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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국제] 국제
 
더 이상 희망 없는 한중관계? '미래 먹거리' 발굴에 달렸다
[주장] 한중수교 30년, 설 자리 잃은 중국전문가...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해야

(서울 = 오마이뉴스) 조창완 기자 = 기자가 강연에서 대중국 수출 변화를 넣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그해 7월 군산에서 열린 '새만금군산 CEO경제포럼'에서 강의를 하면서 아래 도표를 바탕으로 우리의 대 중국 미래 먹거리를 설명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이 특별히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잠시 반등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이후 급속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중국에 팔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 도입까지 이뤄지면 상당히 심각한 상황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후 강연 때마다 도표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이런 상황을 말했다. 2016년 5월 23일 국회 중국연구회 강연에서 '중국 속 한국기업-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내용에서 중국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한국 사회를 설명했다. 당시 삼성 이동전화는 1위에서 6위로 추락했고, 2014년 베이징 공장 만으로 110만대를 생산했던 현대차는 충칭과 창저우 공장을 증설했음에도 2015년에는 106만대 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롯데의 부동산 프로젝트는 난관에 처했다. 이후 도입된 사드와 상관없이 중국에서 팔 수 있는 물건은 줄어들고 있었다.

사드 발표 전이지만 중국 내 한국 기업은 위기가 가속되고 있었다. 여기에 사드는 불을 붙이는 기름이었다.


▲ 국회 강의 때 중국 속 한국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부분 사드 발표 전이지만 중국 내 한국 기업은 위기가 가속되고 있었다. 여기에 사드는 불을 붙이는 기름이었다. ⓒ 조창완

물론 사드 도입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만을 취하지 않았다. 단 이런 말은 했다.

"사드를 도입하는 것은 우리 자주 국방의 문제이니,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 권한입니다. 단 중국 정부는 일관되게 사드는 MD(미사일방어체제)의 일부로 봐서, 우리가 사드를 도입하는 순간 모든 것을 막을 것입니다. 선택도 우리의 몫이고, 그 결과도 우리의 몫입니다."

2016년 7월 8일 박근혜 정부가 사드 도입을 정식 발표했다. 당일 <중국논단>이라는 잡지는 "사드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아시아판 쿠바 미사일 사태와 같다"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중국에게 사드가 미국을 위협하는 쿠바 미사일이라는 뜻이었다. 다음해 2월에는 성주에 사드가 배치됐다. 중국 정부는 예정대로 관광객 송출과 한국 콘텐츠의 중국 유통을 완전히 막았다. 동아시아 글로벌가치사슬(GVC)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상황이라 수출에 큰 차질은 없었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 반한 감정이 확대되면서 현대차나 기아차 등은 판매고가 절반 이하로 급락했다.

사드와 코로나 사이


▲ 지난 2016년 7월 13일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에서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있다. ⓒ 연합뉴스

나는 2008년 귀국한 후 2010년 새만금경제청에 중국 투자유치 담당자로 공직을 시작해, 2013년에는 국토교통부 외청인 새만금개발청으로 소속을 옮겼다. 중국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전략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려 노력했다. 중국과 새만금간의 스토리를 정리해 만화로도 만들고, 중국사회과학원에 '중국 자본이 새만금에 투자해야할 가치'에 관한 용역을 의뢰하기도 했다. 다만 서서히 한중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중국 담당 공무원의 역할도 한계가 생겼다. 더욱이 나는 국민TV '민동기의 뉴스바' 등에 출연하면서 박근혜 정부로부터 미운 털이 많이 박힌 상태였다. 다행히 2015년 말 공직을 나왔다.

그때까지 2015년 1월에 출간한 <달콤한 중국> 등 12권의 중국 관련서를 쓴 중국 전문가였다. 하지만 이후 중국 전문가라는 호칭은 영예가 아니라 오히려 천형 같이 느껴질 만큼 부담스러운 자격이 됐다. 공직을 그만 둔 다음주 사업을 하는 선배의 부탁으로 네이멍구(내몽고)로 출장을 갔고, 돌아와 노마드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고 <노마드 라이프>라는 책을 썼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 전문 잡지인 <차이나리뷰> 편집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창간호가 나오는 2016년 7월에 박근혜 정부가 사드 도입을 정식 발표했다. 결국 잡지는 2번 나오고, 사드로 나빠진 한중 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휴점했다.

