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등소평이 되기를 원한다"

<지난해 부시 정권이 등장한 이후 남북관계는 침체국면을 맞이했다. 특히 지난 6월 월드컵 막바지에 일어난 서해교전으로 인해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닫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 8 15 민족통일대회와, 남북장관급회담 등으로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9월 아시안 게임에 북한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키로 했고, 연내에 남북을 잇는 경의선과 동해선 착공, 북한 개방의 큰 고리중 하나였던 일본 고이즈미 수상의 북한 방문 등 남북관계는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호기가 도래하고 있다. 아래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맞아 민주평통마이애미지역협의회 제 10기 해외지역회의 강연차 올랜도를 방문한 북한문제 전문가 허문영 박사(통일연구원)와 본보 김명곤 편집인간의 대담을 간추린 것이다. (편집자)>

= 김명곤 편집인: 정부의 통일정책에 관련해온 전문가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정 또는 폐지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 허문영 박사: 99년 2월에 발표한 논문에서 나는 한반도에서 냉전구조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당시 냉전구조 해체를 주장하는 분들의 맹점은, 주로 국제관계에서의 냉전구조 해체에 집중했을뿐 국내적 차원에서 냉전구조 해체 문제에 초점을 덜 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평화)통일론을 말하면서 1단계 화해협력단계에서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사실 불온문서 은닉죄, 고무찬양죄 등 보안법에서 독소조항이 되고 있는 부분들은 현재의 형법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우리사회의 보수층을 고려, 보안법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되, 국민간의 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지나치게 속도를 내어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남북관계 주도권 잡으려면 남쪽 먼저 국보법 손대야

= 김: 남북관계에 있어 기왕에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갖고 포용정책을 펼치고 있다면, 북한의 노동당 규약 개폐 여부에 관계 없이 우리가 먼저 보안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자는 의견들도 많은데...

- 허: 물론이다. 현재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잡고 민족문제를 풀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라면 우리가 먼저 국가보안법 개정 내지 폐지에 손을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 김: 최근 사회발전시스탬 연구소장인 지만원씨가 경기도 안양시 초청 강연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김정일에 충성하는 골수좌익'으로, 임동원 전 대통령 특보에 대해 '가면을 쓴 북한 사람'으로, 김동신 전 국방장관을 '빨갱이'로 각각 규정하고, "우리 사회에는 적화통일 음모가 도사리고 있고 음모의 수장은 바로 이 나라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라고 발언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지씨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허: 나는 지씨의 발언을 접하면서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는 사회, 한국이 이 정도로까지 말해도 되는 사회인가. 정말 언론의 자유가 끝없는 사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말하는 것은 자유지만 지씨는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양극단을 싫어한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보수도 필요하고 진보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급진적인 세력과 마찬가지로 반동적인 우파 극단 세력은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데 해롭다고 생각한다.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색깔이 어울려야 아름답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50여년 동안 빨간색과 파란색만 있는 무지개를 그려왔다. 희망의 21세기를 맞아 이제는 우리 민족이 제대로 된 무지개를 그려야 한다.

= 김: 현재 대북 포용정책에서 '국민적 합의' '투명성 확보' '속도 조절'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고, 상당부분 일리가 있는 말로 여겨진다. 다만 '어떻게'가 문제라고 본다. 이에 대한 허 박사의 입장은 무엇인가.

- 허: 현재 우리는 3불난(不亂) 에 처해 있다. 즉 남북분제에 있어 '국제 불만', '국내 불신', '남북 불만'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MD(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와 ABM(재래식 무기 감축협상)문제등과 관련해서 보면, 소련 눈치도 봐야하고 미국의 입장과 중국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고...국내적으로는 지역, 세대, 계급, 당파, 정파간의 견해 차이도 있다. 또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저마다 불만을 갖고 있다.

이 '3불난'을 어떻에 해결할 것인가? 미국같은 나라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리소스가 많기때문에 간단하지만, 우리는 여러모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느냐는 것이다. 조심스런 말이지만 김정일의 지혜로운 해결방식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일찌기 경제난, 김일성 사망등 혼란의 와중에 안팎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때, 몽땅 문을 닫아 버리고 3년간 '고난의 행군'을 통해 내부 체제 결속을 하고 헌법을 개정했다. 이 와중에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해 버팀목을 만들었고, 대남 관계개선을 서두르고 미국과의 협상에 나섰다.

