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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제국의 시민들' 회한에 울다
[스페셜 리포트] 법륜 스님의 미국판 '즉문즉설'


▲ 법륜 스님 '즉문즉설' ⓒ안희경

(뉴욕) 안희경 기자 = 뉴욕 맨하탄, 파이프 오르간이 끝모를 고딕 천정으로 솟구쳐 메달려 있는 유니언 신학대학의 소셜 홀에서 '미 제국'의 시민들이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날은 4월 20일이었고, 미 전역에서 모인 청중의 동공은 확장되어 있었으며, 덩치 큰 한 여인은 몸마저 들썩이며 한숨을 쓸어내리지 못했다.

나흘 동안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이어지는 발표와 토론을 듣고자 300달러에서 1500달러의 수업료와 교통비를 들여 온 참가자들은 300여 명이었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들의 조국인 미국을 향해 제국이라 서슴없이 부른다.

참가한 외국인들이야 어찌보면 다들 반세기 넘게 세계 최강의 지위에 있는 미국에게 감정이 그리 썩 좋기만 할 수 없기에 '제국주의', '미 제국'이란 말이 거리낌 없겠지만, 스스로 조국에게 제국이란 단어를 붙인다는 것은 정치적 성향을 넘어선 이성적 용기라고 본다. 군사 경제적으로 월등한 지위를 갖는 미국, 그 힘으로 세계를 움직이며 유지되는 그들의 부강함. 제국의 모습이다. 그곳의 참가자들은 제국이란 단어로 미국을 호칭하며 자신들의 부정적 모습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법륜 스님은 맨 얼굴을 보도록 거울을 비췄다. 도법 스님과 함께 참여불교 대표로 참석한 법륜 스님의 '뉴욕판 즉문즉설'이 열린 것이다.

자신의 조국을 '제국'이라 부르는 사람들


▲ 청중은 하버드에서 비교종교학과 불교를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자 사회활동가들로, 불교 수행을 통한 사회변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안희경

갓 스무 살 넘은 백인 청년은 어렸을 때와 달리 점점 신념이 줄어든다며 하나님의 뜻을 더 굳게 마음에 다질 방법을 물어왔고, 젊은 흑인 활동가는 명상을 통해 어떻게 단련해야 인종, 게이와 같은 소수자 차별에 대한 의식을 남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이에 법륜 스님의 문답이 이어지며 질문자들은 질문 속에 들어 있는 자신들의 에고(ego, self)와 자존심, 남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욕망을 보게 되며 청중도 공감대를 이뤄갔다. 그리고, 희끗한 머리의 백인 신사가 법륜 스님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자 : "제 이름은 마이클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은 아니고… 어떻게 하면 미국을 구할 수 있고, 세상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개인적인 질문이 아니라는 전제 때문에 다른 청중들이 웃는다.)"

법륜 스님 : "미국은 힘이 강합니다. 강한 힘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남을 돕는 데 쓰면 좋은 효과가 납니다. 남을 헤치는 데 쓴다면, 아주 나쁜 효과가 납니다. 저는 9·11이 일어났을 때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에 있었습니다. 그때 전 세계가 난리였습니다. 그 마을만 조용했습니다. TV, 라디오 등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전 '어떤 사람이 잘 사는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먹는 것과 입는 것도 부족하고, 질병도 있는데…. 하지만 그때 미국 사람이 느낀 불안과 공포는 없었습니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미국에 계속 오면서 미국이 점점 더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공항의 검문은 강화됐고, 그 어느 나라보다 미국에 들어오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관공서도 마찬가지로 출입 단계가 매우 복잡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걸까?' 자문해봤습니다. 이런 데 쓰는 돈의 일부를 절망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쓴다면 보다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9·11 때 제가 편지를 썼어요. '당신들이 격는 고통은 정말 클 겁니다. 큰 분노가 일어날 겁니다. 감정대로 한다면 범인을 잡아서 보복을 해야 합니다. 나도 그럴 겁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봅시다. 미국이 진정한 기독교 나라라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자신을 못 박은 사람을 위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하듯이,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좌절과 절망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감정을 억제하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면서 그들에게 조금만 자비를 베푼다면, 미국은 부강함을 오래토록 유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똑같이 보복으로 간다면, 100년이 지난 뒤에 오늘을 되돌아 봤을 때, 그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지는 것처럼 제국이 이날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구나를 알게 될 겁니다.'