내게서 중국의 흔적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2017년 여름 보성그룹에서 진행하는 솔라시도 프로젝트의 투자유치 담당 상무로 일을 시작했다. 중국 투자유치도 중요한 방향이었다. 하지만 두 나라의 분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져 투자유치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제주도 등에 투자했던 수많은 프로젝트는 더 이상 돈이 들어오지 않아, 좌초되는 게 다반사였다. 내가 새만금개발청에서 유치했던 중국 기업의 태양광 발전(2800억 원)과 제조업(3000억 원) 투자 프로젝트도 첫 단계인 300억 원의 발전과 ESS 투자가 진행되고 멈추었다. 다행히 이 사업은 국내 중심으로 전환해 8조 원가량의 프로젝트로 성장했다.

사드와 코로나 사이에 한중 관계는 태풍의 눈과 같은 분위기였다. 눈의 중심에는 반도체와 철강 등만이 조용히 지냈고, 나머지는 모두 날라가 버렸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한국과 중국 사람들간의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사드로 인해 관광객이 오지 않게 되니, 지하철에서 들리던 중국어가 사라졌다. 대학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사드로 인해 줄어들던 중국 유학생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급감했다. 중국 유학생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지방대들의 몰락도 가속화됐다.

2018년 7월 16일 나는 기획재정부에 중국 관련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날도 우리의 대중국 수출 추이를 말했다. 그런데 2016년 –9.3%였던 대중국 수출이 2017년에는 14.2%로 완전히 대 역전된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사드에도 불구하고 이런 수치를 보인 유일한 이유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도체는 LED가 그렇듯 머지 않아, 중국이 쫓아올 분야입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야 합니다. 중국이 못 쫓아올 분야는 네덜란드 바헤닝엔처럼 농업이나 문화입니다. 여기에 중국에 따른 관광 등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당시 반도체, 화학, 철강을 넘어선 대중국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 기획재정부 중국 관련 강의 나는 당시 반도체, 화학, 철강을 넘어선 대중국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 조창완

코로나와 미중헤게모니 쟁탈전

2019년 12월말로 나는 1년반여의 기업 임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천형 같은 노마드로 돌아왔다. 나가라는 소리를 듣고 <신중년이 온다>라는 책을 썼다. 1968년부터 1976년까지 태어난 2차 베이비부머의 생존 전략에 관한 책이었다. 나에게 중국 전문성은 이제 대부분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도 중국 답사를 제안하는 그룹이 있어서 2020년 1월 윈난성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날까지 텔레비전에서는 '우한 폐렴' 이야기가 난무하더니, 우리가 귀국한 다음날로 우한이 봉쇄됐다. 당시만 해도 그 후유증이 사스나 메르스 정도를 넘겠느냐 얏보았다.

2020년 7월부터 나는 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으로 일했다. 대변인과 공보관을 겸한 일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한달만에 '인공수초섬 사건'이 발생했다. 안타까운 일을 수습하는 일에 몰두했고,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 사건이 잊혀질 무렵에 코로마 팬데믹은 깊이를 더해갔다. 초반기 국내 일부 언론이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대중 정서는 더 나빠졌다.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역학 관계가 벌어졌다. 바로 미중 헤게모니 쟁탈전의 격화다. 트럼프, 바이든에 상관없이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자국화하려 했던 반도체 굴기에 치명타를 입었다. 때문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대중국 수출이나 현지 생산에서 큰 이득을 낼 수 있었다. 대중국 무역 흑자도 별 이상이 없는 듯 했다. 반도체 뿐만 아니라 조선 등 대부분의 분야가 어느 정도 격차를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현실이 된 대중국 무역 적자

이런 흐름은 큰 변화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데 2022년 늦봄부터 '대중 무역적자'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리기 시작했다. 금년 5월부터 시작된 대중국 무역적자는 5월 –10억9900만 달러를 시작으로 6월 -12억1400만 달러, 7월 –5억7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8월 동향도 앞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수교 이후 대중국 무역적자는 1994년 8월 1371만 달러를 기록한 단 한 차례 뿐이어서 그 내부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동아시아 글로벌가치사슬이 깨진 것이다. 과거 중국은 한국에서 받은 중간재를 가공해 미국에 수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미국 수출이 막히자 이 부분이 끊겼다. 2차전지 생산의 핵심 원자재인 리튬이나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네온가스 등 중국산 원자잿값 급등한 것도 무역 역조를 키웠다.

