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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통일
 
22년 전 오늘... 한국 정부 과감해져야 북한도 문 연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북한 경제특구를 가능케 하는 에너지


▲ 6.15 공동선언 합의 이후 6.15 공동선언 합의를 축하하기 위해 맞잡은 두 손을 올리며 환하게 웃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이제껏 북한이 출범시킨 4대 경제특구는 서해 북쪽의 신의주, 동해 북쪽의 나진·선봉, 서해 중앙의 개성, 동해 중앙의 금강산에 설치됐다. 이중에서 금강산의 경우엔, 2002년 11월의 금강산 관광지구법에 근거해 관광특구가 세워졌다.

금강산 관광특구는 그 이전에 개시된 금강산 관광사업에 토대를 뒀다. 이 사업이 시작된 날이 김대중 정부 출범 첫 해인 1998년 11월 18일, 즉 22년 전 딱 오늘이다. 금강산 유람선이 강원도 동해항을 출항해 '강원도' 장전항으로 향하는 역사적 장면을 그 달 19일 치 <조선일보>는 이렇게 설명했다.

금강산 관광 1호선인 현대금강호가 18일 오후 5시 43분 동해항을 출발, 4박 5일의 일정으로 역사적인 첫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 현대금강호에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총지휘한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을 비롯한 현대 임직원과 관광객 8백 89명, 승무원과 관광안내원 4백 66명 등 모두 1천 3백 65명이 승선, 통일의 여망을 딛고 북녘 땅으로 향했다. (중략) 동해항을 떠난 금강호는 19일 새벽 3시쯤 북방어로한계선을 통과, 출항 후 10여 시간이 지난 19일 오전 2시쯤 북한 장전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현대금강호는 순조롭게 항해했지만, 금강산을 비롯한 개성, 나진·선봉, 신의주의 경협 사업은 순조롭지 않았다. 금강산과 개성 쪽은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로 인해 중단됐고, 나진·선봉 쪽은 투자 유치가 시원치 않아 사업의 동력이 생기지 않았다.

'북한판 홍콩'을 지향했던 신의주 경제특구 사업의 경우에는, 신의주특별행정구기본법이 공포된 2002년 9월 12일로부터 두 달도 안 된 10월 26일에 신의주특구 초대 행정장관인 양빈(중국계 네덜란드인, 어우야그룹 회장)이 탈세 혐의로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서 초장부터 동력을 잃었다.

이 사건은 미국과 남한 보수뿐 아니라 중국도 북한의 대외 경제협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를 두고 신의주 특구로 인해 압록강 건너편의 단둥(단동) 경제가 위축될 것을 우려한 중국의 견제조치라는 시각도 있었다.

하나 같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 외에 해양을 낀 네 개의 모서리에 설치됐다는 점에서도 북한의 4대 경제특구는 공통점을 갖는다. 남한·중국·러시아와의 접경 지역과, 일본을 마주보는 곳에 4개의 경제특구가 설치된 사실은 남북협력·북중협력·북러협력·북일협력 등을 발판으로 미국의 해양 봉쇄를 뚫고 경제적 활로를 모색하려는 북한 사람들의 경제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2개의 패턴

그런 공통점 외에 또 다른 2개의 패턴을 북한 경제특구 사업에서 뽑아낼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정치적 긴장이 이완되는 시점에 북한 지도부가 경협에 의욕을 보이며 특구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북한과 러시아와 동해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나진·선봉 특구는 1991년 설치됐고, 나머지 세 특구는 2002년에 설치됐다. 금강산 특구의 경우에는 1998년 이래의 관광사업이 밑바탕이 됐다.

나진·선봉 특구가 설치된 1991년은 유럽뿐 아니라 동북아에서도 탈냉전의 훈풍이 불던 때였다. 유럽에서처럼 커다란 격변을 추동하지는 못했지만 동북아 탈냉전 역시 지역 질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 북일간에는 조선노동당·자유민주당·사회당의 3당 회담(1990.9.24)이 있었고 뒤이어 일련의 북일 수교 회담이 열렸다. 또 한국과 소련이 수교하고(1990.9.30),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는 일도 있었다(1992.8.24). 남북한도 중대한 성과들을 이뤄냈다. 유엔 동시 가입(1991.9.18)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1991.12.13)이 이 시기에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북한이 1991년 12월 28일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지정한 것이다.

2002년의 신의주·개성·금강산 특구 설치는 그해 10월 시작된 제2차 북미 핵위기(북핵 위기) 이전의 동북아 훈풍을 배경으로 하는 현상들이다. 제2차 핵위기 이전 동북아에서는 1990년대 초반 탈냉전화된 한소관계·한중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관계들을 탈냉전화하기 위한 작업들이 전개됐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같은 해 10월 12일의 북미 공동코뮈니케, 2002년 9.17 북일 평양선언 등이 그런 작업들이었다.

국제적 긴장이 이완되는 시기에 북한이 경제특구에 의욕을 보였다는 점과 더불어, 미국의 태도보다도 남한의 태도가 북한 지도부의 판단에 좀 더 적극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위에서 언급한 2개의 패턴 중 나머지 하나다.