미국은 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해합니다. 우리 모두 다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을 찾으려 했다면…. 10여 년이 지난 다음 어땠을까요?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라크 공격, 그래서 응징을 했을지는 몰라도 얼마나 많은 돈을 썼나요? 지금 얼마나 긴장하고 있고 두려워 합니까?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말라는 성인의 말씀은 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아직도 미국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를 살려서 미국의 번영을 이어갈 것이냐, 역사 속 많은 제국처럼 몰락해갈 것이냐' 이것은 오늘 우리의 선택입니다. 더 나은 안전과 번영을 위한다면 감정을 넘어선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오늘 이런 모임을 갖는 것도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희망을 만들어봅시다."

질문자는 낮게 잠긴 목소리로 '가슴 깊이 감사하다'며 인사했고, 그 자리에 모인 제국의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쳤다. 법륜 스님이 답하는 중간에도 청중들은 "예스(yes)"라는 장탄식으로 화답했다.

"번영을 이어갈 것이냐, 역사 속 제국처럼 몰락해갈 것이냐"


▲ 미국을 구하고 세상을 치유하는 법에 대해 질문하는 마이클과 그에 답하는 법륜스님 ⓒ안희경

누군가 나를 증오한다는 것을 알 때, 우리들은 억울하면서도 불편하고 마음이 쓰인다. 그 상대가 나를 미워한다는 건 뭔가 응어리진 것이 있고 아프다는 뜻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면서도 애써 그 고통을 거부할 때가 많다. 아파도 당연하다고 몰아붙이는 편이 당장은 좀 쉽게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가의 적대감도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과 본질은 같다고 본다. 이데올로기, 국익, 평화, 정의라는 이름으로 집단의 명분을 세워놓았지만, 그 치장막을 거둬내고 보면 안에는 개인처럼 오해와 욕심, 습관으로 이어져온 과거의 선택이 켜켜이 엉킨 타래가 보인다. 그 가운데는 끊고 갈 것과 풀고 갈 것이 있다. 다수의 재산을 위협하는 소수를 위한 폭력이라면 끊고 가야 할 것이고, 다수를 위한 이익이라고 하지만 다른 다수의 고통을 딛고 가는 것이라면 실마리를 풀고 조절해야 할 일이다.

이번 보스턴마라톤 테러에서 보스턴 경찰이 시의 출입을 막고,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을 찾기 위해 집을 뒤지고 다닐 때,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있던 하버드 종교학 대학원에서 온 젊은 신학도와 불교학도들, 그리고 다른 젊은 무리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인권 침해를 알리고 막으려고 분주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이 있기 하루 전 점심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체첸 출신의 두 청년이 용의자로 붙잡혔고, 한 청년은 총에 맞아 절명했다. 그 청년의 동생은 사경을 헤맨다. 청년이 죽은 그 밤에, 보스턴 거리에는 성조기를 들고 춤을 추며 환호하는 시민들이 몰려나왔다. 보스턴은 민주당, 소위 자유주의자들이 많고, 교육 수준이 다른 곳보다 높기에 이성적인 분위기를 풍겨오던 도시였다. 새삼 감정이 지배하는 시간 속에서 관념적 이성이 얼마나 나약한지 절감하게 해줬다.