한정된 능력과 자원으로 내부결속, 구 동맹 강화, 남북관계개선, 그리고 중심고리인 미국과의 협상, 수순이 아주 지혜롭지 않은가? 우리의 '3불난'도 이 북한의 해결방식에서 힌트를 얻으면 될 것이다.

= 김: 언젠가 허 박사의 저서에서 북한의 외교전략을 언급 하면서 '전갈 외교' '너구리 외교' '고슴도치 외교' '비둘기 외교' 등으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현재 북한의 외교전략은 어디에 해당하는가.

- 허: 현재 북한의 외교는 '고슴도치 외교'라 할 수 있다. 고슴도치 외교란 '먼저 당신을 해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를 집어 먹으면 찌르겠다'는 전략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최근까지 해왔던 것이 고슴도치 전략이었고, 이를 넘어서 현재 강성대국론을 주장하면서는 '고슴도치 외교'와 '비둘기(평화) 외교'를 펴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관계개선 원하고 있다"

= 김: 김정일의 외교전략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인데, 허 박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 허: 많은 사람들이 김정일에 대해 단순히 '포악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김정일은 등소평이 되기를 원한다. 김정일은 북한 체제를 발전시키기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안팎으로 안정이 요구되고 있고, 현재 내부 안정은 어느정도 이뤄져 있다. 문제는 안보와 함께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모든 것을 미국이 틀어잡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서방세계로 진출하고 싶어도 미국의 '금수법' 때문에 안되고있는 예가 바로 그것이다.

클린턴 때 소위 '페리 프로세스'라는 것을 통해 미사일 문제등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어낼 것은 얻어내 거의 미국과 관계개선이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일본과의 개선도 노리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북한이 벌인 '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정말 미국과 관계개선을 하고 싶어했다.

북한은 대화방식에 있어 옛날에는 '의사협상(Pseudo-negotiation)'이었다면, 지금은 '진의 협상(Real negotiation)'을 추구하고 있다.

= 김: 그렇다면 현재 남북문제가 잘 풀리지 않고 북한이 개방하는데 속도가 붙지 않는 근본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인가?

- 허: 북한은 지난 50년간 포위돼서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화해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진실인가. 햇볕정책이 속임수는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미국이 경수로를 2003년까지 건설해 주겠다고 해놓고 지금 공정률이 20%밖에 안되고 있다. 미국 의원들은 경수로 건설을 2008년까지 미루자고 말하고 있고, 심지어 어떤 의원들은 '왜 우리가 민주당 정책을 집행해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미국은 50여년간 틈만 나면 (북한을) 떼리려 했던 초강국인데, 북한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미국에 대해 방심하면서 화해하고 협력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북한이 개방하기 힘든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분명히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 김: 결국 현재 북한이 추구하고 있는 변화는 소위말하는 '전술적 변화'가 아닌 '전략적 변화'란 말인가?

- 허: 그렇다. 북한은 전술적 변화가 아닌 전략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전술적 변화가 공산화 통일을 위해 거짓으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전략적 변화는 체재유지를 위해 변화를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은 냉전시대에 공산화 통일에 주력했으나, 지금은 체제유지에 주력하고 있다.

과거 7.4 남북 공동성명, 혁명통일, 대화통일, 무력통일 등은 목표의 비중이 바뀌지만 않았을 뿐이지 공산화 통일을 위한 '전술적'인 것 이었다.

"북한 공산화 통일 포기하도록 남쪽이 도와줘야"

= 김: 만약 북한이 체제유지가 확고해 지면 다시 전술적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은 없겠는가?

- 허: 현재 북한은 공산화 통일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다만 공산화 통일 노력에 들이는 비중이 10%라면, 체제유지에 들이는 노력은 90%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이 전략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을 때, 공산화 통일을 포기하는 근본적 변화로 갈 수 있도록 남쪽이 북쪽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행정부가 계속 몰아부치고, 남쪽에 지나치게 강경한 정권이 등장해서 북한을 몰아치면 이 전략적 변화가 근본적 변화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고, 전술적 변화로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다시 중국과 러시아와의 동맹국 관계의 틀속으로 들어갈 것이고 남북은 다시 4년을 허비하며 지내야 한다. 어쩌면 이 결정적인 21세기 무한 경쟁시대에 10년을 다시 허비할 수도 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현재 일본은 '미들 파워 스테이트(Middle Power State-중간 수준의 국가)' 로 전락하고 있다고 한다, 부실채권이 270조원이고 정치적으로 병들어 있다. 이제 일본이 다른 선진국을 따라 잡는 것이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한반도는 2000년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런데 만약 차기정권이 들어서서 대북 강경정책을 펴면 북한은 (맞싸워서 물어 죽이는) '전갈외교'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많다. 대북 강경정책은 북한의 군사력을 더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압력을 줄 수 있다. 현재 북한 지도부는 화해를 원하고 있지, 대결을 원하고 있지 않다.