두나라 국민들이 서로를 욕하면서 상대국 물건에 대한 반감도 커지면서 중국 수출이 줄 수밖에 없었다. 사드 이후 한국 콘텐츠가 중국 공중파에서 사라졌다. 한류 스타와 연계된 화장품 등의 수출도 급감했다. 공항 면세점에서 보따리 상까지 모든 수출 길도 막히기 시작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중 수출이 나쁘지 않았다, 반도체 때문이었다.


▲ 21년 8월 강연 자료에 대중국 수출 증가율 당시까지만 해도 대중 수출이 나쁘지 않았다, 반도체 때문이었다. ⓒ 조창완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나 정부의 대중국 관련 실수도 잇따랐다.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상대 국가의 자존심을 긁었다. 이 사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진짜 샌드위치가 됐다. 두나라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돌고래 외교나 논두렁 외교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난 30년간 역사상 가장 빠르게 교류의 폭을 넓힌 한중관계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는 않다. 미중 헤게모니 전쟁 뿐만 아니라, 모든 국제 역할 관계에 쓸모 없는 상대는 없다. 더욱이 한국은 중국과 홍콩에 여전히 수출의 대부분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역시 미국의 중국 봉쇄를 막을 때, 한국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꼭 이익을 따지지 않아도 한국에게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역할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중국에 팔 수 있는가다. 중국은 과거 불법카피의 천국이었지만 지금은 콘텐츠 유통이 거의 합법적인 망에서 팔린다. 아이치 등 IP텔레비전이 급성장했고, 좋은 콘텐츠만 있다면 언제나 거대한 시장성을 확보하고 있다. 농업도 중요한 미래 먹거리다. 지금까지도 일부 식품은 중국에서 수입하지만 이제 한중간 농산물 가격 격차는 거의 나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은 오염되지 않고, 인삼처럼 좋은 기운을 가진 식품의 산지라는 것을 중국인들도 알고 있다. 네덜란드 바헤닝엔 모델이 한국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식품은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이고 동남아에서도 유효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반도체나 조선처럼 앞선 분야는 계속해서 초격차를 유지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다만 중국이 로봇 등 4차산업혁명에서 빠른 진보를 보이는 만큼 우리의 역할을 잘 정리해야 한다. 중국은 응용력을 가진 디지틀 헬스케어 등의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전문가가 있어야 회복도 가능

필자는 중국에 발을 내딛을 때부터 '선입견과 편견없이 중국을 보자'는 생각을 가졌다. 국가간 교류의 첫 걸음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중국인들 역시 첫눈에 만난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챈다. 결국 상대를 무시하면서 더 깊은 관계는 만들어 갈 수 없다.

지난 30년간 한중간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30년 뒤인 2052년에 한국과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태로운 나라들이다. 두나라 모두 초고령화를 넘어서 초초고령화 국가에 인구소멸의 가파른 미끄럼틀을 타야할 것이다. 현재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한국은 2050년 노인인구가 40%를 차지하고, 14세 이하가 9%다. 유엔인구보고에 따르면 2035년에는 중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으면서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중국 역시 2050년 인구가 현재보다 1억명 가량 줄 것으로 예측한다.

한중수교 30년 중국을 터전으로 살던 많은 이들이 나처럼 갈 곳을 잃었다. 한때 100여 명에 달했던 베이징 대학 교우 모임도 30명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귀국해 참여하던 중국전문가 모임의 회원들도 예상보다 이른 나이에 현직서 밀려난다.

주재원 등 교민 사회가 위축되며 현지 사업가들은 대부분 귀국했다. 여행사 등은 전멸했다. 앞날도 가늠할 수 없다. 요즘도 중국 관련서가 나오지만 팔리는 부수는 극히 저조하다. 조정래의 <정글만리>나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은 역사가 됐다. 사람이 없으면 재조산하(再造山河)도 불가능하다. 그것이 한중관계를 더욱 암담하게 하는 일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8월 24일, 수 12:0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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