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Weekly of Florida   로그인  등록하기

 현재시간: (EST) 2021년 9월 20일, 월 2:00 am
[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스페셜리포트 8] 플로리다판 '미시시피 버닝' 해결될까?
* 본 기사는 광고성 댓글이 너무 많아 순서를 무시하고 앞으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편집자)

미국 최초 민권운동 순교자, 해리 무어 이야기

(올랜도) 김명곤 기자 = 1951년 12월 25일 안개가 자욱하던 크리스마스 날 밤, 플로리다 중동부 해변마을인 티투스빌 지역의 민권운동가이자 흑인학교의 교장인 해리 무어 부부는 한 껏 들뜬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 플로리다 티투스빌 지역 밈스에 위치한 해리 무어 뮤지엄. 이 뮤지엄은 해리 무어 부부가 폭사당한 집터 위에 세워져 있다.지.

참석자가 50명도 넘지 않는 동네 교회에서 초저녁에 단촐하게 벌인 크리스마스 행사는 소박하고 정겨웠다. 알만한 동네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부부는 한동안 시달려 오던 '사건'으로부터 잠시 해방감을 맛보며 파안대소를 하기도 했다.

더구나 이 날은 무어 부부가 결혼한 지 25년째를 맞이하는 날이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이들은 얼마전 친지로부터 선물받은 포도주를 한잔씩 나눠 마시며 정담을 나누었다. 다음날은 이들의 무남독녀 외딸이 워싱턴으로부터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날 폭사당한 미국 최초의 민권운동 순교자

부부는 1시간 거리의 기차역으로 마중나갈 계획을 세우고는 손을 꼭 잡은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들에게 마지막 밤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채.

이들이 막 잠에 골아 떨어지려던 10시 반경 엄청난 굉음과 함께 이들의 집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누군가가 이들의 침대밑에 설치해 둔 3파운드의 다이너 마이트가 폭발한 것이다.


▲ 해리 무어 뮤지엄 안내 현판.
남편인 해리 무어(Harry T. Moore. 당시 46세)는 즉사했고, 그의 어릴적 친구이자 민권운동의 동지이기도 했던 부인 헤리엇 무어(51세)는 중상으로 고통스러워 하다가 9일만에 병원에서 사망했다.

미국 최초의 '민권운동 순교자'로 일컬어지는 해리 무어 부부의 폭사 사건은 당시 플로리다 지역 신문은 물론 뉴욕타임스등 주요 신문들이 연일 톱뉴스로 보도함으로서 미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더구나 이들 부부의 폭사사건은 이미 전국적인 관심을 끌어 온 일련의 '사건'에 이어 터져 나온 것이어서 더욱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소식은 국제적으로 날리 알려지고 유엔에서도 문제를 삼아 미국정부를 곤혹에 빠트리기도 했다.

FBI는 20명의 수사요원을 동원해 즉시 수사에 나선지 수 일도 되지 않아 트럭운전사, 야채상, 회계사 등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트럭운전사와 야채상은 범행을 부인해 석방되었고, 콕스라는 이름의 회계사는 수사요원과 두번째 대면한 후 자신의 뒷마당에서 권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이후 남아있던 두 명의 용의자도 몇달이 되지 않아 세상을 뜨고 말았다.

결국 FBI는 이들 유력한 용의자들이 사건현장으로부터 40마일 가량 떨어진 중앙플로리다의 아팝카와 윈터가든 지역의 KKK단 멤버일 가능성이 높다는 수사기록만 남겼을 뿐 사건 발생 3년 8개월만인 1955년 8월 수사 종결을 선언했다.

이후로도 사건이 일어났던 동네에서는 한동안 '누구 누구가 이 일과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를 족치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지고 모른다'는 입소문이 무성했으나 세월이 흐르며 관련자들이 하나 둘씩 사망하면서 이조차도 사그러 들고 말았다. 그리고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시시피에서 불기 시작한 '과거사 청산' 바람


▲ 해리 무어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생전의 해리 무어 사진.
그러나 영영 잊혀질 뻔 했던 해리 무어 부부의 폭사사건은 지난 1월 마르틴 루터 킹 데이를 앞두고 40년전 발생한 유명한 '미시시피 사건'의 진범이 체포되면서 극적으로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미시시피 사건이란 1964년 미시시피에서 민권운동을 하던 백인 청년 두명과 흑인 청년 한 명이 백인 전도사 킬렌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말한다. 그러나 당시 강력한 혐의자로 지목됐던 킬렌은 배심원들이 전도사에게 유죄평결을 내릴 수 없다고 버티며 흐지부지 되다 다른 혐의자들과 함께 석방됐다.

