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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스페셜리포트 83] 고등학생이 웬 반전 연극이냐고?
코네티컷주 고교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올랜도) 김명곤 기자 = 미국 코네티컷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연극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 상급반 학생들이 수업의 일환으로 이라크전을 소재로 연극을 준비하던 중 학교 교장이 돌연 공연 취소 명령을 내려 파문이 일고 있다.

코넷티컷의 윌튼 하이스쿨 연극반은 지난해에 윌튼시의 대형 공연장에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비롯하여 아서 밀러의 <크루셜>을 공연했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와 지역사회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 윌튼하이스쿨 연극반 학생들의 연극 '갈등의 목소리들'이 취소된 소식을 전하고 있는 ABC뉴스.

이들은 이번 봄 공연 작품으로 이라크전이 배경인 <갈등의 목소리들(Voices in Conflict)>을 정하고 19세의 나이로 지난해 가을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같은 학교 출신 선배의 편지를 포함하여 참전 병사들의 회고담을 수집했고, 이 과정에서 의식의 변화를 체험했다고 한다.

교장 "정치적인 균형감각과 정황 이해에 문제 있다"

그런데 15명으로 구성된 연극반이 4월 공연을 앞두고 대본을 완성하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던 지난주, 티모시 캔티 교장이 클래스에 직접 들어와 돌연 공연 취소를 통고했다. 이유인즉, 이들이 공연하려는 연극 '갈등의 목소리들'이 정치적인 균형이 상실되어 있고 이라크전에 대한 정황을 묘사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캔티 교장은 연극반 학생들이 이라크전에 대한 전체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고, 아직 참전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군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기에 학교는 적절한 장소가 아니라고 말했다.

캔티 교장은 지난 25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연극은 학생들에게 정당한 교육적 경험을 제공할 만큼 충분한 수업 시간과 리허설 시간을 갖지 못했다"면서 "연극이 실제 전쟁에 참여해 전사한 윌튼 하이스쿨 졸업생의 가족들과 다른 참전 병사의 가족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 취소 배경을 설명했다.

이 같은 교장의 주장에 대하여 연극반 지도교사 보니 딕킨슨(38)은 "연극반 학생들의 대부분이 18세이며, 그 나이의 많은 청년들이 이라크에서 싸우고 있다"며 교장이 졸업반 학생들의 미성숙도를 들먹이고 있는 데 대해 반박했다.

연극반 학생들도 한결같이 교사가 추천한 서적은 물론 많은 자료들을 찾아 읽었기 때문에 이라크전 상황과 참전군인들의 정서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딕킨슨 교사와 연극반 학생들은 교장의 연극공연 취소 결정이 참전군인 가족들이 입을 상처나 학생들의 미성숙 때문이라기보다는 연극 대본의 전반적인 내용이 교장의 이라크전 입장과는 달리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는 데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연극 교사 "구미에 맞는 연극이라면 이런 일 없었을 것"

이라크전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이번 연극공연 취소의 주된 이유였음은 우선 교장과 연극반 교사의 논쟁에서 드러나고 있다.

윌튼 하이스쿨 학생신문 <더 뷸레틴(The Bulletin)>지 30일자에 따르면, 캔티 교장은 "딕킨슨이 연극 계획서를 들고 와서는 우리 학교에 매우 좋은 기회이며, (이라크전 참전) 병사들의 명예를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면서 "나는 이에 대해 안도감을 느껴 그 계획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딕킨슨 교사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펄쩍 뛰면서 "나는 그저 군대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들 가운데 연극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덧붙였다.

딕킨슨 교사의 주장은 연극의 내용이 이라크전에 대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예술적 또는 교육적 가치로서 평가하면 그만이라는 주장이다.

딕킨슨 교사는 "만약 내가 부드럽고 (누군가의) 구미에 맞는 연극을 추진해 왔다면 이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면서 "교육의 목적 중 하나는 삶 속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는 것이며, 학생들이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 들어가서 자신들의 언어로 경험을 말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반에 참여한 한 학생의 어머니 에말리사 레시카는 "만약 우리가 제때에 전쟁을 끝냈다면 그들이 군대 모집에 응하지 않고 전쟁터에 가지 않았을 것 아닌가, 도대체 누가 전쟁터 가기를 선택했는가"라고 반문했다.


▲ 티모시 캔티 교장선생의 인터뷰 장면.

이어 레시카는 "왜 학교가 학생들로 하여금 이 같은 사실에 대해 말하도록 놔두지 않는가"라면서 "슬프게도 매우 평판이 좋은 학교가 우리 아들이 성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박탈했다"고 비판했다.

뭉개지고 잘려나간 대본

현재 윌튼 하이스쿨 연극공연 취소 사건은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파이어독 레이크', '유튜브' 등 인기 웹사이트에 올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주로 캔티 교장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연극 '갈등의 목소리'는 어떤 연극이기에 윌튼 하이스쿨의 교장이 취소 결정을 내리고, 전국적인 화젯거리가 된 것일까.

애초 연극 '갈등의 목소리들'은 연극 교사 딕킨슨이 이라크전의 첫 희생자에 대한 책을 읽고 난 지난 1월 22일 학생들에게 이라크전 연극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딕킨슨 교사가 연극 대본을 구상하면서 크게 감동을 받았던 것은 참전 병사들의 독백이었다고 한다.