김: DJ이후 대북정책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현 야당 대통령 후보인 이회창씨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그의 대북정책에 대해...

- 허: 연구원에서도 분석해 봤는데, 현재로선 이회창씨의 대북정책은 명확하지 않다. 1999년에는 햇볕정책이 잘못된것이라고 했다가...곧바로 미국에 와서는 햇볕정책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며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똑같은 말을 했다가, 지난해 와서는 잘못됐다고 했다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 '화해-협력정책'의 기조는 크게 바꾸지 못할 것이다. 우리사회에 건강한 진보가 상당한 수준까지 와 있기 때문에 어는 누구도 대결구도로는 못 끌고 갈 것이다. 통일이 한 두 정치인 또는 한 두 전문가에 의해 좌지우지 되던 시기는 지났다.

= 김: '김대중 정권이 정권 말기를 맞아 김정일 답방을 실현하려고 있다'는 일부의 예상이 있다. 즉, 김대중 정권의 성격으로 보아 막판에 뭔가 벌일 지도 모른다는 예측이다. 김정일의 답방이 현 정권 임기중 이루어 질 것으로 보는가?

- 허: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특히 국내 상황이 어려운데, 만약 김대중 정부가 김정일 답방을 추진한다면 '대선용' 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 비판을 무릅쓰고 모험을 할지 의문이다. 김대통령이 지난 6.15 북한 방문도 '총선용' 이라는 거센 비판이 있었다.

= 김: 지난 6월 발생한 서해교전을 어떻게 보는가.

- 허: 의도적인 도발이다. 서해교전은 북한의 대미 협상카드이다. 북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인데, 작년 미국이 핵, 미사일, 재래식 무기 감축문제 등 북한으로서 만만치 않은 의제를 내놓았다. 협상이란 것은 의제를 누가 내놓느냐에 따라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인데, 의제도 뺏기고 리소스도 부족하면 상대가 내놓은 협상은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북한은 한반도에는 NLL(해상경계선)이라는 협상무기도 있다. '당신네가 우호적으로 안하면 당신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일종의 메시지를 미국에 보내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한 것이다. 물론 99년 연평해전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북쪽으로서는 이번 서해교전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서해교전이 일어나 북한이 NLL은 53년 휴전직후 유엔이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것 이라고 비판하자, 미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에 근본적인 책임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고, 이어 북한이 이에 응답하여 '유감'을 표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북한, 그렇게 허약한 사회 아니다"

= 김: 전통적으로 북한은 남북관계에 있어 이른바 '통미봉남(미국과 대화하고 남한은 봉쇄한다)정책'을 펼쳐왔고, 현재도 이 원칙이 남북관계에 상당부분 적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상존하고 있다고 보는데...

- 허: 그렇지 않다. 현재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미국과의 관계도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김일성 시대에는 분명 이 '통미봉남' 정책이 주를 이루었다. 즉 남북문제에서 미국을 중심고리로 보고 실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남한의 민주화, 국력신장과 함께 현 정권이 상당부분 남북관계의 이니셔티브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북측은 알고 있다. 굳이 말한다면, 현재는 북한이 '선미후남(先美後南)' 정책을 펼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김: 남북문제 전문가중 서재진 박사 같은 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 이라는 황장엽류의 주체사상이 자본주의적 가치인 개인주의 사상과 맥을 같이하게 되므로 결국 대량 탈북이나 북한 내부의 혁명을 일으킬 여지를 안겨주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과연 '자기 운명을 자기가 개척한다'는 이 주체사상으로 인한 대량 탈북이나, 북한내에서의 자체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겠는가?

- 허: 나는 서박사의 의견과는 다르다. 나름대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50년간 자부심을 갖고 삶을 다져온 북한은 그리 쉽게 무너질 만큼 허약한 사회가 아니다. 현재의 북한 탈북자들은 체제난민이 아닌 식량난민이다.

