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파업, 이러니 지지를 못받는 거다 [print]

[암중모색] 투쟁에 정당성이 있다면 국민 설득이 먼저다


▲ ⓒ 의대협 페이스북 캡처

(서울=오마이뉴스) 안호덕 기자 = 코로나 극복을 위해 헌신을 해온 의료진에게 온 국민이 감사의 뜻을 모았던 '덕분에 챌린지'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에 의해 손 모양이 뒤집힌 '덕분이라며 챌린지'로 변형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의대협의 주장은 코로나 극복에 감사한다고 '덕분에 챌린지'까지 해놓고는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계의 요구와 정반대인 정책을 정부가 강행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다.

한국농아인협회가 21일 그런 손 모양의 수어는 없으며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저주한다'는 뜻이라며 수어 악용을 지적하자, 의대협은 22일 농아인에게 상처를 줬다며 사과하고 '덕분이라며 챌린지'의 손 모양 사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의대협의 '덕분이라며 챌린지'에 상처받은 사람은 농아인들만이 아니라 코로나 극복에 찬사와 존경을 보낸 국민이다. '덕분에 챌린지'는 의사만 아니라 전국에서 대구로 달려간 간호사와 구급대원들 등 모든 의료진에게 보내는 국민의 헌사였다. 국민이 의료진에게 감사의 뜻을 모아 차려준 잔칫상을 예비 의사들이 걷어찬 것이다.

의대협은 농아인들에게만 사과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학생들의 '덕분이라며 챌린지'에 동참한 선배 의사와 의대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전공의 담화문 읽어보니


▲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대학의원 본관 앞에서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의사 가운을 탈의하고 있다. 2020.8.23 ⓒ 연합뉴스

23일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 21일 인턴과 4년 차 레지던트, 22일 3년 차 레지던트에 이어 이날 1년 차와 2년 차 레지던트까지 파업에 참여하면서 모든 전공의가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3일 낸 대국민 담화문에서 "필요할 때는 의료진 '덕분에' 라며 추켜세우더니 하루아침에 의사는 공공재라며 물건으로 취급한다"며 "토사구팽이 따로 없다"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덕분에 챌린지'를 토끼 잡은 사냥개에 대한 찬사 정도로 여기는 인식이 드러나 있다.

전공의들은 담화문에서 "오죽하면 병원 밖으로 나오게 되었겠냐"며 "시간 내어 한 번만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담화문 어디에도 코로나 창궐의 비상시국에 집단 파업을 하는 납득할 만한 이유는 찾기 어려웠다.

글자 수가 제한된 담화문에 구구절절한 내용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현장 일선에서 환자를 돌보던'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혼란에 빠졌을 때 망설임 없이 현장을 지키기 위해 대구 경북으로 달려갔던 전국 각지의 의사들' 등 자찬의 문구는 있어도 파업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사 수가 과연 부족할까'라는 의문이 전부다.

가장 자주 의사 만난다? 대도시나 그렇고


▲ 보건의료노조는 6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보건의료현장 불법의료 실태 고발 보건의료노조 긴급 기자간담회>를 개최하여 의사 인력 부족이 야기하는 불법 의료 실태를 증언하고 공공의과대학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의 필요성을 알렸다. ⓒ 보건의료노조

전공의들은 "가장 자주 의사를 만나고, 가장 빨리 의사를 만날 수 있는 나라"에서 "과연 의사 수는 부족하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가 없어 애 낳으러 도시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뉴스는 이제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공공보건의들이 지방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현실에서 대형 병원, 도시 병원에 모여 있는 전공의들이 가장 빨리 의사를 만날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지방 병원을 기피하는 의사들의 그릇된 도시 대형병원 선호가 의료 공백을 불러왔다고 자기 고백이라도 먼저 하는 것이 순서다.

지난 6일 보건의료노조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 대부분 간호인력으로 구성된 PA(진료보조인력 Physician Assistant)가 의료인력 부족 및 전공의 지원 미달에 따른 진료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점 ▲ 진료보조인력이 행하는 의사 대리업무는 의료법상 권한이 없는 무면허 의료행위, 즉 불법의료행위로서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 ▶의사업무를 대행하다 의료사고 등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보조인력을 보호할 법적 장치가 없는 점 등을 지적하며 의사 인력 부족이 야기한 현장 실태를 고발했다.

박근혜-문재인, 의대 확대는 같은데...

의료 인력은 현재도 충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향후 고령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 인력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2013년 11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제3차 국민경제자문회의를 마치고 청와대가 의료 분야의 규제 완화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브리핑을 했다. 이보다 앞서 3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도 '공공의료 인력 양성방안'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2016년 7월 11일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의료 취약지 의무 복무를 골자로 한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이다. 이 법안에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 75명이 발의에 동참했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계류되다 자동 폐기됐다.

당시 의사협회는 "의료취약지의 의료서비스 접근성 확대라는 취지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국립보건의료대학의 신설이 그 답이 될 수는 없다"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파업을 강행하면서 정권과 극한 대치로 가지는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의대 확대 추진에 공감까지 표시하면서 대화를 강조하던 의사협회가 문재인 정부의 의대 확대 방안에는 코로나19 창궐에도 가운을 벗어던지고 파업을 하는 이유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그만 멈춰라

정부가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의대 정원 확대 정책 주친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의사협회는 파업 철회 대신 전공의 파업으로 확대하고 24일과 26일에는 전임의와 개업의 파업까지 예고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지만 밥그릇을 지키려고 국민을 볼모로 잡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랑제일교회와 8.15 광화문 집회로 촉발된 코로나19 재창궐이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다시 의료진이 전면에 서야 하고 그 노고를 모를 국민도 없다. 23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정세균 총리와 면담하고 나서 코로나19 진료에는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늦었지만 다행이고, 다행이라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불씨에 불안하다.

'우리는 대한민국 의사다. 코로나19 극복, 국민과 의사협회가 함께'


▲ 대한의사협회 서울 용산에 자리한 대한의사협회 건물 전경 ⓒ 안호덕

서울 용산 의사협회 건물 전면에 걸린 문구다. 투쟁에 정당성이 있으면 국민 설득이 먼저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투쟁은 이겨도 지는 거다. 다시 한번 '당신들 덕분입니다'를 할 수 있도록 의사협회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9월 01일, 화 5:1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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