지난 1월초 워싱터 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수일에 걸쳐 40년만에 미시시피 사건의 범인 킬렌이 체포된 데 대해 상보를 전하면서 그동안 묻혀진 다른 사건들도 '과거사 청산' 맥락에서 재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AP통신도 지난 1월 10일 플로리다 주 검찰이 1964년에 플로리다 동북부 잭슨빌에서 발생했던 흑인 가정부 살해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거부했으며, 주 상원의원이 이를 젭부시 주지사에게 항의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플로리다 신문들은 이 기사를 보도하면서 1951년에 발생한 해리 무어 부부의 폭사 사건도 재조사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역 신문들은 지난해 12월 21일 강력한 차기 주지사 후보인 찰리 크리스트 플로리다 법무장관이 지나치듯 해리무어 사건을 재수사하겠다고 약속한 점을 들어 이번에야 말로 해리무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영화 '미시시피 버닝'으로 널리 알려진 '미시시피 사건'은 영영 감춰질뻔 했던 민권운동 사건들의 재수사에 불을 붙힌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1951년 12월 25일밤에 일어났던 해리무어 부부 폭사사건은 어떻게 해서 일어난 것일까.

백인소녀의 '강간주장'으로 시작된 '레이크 카운티의 비극'


▲ 해리 무어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학교교사 시절의 해리 무어 부부 모습. 사진 옆에는 카운티 교육감으로부터 정치활동를 중단할 것을 경고 받았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사건의 발단은 1949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플로리다의 레이크 카운티 그로브랜드라는 마을에서 당시 17세 백인 소녀가 네명의 흑인 남자에게 윤간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그녀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인과 증거는 없었다. 실제 강간사건이 있었는지에 대한 확인도 없이 일방적 '주장'만 남은 희안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크 카운티 경찰 윌리스 맥콜은 그녀의 주장만 믿고 수사를 벌여 세명의 용의자를 체포했다. 네번째 혐의자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다 살해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곳으로부터 40마일 부근에 살고 있던 KKK단원들은 소녀가 강간을 당했다고 지목한 그로브랜드 등 인근의 흑인마을에 돌아다니며 총질을 하고 닥치는 대로 방화를 했다.

이같은 무법천지가 수일동안 계속되었으나 지역 경찰서장인 윌리스 맥콜은 수수방관했고, 이에 지역 민권운동 지도자들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주지사에게 항의했다. 급기야 주 방위군이 파견되고서야 가까스로 질서가 회복되었다.

이어 시작된 재판에서 강간혐의로 체포된 세명의 흑인은 무죄를 주장했다. 특히 이들중 두명은 사건이 일어나던 시점에 20마일 밖에 있었다며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받아들여 지지 않았고 심리한지 두시간도 채 안되어 사형판결이 내려졌다. 나머지 한 명에게는 경미한 형량이 내려졌다.


▲ 해리무어가 사용하던 낡은 성경책. 왼쪽 옆에는 그가 쓴 서신들.
사형판결을 받은 2명의 흑인은 곧바로 연방 대법원에 항소했다. 연방 대법원은 심리끝에 플로리다 주 법원이 이들에 내린 유죄평결을 기각했다. 기각 이유는 주 법원의 평결이 증거 위주가 아닌 '여론재판'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올랜도센티널은 주 법원의 판결을 코앞에 두고 1면에 전기의자가 그려진 '레이크 카운티의 비극' 이라는 만평을 싣고 바로 밑에 '극형' 이라는 설명을 달아 놓아 혐의자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암시를 주었다. 연방대법원은 이 만평을 예로 들면서 주정부의 판결을 '고도로 편견에 사로잡힌' 재판이라고 비판했다.


▲ 1951년 '백인소녀 강간사건'으로 흥분한 KKK단원들의 방화에 의해 한 흑인 가옥이 불에 타고 있는 모습.

호송중인 흑인 혐의자 살해한 KKK단 경찰

판결이 뒤집힌 직후 레이크 카운티 검찰은 11월 6일 두 흑인 혐의자에 대해 재심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재심을 하기로 한 당일, 주정부 감옥으로부터 두명의 흑인들을 수갑을 채워 법정으로 호송하던 윌리스 맥콜은 인적이 드문 지점에서 권총으로 이들을 쏴 한 명을 즉사케 했고 다른 한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맥콜은 이들이 도망하기 위해 자신을 공격했기때문에 총을 쏘았다고 주장했으나, 다행히 살아난 한 명은 아무런 이유 없이 수갑이 채워진 자신들에게 멕콜이 총격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이로인해 사건은 일파 만파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찮아도 관심을 끌어 왔던 이 사건은 연일 미 전역의 신문들이 대서 특필하게 되었고, 흑인 커뮤니티는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사전 모의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 흑백간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게 되었다.

