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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세월호 세대'가 어찌 국힘에 몰표를 던지냐는 질문에 답한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촛불 정권조차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여기는 청년 세대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3월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청년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서울=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 "네가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를 찍겠니?"

이번 4.7 보궐선거 기간 내내 서울 사는 친구들로부터 지나가는 말처럼 받았던 질문이다. 후보자 중 누가 더 나은가를 묻는 게 아니었다. 누가 '차악'이라 생각하느냐는 뜻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번처럼 후보를 선택하기 힘든 선거가 없었다며 혀를 끌끌 찼다.

갓 50줄에 접어든 중년들의 선거 이야기는 빼다 박은 듯 똑같았다. '촛불 시민'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한 민주당 정권의 나태함에 회초리를 들고 싶지만, 그렇다고 군사독재정권의 후신 정당 후보를 찍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서울 친구도, 부산 친구도, 대전에서 관망하는 동갑내기도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여당의 참패로 끝난 선거 뒷날, 부러 서울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옛정을 잊지 못해' 민주당 박영선 후보에 투표했다고 했다. 투표소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사표가 될 것을 직감했단다. 길게 늘어선 유권자들이 입을 가린 마스크 밖으로 침이 튀길 정도로 정부를 성토하더라는 거다.

그들 중에는 앳된 청년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며 이번만큼은 민주당을 절대 찍을 수 없다는 말까지 등 너머로 들었단다. 그들은 매일 뉴스의 1면을 장식한 '내로남불' 사례에 맞장구치며 민주당을 수구 세력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범죄자보다 위선자가 더 싫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더란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투표를 포기할까 고민했다며 당시의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수 야당에 투표한 적이 없다. 그들이 집권 여당이었을 때도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개의 40~50대가 그렇듯, 군사독재정권의 후신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옛 독재자들의 죄과를 감싸기 급급했고, 과거사 진상규명에도 미온적이었다. 부자만을 위한 정당이라는 꼬리표는 차라리 부차적이다.

그런데도 이번만큼은 차마 민주당을 예전처럼 열성적으로 지지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이번 선거에서 지는 게 오히려 민주당에 도움이 될 거라며 자위했단다. 비록 자신은 투표소를 찾아 '미워도 다시 한 번' 민주당에 표를 던졌지만, 기권이나 다른 정당의 후보에 투표함으로써 분노를 표출한 이들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듯 '너그러웠던' 그도 이번 선거 결과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예상보다 훨씬 큰 표 차가 난 것도, 보궐선거 역사상 역대급 투표율을 기록한 것도, 낯설긴 해도 충격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지난 이틀 동안 그를 '멘붕'에 빠뜨린 건, 10대 후반을 포함한 20대 젊은 남성 유권자 중 열에 일곱 이상이 국민의 힘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피 끓는 청년들이 어떻게 군사독재정권을 계승한 정당을 지지할 수가 있지? 멀리 갈 것도 없이, 7년 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지금껏 온갖 트집을 잡아 방해하고 있는 이들 아닌가. 지금 20대라면 이른바 '세월호 세대'인데, 그들이 어찌 저들에게 투표할 수 있을까."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20대 청년들에 대한 분노가 묻어났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선거 직전 야당과 보수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얻어맞은 '20대 청년들은 40대에 견줘 역사적 경험치가 낮다'는 말이 일말의 진실이었다며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 교사인 내겐 그다지 놀랄 것 없는 결과다.

20대 남성의 '몰표'를 이해하는 법


▲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3월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LH서울지역본부에서 진보당원들이 현관 유리문에 "청년들은 월세 전전, LH는 투기 전전" "월세 내려고 50만원 벌 때, LH는 묘목 심고 수십억 꿀꺽!" "도둑놈 소굴" 등 항의글이 담긴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권우성

이번 선거의 세대별 지지율에 대한 언론과 학자, 정치인들의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보는 관점을 달라도 결론은 대동소이하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막지 못하고,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을 심판한 것이라는 분석이 다수다. 지금 부동산과 일자리만큼 20~30대 청년들에게 민감한 사안은 없다는 거다.

십분 동의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의 몰표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23년 동안 아이들을 만나온 현직 교사로서 단언하건대, 지금 20대는 과거의 청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초임 시절 첫 제자들의 나이가 어느새 40살이 넘었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이 10대 후반이니, 강산이 두 번도 넘게 변한 세월을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세대 차이'가 느껴진다.

미리 명토 박건대, 젊을수록 진보적이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보수화된다는 도식은 틀렸다. 요즘 청년 세대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의 구태의연한 사고일 뿐이다. 애초 그들에게 진보와 보수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들은 그 이분법적 구분에 대해 고루하다고 여길뿐더러 그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이들 또한 드물다.

