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리베이트-보조금 지급등 국민들 달래기에 '쩔쩔'

(마이애미) 안태형 기자 = 유가인상이 세계적으로 대중적 분노를 확산시키고 있다. 각국 정부는 가격동결, 감세 등 조처로 유권자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의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은 독립기념일 방송 연설에서 국제유가가 상승한다 할지라도 2005년 말까지 국내유가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연설은 지난 몇 주간 주요 도시의 기능을 마비시켰던 시위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행해졌다.

부국-빈국 모두 국민들 달래기 안간힘


유가상승으로 야기된 이러한 적대감은 서유럽의 부자 나라로부터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연평균수입이 5천달러인데 반해 개솔린은 갤런당 5달러씩이나 하는 나미비아 같은 곳에 사는 국민들에게 유가충격은 더욱 심하다. 그러나 잘 사는 나라에서도 시민들의 불만은 정치가들이 더 이상 무시할 수 만은 없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유럽연합에서는 25개의 가맹국이 유가인상을 상쇄하기 위한 감세, 리베이트, 보조금 지급 등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에 대해 공동전선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많은 국가들이 갤런당 5달러에 이르는 세금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달 폴란드와 헝가리가 연료세 감세를 승인하고 벨기에가 가정난방에 대한 연료세에 대해 리베이트를 약속하자 이와 같은 공동전선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2주 전 수천 명의 농부와 트럭운전사들의 가두시위 결과 정부가 3천6백만 달러에 달하는 석유세 특별조처와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캐나다에서도 내년 선거에 대비해 정부가 유가 모니터를 위한 새로운 기구 창출, 저소득층 보호, 가격담합 조사기관 설치 등을 포함한 정책들을 서둘러 마련하고 있다.

보조금 지급정책은 국내유가가 싸기로 유명한 석유수출국인 베네수엘라나 이란같은 곳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세계은행의 경제학자 한스 티머에 따르면, 원유의 75%를 수입하는 인도에서는 국내유가가 국제유가 인상의 3분의 1 미만 수준으로 상승했다. 이웃 나라인 파키스탄에서도 여전히 국내유가가 국제유가의 15% 정도에 머물러 있다고 티머는 말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1999년 이래로 유가를 동결해 오고 있다.

인도네시안 국민들은 개솔린을 갤런당 90센트 정도에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주말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앞으로 개솔린가격이 두 배정도 상승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관계자들은 연료보조금이 정부지출의 약 3분의 1에 이르기 때문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변명했으나 인도네시아의 많은 도시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에너지 저유가 정책, 납세자에 이득되는 것 만은 아니다

사실 높은 석유세를 부과함으로써 국민들이 소형차나 에너지효율이 높은 차를 타도록 유도하는 캐나다와 같은 나라들은 높은 유가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평에 심정적으로 동조하지 않는다. 영국의 한 소비자권익단체 대변인인 루쓰 브리저는 ‘영국인들은 미국 고속도로를 장악하고 있는 SUV를 보면서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유가는 인위적으로 유가통제가 가능한 개발도상국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빠르게 인상된 것이 사실이다.

IMF 중동/중앙아시아 담당부서 책임자인 모흐신 칸은 ‘많은 국가에서 고유가가 소비자가격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은채 소비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보호받고 있으나, 미국에서는 고유가가 신속하게 소비자가격에 반영된다'고 말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제한된 유가는 소비자 지출과 경제성장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보조금 정책으로 인한 부담은 결국 납세자들이 짊어져야 하며 정부가 개입한 경제부문은 파산한다고 주장한다.

아시아개발은행 총재인 하루히코 쿠로다도 ‘국가의 저유가 정책은 결국 고유가에 대한 국가 경제정책 적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인위적인 저유가정책이 과도한 소비를 유발시킨다'고 평가했다.

각국 정부, 국민들 분노로 유가 인상 어려워

그러나 각국 정부가 보조금 정책을 철회하기는 쉽지 않다. 보조금 정책과 상관없이 유가가 오르면 국민들이 분노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경의 택시 기사인 장 키헤는 1999년 당시 갤런당 91센트하던 유가가 지금 2달러 30센트까지 오른 것을 지켜보았다. 그 결과 그는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한 시간 정도 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는 하루 14시간 일하고 나서 집에 돌아가면 '파김치'가 된다고 불평한다.

러시아에서도 소비자 가격을 2006년까지 동결시키기로 했지만 이미 올해 초에 비해 20% 정도 인상된 유가로 인한 운전자들의 분노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주요 석유수출국 중 하나인 나이지리아는 유가인상으로 인한 반감의 깊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1999년 군사통치를 종식시키면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산조 대통령은 세계은행의 요구로 인해 유가보조금을 매년 꾸준히 감소시켜왔다. 그 결과 유가는 지난 두 달 사이에 약 44%가 증가했다.

그러자 시위자 중 한 명인 모하메드 사니는 유가가 예전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다면 군사통치라도 다시 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유소를 경영하는 자마니 마이스마리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경험한 이래 해마다 가격, 가격, 가격만 인상되고 있다" 라며 그 또한 군사통치 시절을 빗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