특히 전미 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플로리다 대표를 역임한 지역 지도자이자 흑인학교 교장선생으로 존경을 받아 오던 해리 무어는 플로리다 주지사에게 경찰관 맥콜이 KKK단 멤버라며 그에대한 직무정지와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중앙플로리다지역에는 세개의 KKK단체가 존재했고 그 멤버는 약 3백여명에 달했으며, 정계와 경찰계 및 사업계서 활동하던 사람들도 속해 있었다.


▲ 해리 무어 부부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보도한 <티투스빌 스타>.
해리 무어는 1934년 NAACP 레이크 카운티 지부를 창설하고 7년 후엔 플로리다 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레이크 카운티 NAACP 대표를 지내며 흑인교사들에 대한 평등 임금을 주장하고 흑인 유권자 등록을 추진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다.

이 와중에 무어 부부는 흑인 총격 살해사건을 맞게 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요로에 서신을 보내는 한편 남부 민권운동 지도자들을 만나 대책을 협의하는 일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결국 사건의 존재 유무도 확인도 되지 않은 백인 처녀 강간사건은, 범행을 극구 부인했던 흑인 청년들의 생명은 물론 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나섰던 한 민권운동 지도자 부부로 하여금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했다.

'시효 지난 사건'수사에 미온적인 주정부


▲ 해리 무어가 생전에 사용했던 낡은 가구.
해리 무어 부부 폭사사건은 사건 40년만인 지난 1991년 민주당 출신 로트 차일스 주지사 시절에 진상을 밝혀낼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 당시만 해도 증언을 해 줄만한 생존인물들이 다수가 살아 있었다. 그러나 당시 관련당국의 비 협조적인 태도로 재수사에도 불구하고 혐의자를 가려낼 수 있는 정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로도 흑인 커뮤니티가 재수사를 촉구했으나 그때마다 주정부 당국은 '증거가 불충분하고 시효가 지난 사건' 이라는 식의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예기치 않게 미시시피로부터 불기 시작한 역사청산 바람을 타고 이제 플로리다에서 54년동안 파뭍혀 왔던 해리무어 사건은 한 정치적인 야심가인 크리스트 검찰총장에 의해 최근 재수사가 시작되었다.

이 사건의 관련 당사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수사가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검찰은 당시 사건을 알고 있는 듯한 두명의 새로운 목격자를 찾아내 인터뷰를 마쳤으나 아직은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의 재판기록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고 무어의 유일한 딸인 에반젤린 무어(74)와 친척들을 접촉하고 있으며 또 다른 증언자들도 찾고 있다.

크리스트 주 검찰총장은 지난 2월 2일 올랜도 센티널지에 "정말 믿을 수 없는 매우 슬프고 비극적인 사건"이라면서 "시도하지 않으면 밝혀 내지 못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무어의 집터에 세워진 해리뮤지엄의 여성 디렉터이자 지역 토박이 주민인 쥬애니타 바튼도 기자에게 "그 당시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첨단 장비를 갖춘 FBI등이 적극 나선다면 범인을 밝혀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면서 "문제의 해결은 인력과 시간과 돈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플로리다는 지금 심판대 앞에 서 있다"


무어는 1951년 폭사를 당하기 수일전 주지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흑인청년 살해사건을 항의하면서 "우리는 단지 (흑인의 유익을 위해) 사건을 호도하려 한다거나, 타조처럼 두려움으로 모래밭에 얼굴을 파묻고 있기를 원치 않는다. 플로리다는 지금 심판대 앞에 서 있다"고 적었다.

과연 54년만에 역사의 심판대 앞에 다시 선 해리무어 부부의 폭사사건이 이번에야 말로 속시원히 해결되어 1월초 미시시피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역사 청산 작업의 불꽃이 이어지게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아직도 미국 곳곳에는 이와 유사한 숱한 사건들이 먼지를 뒤짚어 쓴채 묻혀있기 때문이다. / 김명곤 기자
 
 

올려짐: 2012년 3월 16일, 금 7:00 pm
평가: 0.00/5.00 [0]

답글이 없습니다.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3973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3973
www.smiledentalfl.com
www.koreahouseorlando.com
https://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013</a
https://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4924</a
www.acuhealu.com
https://www.lotteplaza.com/
www.minsolaw.com
www.GoldenHourAcu.com/
www.easybeautysalon.com/
https://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4925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4448
www.RegalRealtyOrlando.com
https://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4926</a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073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072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070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071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4744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4341
www.sharingkorea.net
www.ksm.or.kr
www.ohmynews.com
www.newsm.com
www.newsnjoy.or.kr
www.protest2002.org
www.biblekorea.org
www.saegilchurch.net
get FireFox
https://kornorms.korean.go.kr/m/m_exampleList.do
http://loanword.cs.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