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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육사 2기에서 중장예편까지
[김재규 평전 7회] 김재규의 군대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 보안의 전문가인 전 보안사령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장군. 뒤의 "보안완벽" 휘호가 김 장군이 보안 전문가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 남산의 부장, 김충식 저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군에서 명예 면관된 김재규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일본군에서 귀환했을 때는 해방감이었는데, 이번의 귀향은 실망감이 너무 컸다. 김천중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하여 한동안 지내다가 얼마 후 경북체육대회에서 우승한 모교인 대륜중고등학교 김중기 교장을 찾아가 체육교사로 일하고 싶다고 간청하여 승낙을 받았다.

그동안 낯선 일본에서 그리고 서울의 사관학교에서 나름의 산전수전을 겪다보니, 누구 소개도 없이 이력서 한 장을 들고 교장선생을 찾아가 쾌히 승낙을 받을만큼 담력과 배포가 커진 것이다.

여기에서 대륜중학교 시절의 제자인 박선호(朴善浩)를 다시 만났다. 뒷날 10ㆍ26거사의 동지가 된다. 그리고 뒷날 국회의장 등을 역임한 이만섭을 만났다. 그는 학생이었다. 이만섭은 김재규 교사가 정의감이 넘치는 스승으로 기억했다.

1947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대륜중고등학교 체육교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 상황 변화가 있었다.

"김종석이 빨갱이임이 밝혀져 군법회의에서 사형집행되자 주위에서 성적도 좋은 사람이 억울하게 면관됐던 사실이 알려지게 돼 1948년 10월 25일 다시 소위로 군에 복직하게 되어 3여단 수송중대장직에 보임됐다." (주석 5)

김재규가 연대장 김종석의 남로당 문제로 군복을 벗고 낙향했을 즈음, 박정희는 1948년 11월 남로당 비밀 당원으로서 군사책임자라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군사법정의 사형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소령 계급에서 파면되었으며 급료도 몰수당했다. 만군 군맥과 주한 미군사고문단 참모장 제임스 헤리 하우스만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혹시 김재규가 박정희 살해 계획을 세울 때, 자신이 남로당 계열 연대장 문제로 밀려날 시기에 박정희의 남로당 행적과, 5ㆍ16 쿠데타 이후 돌변하여 극렬한 반공주의자로 행세하는 그의 이중성이 잠재의식의 한 자락에 꿈틀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복귀한 김재규는 1950년 3월에 소령, 이듬해 9월에 중령으로 진급하였다. 육사 8기 출신으로 김재규의 중위 시절 부관을 지낸 방자명 소위의 증언이다.

그는 2기생인데 왜 아직 중위냐고 연대 정보주임인 정호림(鄭虎林) 중위(7기)에게 물었더니 미군과의 트러블로 파면됐다가 다시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김재규 중위는 예의가 바른 편이어서 욕을 먹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급장교 치고는 좀 괴짜에 속했습니다. 모자를 약간 비투룸하게 쓰고 다녔고, 현실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약간 권위주의적인 색채가 강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주석 6)

군에 복귀한 김재규는 1973년 3월 육군중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25년에 걸쳐 군인생활을 하였다. 6ㆍ25 전쟁에 참전하고 각급 부대장을 거쳐 보안사령관을 지내기도 한 경력을 갖는다. 6ㆍ25전쟁시기와 관련 '항소이유서'에 적시된 내용을 소개한다.

변호사 : 그 후 군에 복직하셔서, 안동지구 공비토벌, 6ㆍ25사변 중에는 영덕지구 181 고지 전투라고 아주 험한 악전고투를 겪으셨다고 하고, 또 포항지구 전투 등에도 참가해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는데.
김재규 : 군에 복직해서 22연대 정보주임이 됐고 안동지구 토벌작전에 참가해서 공비토벌에 임해서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충무무공훈장을 탔습니다. 그 이후에 25연대, 다시 말해서 안동지구 공비토벌 사령부에서 대구에 있던 22연대 제2대대장으로 명령이 났습니다. 바로 명령나던 날이 6ㆍ25사변이 발발한 날입니다. 그래서 그 2대대를 지휘해서 의정부에서부터 황간전투까지 계속 혈전하면서 황간까지 내려왔는데, 그동안에 수많은 저의 부하를 희생시켰고 악전고투를 했습니다. 황간에서 기차로 대구로 이동해서 비로소 원소속인 3사단에 복귀했는데, 그 때 3사단이 동해안에서 전투를 하고 있어서 동해안으로 전선이 바뀌어서 영덕지구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여기서 저의 운전병까지도 전부 희생됐습니다. 작전이 다시 불리해져서 포항까지 밀려가서 형산강을 중간에 두고 치열한 전투를 했습니다. 그 후에 유엔군의 본격적인 반격으로 이북으로 진격하게 됐습니다.

