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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초임장교 시절에 면관된 이유
[김재규 평전 6회] 공산주의자였던 연대장에게 포섭되지 않고 오히려 충고


▲ 박정희는 육사 제1중대장으로 근무시절 남로당 가입혐의로 체포됐다. 사진은 육사의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 정문 모습. 박정희는 육사 제1중대장으로 근무시절 남로당 가입혐의로 체포됐다. 사진은 육사의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 정문 모습. ⓒ 육사 졸업앨범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조선경비사관학교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김재규와 박정희가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졸업한 지 15년 뒤 박정희의 주도로 5ㆍ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동기생들 중에는 상당수가 군사정권과 유신권력의 요직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만군ㆍ일본군 출신들이 조선경비사관학교에 들어간 것은, 물론 마땅한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은 때였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세탁하려는 의도였다. 이것은 김재규나 박정희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2기생은 1기의 45일간에 비해 그나마 12주(82일)의 교육기간에 불과했으나 제식훈련, 99식 일(日) 소총훈련, 분대ㆍ소대전술, 독도법과 행군, 숙영훈련을 받았다.

우리 군은 미군정청의 방침에 따라 제식훈련, 부대편성, 전술 등에 모두 미국식을 도입했다. 그러나 내무생활만은 과거 일본군 그대로였다. 또 대부분 군사 경력자 중에 일본군 또는 그 영향하에 있던 만주군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라 일본군대식 노고를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배운 것이 그뿐'이라는 말이 있지만, 기합과 구타라는 전형적인 일본식 통솔법이 초창기 우리 군에서도 답습됐다.

사관학교에서도 이같은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 후보생들에게 기합과 구타가 있었다. 신생 우리나라의 군 간부가 된다는 포부를 품고 모여든 후보생들에게는 이것은 큰 불만이었을 법하다. 더욱이 해방 후의 혼란기였던만큼 과거의 선배가 뒤늦게 군에 들어가 후배가 되는 등 서열이 뒤바뀌고 온갖 성분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갈등은 더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의 나이 차도 없었다. 학력도 별 차이가 없었고, 군권력이나 군사직에서도 모두가 미국 것을 배우는 판이라 크게 월등할 것이 없고 보니, 자연히 통솔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주석 2)

김재규와 박정희는 닮은 점이 많았다.

글공부보다 군인이 적성에 맞고, 학교 성적이 우수하지 못하고, 교편생활을 했으며, 일본군에 지원 또는 징집되었다. 부모의 강요로 애정이 없는 초혼을 하고, 해방 후 육군사관학교에 함께 들어갔다.

다른 면도 있었다. 박정희는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집안에서 태어나고, 김재규는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출생했으며, 전자는 혈서를 써가면서 일본군(만군)에 들어갔으나, 김재규는 일제에 저항한 모습을 보였다. 생도시절에 두 사람 사이는 특별한 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김재규는 14등, 박정희는 3등으로 졸업하였다. 만 3개월 만에 소위로 임관한 김재규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에 비하면 훨씬 우수한 성적인 동기생 196명 중 14등으로 졸업하여 대전 소재 2연대에 중대장 대리로 보직을 받았다.

"성적으로 보면 군사훈련 및 군사 과목들이 일반학교 교과목들보다 더 재미있고 체질에도 맞는 것 같았다. 김재규는 군대의 생명인 질서, 절도, 충성, 복장단정 등이 자신의 생활 신조와 일치해 군대 생활이 자신에게는 편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를 '군대먹기'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주석 3)

초임장교 시절에 면관된 김재규

김재규의 초임 장교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대전의 2연대에서 소위로 근무 중 '명예 면관(免官)' 조치로 군복을 벗은 것이다. 10ㆍ26거사 후 '항소이유서'에서 스스로 밝힌 면관 이유를 들어보자.

변호사 : 정상에 관하여 몇 가지 묻겠습니다. 육사 2기로 임관했다는데, 그 때 군번과 성적을 말씀해주세요.
김재규 : 군번은 10177, 196명 졸업에 14등이었습니다.
변호사 : 그 때 소위로 임관하셔서 첫 근무지와 보직은?
김재규 : 1947년 12월 14일 소위로 임관해서 대전에 있는 제2연대 중대장 대리로 보직받았습니다.

