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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이것이 칸트 희망철학의 지향점입니다"
[인터뷰] '칸트와 희망의 신학' 연재하는 신진 철학자 정제기 박사

(서울=뉴스앤조이) 여운송 기자 = <뉴스앤조이>가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며 따끈따끈한 '칸트철학자'를 모셔 왔다. 여기까지 읽고 '뒤로 가기'나 '닫기' 버튼에 손이 가는 독자가 있다면 조금만 참아 주시기 바란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재미도 있을 테니. 그래도 여전히 '칸트 같은 옛날 철학자 배워 어디에 써 먹나'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도 2000년 전 사람이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칸트는 '젊은이'다. 편집국 선임 기자 중 하나는 그랬다. "젊은이에게는 늘 배워야 한다"고(본인도 아직 젊으면서…).

<뉴스앤조이>가 이번에 모셔 온 칸트철학자도 젊다. 그냥 젊은 게 아니라 "불과 두 달 전에 박사가 된 파릇파릇한 신진 학자"다. 주인공은 영남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정제기 씨(33). 신진 철학자인 그가 <뉴스앤조이>에 '칸트와 희망의 신학 - 우리가 희망해도 좋을 것들에 관하여'를 연재한다. 내년 1월 11일 첫 번째 글을 시작으로, 10회(격주)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칸트철학을 소개한다. 기자와 약속했다. 재미있게, 유익하게, 무엇보다 '쉽게' 써 주기로.


▲ 지난 10월 '칸트의 최고선 개념과 희망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신진 철학자 정제기 씨가 <뉴스앤조이>에 연재를 시작한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흔히 '철학'이라고 하면, '신앙에 반하는 내용' 혹은 '지식인들에게나 필요한 탁상공론'이라는 오해와 편견이 한국교회 안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 게다가 그것이 '칸트철학'이라고 한다면 누군가는 더 학을 뗄 것이다. 칸트가 누구인가.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라는, 제목부터 불경한(?) 책의 저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정제기 씨가 소개하는 칸트는 조금 다르다. 정 씨는 보수적인 신학교를 나온 기자가 보기에도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칸트 연구자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인 '칸트의 최고선 개념과 희망철학 연구'는 칸트철학이 가진 '신앙적·신학적' 맥락과 함의가 얼마나 풍성한지 보여 준다. 1시간 남짓한 구술 인터뷰에서도 느껴진 바가 많았으니, 앞으로 정제된 글을 통해 풀어낼 정 씨의 칸트철학 이야기는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분명 유익이 될 것이다.

12월 23일 점심, 경인교육대학교 경기캠퍼스에서 열린 '2022년 한국칸트학회 동계 학술 대회' 참석 차 대구에서 올라온 정제기 씨를 경기 안양시 관악역 인근 스터디 카페에서 만났다. 정 씨는 "독자들에게 소개할 사진을 찍어야 하니 예쁘게 입고 와 달라"고 부탁한 기자의 요청을 기억하고는, "몇 벌 없는 셔츠를 꺼내 입고 왔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아래는 정 씨와의 일문일답.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정제기라고 합니다. 영남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 석사·박사과정을 다 졸업했고요. 지난 10월 말에 '칸트의 최고선 개념과 희망철학 연구'라는 제목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가 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파릇파릇한 젊은 신진 학자입니다.(웃음)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에서 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고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소속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다가, 작년 9월부터 침례교회로 옮겨 출석하고 있는 침례교인이기도 합니다…. (하략)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렸는데 지금 인터뷰 한 편이 나왔습니다. 학회에도 가셔야 하니 이쯤 할까요?(웃음)

이런, 뒷부분은 다 날리셔도 됩니다.(웃음) 농담 삼아서 하는 얘기인데요. 예전에 저와 함께 일했던 미학과 선생님 한 분이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정제기한테서 철학이랑 교회를 빼면 뭐가 남느냐'고요. 사실 제가 생각해도 철학과 교회를 빼면 남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웃음) 아무래도 제 소개를 하면 '저는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라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하고많은 철학자 중에서 왜 하필 칸트를 전공하게 되셨나요? 혹시 매일 산책하는 규칙적인 삶을 추구하시나요? 아니면 밤하늘의 별을 좋아하신다거나….

