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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대한민국은 재벌 공화국?
정치도 검찰도 언론도 잇달아 투항…눈치보기 급급

석가탄신일을 맞아 불법정치자금 제공으로 사법처리된 기업인에 대한 특별사면과 복권 계획.

이건희 삼성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주려는 것에 반대해서 시위를 벌인 고대생들에 대한 사회 각계의 질책.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 중단 의혹.

5대 재벌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배임죄 고발이나, 삼성SDI의 노동자 휴대폰을 통한 위치추적 의혹 고발, 삼성 계열사들의 총수자녀 부당지원에 대한 배임죄 고발 등 재벌 관련 각종 고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잇단 무혐의 처리.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조사에 대한 삼성 계열사 임직원의 방해 행위. 향후 2년간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증권집단소송제 적용 면제까지.


위에 언급한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최근 우리사회에서 재벌과 관련해 쟁점이 됐거나, 여전히 논란 중인 사안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견상의 공통점일 뿐이다. 보다 본질적인 것은 재벌과 그것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들, 즉 재벌총수와 핵심 경영인들이 우리사회에 미치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어느덧 우리사회는 재벌의 주장이나 논리가 그 어느 것보다 우선시되고, 재벌의 이익이 마치 사회 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맞고 있다. 재벌이 우리사회의 많은 권력 중에 하나가 아니라, 권력 중의 권력, 최고의 권력인 '기업권력', '재벌권력'의 시대가 된 것이다.

권력중의 권력, 재벌권력과 사회적 가치의 충돌

외환위기 이후 재벌이 개혁의 대상으로 뭇매를 맞던 때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의 느낌이지만, 재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재벌의 논리가 우리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재벌의 영향력 증대는 우리사회에서 경제와 기업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히고 있지 않은가?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개혁성향의 경제학자들도 이제는 재벌을 단순히 규모로 규제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데 한국만 크기를 가지고 재벌을 규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권력, 재벌권력이 우리사회가 존중하고 지켜야 할 원칙이나 가치와 충돌한다면 심각한 문제이다. 더욱이 그런 재벌권력이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특히 민주주의라는 것이 원래 견제와 균형이 이뤄져야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경제인에 대한 사면·복권 추진은 부정부패사범에 대한 사면·복권을 엄격히 행사해서 법 집행의 실효성을 확보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깨는 것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또 법 적용과 집행이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많다.

반면 재벌들은 그동안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인들에 대한 조속한 사면·복권을 요구해왔다. 정부는 사면 복권의 이유로, 경제 회생이 최대 과제이고 정치권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강행 태세이다. 결국 민주주의 원칙이나 국민과의 약속보다도 재벌의 요구가 우선시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장난이 아닌 시대

이건희 회장의 고대 사건은 재벌권력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학교당국은 물론 언론, 심지어 정부까지 '물리적 시위'라는 외형적 측면에 치우쳐 학생들에 대한 질타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반면 본질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내용적 측면은 거의 조명되지 않고 있다. 바로 '학생들이 이 회장의 학위 수여에 반대한 논거는 무엇이며, 또 그들의 주장이 과연 옳은가'에 관한 문제이다.

학생들은 삼성의 노동탄압에 책임이 있는 이 회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집단 교섭권 인정은 선진사회라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일종의 '글로벌 스탠다드'이다. 하지만 세계 초일류기업을 추구한다는 삼성은 지금까지 무노조경영을 표방하며 노동자의 자유로운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아왔다.

삼성의 노사가 자율적 합의에 의해 무노조를 한다면 굳이 비난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삼성SDI의 휴대폰 위치추적 의혹이나 끊이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미행·납치 시비는 현실이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사회가 학생들에 대한 비판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은 한국 제1의 재벌인 삼성의 비위 맞추기라는 분석이 많다. 고려대 보직 교수들의 동반 사퇴나 관련 학생들에 대한 징계 방침이 대표적이다.

일부 보수언론들은 '탈선'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학생들을 공격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노조 없이 잘하는 기업도 있다"며 잠시 자신의 자리를 잊은듯한 발언까지 했다.

고대 학생회가 관련 학생들에 대한 징계방침에 반대하자, 일부 학생들이 학생회에 대한 성토에 나선 것을 두고, 삼성에 취업하는 데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라는 '농반 진반'의 얘기까지 들린다.

