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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실리콘밸리 경영진 자녀들이 다니는 최고급 학교의 비밀
[비대면 경제의 허상과 현실] 스마트 교육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


▲ 아이패드는 뛰어난 직관성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왼쪽 사진은 막 출시된 아이패드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어린이 모습이다. 아이패드는 뛰어난 직관성 덕분에 쉽고 배우고 쓸 수 있지만, 너무 어린 나이부터 쓰게 만들면, 무절제한 과사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강인규/애플

(펜실베이니아=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 =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러니까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한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절이다. 2011년 초여름이었던 6월 말, 청와대에 야심찬 보고서가 하나 전달됐다.

<스마트교육 추진전략>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보고서에는, 2015년까지 학교에서 종이교과서를 몰아내겠다는 목표가 담겨 있었다. 초·중·고교에서 기존 교과서를 없애고 태블릿 피시 등의 디지털 기기로 수업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아이패드가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었고, 삼성 등의 제조업체들도 유사 태블릿 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미래지향적'으로 보였을지 모르나, 교육자이자 미디어학자인 내 눈에 이 정책은 매우 기괴해 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교육정책을 내놓을 때 지향점은 학생이어야 하고, 목표는 교육 효과와 만족도를 높이는 데 두어야 한다. 교과서의 재질이나 형태를 바꾸는 것이 '비전'일 수는 없다.

나는 정책안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이 보고서는 예상되는 '기대효과'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었다.

"교실 수업 개선 및 무거운 책가방 해소를 통한 공교육 만족도 증가 → 사교육 의존도 감소"

그러니까, 교과서를 전자제품 화면에 담으면 수업 내용이 충실해지고, 가방이 가벼워지면서 공교육이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논리의 비약만큼 눈에 띄는 것은 사고의 나태함이다. 이제 인쇄매체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으며, (새로운) 디지털 도서가 (오래된) 종이교재보다 당연히 우월하다는, 그 섣부르고 게으른 추정 말이다.

이 계획은 실패했고, '스마트 교과서'는 '영어몰입교육', '물고기 로봇' 따위와 편대를 이뤄 사람들 기억 멀리 사라졌다. 놀랄 일이 아니었다. '스마트 교육'을 추진한 동기와 방식 모두 '스마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할 수 없는 것을 대체하기

당시 태블릿 피시가 이목을 끌고 있었지만, 이 기술을 교육에 적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이미 (니콜라스 카 등에 의해) 전자책의 부작용에 관한 토론이 진행 중이었고, 필자 역시 전자책의 문제점과 종이책의 장점에 대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기사: 대학생들 답이 왜 이래? 위험한 인터넷 http://bit.ly/vg1jpy).

종이책과 전자책은 대체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전자책'이라는 말을 쓰지만, 이것은 '인터넷 서핑' 같은 은유에 지나지 않는다. 종이책과 전자책은 형태, 표시 방식, 사용법, 보존성, 효과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저서 <이것은 책의 종말이 아니다>에서 종이책을 망치, 가위, 수저에 비유한다. 발명되고 나서 그 형태와 쓰임새가 변하지 않는 물건들 말이다. '숟가락보다 더 나은 숟가락을 만들 수 없듯', 책은 500년 넘게 제 모습을 유지해 왔으며, 앞으로도 다른 무엇에 대체되지 않은 채 오래 존속할 것이다.

모든 상황에 적합한 단 하나의 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의 매체는 장소와 목적에 따라 다른 쓰임새를 갖는 탓이다. 인쇄 매체와 디지털 매체 고유의 장단점을 무시한 채, 어느 하나로 다른 것을 대신하려는 시도는 어리석다.

흥미롭게도, 이명박 정부에서 실패한 '스마트 교육'은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했다. 작년 5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김해시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스마트 수업'을 참관했다.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일 오전 경남 김해시 관동동 관동초등학교를 찾아 디지털교과서 활용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2019.5.2 ⓒ 연합뉴스

그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 증강·가상현실 등 실감형 콘텐츠를 접목한 질 높은 디지털교과서를 개발·보급하고, 이를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무선 디지털 교육환경을 구축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화답하며, "학생들이 미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계승했다는 점이 아니다. 좋은 정책이라면 어떤 지향과 철학을 가진 정부로부터도 배울 수 있다. 문제는 여전히 교육정책의 주인이 학생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유 장관은 "질 높은 디지털교과서를 개발·보급"함으로써 "학생들이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서가 뒤바뀌었다.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데 디지털 교과서가 정말 도움이 되는지부터 고민했어야 한다.

