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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검찰개혁 공신'? 윤석열의 역설
[주장] '검찰주의자'의 저항, 되레 개혁동력을 한데 모으다


▲ 윤석열 마지막 퇴근길 “후회 없이 일했다”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19대 대선 열흘 뒤인 2017년 5월 19일,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검사장급 인선을 직접 발표했다. 이날 발표에 나선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이렇게 말했다.

"인사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승진 인사.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윤석열, 현 대전고검 검사."

윤 수석이 "윤석열"을 언급하는 순간, 탄성이 튀어나왔다. 2016년 12월 1일부터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으로 활약하기는 했지만, 2017년 5월 당시 윤석열은 대전고등검찰청 검사로 좌천돼 있었다. 국정원 댓글 수사로 박근혜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대구고검, 대전고검에서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던 그가 일약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됐으니... 현장 기자들은 드라마 같은 승진 인사 발표에 탄성을 터트린 것이다.

그런 파격 인사가 가능했던 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적폐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석열이 시대적 소명에 맞게 검찰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검찰총장으로 다시 한 번 승진시키면서 "살아있는 권력의 눈치도 보지 말라"고 당부한 건 그런 기대감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민적 기대를 받기는 했지만 그 기대에 따라 움직이진 않았다. 2016년 촛불혁명에 힘입어 "우와!" 하는 탄성을 듣게 됐고, 2019년 가을에는 토요일 밤마다 그의 집무실 앞에서 100만 개의 촛불이 출렁댔다. 하지만, 그는 국민적 기대보다는 검찰의 이해관계를 우선시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을 대신해 검찰을 이끈다는 의미의 검찰총장이 아니라 '검찰 후배'들을 이끈다는 의미의 검찰총장처럼 비칠 수 있는 행보였다. 그렇게 그는 촛불혁명에 뒤이은 검찰개혁에 정면으로 맞서며 저항했다.

결국 그의 뜻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했더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는 검찰개혁의 흐름을 저지하지 못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는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관철됐다. 이것으로 상황이 끝난 건 아니다. 그가 우려한다는 개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3월 4일 사표를 던졌다.

검찰총장 사임 표명 하루 전, 한때 '유배지'였던 대구고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윤석열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이라는 표현으로 매도했다. 중대범죄수사청이 현실화하면 검찰청은 수사권을 완전히 내주고 순수한 의미의 법률가 조직으로 승화되는 것은 물론, 기관 명칭은 검찰청이 아닌 공소청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이름 사라질 가능성도 있는 검찰청

2020년 12월 29일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12명은 '검찰청법 폐지법률안'을 발의하면서 "검찰총장의 인사권과 계급화된 상명하복의 조직문화 아래 검찰은 엘리트 관료집단이 되었으며, 조직의 이익을 위해 정치권력·자본권력 때로는 언론권력과 결탁해 그 막강한 권한을 이용하여 형사사법절차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검찰이 끼친 해악을 열거했다.

그런 뒤 "현재와 같이 검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그 스스로 한 수사를 평가하여 기소·불기소를 결정하는 방식은 모순"이라고 진단한 다음 "이에 공소청을 신설하여 검찰에게 기소와 공소 유지 업무를 수행하게 하며, 검찰청법을 폐지하여 법적 혼선을 방지하고자" 한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향후 상황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의 개혁 작업은 검찰 수사권을 거둬들이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검찰청이라는 기존 명칭마저 없애는 방향으로 종결될 여지가 있다. 검사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지 못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개혁이 지속적이고 강도 높게 진행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윤석열 총장이 검찰 조직의 목소리를 개혁 과정에 제대로 투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혁을 저지하는 데만 주력했지, '후배'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개혁을 막는 데만 실패한 게 아니라, 검찰의 명예를 지키는 일에서도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개인은 부각됐지만

개혁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대선주자로 부각되는 수확은 있었다. 하지만 정작 검찰 조직의 명예를 지키는 일에서는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검찰이 반개혁세력으로 낙인찍히도록 만드는 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실패한 검찰총장으로 기억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 초래된 데는 그의 리더십 문제가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후배'들을 잘 다독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 방면에서는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상식적인 리더는 자기 조직을 시대 흐름을 선도하는 방향 혹은 편승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역행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는 태풍이 불어오는 쪽으로 돛단배를 젓는 사공과 다르지 않다.

윤석열은 위험한 사공이었다. 태풍이 불어오는 쪽으로 '후배'들을 이끄는 검찰총장이었다.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물결 앞에서, 검찰 조직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시키는 방법으로 개혁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검찰 조직의 위상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쪽으로 검찰을 이끌지 않았다.

한국의 촛불혁명뿐만 아니라 아랍의 재스민혁명, 러시아의 반(反)푸틴 시위, 미얀마 국민들의 목숨을 건 저항 등에서도 증명되듯, 21세기 대중은 20세기 대중에 비해 권력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다. 주권자의 뜻을 어기고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세력을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검찰개혁 촛불집회도 이런 세계적 흐름이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은 검찰 조직을 이끌고 세계적 조류에 항거한 셈이다. 이는 그가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읽는 능력이 있는 인물인가 의구심을 갖게 할 만하다.

시대 흐름을 읽는 능력과 더불어, 그가 드러낸 또 다른 문제점은 '조직'보다는 '윤석열 개인'을 과도하게 노출시켰다는 점이다. 조직의 의리를 강조하는 것처럼 비칠 때도 잦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행보는 조직보다는 자신을 과도하게 부각시키는 데 그쳤다.

이는 검찰개혁 반대 진영의 운동 역량을 저감시키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반개혁 운동이 윤석열 개인의 대(對)조국 투쟁, 대(對)추미애 투쟁으로 비치도록 만드는 효과도 없지 않았다. 이것은 이 진영이 보다 조직적으로 검찰개혁을 저지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윤석열 개인'보다 '반개혁 진영'이 좀 더 부각됐다면,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됐을 수도 있다. 개혁을 반대하는 검사들의 의견 중에서 경청할 만한 부분들이 개혁 과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악역이었지만, 결과적으론 검찰개혁에 일조했다

그동안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를 통해 일부 검사들은 의견을 개진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부각된 것은 윤석열에게 동조하는 의견들이었다. 반개혁 운동이 윤석열 개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데서 파생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반개혁 운동이 윤석열의 단독 플레이처럼 진행되다 보니, 지금처럼 그가 덜컥 사임한 상황에서는 반개혁 운동의 동력도 함께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의 행보가 결과적으로 반개혁 운동에까지 불리한 작용을 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윤석열의 그간 행보는 그의 강성 이미지와 결합되면서 극우세력이 동조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극우집회에서 그를 지지하는 플래카드들이 등장하는 현상은, 극우를 혐오하는 일반 보수세력이 반개혁 운동에 동참하는 일을 주저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수사하는 과정과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입씨름하는 과정에서 윤석열의 강성 이미지는 한층 도드라졌다. 이는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세력을 자극하고 응집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개혁의 동력이 식지 않고 오래 유지될 뿐 아니라 검찰청 명칭의 폐지까지 추진될 정도로 개혁 드라이브가 강화된 데에는 그런 원인도 작용했다. 결국 윤석열의 행보는 자기 편을 결집시키기보다는 상대편을 응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면도 있다.

따라서 윤석열의 검찰개혁 저지는 역설적으로 검찰개혁의 완수에 기여하는 면이 있었다고 평가 가능하다. 비록 악역을 수행하긴 했지만, 그 역시 검찰개혁 완성에 기여한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3월 12일, 금 6:5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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