변호사 : 소위 때 중대장 대리를 했나요?
김재규 : 제가 대전에 가는 14명 동기생을 인솔해 갔습니다. 그 때는 장교가 모자랐기 때문에 선임장교인 저에게도 소대장을 시키지 않고 바로 중대장대리 명령이 났습니다.

변호사 : 중대장 대리 다음에 뭐 하셨어요?
김재규 : 연대 정보주임을 했습니다.

변호사 : 그 당시, 정보주임은 당시에 CIC(육군 특무부대) 기능이라든지 다른 기능이 없어서, 정보관계는 총망라하는 임무를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김재규 : 그렇습니다. 그 때는 아직 CIC 기능이 편성되기 전이기 때문에 연대 정보주임은 CIC 기능도 같이 수행했습니다.


▲ 보안 사령관 시절의 김재규 장군. ⓒ 남산의 부장, 김충식 저

변호사 : 연대 정보주임 근무 당시 연대장이 누구였나요?
김재규 : 김종석이라는 공산주의자인데, 남로당이었습니다. 그 후 처형됐습니다.

변호사 : 나중에 공산주의자로 노출된 사람이라서 피고인과는 암투가 시작되었고, 급기야는 그 사람 때문에 연대장이 쫓아내서 47년 6월 1일 명예면관이 되어서 군을 떠나셨어요? 제가 알기로는 군에 쭉 계신 줄 알았는데 소위 때 떠나셨네요?
김재규 : 예, 육군 중위로 진급하는 날 군을 떠났습니다. 사유는 연대장 김종석은 대단히 머리도 명석하고 그런 분이었지만, 이분이 공산주의자였는데, 제가 육사 2기 중 선임장교였기 때문에 저를 포섭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제가 포섭되지 않고 거꾸로 연대장께 충고했습니다. 연대장께서 만나는 사람이 전부 좌익계열 사람들인데, 우리 국방경비대는 불편부당해야 하지 않느냐고 충고했습니다. 연대장은 그 때만 해도 자기 신분을 은닉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카톨릭 신자고 한민당(해방직후 우익 민족진영의 최대 정당으로 송진우 김성수 선생이 창당했다) 당원이라고 하고, 사무실에는 항상 십자가를 걸어놓고 있었는데, 그러나 저에게 자기 신분이 탄로됐다는 것을 알고 그 때부터 저를 기피하기 시작했고, 대전에서 군경축구시합에 충돌사건이 생겼습니다. 사건 당일날, 제가 일직사령을 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지고 명예면관이라는 이름으로 군대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 날 일직사령은 사실은 저희 동기생인 박노규였는데, 위경련이 일어나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저는 오후 2시에 그 일직완장을 명령 없이 대신 찼는데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로부터 2시간 후에 생긴 사고로 군대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변호사 : 군을 떠난 후에 김천중학교, 대륜중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2년 있었다는데 사실입니까?
김재규 : 그렇습니다.

변호사 : 이 때 박선호가 제자였나요?
김재규 : 제 기억으로는 그 때 박선호의 담임을 했던 것으로 압니다.

변호사 : 박선호가 그 때부터 피고인을 존경해왔다고 해서 참고로 물었습니다. 그 후 당시 연대장이 빨갱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사실입니까?
김재규 : 그렇습니다.

변호사 : 그래서 피고인이, 그 때 억울하게 군에서 쫓겨났구나 해서 다시 군에 복귀했다는데?
김재규 : 예, 연대장은 그 후에 남로당 당원이라는 것이 밝혀져서 사형됐습니다. 그 후, 그 때 그만 둔 저의 경우가 억울하다고 해서 육군 본부 인사국에서 제게 복직권고가 왔습니다. 그래서 군을 떠나서 근 2년 약간 넘었다고 생각됩니다만, 다시 군에 복직하게 됐습니다. (주석 4)


2> 앞의 책, 91쪽.
3> 오성현, 앞의 책, 45쪽.
4> 김재홍, 『대통령의 밤과 여자, 박정희 살해사건 비공개진술 전(全) 녹음 최초 정리(하)』, 204~206쪽, 동아일보사, 1994.(이후 '비공개 진술' 표기)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3월 12일, 금 4:4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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