다. 아도르노는 '대중'과 '문화'는 전혀 호환될 수 없는 개념이라면서 대중문화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문화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의지의 산물인데, 대중들에게 주어지는 문화란 삼키기 좋게 적당한 규격으로, 적당히 달달하고 적당히 고소한 맛으로 가공돼 저작(咀嚼) 활동도 필요 없이 목구멍으로 넘기도록 돼 있는 가공물이라는 것이다. 결국 대중들 앞에 내놓은 문화라는 것들은 거위의 목 안으로 부어 넣는 사료와 같은 것이라는 비판인 셈이다.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라는 것은 없고 오로지 '문화산업'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반해 벤야민은 대중의 힘을 긍정적으로 전망하면서 당시의 상황과 달리 대중은 언젠가 문화를 능동적으로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문화도 소수자들의 전유물이던 시대가 있었지만 예술품이 대규모로 복제되고 공장에서 양산되는 시대에 예술과 문화는 새로운 형태로 본질적인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수 귀족들의 요청으로 그들의 살롱에서 연주되는 형태로나 가능했던 음악이 지금은 무한 복제되면서 누구나,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오늘날 예술이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권력이 과거에는 소수자의 전유물이었지만 다수의 국민이 공유할 수 있었듯이 문화 역시 이러한 대중들의 주체적 공유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벤야민은 꿰뚫어 봤던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벤야민의 예언에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대중이 문화를 가지기 위해서는 아도르노의 지적처럼 '무뇌인'이 음식 삼키듯 눈앞에 던져주는 것을 받아 삼키는 수용 자세로는 곤란하다. 그런 문화소비가 지속되는 한 그가 지적한 문화 없는 문화산업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는 대중의 기호가 아닌 자본가의 기호를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도르노의 경고 또한 오늘날까지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진정한 의미의 대중문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민계급' 즉 생계로부터의 자유와 정치적 존재자로서의 자유를 모두 쟁취한 자들이 사회의 중심에 설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지난 세기의 철학자들은 잘 보여줬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후 한국의 대중문화 발전이 그 생생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들의 3단계 역동성

20세기 중반까지 침략과 착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악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한국인들은 그들이 찾아야 하는 첫 번째 자유가 잿더미와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탈출 의지로서의 자유임을 알고 있었다. 당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역동성은 무엇으로 향하겠다는 역동성이 아닌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역동성이었다. 무엇을 향한 자유가 아닌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50~7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들에게 자유를 얻기 위해 벗어나야 했던 그것은 굶주림이었다. 그리고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그 과정을 우리는 산업화라고 불렀다.

원초적 속박인 굶주림을 벗어나는 동안 또 하나의 속박이 우리를 구속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기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싸워야 했던 시간들은 지났지만 정치적 자유를 얻기까지는 새로운 역동성이 필요했다. 그렇게 또 한국인들은 정치적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고 그렇게 싸웠던 70~90년대 한국인들이 보여줬던 역동성 역시 무언가를 벗어나기 위한 절박함이었다. 이 시기의 한국인들은 육체적 굶주림이 아닌 정신적 굶주림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투쟁을 했고, 그렇게 싸워온 과정을 우리는 민주화라고 불렀다.

지난 한 세기를 불꽃같은 열정으로 살아온 한국인들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다시 쏟을 열정은 무엇을 위한 열정이었을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을 새로운 열정의 대상은 바로 문화였다. 그러한 여정은 한국인들에게 필연적이었다. 아니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그들처럼 자유를 향한 필연적인 역동성을 보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다. 문화가 비움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앞서 살펴봤다. 그리고 그러한 비움은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 정치적 존재자로서의 자유를 획득하고 나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도 봤다.

