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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법관 탄핵 가결, 판사가 드디어 인간이 됐다
[해설] 헌정사상 최초... '신성불가침' 판사,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기 시작하다

(서울=오마이뉴스) 박소희 기자 = 판사가 드디어 인간이 됐다.

4일 국회의 임성근 판사 탄핵 소추안 가결은 헌정사상 최초인만큼 여러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판사도 잘못하면 단죄된다'를 명확히 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다.

국회법에 따라 당연직 소추위원인 윤호중 법제사법위원장은 4일 오후 3시 50분 국회의장으로부터 임 판사의 탄핵 소추 의결서 정본을 송달받고, 법사위 박주민 의원에게 헌법재판소 제출을 위임했다. 대표발의자 이탄희 의원과 함께 곧바로 헌재로 이동한 박 의원은 오후 5시께 의결서 정본과 부본을 접수했다. '2021헌나1' 사건, 최초의 법관 탄핵심판 절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임 판사는 2015년 가토 타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일명 '세월호 7시간' 사건)에 개입해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의 독립, 재판의 독립을 침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관련 기사 : 찬성 179, 임성근 판사 탄핵 소추안 가결... 헌정사상 최초 http://omn.kr/1rz1m)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오른쪽)과 이탄희 의원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별관에서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 의결서 정본을 제출하고 있다. 2021.2.4 hihong@yna.co.kr ⓒ 연합뉴스

명백한 잘못에도... 단죄되지 않는 신

판사는 신이 아니지만, 신과 같은 존재였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법조인들의 끈끈한 관계가 하나의 굳건한 체제라며 이들을 '불멸의 신성가족'이라고 불렀다. 여기서도 사법연수원 성적이 우수해야 임용될 수 있고, 헌법에 따라 신분은 물론 재판의 독립까지 보장받는 판사들은 신성가족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해왔다. '사법 신뢰'라는 말로 국민들이 보내는 존중 역시 그들의 권위를 세워줬다.

하지만 판사는 신이 아니다. 1982년 유태흥 당시 대법원장은 사법연수원 수료생 중 법관을 희망한 장애인 4명을 전원 탈락시켰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이듬해 임용했다. 그는 또 '투철한 국가관에 의한 판결'을 강조하며 민주화 운동 관련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조수현·박시환 판사를 '전보'로 보복했다. 이 일을 비판한 서태영 판사도 정기 인사 다음날 새 근무지인 서울민사지법에서 부산지법 울산지원으로 보내버렸다.

신영철 대법관도 있다. 그는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 보수성향 판사에게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몰아주려고 했다. 또 일선 판사들에게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인 야간집회 금지조항 위헌 여부와 상관없이 재판을 신속하게 처리하라고 이메일을 보내거나 '집회 참가자의 보석을 신중히 하라'고 전화하는 등 압력을 넣었다. 당시 대법원은 진상조사에 들어갔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의 '엄중 경고'와 신영철 대법관의 사과로 흐지부지됐다.

유태흥 대법원장 때도, 신영철 대법관 때도 사람들은 판사가 신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국회가 움직였다. 1985년 10월 18일 야당 신한민주당을 중심으로 의원 102명이 헌정 사상 최초의 공직자 탄핵 소추안, '대법원장(유태흥)에 대한 탄핵 소추에 관한 결의안'을 냈다. 하지만 10월 21일 찬성 95표, 반대 146표로 부결됐다.

2009년 11월 6일, 이번에도 야당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힘을 합쳐 의원 106명 이름으로 '대법관(신영철)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여당 한나라당이 끝내 의사일정에 합의하지 않아서 표결에 붙이지도 못한 채, 시한 만료(본회의 보고 후 24~72시간 이내)로 자동 폐기됐다.

대한민국 국회는 이렇게 두 번의 실패를 겪은 뒤에야 2021년 2월 4일 헌정사상 최초로 법관 탄핵 소추권을 발동할 수 있었다.


▲ "사법농단" 연루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안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무기명 투표 후 여야 감표위원들이 투표함을 열어 확인하고 있다. ⓒ 남소연

판사의 인간선언 - 2021헌나1

공교롭게도 법관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4일 법원에선 또다시 '사법농단 무죄' 판결이 나왔다. 2016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시절 '청와대 관심사안을 챙겨봐달라'는 요청사항을 전달받고 해당 재판의 진행 경과, 처리 계획 등을 파악한 뒤 법원행정처를 거쳐 청와대에 보낸 유해용 변호사의 항소심 결론이었다.

지난 1월 29일에는 '정운호 게이트' 당시 수사기록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세 판사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두 재판 모두 1심 또한 무죄였다. 법정 밖에서 재판 관련 서류가 오가고, 판결문이 바뀌는 등 법정 안을 흔드는 일이 벌어졌음에도 법원은 여전히 '사법농단은 부적절하지만, 형사처벌대상이 아니다'라는 엄격한 법리 해석을 적용하고 있다. 전직이든 현직이든 여전히 '판사는 신인가?'라는 질문을 남기는 풍경이다.

세월호 유족들도 국회에 물었다. 4일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임성근 판사 탄핵 소추안 제안 설명에서 유족들이 탄핵 촉구 손편지에 "판사는 신입니까?"라는 질문이 적혀 있었다며 "판사는 그동안 헌법을 위반해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고, 서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거액 수임료의 전관특혜를 누리고, 다시 좀 잊힐 만하면 공직으로 복귀하곤 하는 우리의 뼈아픈 경험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했다. 또 "이제 그 잘못된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침내 최초의 균열이 생겼다. 판사는 신이 아니다. 판사는 사법의 독립을 존중받아야 할 헌법상 권리를 가진 것과 동시에 사법의 독립을 스스로 지켜야할 헌법상 책무를 짊어진 인간이다. 그들도 잘못을 했으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당연한 절차가 사법농단이 세상에 드러난 지 4년 만에 비로소 시작됐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2월 12일, 금 1:4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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