북한이 경제특구에 자신감을 갖도록 만든 최대 요인은 미국의 태도 변화가 아닌 남한의 태도 변화였다고 볼 만한 이유들이 많다. 다른 두 특구에 비해 남한과 거리가 먼 신의주 및 나진·선봉 특구를 지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한의 적극적인 태도로 인해 자신감을 갖게 됐을 때 북한이 특구 사업에 의욕을 보이곤 했던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들

동북아에 존재했던 냉전 관계인 북미관계(1)·남북관계(2)·한소관계(3)·한중관계(4)·북일관계(5) 중에서 2~5를 탈냉전화하는 작업이 1990년대 초반에 전개됐다. 이때 한국 정부는 국내의 냉전적 정치질서를 온존시키면서도 국제적인 냉전의 극복에는 상당한 적극성을 보였다. 5개의 냉전관계 중에서 3개인 남북관계·한소관계·한중관계를 탈냉전화하기 위한 노력이 한국에서 나왔고, 그중 2개가 탈냉전 관계로 전환되는 성과가 나왔다.

그런데 그 성과를 추동한 노태우 정부의 대북·북방 정책에 대해 미국은 제한적인 영향력밖에 행사하지 못했다. 2015년 <입법과 정책> 제7권 제1호에 실린 정치학자 안종기·박선령의 공동논문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의 주요 결정요인 검토 및 재평가 가능성'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일종의 방치를 통해 한국의 외교적 활동을 지원했고 또 북한과 교섭하는 데 있어서도 과히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노태우 정부가 국제정치 질서의 틀을 다소 벗어나 어느 정도 독자적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대북정책 및 북방정책에 대해 미국이 신경 쓸 여력이 별로 없었다는 점은 두 정책을 천명한 1988년 7.7 선언에 대한 미국의 개입 수준에서도 드러난다. 김연철 전 통일부장관이 2011년에 <역사비평> 제97호에 기고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 성과와 한계'에 이런 대목이 있다.

미국은 북방정책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노태우 정부는 7.7선언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협의하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선언 이틀 전인 7월 5일 신동원 외무부 차관에게 미 대사관에 가서 릴리 대사를 만나라고 했다. 7·7 선언의 사본을 전달한 뒤, 미국 측이 소련과 중국 측에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7.7 선언과 관련한 미국의 역할을 좀 심하게 표현하면, 위와 같이 '서류 심부름' 하는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미국의 개입 수준이 낮았다. 세계적인 탈냉전에 힘입어 한국 정부가 대북·북방 정책의 자율성을 제한적으로나마 향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남북 교류에 적극성을 보이고 일본도 북일 수교교섭에 뛰어들었다. 상당부분은 한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흐름이 역내 질서를 동요시키고 북한 지도부에 자신감을 심어줬으며, 그것이 1991년 나진·선봉 경제특구 출범으로 연결된 측면을 부정할 순 없다.

신의주·개성·금강산 특구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한반도를 변화시키고 이번에도 일본이 대북 교섭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상황에서 등장했다. 햇볕정책으로 인한 정세 변화가 세 특구의 출범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햇볕정책 역시 미국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감소한 상태에서 추진됐다. 이 점은 1998년 하반기부터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을 목표로 대북 물밑 접촉을 개시한 한국 정부가 1999년에 가서야 미국에 이 사실을 통보한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정창현 <민족21> 대표이사의 <남북정상회담 - 한반도와 동북아를 움직이는 선택>은 익명의 제보를 근거로 "김 대통령은 1999년 3월 9일 청와대를 방문한 페리 조정관에게 '남북정상회담을 목표로 한 비밀 접촉이 진행 중이다'라고 털어놨다. 김 대통령의 귀띔은 페리를 진퇴양난에 빠트렸다"고 설명한다.

경기대 북한학과 홍성이 박사학위논문인 '통일정책의 결정과 추진 과정에 관한 연구 - 북방정책과 햇볕정책 분석을 중심으로'는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선순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북한 포용을 기조로 보상적 수단을 위주로 하고 있고, 나아가 역내 세력균형과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입장을 가진 클린턴 행정부가 굳이 훼방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 하에 햇볕정책이 추진됐고, 실제로도 미국의 개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햇볕정책이 유지됐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상당부분은 한국의 의지가 반영된 햇볕정책이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북한이 경제특구들을 가동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한국의 태도가 북한의 판단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미국이 노태우·김대중 두 시기의 대북정책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남한에서 꿈틀대는 새로운 대북정책이 북한 지도부가 자신감을 갖도록 만드는 요인이 됐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정부, 자신감을 가져라


▲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지난 9월 16일 오전 경기 파주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의 우세가 확실해진 뒤인 지난 10일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수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결정되기 전에 남북한이 선제적으로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는 방안에 대해 응답자 45.8%는 반대, 43.6%는 찬성 입장을 밝혔다.

한국의 선제적 재가동을 반대하는 의견이 오차범위 내에서 약간 우세하긴 했지만, 4개의 경제특구와 관련된 지난 30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에서 시작된 날갯짓이 북한을 움직여 태풍(경제특구 등장)을 일으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지도부가 미국의 움직임에 자극을 받아 경제특구를 시작한 게 아니라, 남한에서 불기 시작한 '선제적 훈풍'이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끼치는 속에서 경제특구가 시작됐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향후 미국이 대북 경협에 적극성을 보여 북한을 움직이는 일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한국이 먼저 적극성을 보이고 이것이 주변 정세를 움직이고 북한을 움직여왔다. 1980년대 후반 이래로 미국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그런 가운데서 남북경협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남한을 항상 움직였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경제특구를 움직이는 에너지의 상당부분이 남한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실상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을 것이다.

지난 30년의 역사는, 미국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민족 내부의 판단과 역량으로 남북경협을 추진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22년 전 11월에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비록 중단됐지만, 오차범위 내인 '43.6%'를 믿고 재추진하면 이번에는 성사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1월 27일, 금 5:2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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