칸트가 제 기질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산책을 좋아하긴 합니다만, 산책 얘기는 아니고요.(웃음) 제가 중3 때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그때 충격을 많이 받고 '왜 선한 사람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가, 왜 악한 사람들이 더 행복한가' 하는 고민을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선과 악이 무엇이고,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고요. 그렇게 대학 철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원래는 레비나스를 전공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타자성, 성찰, 얼굴 같은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는 철학자였으니까요.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했더니 지도교수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레비나스가 최근에 유행하고 있긴 하지만, 플라톤과 칸트는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읽힐 것이다"라고요. 그 말을 듣고 칸트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공부를 해 보니까 확실히 성향에 맞았어요. 칸트가 엄밀한 학으로서의 비판철학을 추구하는 부분, 그러면서도 보편주의를 추구하는 근대적 정신이 제 기질과 맞더라고요. 칸트를 공부하면서 '아, 나는 현대인이 아니라 근대인이구나' 하는 걸 굉장히 많이 깨달았습니다.(웃음) 게다가 칸트가 전개하는 도덕적 신학, 희망의 신학에서 제 신앙고백과 거의 일치하는 지점들을 발견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칸트를 전공한 걸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칸트를 공부할 것 같아요.

- 보내 주신 연재 기획서에는 이번에 쓰신 박사 학위 논문이 '철학 논문'이면서 동시에 '신학 논문'이기도 하다고 소개해 주셨어요. 어떤 내용을 다루셨는지 궁금합니다.

칸트는 굉장히 엄격한 철학자였습니다. <순수이성비판> 후반부의 '변증론'에 가면, 기존의 전통적 신 존재 증명을 모두 허구라고 비판합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서는 독단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라면서 모든 종류의 객관적 신 존재 증명을 폐기해 버리지요. 하지만 이내 칸트는 주관적이고 실천적인 영역에서 다시 하나님의 현존을 '요청(Postulat)'하기 시작합니다. 신의 존재/부존재를 이론적으로는 결코 증명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마치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처럼 여길 수밖에 없는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가장 이상적인 도덕적 선인 '최고선(das höchste Gut)', 즉 유한한 인간이 결코 실현할 수는 없지만 도덕적으로 추구해야만 하는 완벽한 선을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신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칸트적인 도식인 것이죠. 최고선인 하나님이 마치 현존하시는 것처럼 여기는 신앙을 갖게 되면, 현실의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다시금 극복하고 일어나서 최고선의 실현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칸트는 이것을 '무한한 도덕적 전진(endless progress toward morality)'이라고 부르는데요. 그 무한한 도덕적 전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분투. 이것이 칸트철학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여기서 최고선의 문제와 유한한 인간의 도덕적 분투 자체에 집중하게 되면 매우 철학적인 문맥이 되는 것이고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느냐, 신을 향한 도덕적 믿음과 희망이 있기에 가능하다'라는 데 집중하면 매우 신학적인 문맥이 됩니다. 청교도신학이 강조하는 거룩(성화)을 향한 신자의 분투와도 닮았고요.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희망으로 존재하지만 아직 이 땅에 실현되지는 않은 하나님나라 개념과도 비슷하죠.

이렇게 칸트적인 희망과 도덕철학은 신학적인 의미와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도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종교를, 종교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도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칸트의 철학은 '경계의 철학'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의 '최고선' 개념과 '희망철학'을 다룬 제 논문도 '철학 논문'이면서 동시에 '신학 논문'이기도 하다고 표현한 거죠.

- 사실 저처럼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배운 사람은, 칸트라고 하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라는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감히 종교를 이성의 한계 안에 가두다니!'(웃음) 칸트철학이 박사님의 신앙관과 충돌하지는 않았나요?

