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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보수의 3대 허약증을 아십니까
[정상호 교수의 시대 세대 공감] 보수의 품격과 지혜를 보고 싶다


▲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공동취재사진

(서울=오마이뉴스) 정상호 교수(서원대 사회교육과)

1. 한국 보수의 위기... 단순히 후보의 부재에 있지 않다

이번 칼럼에선 보수주의와 이를 대변하는 이 나라의 정치세력(정당)에 대해 오랫동안 가져왔던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한때 민주화를 추동했던 386세대와 시민단체(참여연대와 경실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그리고 정규직과 대기업 중심의 민주노총 등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진보세력의 무능과 부패를 질타하는 비난들은 안팎으로 넘쳐나기 때문에. 굳이 그 대열에 합류할 이유도 뜻도 없다. 이들의 이념적 편향과 폐쇄적 진영 논리가 추미애-윤석열 파문을 가져왔고 문재인 정부를 망쳤다는 비판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판정은 법적 판단과 입법 절차에 따라 몇 달 안에 가려질 것이다.

한국의 보수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따져보고 싶다는 생각은 대다수 언론의 차기 대선 후보에 대한 전망과 분석이 한결같이 피상적이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져도, 야당 대선 유망주들의 지지율은 5% 언저리거나 5%를 넘지 못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야당과 보수언론의 희망어린 단순 셈법이다. 그들의 낙관적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하나는 조만간 '깜짝 놀랄만한 야당 후보'가 메시아처럼 등장해 정부·여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표를 싹쓸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의힘 안의 유승민이든 원희룡이든, 아니면 당 밖의 안철수와 홍준표든 야권 후보로 지명되기만 하면 쉽게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러한 논리를 요약하면, 보수의 최대 문제는 대선을 15개월 남겨 놓고 판세와 구도 그리고 여론 모두 유리한데 단지 경쟁력 있는 후보의 부재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러한 인물난은 한국의 보수가 처해있는 상황을 겉으로만 파악함으로써, 보수를 근본적으로 쇄신하거나 시대 흐름에 맞게 한 단계 진화시킬 수 있는 인식과 실천의 계기 자체를 차단해 버린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보수는 3가지 빈곤 또는 허약증에 빠져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지 '젊은 피 수혈'이나 '전향정치인 영입'과 같은 일시적 대증요법이 아니라 '보수의 품격과 지혜'를 되찾을 수 있는 근본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보수 3대 허약증 ①] 단절된 보수의 역사와 지도자


▲ 2007년 8월 6일 오후 경남 창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자선출을 위한 경남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가 나란히 앉아서 다른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는 모습. ⓒ 권우성

정치학을 강의하면서 이합집산이 하도 심한 탓에 우리나라 정당들의 이름을 외우기 어려워 100년 정당이 있는 나라들이 진짜 정치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다면 100년 정당은 어떻게 가능할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대통령이든 수상이든 소속 정당을 탁월하게 이끈 역사적 지도자(historic leader)들의 계보다. 유명 언론이나 여론조사기관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콘크리트 지지'라는 표현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는 대통령 개인을 향해 출범 이후 3년 만에 굳어진 최근의 정치 현상이 아니다. 거기에는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두 전직 대통령의 유산과 자산이 담겨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라는 인적자원을 승계하고 있는 정치적인 공공재다. 민주당의 당원이나 지지자들 가운데 세 지도자에 대한 선호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친이-친박과 같은 화해하기 어려운 적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민주당은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100년 정당을 향한 항해를 이제 시작할 수 있는 나침반과 지도를 마련한 것일 수도 있다.

반면, 보수의 역사적 리더십은 1979년 10월 26일 유신의 심장을 관통한 총알 몇 발로 궁정동에서 멈췄다. 역사적(광주항쟁의 유혈 진압)으로나 법적(내란죄)으로 처단된 전두환과 노태우를 옹립할 수 없었던 보수의 역사관은 '국부 이승만'과 '산업화를 이끈 구국의 지도자 박정희'에게 기대는 전략으로 귀결됐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 나타났던 콘크리트 지지 역시 지역주의와 더불어 이러한 역사적 계보가 대중적으로 먹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이명박 대통령의 구속은 일순 모든 것을 붕괴시켰다. 보수는 경쟁력 있는 대선후보만 없는 게 아니다. 민주화 이후 보수의 역사를 쓰는 데 게을렀다. 특히 지역주의의 유혹에 갇혀 타지에서 참신한 인물을 발굴·육성하는 데 인색했다. 최근 몇 차례의 대선만 보면, 민주당의 후보와 지지자의 강력한 기반이 부산·경남이라는 사실에서 격세지감을 실감한다. 다시 말해, 보수의 위기는 깜짝 놀랄만한 후보가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다. 본질은 구조적인 차원에서 보수주의와 정당을 쇄신할 리더십의 부재에 있다.