실제 삼성 안에서도 고대 출신 직원들이 "나는 서울 본교가 아니라 조치원 분교를 졸업했다"고 말한다는 게 흘러나올 정도로 미묘한 분위기이다. 모두들 이건희 회장의 심기를 살피며 전전긍긍해 하는 모습들이다. 누구는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정말 장난이 아닌 시대가 됐다고도 한다.

대상그룹 명예회장 비자금 수사 중단의 의미, '자본의 시녀' 검찰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이 위장계열사를 통해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개인적으로 사용한 게 법원 판결로 드러났음에도 검찰이 수사를 중단한 사실이 드러난 것은 이제 검찰조차 재벌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5대 재벌 부당내부거래 배임죄 고발과, 삼성SDI 노동자 휴대폰을 통한 위치 추적 고발, 삼성생명 등 삼성 계열사들의 총수자녀 부당지원 등 배임죄 고발에 대한 검찰의 무더기 무혐의 처리에 대해서도 검찰이 자본의 시녀로 전락했다고 비판이 쏟아졌다.

재벌 봐주기 논란은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들에 대한 검찰 수사나 법원의 판결 과정에서도 제기됐다. 수백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중죄인임에도 대부분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고, 법원의 판결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쳤다. 당시 명분은 역시 국민경제를 고려한다는 것이었다.

향후 2년간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증권집단소송제 적용을 면제해주고, 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감리까지 사실상 하지 않겠다는 정부방침도 경제와 기업에 충격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게 이유였다. 삼성 계열사의 공정거래위원회 담합조사 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이제 공권력에까지 도전하겠다는 것이냐는 따가운 비판이 쏟아졌다.

그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권력기구나 집단으로는 정치인, 고위관료, 검찰, 언론 등이 꼽혔다. 그러나 이제는 재벌과 재벌총수, 그 핵심 경영인들로 바뀌고 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91년 대선에 출마할 때 그 이유로, 정치인들에 다시는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황은 10여년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이미 지나친 기업권력은 사회문제로 제기돼 왔다.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섰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한 칼럼니스트가 "미국에서 기업들이 너무 많은 권력을 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자 "워싱턴에서 매일 느끼는 게 그것이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경제분야에서 소수 대기업의 힘이 세지면 독과점 문제가 발생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듯이, 재벌의 영향력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는데 사회 안에서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벌권력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견제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재벌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경제살리기가 모든 것에 앞서 최우선의 국정과제로 강조되고 있다. 최근 대통령이 재벌총수와의 스킨십에 열중하고 있는 것도 심상치 않다. 검찰도 재벌에 대해서는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

최근 검찰이 수사권을 둘러싸고 경찰과 갈등을 보이지만, 재벌관련 사건 처리만 놓고 보면 검찰이 과연 그런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재벌 관련 수사를 하던 검사가 사표를 낸 뒤 그 재벌에 취직을 하는 세상이다. 오죽하면 국회에서 판검사의 대기업 취업을 규제하는 법 개정까지 추진되고 있겠는가?

지난해 말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사석에서 털어놓은 말은 충격적이다. "00그룹에 척지고는 정치인 생활을 못할 것 같다." 당시 그 여당의원은 특정 재벌그룹이 강력 반대하는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원안대로 처리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해당 재벌은 그 의원의 온갖 관계를 동원해 압력과 회유를 시도했다고 한다.

심지어 언론조차 최대 광고주인 재벌의 품안으로 스스로 투항하고 있다. 언론의 비판기능은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실종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재벌이 막강한 금권을 앞세워 신문, 방송 기자들을 경쟁적으로 스카웃하고 있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주목할 사안이다.

한 여당 의원의 고백 "00그룹에 척지고는 정치인 생활 못할 것 같다"

기업권력이 더욱 세지고 있는 선진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경영이 강조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면 기업권력 재벌권력의 문제를 해결하고,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단순히 질좋은 제품이나 서비스 생산과 이윤창출 같은 경제적 책임을 뛰어 넘어 사회의 법과 규칙 제대로 준수하는 법적 책임, 도덕과 규범을 잘 준수하는 도덕적 책임, 나아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공헌적 책임을 망라한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아예 '국제적 표준'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무역이나 환경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또 하나의 '국제 라운드'로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 대기업들이 최근 들어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특히 진정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보다는 단순히 이미지를 높이고 꾸미는 수단 정도로 사회공헌을 활용하려는 기업들이 아직은 많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세계적 전문가인 미국 보스턴대 브래들리 구긴스 교수의 말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제대로 하는 기업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 권우성 기자 (오마이뉴스)
 
 

올려짐: 2005년 5월 11일, 수 11:4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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