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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의대생을 '괴물'로 키운 교사의 반성문
[아이들은 나의 스승] 특권 당연시 하는 제자와의 씁쓸했던 통화


▲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을 비롯한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본과 4학년생들의 의사 국가고시 미응시 문제와 관련해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 김연수 서울대학병원장,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 김영모 인하대 의료원장. ⓒ 공동취재사진

(서울=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 의사들의 진료거부 사태를 지켜보면서 의료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인공지능에 기반한 원격 의료의 필요성에도 일정 부분 공감하고, 외국으로부터 의사를 유치하는 것 또한 반대하지 않는다. 나중 병원 신세를 질 때가 오더라도, 조만간 의사가 될 지금 의대생들에게 내 몸을 의탁하고 싶지 않다.

얼마 전 의대 교수들이 나서서 의대생들이 의사고시를 볼 수 있도록 선처해달라며 정부에 요청했다. 그런데, 정작 정부의 굴욕적인 양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료 거부를 주도한 당사자들은 일언반구 아무런 말이 없다. 그들은 스승의 등 뒤에 숨어 사태를 관망하려는 걸까.

정부를 무릎 꿇리기 위해 그들은 응급실을 비웠고, 그들의 동료인 간호사들의 업무는 배가되었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고, 그로 인해 치료할 시기를 놓쳐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다. 여론의 질타에도 그들의 몽니는 더욱 기세등등해져만 갔다.

장담하건대, 그들은 국민 앞에 사과할 용기가 없는 게 아니라, 사과할 마음이 없는 게 아닐까? 그들은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모를뿐더러, 여론에 떠밀려 사과를 하는 건 잘못을 자인하는 꼴이라며 반발한다. 애초 '시비를 건' 정부가 자신들에게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봤다.

의대생 제자와의 통화

"올해 의사고시를 치르지 않으면 저희도 피해를 입겠지만, 정부가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걸요. 당장 의사가 부족해지면 농어촌 등 의료 취약 지역이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정부가 이를 수수방관할 수 없을 테니, 적당히 '밀당'하다가 구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겠죠."

수화기 너머 의대생 제자의 목소리는 사뭇 당당했다. 자칫 1년을 허송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위로를 건넬 요량이었는데, 그다지 불안해하는 기색을 느낄 수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여론의 관심도 식어갈 테고, 결국 이번에도 정부가 양보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의대생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할 거라면서,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서 뭐라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쯤 되면 공감 능력이 없는 거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한 이들을 어찌 의사라 부를 수 있을까.

거칠게 말해서, 언제든 생명을 볼모로 삼을 수 있는 그들은 우리 사회의 '갑 중의 갑'이다. 정부가 아무리 을러대고 비난 여론의 뭇매를 맞아도, 그들에겐 전혀 괘념치 않을 힘이 있다. 비록 뒤에서는 욕할지라도 병원에서는 누구든 자신들 앞에 '을'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진료 거부 사태로 의대생과 전공의는 물론 의사 집단 전체가 욕을 먹긴 했어도,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기는 오히려 하늘을 찌르고 있다고 한다. 정부의 정책조차 무력화시킨 무소불위의 힘을 두 눈으로 확인한 터다. 변호사나 국회의원보다 의사가 낫다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해고 노동자는 공장 굴뚝에 올라 수백 일 동안 목숨을 걸고 농성을 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던 정부가, 한낱 의대생의 몽니에도 움찔거리는 걸 보면, 이 세상에 의사만 한 직업은 없는 것 같아요. 평균 한 달 월급이 1400만 원이라던데, 의사는 부와 권력을 다 가진 셈이네요."

의사들의 진료 거부를 지켜본 고3 한 아이의 뼈를 때리는 지적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해고 노동자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반면, 의대생은 응당 치러야 하는 시험만 거부하면 해결되는 현실이 정상이냐고 되물었다. 그의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쭈뼛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의 위세 덕에 의대와 치대는 'SKY'를 누르고 학벌 구조의 최정점에 올라섰다. 적어도 'SKY'로 대표되는 최상위권 대학의 위상이 의치대에 밀려서인지 예년만 같지 못하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 회자되는 학벌 서열은 의치대부터 시작된다.