= 김: 민간차원에서 하고 있는 대북활동중 특히 종교단체의 대북활동이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선교'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이에 대한 우려도 많다. 종교인들이 어떤 자세로 남북문제를 취급해야 할 것인가.

- 허: 마르틴 부버가 말한 용어를 빌리자면, 남북관계에서 우리는 북한을 '너와 나'의 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나와 그것' 의 비 인격적 관계로 다루어 왔다. 북한은 선교의 대상(Target)이 아니다. 북한은 선교를 우리와 함께 이루어 가야 할 주체이다. 거기에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성도들이 30만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또 공식적인 교회가 2개나 있다. 그렇다면 북쪽과 협력해서 선교를 해 나갈 생각을 해야 하는 데 자꾸 일방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생각만 앞서 있는 것이 문제이다.

= 김: 그렇다면 통일에 있어서도 북한은 '대상'이 아닌 '주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허: 당연히 그렇다. 통일은 이남과 이북이 함께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내심으로 북한을 흡수해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확산해 나가려 한다.

통일이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다. 공존의 논리로 이루어 가는 것이어야 한다. 공존논리의 핵심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즉 통일을 위해서는 '대상(Target)적' 발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유도'한다는 말도 버려야 한다. 흔히 통일의 상대인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한다고 말하는데, '유도'란 단어는 '조작적 (Operational)'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남북관계에서는 협력하겠다는 발상이 필요한 것이지, 유도하겠다는 발상은 처음부터 버려야 한다.

"북한주민 빼내오기 방식은 하책중의 하책"

= 김: 현재 탈북자가 점증하는 추세속에 '빼내오기'를 시도하는 사람도 있는데...탈북자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는가.

- 허: 한마디로 '빼내오기식' 방법은 가장 낮은 수준이요, 하책중의 하책이라 할 수 있다. 탈북자 문제는 우리 입장에서는 '동포문제' 지만, 중국에게는 '주권의 문제', 이북에게는 '자국민의 문제'이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탈북자 문제는 반창고만 붙여 치료하는 '대중요법', 곪았을때 완전히 짤라 내는 '외과수술요법',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체질개선 요법' 즉 한방요법이라 할 수 있다.

뛰쳐나오는 사람은 받아 주자 는 것은 (소극적) 대중요법이다. 다음으로는 외과 수술 요법인데, 앞서 말한 3국간의 관계를 고려해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이런 방법이 있다. 돈은 한국정부가 대고, 중국은 관리하고, 북한은 누가왔는지 점검만하는 탈북자 수용소를 국경지역에 건설하는 일이다. 탈북자들에게 국제사회에서 살아 갈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재중동포들도 함께 훈련받게 하면 민족 공동체를 형성해 이들의 수준이 올라갔을 때, 한국 기업체와 연변의 한국 기업체가 데려다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근본적 해결방법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체질개선이 필요한데, 북한에서 탈북자들이 안나오게 해야 한다. 북한의 탈북자는 체제탈북자가 아니라 식량탈북자이다. 탈북자중95%는 식량 탈북자이고 5%가 탈북하고 나와서 이남의 현실을 보고 체제 탈북자가 된 사람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일보가 탈북자를 몽땅 체제탈북자인 것 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렇다면 아예 안나오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개성공단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기업들이 인건비가 올라서 몰락하고 중국에 수출품목을 빼앗기고 있는데, 남한이 자본과 기술을 개성공단에 가지고 가서 중국의 십분의 일도 안되는 인건비로 우수한 북한 근로인력을 동원해 상품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이것을 안하면 어떻게 되는가? 월드뱅크에 따르면, 일본경제가 2005년쯤 가면 무역총액5천4백억, 중국은 6천3백억이 되는데, 그때까지 우리 남북이 경제 교류협력과 활성화가 안되면 남한 경제는 일본에 편입되고 북한 경제는 황화(중국)경제에 편입된다. 2010, 2020년에 가서 '정치적'으로 통일 돼 봐야 한민족의 혈맥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

결국 21세기 무한 경쟁시대에서 우리민족이 살아 남아 중심국가로 도약하는데 있어 탈북자 처리 문제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다. 탈북자 문제는 정치인들이 정신 못차리고 있을 때 우리한테 정신차리라고 준 하늘의 메시지이다.
<대담: 김명곤 본보 편집인. 일시: 2002년 8월 28일 오전8시 장소:올랜도 레디슨 호텔 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