저도 보수적인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요. 오히려 칸트철학이 가져다주는 통찰이 보수 신앙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기도 합니다. 일단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가 하나님을 인간 이성 안에 가두는 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칸트에 대한 심각한 오해입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도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리가 지식의 범위에 한계를 짓는 이유,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의 경계를 확실히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도덕과 종교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요.

그런 점에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라는 말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이성을 최대한 발휘하면서도, 우리가 이성을 통해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를 엄격히 규명하고,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신앙으로 넘어가자 하는 고백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굉장히 보수적인 신앙관 아닌가요?(웃음)

교부들도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는 것'이라고요. 칸트는 그걸 철학적으로 얘기한 것뿐입니다. 우리는 증명 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는 신앙을 갖지 않아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걸 지식으로 알고 있어도 신앙하지는 않죠. '7+5=12'라는 것도 증명할 뿐이지 신앙하지는 않고요.

하나님이 우리의 인식과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증명 불가능한 분이기 때문에 오히려 신앙의 영역으로 넘어올 수 있는 겁니다. 물론 '그 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이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만, 이론적인 차원에서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신앙으로 요청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점에서 칸트철학은 제 신앙과 충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부합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던 것이지요.

-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칸트철학이 박사님의 신앙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줬을 것 같은데요.

네, 덕분에 마음이 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상처받는 분이 많잖아요. 여러 가지 맥락이 있겠지만 대부분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교회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이전 교회를 다니면서 늘 '망국亡國 백성'의 정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정말 많은 일을 했고 거의 20대를 다 바치다시피 했지만, 가면 갈수록 교회 공동체가 망해 가는 것 같은 절망적인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럴 때마다 칸트를 연구하는 의무주의자로서 "나는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 같은 명제를 마음에 새기면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성도의 의무는 교회를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다' 이렇게 자기암시를 주면서요.(웃음)

칸트철학은 엄격한 도덕성의 체계를 세우고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를 누구보다 철저하게 규명하면서도, 우리가 볼 수 있는 '희망'이 무엇인가에 굉장히 집중합니다. 저는 칸트철학의 이런 부분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과 교회 공동체의 한계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게 해 주는 지점이라고 봐요. 절망적이지만 최고선 내지 하나님나라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것, 윤리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계속 추구해 나가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에 더 집중하는 것. 저는 이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말하는 나그네 정신, 순례자 정신과도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곳은 절망적인 현실 세계지만, 우리가 마음을 두고 사는 곳은 하나님나라잖아요. 하나님나라에 희망을 둔 사람들은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해 나가는 의무주의자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을 받는 것'. 그리스도교 신앙이 추구하는 이런 태도가 칸트철학을 삶으로 체현한 분들이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봐요.

- 반대로 그리스도교 신앙이 박사님의 칸트 해석에 영향을 준 부분은 없었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철학 연구자이자 그리스도인이라는 제 정체성이 칸트의 도덕신학·희망철학에 관심을 갖게 하고 연구에도 영향을 미쳤죠. 일단 국내에서 희망철학을 주제로 칸트를 조망하는 작업을 한 건 제가 거의 최초고요. 사실 칸트 연구 자체가 인식론·윤리학·미학이 주류지, 종교철학은 비주류라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칸트의 실천철학에는 '도덕과 종교의 분리 불가능성', '철학과 종교의 분리 불가능성'이 내포돼 있는데요. 최근의, 특히 영미권 연구자들은 칸트철학에서 종교적 특성을 제거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최고선이나 신의 현존에 대한 요청을 도외시하고 엄격한 윤리학적 체계만 보려는 거죠. 한편 신학자들은 '칸트가 자유주의신학을 태동시켰다', '종교를 이성 안에 가둬 버린 인본주의(?) 철학자다' 하면서 선입견을 표출하기도 하고요. 철학자든 신학자든 색안경을 끼고 칸트를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철학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인인 제게는 양쪽 모두가 보이는 지점이 있습니다. 칸트가 철학과 신학의 경계에 서 있었듯이, 저 역시 철학과 신학의 경계에 서서 양쪽 논리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경계인' 정체성을 갖고 있거든요. 철학자로서의 저는 철학 연구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철학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있습니다. 또 교회 현장을 이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저는 신앙적인 측면에서 신학자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죠. 그런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제가 칸트의 도덕신학, 요청주의, 또 희망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정 씨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데 칸트철학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독자들에게도 분명 유익이 될 거라면서. 뉴스앤조이 여운송

- <뉴스앤조이>에는 어떤 내용을 연재해 주실 건가요?