[보수 3대 허약증 ②] 기초체력 허약증

정치에도 몇 가지 선행지표가 있다. 가령, 다음 총선(22대)에서 어느 정당의 여성 후보들이 지역구에서 당선할 가능성이 클까? 아주 단순하게 과거의 패턴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민주당과 정의당이다. 왜냐하면, 최근 여성 지역구 당선자들은 수도권에서 그리고 초선보다는 재선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이현출, 2020.7., "21대 총선과 여성", <젠더리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민주당 지역구 여성의원 20명 중 19명은 수도권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역구 여성의원 8명 중 2명은 강남, 1명은 경기도이고 나머지는 모두 영남권이다. 또한, 전체 57명의 여성 의원 중 거대 양당의 비율은 각각 49%, 31% 정도다.

또 다른 선행지표는 자치단체장의 정당별 분포에 있다. 최근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는 정치인의 충원 채널로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의 비중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제, 선거 직전 전대협의장을 영입하거나 유명 연예인을 공천하는 이벤트 정치 시대는 지났다.

세 차례(2010, 2014, 2018)의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지방자치의 생태계 안에서는 성장 및 토건 행정에서 고용 및 복지 행정으로의 구조적 전환이 발생 중이다. 이 과정에서 혁신과 소통을 내세운 걸출한 지방정치인들이 배출됐다. 지난 10년 동안 수도권은 민주당 당적의 고 박원순 시장이나 이재명 도지사뿐 아니라 특히 서울시 산하 구청장들의 혁신 경연장이었다.

정당의 경쟁력은 대선후보의 지지율에 있지 않다. 그것은 똑똑하고 당찬 지방의원들과 구청장, 군수와 시장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특히 정치인과 당원 그리고 지지자 중 여성의 비율은 정당의 건강함과 잠재력의 확실한 척도다. 그런 점에서 한국 보수의 약점은 여의도 국회가 아니라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의 허약한 풀뿌리 역량에 있다.

[보수 3대 허약증 ③] 정책의 발육부진


▲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 사진은 지난 7월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가 과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경력을 언급하며 "사상 전향" 여부를 질의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민주화 이후 교육과 부동산, 저출산 고령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장 동력 등등에 대한 성적표는 보수와 진보를 놓고 아직 우열을 가리긴 어렵다. 그렇지만 세계사의 흐름과 달리 보수의 시간이 멈춘 정책 영역들이 존재한다.

하나는 남북관계고 다른 하나는 한미관계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화해 협력정책이나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균형외교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반대할 수 있다. 문제는 보수 정당의 반대 근거가 '주사파'라거나 '좌경용공'이라는 이념적 공세에 있다는 점이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나라에서 정당이 앞장서서 퍼붓는 이러한 흑색선전은 막말과 혐오의 정치를 양산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분단 이후 앵무새처럼 되뇌어왔던 '북괴 타도'와 '한미혈맹'을 넘어선 새로운 정책들을 아직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 보수는 대통령의 지지율과 추-윤 갈등에 대한 일희일비에 너무 몰입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탈냉전기에 노태우 정부가 기민하게 추진했던 북방정책과 같은 대담한 기획이다. 아쉬운 점은 박세일과 뉴라이트 이후 보수의 이합집산이 아니라 새판짜기라는 진지한 실험이 중단됐다는 점이다.

2.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국민의힘 의원들이 8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강행 처리 방침"에 반발하며 철야 농성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사상의 은사(恩師)였던 리영희 선생님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라는 책에서 보수가 압도하는 정치지형에서 진보의 존립과 역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4반세기 만에 반대에 서서 선생님의 책을 인용하는 것이 섣부르거나 과장된 판단일까 매우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와 정치사상을 강의하면서 보수주의 단원에 이르면 늘 우리 학생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해왔다.

하나는 보수주의가 단순한 기질이나 성향이 아니라 근대 이데올로기의 요소인 체계성, 영속성, 신봉자를 모두 갖춘 3대 이념(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보수주의와 민주주의의 공존 관계다.

보수주의는 뒷방 늙은이들의 흘러간 사조도 아니고, 더구나 민주주의의 반대 명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영국 보수당의 총리를 지낸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가 말한 두 가지 덕목이 있다. 하나는 그 어떤 교조주의도 견제할 수 있는 회의주의고, 다른 하나는 과격한 선동에 동의하지 않는 신중함과 무모한 변화를 지양하는 점진주의다.

이제, 이 땅에서도 품격과 지혜를 갖춘 보수를 만나고 싶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2월 22일, 화 10:1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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