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 한인회 회칙 개정의 'ㄱㄴㄷ'

(올랜도) 김명곤 기자 = 지난 호 <취중진담>에서 한인회 임원들 가운데 회칙 용어 중 '보선'이나 '개정'이 뭔지 모르는 분들이 있어서 '낫놓고 기역자' 식으로 쉽게 풀어쓰겠다고 말씀드린 것을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어느 독자께서 전화를 주셔서 "그게 정말이냐"고 물으시면서 "아마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채 하거나, 애초부터 지키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냐"고 따지듯 물으셨습니다. 다시 고백하건데요, 저도 하도 답답하여 한인회 관계자에 똑같은 질문을 했고, 그 분으로부터 "한인회 임원들이 회칙 규정에 나오는 단어들이 무슨 말인지, 왜, 어떻게 회칙을 고쳐야 하는지 정말 모르는 게 맞다"고 정색을 하며 강조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다른 독자께서는 "한인회장님께서 회칙을 지켰는데 신문사에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매우 억울해 하신다는 얘기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한인회장님의 억울함도 풀어줄 겸, 달리는 아직 회칙 규정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어떻게 회칙을 개정해야 하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하나 하나 문제를 풀어보겠습니다.

제가 이번 <취중진담>을 쓰기 직전에 들은 소식을 먼저 소개할까 합니다. 회칙과 회칙개정, 특히 임기 규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입니다.

지난 6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한인언론인협회(이하 세계한언) 임시총회에서 현 이승봉 회장님이 건강상의 이유로 2년 임기의 회장직을 1년만에 사임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임시총회가 열렸고 새 회장으로 이건기씨를 뽑았습니다. 이건기 회장은 회칙 제17조 보선 임기 규정에 따라 전임 회장의 잔여임기 1년을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자, 방금 겪은 실례를 보았으니 이제 올랜도한인회의 경우를 볼까요?

중앙플로리다한인회 회칙은 12대 서종환 한인회장 당시인 1997년 11월 27일 올랜도섬기는 교회에서 마지막으로 개정되어 이듬해 1월 1일 공식 공포 발효되었습니다. 이후로 단 한차례의 개정없이 현재까지 왔는데요, 적어도 임기와 선거 규정만은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여기서 중앙플로리다한인회 회칙 조항 가운데 한인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임무와 임기를 규정한 제9조 2항을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 회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
나) 보선에 의한 경우는 회장의 잔여임기로 한다.

앞서 예로 든 세계한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올랜도한인회 회장의 임기는 2년이며, 회장의 사퇴, 병이나 사고 등 유고(有故)가 발생하여 새로 회장을 뽑는 경우(즉 보선에 의한 경우), 새 회장은 전임자의 잔여임기를 채우게 됩니다.

'보선'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야 겠습니다. 제가 짐작하기에는 보선 을 '새로 2년 임기를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어 보이기에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오해에 대한 실제 사례는 조금 있다가 다시 소개하여 드리겠습니다.

보선에 대해 좀 다른 실례를 들겠습니다. 한국의 국회의원 임기는 4년입니다. 그런데 어느 의원이 불법행위로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 받은 나머지 의원직을 상실하거나 사퇴하거나 느닷없이 병사했을 경우 등으로 보궐선거를 하게 됩니다. 이때 뽑힌 의원은 앞으로 4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임 의원의 잔여임기를 하게 되지요. 현행법은 잔여임기가 1년 미만일 경우 보선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보선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셨으리라 믿고, 올랜도 한인회가 지난 2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임시총회를 열어 회칙개정 을 한 실례를 들어 억울함 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올랜도한인회는 지난 2월 10일 오후 5시 이스트몬트 시빅센터에서 100여명의 한인 동포가 참석한 가운에 임시총회 를 열어 회칙개정 을 했습니다. 여기 그당시 배포된 한장 짜리 유인물에 담긴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조금 이해가 안 가는 귀절은 독자 여러분께서 알아서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회의 목적 : 회장의 임기 날짜 변경 사항

인준 안건 : 회장의 임기를 기존의 6월 25일로부터 시작하여 2년 간 임무를 하던 것을 1월 1일로 바꾼다. 본래는 1월 1일로부터 2년 간이었으나 몇 년 전 한인회장의 부재 중 추천된 한인회장의 출범이 6월 25일로 시작되어 그로부터 매 2년으로 해 왔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매 해 개최되는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체육대회가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주로 열림에 따라 새로이 시작한 한인회 임원진들에게는 시급하게 행사를 준비하느라 부담이 되어왔다.

그러므로 현 한인회 회장 임기를 2013년 12월 31일까지로 정하며 차기 회장 선출은 본 회칙에 따라 행할 것을 건의한다.

