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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통일
 
북한에 원전 지어줄 수 있는 나라가 있긴 있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문재인 정부가 북 원전 건설? 국제정세와는 동떨어진 국민의힘 주장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은 지난 1월 3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4.7 재보궐선거를 앞둔 국민의힘 지도부가 '북한 원전 건설' 의혹 부풀리기에 총력을 쏟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려 한 것 아니냐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의혹 제기는 역사적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구도와도 모순된다.

국민의힘의 의혹 제기처럼,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대북 원전 건설 관련 파일을 USB에 담아 전달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김정은, 김여정의 생각이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남한 대통령이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미국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자력 문제는 곧 핵 문제


▲ 2017년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당시 모습. ⓒ 정민규

원자력 문제는 바꿔 말하면 '핵 문제'다.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핵 문제에는 미국이 개입한다. 미국은 핵 문제를 제재하거나 혹은 법적·암묵적으로 승인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원자력 문제 역시 미국과의 관련성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이제까지 핵 문제는 항상 미국과의 연계 속에서 전개돼 왔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원자력은 미국의 지원과 통제가 결합돼 생겨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핵 독점을 꿈꿨던 미국이 한국의 원자력 개발을 도운 것은 1949년 소련 핵실험 등으로 인해 더 이상 핵 독점이 어려워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핵 개발에 의욕을 보이는 국가들을 제어하는 가운데 미국의 주도권을 지키려면, 자국의 통제 아래 제한된 범위에서 핵 확산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런 기조에 입각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 8일 국제연합 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 사용'에 관해 역설했다. 이것이 한국 원자력 개발의 물꼬를 터주었다. 한국 원자력 개발의 초기 상황인 1954년 11월 27일 치 <동아일보> 기사를 보자.

미국에서는 1955년부터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 연구소를 개설하여 세계 민주 우방의 원자학자를 초청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25일 하오 문교부 당국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도 이번 계획 중에 있는 사업 연구에 참석할 과학자를 보내달라는 미국 정부로부터의 정식 요청이 있었다 한다. 문교부에서는 이러한 요청에 의하여 국내의 유능한 과학자 2명 정도를 엄선하여 파견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한다.

미국과의 협조 체제로 시작된 원자력 개발은 한미관계와 긴밀하게 연동됐다. 1956년에 한미원자력협정을 체결한 두 나라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인 1960년대 중후반에는 한국군 파병을 계기로 원자력 협력을 한층 강화했다. 한미관계와 한국 원자력 개발이 정비례하는 양상이다.

이 같은 협조체제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주도권을 전제로 했다. 자국의 영향력을 벗어난 한국의 독자 행동을 미국이 얼마나 예의주시했는가는 박정희 정권과의 신경전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이 박 정권의 독자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웠다는 점은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가 도널드 프레이저 소위원장 주도로 1978년 발간한 <한미관계 보고서>에도 표출된다.

일명 <프레이저 보고서>로 불리는 이 책은 제3부에서 "1970년대의 방위계획과 생산에 있어서 한국의 핵 정책만큼이나 대미 독자성의 증대 정도를 잘 드러낸 것은 없을 것"이라고 한 뒤 "그 문제에 관한 본 소위의 관심은 한국 정부가 핵무기 제조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취한 조치에 앞서 미국과 논의하거나 통고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생겨났다"라고 말한다.

박정희의 독자 행보가 미국과의 관계를 긴장시켰음은 물론이고 박정희 개인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사례는 전두환 정권을 비롯한 이후의 정권들이 미국과의 원자력 협력을 더욱 존중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됐다.

원자력을 논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


▲ 2015년 4월 22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안 타결 당시 모습. ⓒ 연합뉴스=AP

한국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태도는 2015년 다시 체결된 한미원자력협정에도 반영됐다. 2015년 협정은 사용후 핵연료 연구나 우라늄 농축 등에서 한국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긴 했지만, 한국을 묶어 두려는 미국의 의도를 여전히 보여줬다. 일례로, 이 협정과 한미의사록에 이런 규정들이 있다.

이 협정에 따라 이전된 조사(照射)된 핵물질 또는 이 협정에 따라 이전된 핵물질, 감속재 물질, 또는 장비의 이용을 통해 생산된 조사된 핵물질은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제3국으로 이전될 수 있으며... - 제10조 제3항.

협정에 따른 각 당사자와 제3국의 원자력 교역 관계에 있어서 다른 쪽 당사자가 그러한 제3국과 원자력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는지 여부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각 당사자는 다른 정부와 완료한 새로운 원자력 협력 협정을 적시에 다른 쪽 당사자에게 지속적으로 통보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 합의의사록 제4조 제3항.

'핵물질은 제3국으로 이전될 수 있다'고 하지 않고 '핵물질은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제3국으로 이전될 수 있다'라고 해놨다. 이는 협정 당사자인 미국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못 박아 놓은 것이다.

또 제3국과 원자력 교역을 할 때는 제3국이 협정 당사자와 원자력협정을 체결했는지를 감안해야 한다고 정해놨다. 합의의사록 서문이 "다음의 양해가 협정의 불가분의 일부로서 이뤄졌다"고 선언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위와 같은 의사록 규정 역시 한미원자력협정의 일부를 이룬다.
이처럼 촘촘하게 그물망을 쳐놨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미국을 따돌리고 제3국과 원자력 관련 협력을 하는 건 쉽지 않다. 주일미군과 자위대가 장악한 한반도 주변 해역을 통해, 주한미군 영향권인 군사분계선을 통해 제3국과 협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은밀한 시도의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할 리 없다는 점은 대북관계에서 나타난 문 정부의 스타일에서 유추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민족협력(민족공조)과 한미동맹 중 어느 쪽을 우선시하는지는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전자를 우선시했다면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남북대화 및 북미대화 개최에 열정적인 것과 민족협력을 한미동맹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일은 지금 단계의 대한민국 정부가 시도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게 보편적 사실에 부합한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있긴 있다. 미국이다.

하나의 나라만 '북 원전 건설' 가능하다

실제로도 대북 원자력 협력이라는 결단을 공식화한 나라도 미국 하나뿐이다. 제1차 북미 핵위기(북핵 위기)를 봉합한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합의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이 최우선적으로 보장해준 것이 경수로(물을 감속재·냉각재로 쓰는 원자로) 제공이었다. 클린턴은 전날인 10월 20일에는 '2003년까지 경수로를 제공하겠다'는 보장 서한까지 발송했다.

제네바 합의 제1조는 북한이 흑연감속원자로(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얻는 데 가장 뛰어난 원자로)를 동결하는 대신, 미국은 경수로 2기와 중유(원유에서 휘발유·등유·경유 등을 뽑아낸 기름)를 지원하며 미국이 경수로 제공을 완료하면 북한은 흑연감속원자로와 관련된 시설을 완전히 해체한다고 규정했다.

결국 지키지는 않았지만, 클린턴이 이와 같은 약속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대북 원자력 지원 약속은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나 나올 수 있는 방법론이다. 산업자원부는 물론이고, 청와대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곳과 결정권을 가진 곳은 엄밀히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의혹의 화살을 문재인 정부에 겨냥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미국과 협의도 없이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기로 했다는 국민의힘의 주장은 한미원자력협정과 세계 정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 주장이다. 동시에 한미 관계 자체를 무시한 발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오세훈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산자부가 공개한 문건 파일명의 'v'(브이)를 두고 "'v' 라는 이니셜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대통령을 vip라고도 칭해 왔음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큰 선거를 앞둔 시점이 아니면 들어보기 힘든, 진귀한 주장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3월 01일, 월 12:1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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