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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옛날 사람들도 글을 읽었다, 그런데 낭독을 곁들인
[탐독의 시간] 브라이언 라이트 <1세기 그리스도인의 공동 읽기>

(서울=뉴스앤조이) 권우진

1. 다 같이 모여 읽기

한 사람이 단상으로 올라간다. 단상에는 성경이 올려져 있다. 단상에 선 이는 자기 눈앞에 앉아 있는 수많은 청중을 본다. 그리고 숨을 고른 후 청중에게 외친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독서)은 바울이 로마에 보낸 편지입니다."

다소 위화감이 들 수 있을지언정 당신은 아마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매주 일요일, 더 열심인 경우 수요일, 금요일, 어쩌면 매일 아침 단상에서 낭독되는 성경을 들어 왔을 테고, 지금 갖고 있는 성경 지식도 대부분 낭독을 통해 함께 읽은 성경에서 얻었을 테니 말이다. 어떤 사람은 이 '공동 읽기'에 이력이 붙어 낭독자가 단어 몇 개를 잘못 읽어 놓고 능청스레 넘어가는 걸 알아챌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 다들 그런 생각 해 본 적이 있으려나. 물론 아마도 없겠지만, 어쩌면 궁금할 수도 있으니 이런 질문을 한번 해 보자. 도대체 성경 본문을 다 같이 읽는 이런 행위는 어디서 비롯했을까. 목사님들 설교를 들어 보면 딱히 본문과 상관있어 보이는 말을 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성경 읽지 말고 바로 설교로 넘어가면 안 되나. 교회가 아니면 요즘 세상에 이렇게 책을 다 같이 소리 내 읽고 듣는 장면은 보기도 힘들 것 같은데, 옛날에는 이런 일이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을까. 만일 그랬다면 무슨 이유로?

혹시 앞서 언급한 성경 낭독 상황이 지금 우리가 다니는 교회가 아니라, 아주 먼 옛날 초대교회가 태동하던 그리스-로마 세계 어느 귀퉁이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여러분들이 좀 더 궁금해하지 않을까. 브라이언 라이트는 자신의 박사 논문 <1세기 그리스도인의 공동 읽기>(IVP)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성경 봉독 유의 사건을 통칭해 '공동 읽기'라고 명명한다. 공동 읽기란, 공동체가 사적이든 공적이든 회중이 모여 있는 공개된 장소에서 텍스트를 공동(communal)으로 읽는 일을 말한다. 공동 읽기는 보통 낭독된 텍스트가 회중에게 전달되는 형태였으며, 이를 통해 엘리트 수준의 문해력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다양한 텍스트들을 듣고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공동 읽기'가 예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1세기에 어떤 형태로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탐문한다.


▲<1세기 그리스도인의 공동 읽기 - 예수 시대 기독교 전승은 어떻게 형성되고 보존되었는가> / 브라이언 라이트 지음 / 박규태 옮김 / IVP 펴냄 / 456쪽 / 2만 3000원

2. 통념이 부른 삽질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신약성경이 1세기에는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복수의 복음서가 완성된 텍스트로 안착되기 전까지는 예수 운동에 투신한 신자들이 예수 전승을 각각 수집·보존·전달해 왔다. 서로 멀리 떨어진 공동체들은 서로 다른 예수 전승을 알고 있었고 최종 형태의 복음서가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문제는 이 전승을 수집·보존·전달하는 사람들이 문자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는 데 있었다. 예수 운동이 끌어들인 각계 각층의 다양한 사람들 중 대부분은 글을 읽거나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한때 학계 중론이었고, 이는 강단에서 통용되는 '못 배운 어부 베드로' 이미지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편견은 성경을 탐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초기 예수 전승이 이어져 온 데 '글'의 역할은 극히 미미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복음서가 완성되기 전, 예수 전승은 대체로 글이 아니라 말로 전달됐을 것이라 주장했다.

글로 남겨 놓은 것에도 오·탈자가 있고, 채플 과목 과락의 쓴맛을 보고 성경을 필사하는 이 시대 신학생들처럼 일부러 몇몇 본문을 빼놓고 쓰기도 하는 마당에, 하물며 어떤 이야기를 말로 전달하는 일은 얼마나 불확실한가. 많은 연구자들은 말로 전달된 예수 전승의 불확실함을 해결하고자 했고, 예수 운동의 신앙인들이 전승의 질을 통제·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들을 찾아 나섰다. 꽤 많은 도구들이 개발됐지만, 솔직히 말하면 '암기법'이나 '공동체의 기억' 등 내용 관리가 제대로 됐을지 미심쩍은 것뿐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전승 관리 도구들이 미심쩍다고 생각했고, 예수 전승은 정확한 '질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글로 옮겨지기까지 왜곡과 허구가 섞인 각색을 거쳐 왔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브라이언 라이트의 주장은 매우 단순하고 또 단호하다. 그에 따르면 고대인들은 광범위한 그리스-로마 세계 곳곳에서, 글을 낭독해 많은 사람이 함께 읽는 '공동 읽기' 방식으로 지금까지 문헌으로 남아 있는 대부분의 전승을 전달하고 보존해 왔다. 라이트는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고대인은 문맹'이라는 통념에 갖혀 이러한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이러한 통념이 오래도록 이어져 온 학계의 '삽질'을 초래했다. 그는 통념에 반대하며, 계층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텍스트를 함께 모여 읽는 '공동 읽기'가 1세기 그리스-로마 세계 곳곳에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파헤친다.