변호사 : 참전 중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셔서 야전병원에 입원한 일도 있었다는데 사실입니까?
김재규: 포항 야전병원에 일시 입원한 일이 있습니다. 너무 몸이 쇠약해져서 2주일 가량 입원했다가 다시 전선으로 갔습니다.

변호사 : 그래서 군에 쭉 계시면서 중장까지 진급하셨는데, 보안사령관도 지내셨고 소위 임관 후부터 6ㆍ25사변에 이르기까지 공산군과 싸우는 데는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일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김재규 : 우리 국군 장병들이면 누구나 공산당하고 싸워봤지만, 저도 그 중 한 사람으로 20대 초반부터 그런 역사가 시작되었죠.

변호사 : 공산당과의 대결은 무엇보다도 어려서부터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사실입니까?
김재규 : 저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변호사 : 잠깐, 제가 정리를 해드리겠습니다. 지난번 신문에도 나왔는데, 부친으로부터는 자유로운 교육을 받았고 '정의를 위해서는 남아로서 죽을 자리를 잘 찾으라'는 교훈을 힘입어왔다는데 사실입니까?
김재규 : 그렇습니다. (주석 7)

평탄하지 않은 군대생활

김재규의 군대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6ㆍ25 전쟁 때는 몇차례 생명의 위기를 겪고 살아 남았다. 영덕지구 전투에서는 호위병과 운전기사까지 전사하는 악전고투 끝에 고지를 사수하고, 계속되는 격전에서 영양실조로 전신쇄약증상을 보여 야전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대령으로 3군단 부사단장 시절에는 1군사령관 송요찬 장군에게 찍혀 하마터면 군대에서 쫓겨날 뻔 했으나 이종찬 장군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 당시 군부 일각에서 쿠데타를 모의할 때 이를 단호히 거부하며 군의 정치중립을 지켜왔던 이종찬 장군을 존경하였고, 그도 김재규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10ㆍ26 거사' 후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단이 재판부에 제시한 김재규의 '군사경력'이다. 임관과 명예 면관 등은 앞에서 소개했기에, 여기서는 6ㆍ25전쟁부터 소개한다.

안동지구 토벌 참가

25연대 정보주임으로 근무하다가 1950년 초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공훈을 세움으로써 처음으로 충무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영덕지구 전투 참가

22연대 2대대장으로 6ㆍ25 사변을 맞아 의정부지구, 청간지구, 대구지구 등 각 전선에서 전투를 참가하였고, 영덕지구 전투에서는 강구 181고지에서 호위병과 운전기사까지 전사하는 악전고투 끝에 사수하여 전공을 세운바 있습니다.

포항지구 전투 참가

22연대 부연대장으로서 형산강전투에 참가하여 연대를 지휘 반격하여 이북으로 진격하기까지 혁혁한 전과를 거두는 동안 몸은 지칠대로 지쳐 걷지 못할 정도가 되어 전신쇠약으로 야전병원에 후송되었고 퇴원하여 여수 제2보충연대장에 부임하였습니다.

군요직

휴전 후에는 육대교무부장, 5사 참모장, 5사 36연대장, 3사 부사단장, 육대 부총장, 육본 관리참모부 심사처장, 국방부 총무과장을 역임하였고, 5ㆍ16 이후 약 2년간 호남비료사장으로 취임하였으나 다시 군에 복귀하여, 6사단 사단장, 6관구 사령관, 방첩부대장을 거쳐, 1968년 10월 1일 보안사령관에 취임하였습니다.

보안사령관 재직 당시 간첩검거에 큰 공을 세워 보안사령부에 대통령 부대표창을 연 3회 안겨준 바 있습니다.

1971년 9월 23일 제3군대장으로 제직하다가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기까지 25년간을 군에 봉직하였습니다.

다음으로 군경력과 상훈관계를 살펴본다. 역시 재판과정에 변호인단이 제출한 기록이다.

<주석>
5> 김대곤, 앞의 책, 117쪽.
6> 앞의 책과 같음.
7> 김재홍, 앞의 책, 206~207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3월 25일, 목 6: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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