90년대 말 김대중 정부가 국가의 역량을 문화발전을 향한 장기적 계획에 집중하고 과감한 투자에 나섰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당시는 한국 현대사 최초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시기였다. 그에 따른 시대적 요구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졌고, 국가 부도 수준의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비롯해, 꼬여 있는 남북관계 등 정치-경제-외교-안보 분야와 같은 하드웨어적 과제들이 산적해있던 당시였다. 게다가 5년 단임으로 끝나는 짧은 시간 동안 문화라는 소프트웨어 담론을 국가의 장기적 실천 계획으로 옮겼다는 것은 철인적(哲人的) 혜안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선택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결과를 놓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 지난 2007년 목포 MBC 단독 대담에서 한류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 MBC

물론 한국의 대중문화 시장이 성장을 하고, 주변국들로 수출이 되기 시작한 것이 정권의 임기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90년대 들어서면서 특히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영화, 게임 등 대중문화 산업 전체가 급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90년대 말, 김대중 정부 당시 문화관광부가 중심이 되어 한국 대중문화를 세계에 소개하기 위한 계획들이 추진되고 '한류'라는 용어도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99년 문화관광부가 한국의 대중음악을 외국에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음반의 제목은 <韓流(한류)-Song from Korea>였다.

이렇게 국가 차원의 대대적 뒷받침은 해외로 진출하는 대중문화 아티스트들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고, 정부와 예술계가 함께 구동하는 한류라는 열차가 전 세계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외국의 비판적 언론들은 '한류는 예술인들의 자발적이고 자생적 본능에 의한 창작이 아닌 정부주도의 경제적 목적 지향의 국책사업'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주목해 들어야 할 지적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케이팝의 젊은 아티스트들 역시 자신들의 표현이 아닌 기획사의 의도에 따라 맞춤 제작된 기성품들이라는 비판 역시 전혀 허무맹랑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의 문화적 역량은 이미 긴 자유를 향한 여정 끝에, 앞서 말한 벤야민(Benjamin)적 의미에서 "대중문화를 진정한 문화로 만드는 단계"에 와 있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인가?

비판적 시선마저 압도한 또 한 번의 변화

이 대목에서 우리는 방탄소년단(BTS)의 활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방탄소년단은 현재 그리고 과거까지 통틀어 한국의 대중음악 뮤지션들 가운데 가장 세계무대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이다. 이들에 대한 세계 젊은이들의 환호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지금까지의 모든 한류를 합한 것보다 더 열광적이다. 무엇이 이들의 인기를 가능하게 할까? 바로 벤야민이 말한 복제시대에 이른 문화의 근본적 변화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화의 근본적 변화가 아니라 문화 주체의 근본적 변화다.

과거라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구상의 수많은 팬들이 이들의 신곡 발표를 동시에 듣는다. 사회망을 통해 반응하고 교감한다. 이들의 음악적 여정을 함께 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음악을 함께 만들어 간다. 그러면서도 이들에 대한 추종과 신뢰는 절대적이다. 요컨대 과거와 같은 일방적 '팬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절대적 팬덤문화를 만들어 가면서도 팬들이 뮤지션에게도 또 뮤지션이 팬들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간다.


▲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8월 30일(현지시간) MTV 주관으로 생중계된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베스트 팝', '베스트 K팝', '베스트 그룹', '베스트 안무' 등 후보로 오른 4개 부문에서 모두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혹자들은 이런 문화현상을 보텀업(Bottom-up) 문화라고도 한다. 과거의 대중문화의 전형적 유형과 같이 아티스트가 뭔가 만들어 보이면 팬들은 조건반사처럼 집어 삼키는 톱다운(Top-down) 문화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아티스트와 팬들이 상당부분의 교감을 하는 방식이다. 이들 팬들에게 아티스트는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스타가 아니라 무명부터 함께 만들어온 동지가 되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우려한 산업의 타깃으로 전락하는 대중이 아닌, 벤야민이 예측한 대중문화의 주체가 되는 대중, 이들이 방탄소년단의 팬들이다.

세계의 젊은이들을 그토록 열광시키는 방탄소년단이 왜 현대 대중문화의 신생국 한국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그 답은 3세대 동안 자유를 찾아 쉬지 않고 달려온 바로 우리 안에 있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0월 08일, 목 5:5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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