의치대면 지방대라도 학벌 서열 최상위에 자리한다. 의치대에 진학할 거라면 굳이 서울로 올라갈 필요가 없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차피 입학과 동시에 의사는 떼놓은 당상인 데다, 마음만 먹으면 나중에 언제든 서울에서 살 수 있으니 시작부터 아등바등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SKY' 공대와 지방 사립대 의대 중 아이들은 어느 곳을 최종 선택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잖이 고민스러웠을 테지만, 지금은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의대를 택한다. 하긴 이런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있는 아이들은 기껏해야 100명 중 한두 명이 될까 말까다.

그들의 생활기록부를 보면 면면이 화려하다.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말마따나, '학창 시절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동안을 단 한 번 '삐끗한' 적 없이 최상위권을 독점해왔다.

오로지 의대 진학을 위해 단 한 순간도 곁눈질하지 않고 오로지 시험공부에만 매몰된 그들은 부지불식간에 '괴물'이 돼버렸다. 대개 공부를 잘하는 아이일수록 자신의 잇속만 차리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자신의 능력과 시간을 당최 공부가 서툰 친구들과 나누려 하지 않는다.

일분일초 허송하는 법 없이 스스로 채찍질해가며 매사 열심히 공부하지만, 시간도 노력도 모두 자신을 향해 있다. 경험상 그들은 모둠 활동에 소극적이고, 친구들과 함께 수행해야 하는 프로젝트 과제에 대해 불만이 많다. 그들은 다른 친구들로 인해 감점되는 걸 못 견뎌 한다.

혼자서는 잘하지만, 함께 하는 일에는 젬병인 경우가 많다. 물론, 생활기록부에는 그렇게 기재할 수 없다. 의대를 한 명이라도 더 진학시켜야 하는 학교의 입장도 그렇거니와,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를 감당하기도 힘들다. 여담이지만, 대입 전형자료로 쓸 경우 성적을 제외한 생활기록부 항목은 비공개하는 게 옳다고 본다.

안타깝지만, 성적과 생활기록부에 기재될 내용의 양과 질은 정확히 비례한다. 곧, 최상위권 아이는 자연스럽게 최고의 인성을 지닌 인재가 된다. 수학을 가르치는 한 동료 교사는 이렇게 푸념했다. 생활기록부의 기록만 놓고 보면, 미래에 노벨상을 받을 아이가 한둘이 아니라고.

'공부가 가장 쉬웠을' 그들에게 사람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시험 성적일 수밖에 없는 건 당연지사다. 지금껏 그들이 존재를 인정받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 아이는 자신의 이름보다 '전교 1등'으로 불리기를 바랐고, 다른 아이는 의대에 갈 수 있다면 고문을 당해도 좋다고까지 했다.

그들은 '승자독식'이라는 단어에 별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무한경쟁에서 승리한 대가로서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어릴 적부터 무한경쟁을 내면화한 그들에게 공감 능력을 기대하는 건 무망한 짓인지도 모른다. '아니꼽거든 네가 이기면 된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그들이다.

그들의 뿌리 깊은 특권 의식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시나브로 길들어졌다. 그들의 부모는 부추겼고, 교사는 묵인했으며, 우리 사회는 방치했다. 이번 진료 거부 사태에서 보듯, 그들의 아집과 독선은 고스란히 애꿎은 국민의 피해로 돌아온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호기롭다.

의대생들 반성의 전제 조건


▲ 4대악 의료정책(한방첩약 급여화, 의대 정원 4천명 증원, 공공의대 신설, 원격의료)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궐기대회"가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8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개업의, 전공의, 의대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의대생 대표들이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개인적으로, 의대생들의 사과를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 와중에도 의대 교수 뒤에 숨어 눈치나 보는 자들이 기자들 앞에서 사과할 일도 없을 테지만, 설령 한다고 해도 가식적인 행위로 보일 뿐이다.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몸에 밴 특권 의식부터 내려놓겠다는 다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당장 흉부외과나 응급의학과 등 바이탈과에 지원하겠다거나, 의료 취약 지역에서 근무하겠다는 서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의료가 공공의 영역이라는 것만이라도 인정하길 바란다.

의대생 제자는 '안과나 피부과에 가면 쉽게 돈을 버는데, 힘들고 위험한 데다 의료수가마저 낮은 외과 수술을 누가 하겠느냐'며 반문했다. 수술을 시키려면 돈을 더 얹어달라는 뜻이다. 대답 대신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의사가 된 것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그는 그저 웃기만 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0월 18일, 일 6:3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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