'칸트와 희망의 신학 - 우리가 희망해도 좋을 것들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10회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제가 박사 논문에서 논의한 내용들을 교회 현장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목회적이고 대중적인 톤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저희 교회 학생·교사분들에게 쉽고 재밌게 '썰'을 푼다는 느낌으로 말이죠. 먼저 칸트 실천철학의 주요 체계를 간략히 조망하고,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물음이 맥락에 따라 어떻게 답변되는지,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과 어떻게 밀접하게 연결되는지, 우리가 어떻게 희망의 신학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살펴볼 것입니다.

- 결국 '희망'이군요. 교회에서든 사회에서든 희망을 논하기 참 어려운 시대인데 그럼에도 왜 희망인가요? 자칫 희망이 아니라 '희망 고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 그런 비판도 있지요. 칸트가 말하는 게 사실 '시시포스 신화'(인간 삶의 부조리에 대한 비유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까지 굴려 올렸다가 다시 밑으로 굴려 보내는 일을 반복하는 형벌을 받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 - 편집자 주) 같은 거 아니냐고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이렇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부조리하거든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삶에서 부조리하고 비도덕적인 것들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도덕이 완전히 실현된 나라에서 살지는 못할 거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니체처럼 모든 도덕적 가치를 전도·해체하고 자기만의 주관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길이 있겠고요. 그렇지 않고 도덕적 최고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시시포스처럼 끝없이 산에 올라가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웃으면서 올라가는 거죠. 그 어떤 철학자나 신학자나 믿음의 선배도 이 시시포스의 산, 즉 우리에게 닥쳐오는 고난 자체를 없앨 수 있다고 단언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교 신앙도 올라가야 할 산 자체를 없애 주지는 못하잖아요. 단지 그 앞에서 어떤 실존적 태도를 취할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웃으며 걸어 올라갈 힘을 주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고 희망이죠. 그리스도인이 지닌 종교적 소망과 칸트의 희망철학이 부합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칸트는 정언명령과 의무의 철학자인데, 혹시 방금 말씀하신 '희망'도 정언명령적 의무에 속하나요? 희망마저도 '의무'라고 한다면 과연 그게 희망이 될까 싶기도 한데요.

저는 칸트 실천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물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해야만 하는가(sollen hoffen)'가 아니라 '희망해도 좋은가(dürfen hoffen)'입니다. 희망하는 것 자체는 결코 의무가 아니지만, 의무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요청하는 것도 의무는 아니에요. 칸트철학 체계에서 어떤 존재자에 대한 신앙 자체가 의무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도덕적으로 행동하고자 결단하고 최고선을 이 땅에서 실현하고자 분투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신을 요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칸트는 '최고선'이라는 도덕적 이상이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 때문에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언젠가 실현 가능한 것처럼 여기면서 신을 요청합니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언젠가 실현될 하나님나라에 대한 희망을 갖고서 현실의 부조리를 딛고 하나님 뜻을 따라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모습과 매우 비슷합니다.

- 한마디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같은 거군요.

예, 바로 그겁니다. 속이 다 시원하네요.(웃음)

- 마지막으로, 연재를 기다릴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누군가 제게 대학원에 진학해 칸트를 전공하겠다고 하면 극구 말릴 것 같습니다. 너무 어렵고 힘들거든요.(웃음) 하지만 이미 전공을 해서 박사 학위를 받은 신진 학자가 쉽게 해설해 드리는 칸트는 결코 어렵지만은 않을 겁니다. 고생은 제가 다 했으니 여러분들은 제가 맺은 열매들만 쏙쏙 빼 드시면 됩니다. 모쪼록 많이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12월 27일, 화 5:5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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