우선, 그들에게 보수 야당을 군사독재정권의 후신이라거나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하는 건 '네거티브'로 여겨질 뿐이다. 그들은 지금의 기성세대처럼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직접 몸으로 겪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학교에서 배우지도 못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6월 민주항쟁이나 5.18 민주화운동을 그저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과거사로 인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후예에 투표했다고 나무란다면, 대번 '꼰대'라는 조롱이 돌아올 것이다. 나아가 "언제까지 그들의 이름을 우려먹을 작정이냐"며 되레 반문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 오랜 군사독재정권이 남긴 유산이 지금 자신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형해화한 역사 교육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를 배우며 교훈을 얻고 성찰의 계기로 삼기는커녕 그저 수험 과목의 하나로 여길 뿐이다. 수능 필수 교과로 지정되었으니 아이들의 역사의식이 투철해지고 감수성이 향상되었을 거라 여긴다면 오산이다. 어려서부터 무한경쟁을 내면화한 그들은 시험 성적이라는 계량화된 지표 외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가 아닌, 시대를 더 닮는다고 했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시대의 변화에 아이들의 의식도 따라간다. 변화의 양상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학교 교육으로는 그걸 막아낼 수 없다. 시대를 닮아가는 아이들의 변화에 학교 교육이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이유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정신'은 단연 각자도생이다. 공동체와 연대란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말일 뿐, 현실에서는 메아리 없는 외침이다. 사회는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의 장이라는 걸, 요즘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DNA처럼 가슴에 새기고 있다. 이는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보편적인 관점이 됐다.

10대 후반을 포함한 20대에게 부동산 가격 폭등 문제는 당장 와닿지 않는 이슈다. 촛불 혁명, 세월호 참사 등과 관련지어 그들의 투표 성향을 가늠해보려는 것 역시 순진한 발상이다. 그들은 촛불 혁명의 성취감과 세월호 참사의 부채감보다, 그 사건들 이후 우리 사회도 자신의 삶도 달라진 게 없다는 열패감을 공유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공정성 훼손에 대한 분노로 나타났고, 젠더 이슈로 옮겨 불붙으며 특히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역차별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됐다. 지난 수년 동안 청년들의 입에서 '공정'이라는 단어가 떠난 적이 없다. '현대판 음서제'라며 치도곤당한 학종 논란부터 '인국공 사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모 찬스' 문제까지, 그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일이 계속됐다.

분노는 공정성에 대한 의미와 기준을 획일화시켰다. 요즘 청년들은 시험 성적에 따라 일렬로 줄 세워 당락을 결정하고 차등을 두는 것이 공정하다고 인식한다. 초임 시절엔 그 강퍅한 '능력주의'를 성토하는 아이들이 제법 많았는데, 요즘엔 뭐가 문제냐며 도끼눈을 뜨기 일쑤다. 적어도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는 불공정한 사회에서 그것이 '차악'이라는 데엔 모두가 동의한다.

'이명박'을 찍었던 어른들

공정성 훼손에 대한 분노가 20대 남성과 여성을 한데 묶어냈다면, 젠더 이슈는 그들의 투표 성향을 가른 결정적 요인이 됐다. 예컨대, 요즘 남학생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는 우려스러울 정도다. 대학생이 된 제자 중 태반이 역차별당하고 있다며 분개하고, 반농반진일지언정 여자 친구를 사귈 때 '사상검증'이 필요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몇 해 전 '일베'보다 페미니즘이 더 싫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남성을 무조건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세우는가 하면, '한남충'이라며 벌레 취급하는 그들은 자신의 적일 뿐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또래 여성을 자신의 몫을 앗아가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를 여성 혐오라고 말했다가, 아이들로부터 선생님도 페미니스트냐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들이 정부와 여당을 심판해야 한다면서도, 진보당과 여성의 당 등 소수 정당의 후보에 아예 관심조차 없는 이유다. 페미니즘 후보를 선택하느니, 차라리 극우 정당에 투표하겠다고 선선히 말할 정도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IMF 외환 위기 전후로 태어나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그들을 진보와 보수 따위의 낡은 인식 틀로 이해하려는 건 바보짓이다.

끝으로, '세월호 세대'가 어찌 보수 야당에 몰표를 던질 수 있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답을 해야겠다. 세월호 참사가 아이들에게 던져준 '교훈'은 우리의 생각과는 아예 딴판이다. 돈보다 생명, 이윤보다 안전이 먼저라는 걸 깨달았을 거라고 보는 건 순진한 발상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주저 없이 이렇게 답한다. 국가는 위기에 빠진 개인의 생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 기성세대의 통제나 지시보다 안전에 대한 개인의 감각과 판단을 신뢰할 것. 그리고 대한민국은 돈이 목숨까지 살릴 수 있는 각자도생의 사회라는 것. 그러면서 질문 하나를 덧붙인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과연 우리 사회에 달라진 게 뭐가 있느냐고.

촛불 혁명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무려 연인원 1700만 명이 겨우내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촛불을 들었는데, 그때의 간절한 외침 중에 지금 완수된 게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 어차피 정권만 바뀌는 것일 뿐, 우리의 삶은 그대로라는 냉소만 가득하다. 진보를 자임하는 정권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여기는 그들에게 야당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가 먹힐 리 없다.

사족. 어제 오후 군에서 막 전역한 한 제자가 찾아왔다. 대뜸 선거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20대 청년들이 보수 야당의 후보에 몰표를 던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어하는' 그들에겐 후보의 도덕적 결함을 왈가왈부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었던 당시 유권자들의 정서와 비슷하다는 뜻이다.

그는 또래 아이들 모두가 동의할 거라며 단언했다. 진보냐 보수냐도 아니고, 굳이 공정성과 젠더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는 거다. 그 말인즉슨,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는 결론이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4월 16일, 금 6:0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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