그가 읽은 책들은 <갈등 속에서: 이라크전 참전 병사들은 의무, 피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외치고 있다>, 다큐멘터리 <지상전의 진실> 외에 다수의 인터넷 서적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학생들과 연극 대본을 구상하면서 이 서적들을 참고했다.

주변에서 연극 대본이 지나치게 반전 색채를 띠고 있다고 우려하자 딕킨슨 교사는 동료 영어교사의 도움을 받아 대본을 여러 차례 다듬었다. 개정본은 살인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잔인한 용어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 성과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들을 생략하고 병사 개인들의 전쟁에 대한 회한이 주를 이루었다.

대본 중 한 상관이 병사들에게 "당신(군인)들의 목적은 그저 죽이는 것이다"라는 귀절과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도 삭제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최종본 첫머리는 윌튼 하이스쿨을 갓 졸업하고 이라크전에 참전하여 지난해 9월 19세의 나이로 사망한 닉 매다래스가 바그다드 북부 바쿠바에서 근무하며 지역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따 온 것이다. 대사는 매다래스가 고교시절을 회상하며 현재의 처지를 회한조로 조용조용 독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금 나는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같은 말을 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이 정말 그립다. 고등학교는 당신들의 삶에 쉼을 가져다주는 언덕이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믿든 믿지않든 간에…."

대본의 마지막 구절은 무릎 부상으로 귀환한 멜리사 스톡웰이라는 병사가 "결국 나는 (이라크에) 돌아갈 것이다,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가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렇게 이리저리 깎여지고 잘려나간 연극 대본은 딕킨슨과 학생들이 처음 구상한 연극보다 부정적 묘사의 강도가 훨씬 떨어져 밋밋해졌지만, 연극의 전체적인 톤을 바꾸기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멀리 와 있었다.

태라 로스라는 연극반 학생은 학교신문 <더 불레틴>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처음에는) 긍정적인 단어들로 군대의 명예를 높이는 연극을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면서 "이것 (수집된 병사들의 고백담)은 바로 그들 자신의 말이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교장의 결정에 비판적인 부모들조차도 대본 내용이 상당히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라크전을 소재로 한 이번 연극이 1만8천명의 부유층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둥지를 튼 학교의 특성과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주민들의 성향상 이라크전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연극이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교장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전문가들 "캔티 교장, '표현의 자유' 침해했다"

한편, 미국의 시민단체들과 전문가들은 학교 교장 자신의 교육 이념에 따라 수업 중 학습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은 미국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돼온 많은 사례들 가운데 하나이며, 캔티 교장의 이번 조치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를 심각하게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 시민자유연맹 코네티컷 지부 로저 밴 총무는 28일 코네티컷 <스탬포드 애드버키트> 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듣기를 꺼려하는 말이라 할지라도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면서 "윌튼 사건은 (헌법상)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 윌튼 하이스쿨 웹사이트.

예일대학 드라마 스쿨 학과장 리차드 넬슨도 "사람들은 표현하기를 원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희곡을 쓴다"면서 "연극은 특성상 중립이 될 수 없으며, 정서, 감정, 관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전 문제는 당사자인 젊은이들의 당연한 관심거리며, 젊은이들의 연극 소재가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고 덧붙였다.

학생 수 1250명의 윌튼 하이스쿨에서는 이번 사례 외에도 학생들이 학내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다며 캔티 교장이 각종 규정을 두어 종종 말썽이 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당국은 수년 전 '동성애자 표출 연대(GSA)'라는 학생 단체가 학교 건물 계단 벽에 포스터를 부착했으나 안전에 위험이 있다며 이를 떼어내도록 했으며, 향후 이 같은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서는 사전에 학교 측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

또 학생들이 머리에 수건을 덮어쓰고 다니는 행위가 갱단을 연상시킨다며 이를 금지할 뜻을 밝히자 수백 명의 학생들이 항의의 표시로 수 일간 머리에 수건을 쓰고다니기도 했다. 얼마 전 학교당국은 학생들의 학교 및 교사들에 대한 조롱을 우려한 나머지 매년 발간하는 학교 사진첩의 여담록에 남기는 글조차도 이런저런 규정을 두어 제한을 가했다.

"장소 빌려 주겠다" 초청 공연 쇄도

윌튼 하이스쿨 사건이 <뉴욕 타임스>를 통해 기사화되자 전국의 여러 시민단체에서 장소 제공을 제의하는 등 초청 공연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딕킨슨 교사는 "아직 학생들이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학생들은 어떻게든 졸업 전에 첫 공연을 하고 싶어한다.

연극반 멤버 제임스 프레슨(17)은 학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초 우리가 하려 했던 것은 이번 연극을 통해 이라크전에 대한 얘기들을 나눌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면서 "우리는 연극이 학생들 앞에서 먼저 공연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멤버 데본 폰테인(16)은 "우리 학교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머리를 박박 밀어붙인 얘기나 슈퍼 모델 타이라 뱅크스의 몸무게가 불어난 사실에 더 관심이 많다"면서 "우리가 원했던 것은 친구들에게 우리나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연극반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 바깥 바로 옆에 있는 윌튼 장로교회 교회 건물을 빌려 무대에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교회 측도 학생들이 어떤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려짐: 2012년 3월 16일, 금 6:5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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