만일 도움이 된다면 어떤 영역에서 효과적인지, 어떤 연령부터 적용하는 게 바람직한지, 그리고 디지털 교과서가 가져올 부작용은 없는지를 정책 시행 이전에 살펴야 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미 지난 5년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성적 떨어뜨리고 사고능력 저하시키는 스마트 교육?

모두가 알듯, 이 시대의 어린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끼고 산다. 정부가 주도하는 '스마트 교육'은 이미 과의존 상태인 디지털 기기를 추가로 들이대는 정책이다. 정부의 맹목적 기술 찬양과 시장 확대를 노리는 업체들의 공세를 타고, 이제 '스마트 교육'은 초중고를 넘어 유치원까지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결과는 매우 끔찍하다. 최근 발표된 연구들은 디지털 기기를 공교육 수단으로 채택할 때 나타날 심각한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교재보다도 학습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는 물론, 더 나아가 영구적 주의력 결핍, 사고능력 저하, 소통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교토 의대의 호소카와 리쿠야 교수 팀은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의 디지털 기기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2018년에 발표된 이 논문에 따르면, 스마트기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린이들일수록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장애를 보였다. 이 기기들을 쓰지 않거나 드물게 사용하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양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어린이뿐 아니라 1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청소년과 성인들 역시 디지털 기기로부터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미국 청소년들의 공감능력이 절반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면서, 인터넷과 디지털기기의 반사회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게다가 이어진 연구들은 이것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과 중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들은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 과사용이 낮은 공감능력이나 낮은 삶의 만족도와 뚜렷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내 주었다(2015년 마틴 멜허즈 외, 2017년 자오 칸 외, 2018년 번트 라흐만 외). 2018년 한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전홍준 외)는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일수록 사회적 기술이나 자신감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지만, 정책을 입안하는 교육당국은 기술낙관론에 휩쓸려 기술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이 문제를 다룬 2020년 <앰아이티 테크놀로지리뷰>와 <독자여 돌아오라>. ⓒ MIT/HarperColins

그렇다면 학습효과는 어떨까? <매사추세츠공대(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2020년 1-2월호를 아동·청소년 특집호로 기획했다. 다방면의 저자들이 스마트폰, 태블릿,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이 청소년들의 인지, 사고, 학습, 오락,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심층분석했다. 그리고 매우 주목할 만한 결과를 내놓았다.

예컨대 미국 초등학교 4학년 수업을 태블릿을 사용해서 진행한 뒤, 그렇지 않은 학급과 비교한 연구가 요약돼 있다. 흥미롭게도, '스마트수업'을 진행한 학급의 읽기점수의 평균이 무려 14점이나 낮았다. 대학생의 경우도 디지털 기기를 수업에 활용한 학생들의 시험점수가 일관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의 연구들은 36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2015년 조사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보고서는 학교 수업에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했을 때, "모든 면에서 평가결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별로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다. 디지털 매체가 높은 집중력과 깊은 이해, 치밀한 분석을 요하는 내용을 전달하기에 부적합하다는 문제제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이다.

기술은 그 자체로 혁신이나 진보가 아니다

캘리포니아대학(UCLA) 심리학 교수인 패트리샤 그린필드는 디지털 기기가 시각 능력을 촉진하는 면이 있지만, 체계적 지식 습득, 논리적 추론, 비판적 사고, 자유로운 상상력, 깊은 성찰을 해친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스마트 교육'이 길러줄 것이라고 믿는 능력들을 도리어 파괴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여러 연구결과에서 입증되고 있다.

2015년 보스턴 의대 연구 팀은 생후 3년 미만의 아동에게 스마트 기기를 주지 말 것을 제안했다. 아이가 수학과 과학 학습에 필요한 사고능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대학의 매리앤 울프 교수 또한 2018년 저서 <독자여, 돌아오라: 디지털 세계의 독서 두뇌>에서 디지털 매체가 어린이들의 독서능력을 영구히 손상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울프 박사는 책에서 디지털 기기가 정보를 가볍게 훑어보는 데는 유용하나, 깊은 이해와 집중을 요하는 독서에는 부적합하다고 결론짓는다. 다시 말해, 디지털 기기는 신문, 잡지, 오락 등에는 요긴할지 모르나, 도서나 교재용으로 적합한 매체가 아닌 셈이다.