3. 증거가 함의하는 것들

라이트가 이 책 절반 이상을 할애해 집중하는 것은, 1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저술됐거나 그 세계를 권위 있게 반영하고 있는 방대한 1차 문헌을 샅샅이 뒤지는 일이다. 그는 이를 통해 우리가 가진 여러 선입견과 생각의 한계를 환기한다.

라이트는 우선 글을 쓰고 남긴 이들의 계층에 관한 이미지를 확장한다. 고대 세계에서 글쓰기는 매우 돈이 많이 드는 귀족적인 행위이고, 당연히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 활동 전반은 엘리트 남성의 전유물이라, 그 외의 사람들은 그 문화 자본에서 철저히 배제됐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저술을 남긴 1세기 작가들은 더러 가난했고(131쪽), 심지어 노예였으며(120쪽), 남자뿐 아니라 여자와 어린아이들도 공동 읽기에 참여해 낭독되는 글을 듣거나(337쪽) 혹은 직접 낭독(261쪽)할 수 있었다. 브라이언 라이트가 쏟아 내는 증거에 따르면,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그리스-로마 세계는 공동 읽기 사건을 통해 구축한 문화를 누리는 꽤 '문해력이 높은' 사회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공동 읽기 과정이 그 자체로 전승된 기록물의 질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 학자들이 제시했던 '질 통제' 방식의 문제점, 즉 구술과 기억에 의존한 통제 방식의 미심쩍음을 보완한다. 고대 사회는 그들의 문헌 전승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데 단순히 기억과 구술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텍스트를 두고 공동으로 읽어 가고 피드백을 했다. 만일 여러 텍스트가 이미 기록돼 있었고, 사람들이 공동 읽기 과정을 통해 그 텍스트를 지겹도록 접해 봤다면 그들이 공동으로 보존하는 전승의 질은 균일하고 정확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이른다.

4. 난생 처음 보는 식재료,잠재력을 가진 다큐멘터리

브라이언 라이트의 <1세기 그리스도인의 공동 읽기>는 어떤 메시지를 전해 준다기보다는 증거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같으며, 신학자의 글이라기보다는 고전학자나 종교학자의 글 같다. 그만큼 라이트는 단순·단호하게 그동안의 통념과 그 통념 위에 세워 온 여러 이론을 부순다. 그가 제시하는 방대한 증거물과 꼼꼼한 탐문 수색 앞에서 우리가 기존에 가졌던 선입견은 설 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더러 그렇듯 이 책은 약간 찝찝함과 공허함을 남긴다. 라이트가 제시하는 방대한 증거 앞에서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공동 읽기를 해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전승의 질을 통제할 수 있었는지, 로마제국이라는 다인종·다국어 상황 속에서 공동 읽기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다시 말해 팔레스타인-시리아 지역의 사람들은 그리스어·라틴어를 알아들었는지, 로마와 소아시아 사람들은 아람어·시리아어를 알아들었는지, 또 나아가 전승을 통제하기 위한 기준 텍스트가 공동체마다 달랐을 가능성은 없는지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진다. 라이트가 내놓은 증거들은 1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의 실상을 그림처럼 보여 줄 뿐 그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만큼 가능성이 많은 책이기도 하다. 이 책과 호응할 수 있는 다른 주제들이 많다. 예수 운동 신앙인들의 전례나 신약 기독론, 역사적 예수나 공관복음서 문제 등 라이트의 다큐멘터리는 여러 탐구 주제의 레퍼런스로 기능할 수 있다. 라이트 본인도 이 책이 박사 논문일 뿐이니만큼 이 책을 잠재력을 가진 청사진으로 봐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345~346쪽). 확실히 이 책은 비장의 레시피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향신료가 아니라, 편견을 깨는 충격적인 식 재료에 가깝다. 당분간은 많은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몰라 그저 생으로 우물거리겠지만, 부디 이 식 재료가 많은 강단에서 신기한 요리로 조리돼 또 다른 현대의 공동 읽기로 나타나길 바란다.

(*권우진 / 학부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글을 기고할 때마다 상황이 바뀌어서 필자 소개 글도 계속 바뀌었다. 이쯤 되니 이제 나도 내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4월 06일, 화 6: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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