독자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 떻습니까. 한인회가 제안한 내용은 그냥 제안 이나 건의 일 뿐이지, 앞서 언급한 임기 규정의 개정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즉 왜 회칙을 개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 설명 으론 타당성이 있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현 올랜도 한인회 회칙 조항의 어디를 어떻게 고치겠다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맨 마지막 문장 차기 회장 선출은 본 회칙(규정)에 따라 행할 것을 건의한다 는 내용으로, 회칙 개정 이 아닌 회칙 제정(회칙을 새로 만드는 것) 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석여하에 따라서는 올랜도한인회를 새로 만든다는 것인데요, 만약 어느 빳빳하고 똑똑한 분이 나타나 현 한인회 집행부가 전혀 맘에 안들고 눈뜨고 못 봐주겠으니 우리는 현재의 회칙대로 내년 6월 25일에 새 한인회 집행부를 출범시키겠다 고 한다면 올랜도에 두개의 한인회가 생길 수도 있겠지요. 기우라고요? 그동안 미주한인사회뿐 아니라, 해외한인사회에서 한인회가 난립한 역사를 아는 분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좋은 꼬투리가 될 수 있는 지 아실겁니다.

"이곳에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니, 쓸데없는 소릴 하덜 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니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겠습니다.

그래도 1만여명의 한인들을 대표하는 한인회가 아니냐, 적어도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한인사회 지도자들이 아니냐, 우리의 후대 한인회가 본받을까 두렵지 않느냐, 그러니 좋은 선례를 남기자

현재의 올랜도한인회가 내년 1월1일부터 새 한인회를 출범시키기를 원한다면 앞서 한인회가 회칙개정 이라며 내놓은 문구를 조금 다듬어서 회칙개정제안서 로 하고 간단하게 이렇게 공고를 하면 될 것입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회칙을 개정하려 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회칙 9조 나항
'부라부라부라부라'를
'머라머라머리머라'로
고쳐 내년 1월1일부터 발효 시행하려고 하오니 인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고쳐진 내용은 개정 회칙으로 새로 인쇄되어 한인동포들에게 배포되어야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내용의 기사(2월 13일자 중앙플로리한인회, 설잔치 선물은 풍성한데... )를 이미 보도했고, 사석에서도 회장님과 몇몇 한인회 임원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느날엔가는 시내 한식당에서 이우삼 감사와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한인회장님이 계면쩍은 목소리로 "사실 잘 몰라서 그랬다"고 하시기에 딱한 생각이 들어 "도네이션 한 셈 치고 무료로 회칙개정 공고를 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올랜도한인회가 지난 8월 광복절 기념행사 말미에 다시 회칙개정을 위한 임시총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요, 이번에는 더욱 희안하고 재미있는 회칙개정안을 들고 나와서 긴 한 숨 을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회칙개정의 형식을 갖추는 '흉내' 를 냈지만 임기를 개정한다 며 전혀 엉뚱하게 회계연도 조항을, 그나마도 1년을 2년짜리로 개정한 것입니다.

중앙플로리다한인회 회칙 8장 24조 <회계년도> 조항은 "본 회의 회계 연도는 매년 11월 1부터 10월 31일까지로 한다"고 되어있는데요, 사실상 이 규정은 사문화된(죽은)것이나 다름이 없는 조항입니다. 1997년에 마지막 개정되고 난 후 한번도 고쳐지지 않았고, 지난 수년 동안 회장 취임일인 6월 25일부터 다음해 6월 24일까지가 사실상 회계연도였던 것입니다.

어쨋거나 박회장을 비롯한 한인회 집행부는 회계연도를 1월 1일 시작하는 것으로 고치면 임기도 자동으로 1월 1일 시작하는 것으로 착각한 듯 합니다. 아시다시피 회계연도(fiscal year)란 어떤 단체나 기관의 수입 지출 등 경제활동에 대한 처리 기간으로, 통상 1년을 단위로 하고 있습니다.

가령, 한국 정부의 회계연도는 1월 1일부터 당해연도 12월 31일까지이고, 미국 정부의 회계연도는 10월 1일부터 그 다음해 9월 31일까지입니다. 미국정부의 회계연도가 10월 1일 시작한다고 해서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도 10월 1일 시작한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슬슬 피하여 지나갈 일입니다. 당시의 임시총회 기사를 본 전 한인회 관계자 한분이 "미치고 환장하겠다!"고 표현한 것으로 다른 독자들의 반응을 전하겠습니다.

이렇게 ㄱㄴㄷ식으로 자세히 설명을 해드렸는데요, 억울함이 풀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전혀 억울할 일이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회칙개정이 제대로 되었다고 볼만한 구석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취중진담>의 결론은 이겁니다.

"올랜도한인회는 회칙을 개정하려 했지만 임기 규정을 전혀 손도 대지 못했고, 이에따라 이번에 선출될 회장은 회칙 9조 나항 '보선' 규정에 따라 현 회장의 잔여 임기 만료일인 내년 6월 25일까지 회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다음 호에 이어질 <취중진담>에서는 이번에 다루지 않은 '회칙개정의 절차'와 '애매한 표현과 회칙 조항의 의도적 왜곡'에 관한 것입니다. 눈치 빠르신 독자들께서는 이미 짐작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만, 공개가 '대 원칙'인 회칙개정 절차가 모사가들의 '꼼수'에 의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회칙이 어느정도까지 무지막지하게 왜곡 해석.적용되고 있는 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