다음 날, 뉴욕의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스턴의 지성인들도 과거 부시 정권과 현재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외치는 '악의 축'이란 논리가 지속적으로 새로운 적을 사방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위험한 주장이란 것을 지적해오고 있었다. 체첸, 아랍, 북한에 대한 분노의 돌림놀이를 이어가며 유지하고자 하는 힘이 장막 뒤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전쟁 속에서 이익을 갖게 될 군산복합체를 위해, 다수 미국인과 다수의 이라크 주민들이 피를 흘리고 희생되었다고 지적해온 이들이 바로 자유주의자들이다. 전쟁에 쓸 돈을 의료보험 확대와 교육에 쓰자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보스턴테러, 북한의 핵 개발 위협 속에서, 미디어는 물론 SNS 속 여론 또한 북한 주민의 상황, 평화를 원하는 한국인, 그리고 러시아와의 갈등 속에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체첸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공항에서 눈물 흘리던 여인... 그녀의 '자비심'이라면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듣고 있는 브라질의 신학자이자 여성운동가인 수녀 이본느 게바라(좌)와 참여 불교의 미국 대표인 리타 그로스 교수(우) ⓒ안희경

분노가 기승을 부리는 그 안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 오롯한 깨어 있음이 있을 때 미래 역시 살아갈 기회가 될 것이다. 제국의 쇠락이 바로 9·11 그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각성이 일어날 거라는 법륜 스님의 말에 온몸을 들썩이며 울음을 참지 못한 여인이 있었다. 속으로 울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여러 다른 사람과 달리 그녀의 울음은 거칠었다.

그녀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인으로, 9·11 당시 바로 현장으로 가서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그녀가 있던 근처에는 이슬람 도심 사원이 있었는데, 봉사하던 미국인들까지 그 앞에서 욕을 해대고 위협적인 분노를 드러냈다고 했다. 그때 그녀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미국이 참담하게 피해를 입은 그 시간이야말로 세상에 용서를 구했어야 할 순간이라고 간절히 생각하며 기도했던 그녀다.

그런데 그렇게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법륜 스님의 말을 듣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리사였다. 리사가 본 것은 테러를 하는 이들이 갖고 있던 고통이었다. 테러라는 그릇된 방법을 사용하도록 만든 동력인, 상대의 분노였다. 리사는 그런 분노를 심어주게 된 자신의 나라, 세계 어느 나라보다 풍요를 누리는 자신의 나라가 가진 자의 입장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날,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는 '북한과 미국에 관한 질문'도 나왔다. 북한의 핵 무기 위협으로 불안한데,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법에 대해 미국인이 물어왔다. 여러 답변 가운데, 법륜 스님의 평화에 대한 상대적 정의가 보스턴 테러와 맞물려, 행사에 참가한 미국인들에게 이해의 폭을 넓혀줬다고 여긴다.

법륜 스님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서 생명과 재산을 유지되는 것도 평화지만, 거기에 사람답게 먹고사는 것도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북한의 주민들은 한국전쟁 당시 죽었던 300만 명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가 1990년대 말 식량 부족으로 죽어갔다. 우리에겐 평화지만, 그들에겐 현재 전쟁보다 더한 고통이 흐르고 있다고 법륜 스님은 말했다. 그 기아의 고통이 극심해지도록 작용하는 국제적 관계망까지 살피는 것이 보다 적극적인 희망을 만들어가는 길임을 보게 해줬다.

희망은 절망의 시간, 환호의 시간, 그 매시간 속에 절망과 함께 존재한다. 오늘 우리의 사려깊은 선택 속에 희망이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다시 캘리포니아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보스턴 테러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옆에 앉은 40대 미국 백인 여성이 눈물을 흘린다. 화면에는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두 아들의 아버지가 '우리 아이는 잘못이 없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흘러가고 있다.

아마도 이 백인 여성은 아들을 잃은 그 아버지의 심정을 읽은 것 같다. 나를 돌아보며, 슬프다고 고개를 숙였다. 회환… 후회… 그 속에 흐르는 연민…. 이 자비심이 역사의 큰 동력이 된다면, 미움과 화가 아닌 사랑이 정의를 뒷받침한다면, 세상의 갈등은 조금은 덜 무리가 되는, 희생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3년 5월 13일, 월 5:0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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