다수의 착각과 달리, 기술은 가치중립적 '혁신'이나 '진보'가 아니라, 치밀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이윤의 장이다. '스마트 교육' 도입과 확대에 가장 열광할 주체가 학생일지, 아니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파는 업체들일지 생각해 보라. 정부는 흔히 기업 편이고, '뭔가 앞서가는 듯 보이는' (따라서 표를 얻기 좋은) 정책에 세금 쓰기를 좋아한다.


▲ '새로운 기술격차'를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 인간관계와 대면서비스가 값비싼 희소자원이 되어가는 반면, 기술은 이를 대신하는 값싼 대용물이 되어가고 있다. ⓒ NYT

2년 전 <뉴욕타임스>는 "디지털 격차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거에 사람들은 전통적 정보격차론을 믿었다. 부자들은 쉽게 디지털 기기를 구입해서 인터넷에 접속해 수많은 정보를 활용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비용부담 때문에 정보시대에 뒤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정부가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서민층에 기기를 보급하고 기술교육을 강화해 왔다.

하지만 상황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빈곤계층일수록 디지털 기기를 과다 사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저소득층의 10대가 평균 8시간 이상의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는 반면 (두 매체 이상을 동시에 사용할 경우 중복계산), 고소득층의 10대는 평균 5시간 42분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루 평균 3시간 반을 더 쓰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학업부진, 소통능력 악화, 사회적 기술로 이어져 또 다시 사회경제적 격차를 다시 벌이는 결과를 낳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디지털 미디어에 종사하는 가정일수록 자녀를 기술로부터 떼어놓으려 애쓴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인텔, 넷플릭스 등의 디지털 기술 업체가 포진해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 업체 경영진들이 자녀들을 어떤 학교에 보내는지 주목했다. 놀랍게도 '월도프 학교(Waldorf School of The Peninsula)'가 상위에 올라 있었다.


▲ 실리콘밸리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월도프 학교. 기술을 배제하고 인간관계와 자연에 초점을 둔 교육을 한다. 이 학교에서는 고교과정 이전까지는 스마트 기기를 전면 배제한다. ⓒ Waldorf

값싼 기술이 값비싼 인간관계를 대체하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운영하는 이 학교는 여러 면에서 특이하다. 가장 '저렴한' 유치원 과정이 1년에 2만 7천불이니, 한국 돈으로 3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고등학교는 3만 7천 불(약 4500만 원)인데, 300만 원 정도 되는 '특별활동비'는 별도로 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경영진들에게는 부담되는 액수가 아니라 해도, 여전히 특이한 점이 남는다. 수업에서 기술을 완전히 배제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이전까지는 교실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은 물론, 컴퓨터나 프로젝터조차 사용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종이책과 칠판으로 공부하고, 나무 장난감, 흙장난, 자연 속에서 비 맞기 따위를 하며 논다.

이 학교는 교육 기술을 제한하는 이유를 웹사이트에 조목조목 설명해 놓았다. 과학적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디지털 매체에 빼앗긴 인간관계와 자연에 교육의 초점을 둠으로써 세계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능력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1학년부터 8학년까지 같은 교사가 가르치는 것도 같은 이유다.


▲ 월도프가 기술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이유는 디지털 기술이 두뇌발달과 소통능력을 저해한다는 과학적 연구결과때문이다. 사진은 학교 웹사이트의 기술사용 철학과 정책. ⓒ Waldorf

반면에 근처의 가난한 공립학교는 학생에게 아이패드를 주며 '스마트 수업'을 한다. 유타나 미시시피 등 교육재정이 부족한 주에서는 아예 '비대면 유치원'을 확대하고 있다. 아이들은 집안 화면 앞에 앉아 '가상 유치원'을 경험하며, 이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원격 진료'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기술이 인간관계의 값싼 대체물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술의 진화를 움직이는 동기는 '돈'이다. 기업은 돈을 더 벌기 위해, 정부는 돈을 아끼기 위해, 사용자는 돈이 없는 탓에, 더 많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다. 기술 과잉시대에 필요한 공교육은 기술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넘치는 기술을 비판적이고 선별적으로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것이어야 하는 까닭이다.

비록 예상치 못한 질병의 대유행이 기술 의존을 불가피하게 만든 면이 있지만, 이 상황에서도 정책의 초점을 학생에게 맞춘다면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0월 23일, 금 5:1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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