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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노매드랜드’와 하나님 나라
[호산나 칼럼]


▲ 제93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포스터. ⓒ 하이웨이먼필름스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얼마 전 내 설교문이 설교신문에 게재되었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실렸던 내 설교를 삭제해달라고 하였고 내 요구가 받아드려져 삭제했기 때문이다. 사실 설교신문에 다른 유명한 설교자들과 함께 내 설교문이 실린 것은 기분 좋은 일을 넘어 영광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특히 나처럼 무명의 목사의 설교문이 실리는 것은 오히려 나를 선전하기에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물론 나의 허락 없이 임의로 내 설교문을 실은 것에 대해 항의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다. 나는 내 설교가 조용기나 김홍도와 같은 사람의 설교와 같은 곳에 실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그들의 하는 설교와 내가 하는 설교는 정 반대의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내가 가는 길이 가난과 비능력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는 결코 힘과 영향력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힘과 영향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싹이 트기 전에 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전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이것을 오늘날의 문화로 해설하면 선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원리 가운데 하나이다. 자랑은 무의식중에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악이다. 그리스도인은 자랑할 수 없다. 선전은 그 자랑의 합리화이다. 나는 그것을 피한 것이다.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순례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남기면 안 된다.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남은 자가 되기 어렵다. 그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시험과 같다. 이름을 남기더라도 가장 약한 자로 이름이 남아야 한다. 그러나 우쭐거리는 인간에게 이 일은 어렵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은 애초에 이름이 남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순례자는 어느 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그곳에 자기 이름을 새기지도 않는다. 순례자는 흐르는 물과 같이 흐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순례자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순례자로 살기 대단히 어려운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삼십여 년 전 내가 처음 내 집을 장만했을 때 나는 얼마나 기뻤던가. 더 이상 이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을 나는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집, 혹은 그 집보다 더 좋은 집으로 옮겨 편안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순례자라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집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순례자라는 그리스도인 본연의 정체성을 망각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순례자라는 정체성을 망각하게 되면 결코 환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사실상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순례자라는 정체성은 교회와 마찬가지로 건물에 함몰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순례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삶이 순례자의 삶임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신이 자신의 집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인정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도 집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만큼 집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에게는 절대적이다. 실제로도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이 된다.

그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보았으면 하는 영화가 있다. 맥도먼드가 제작하고, 클로이 자오가 연출한 ‘노매드핸드’다. 이 영화는 그 어느 내부자보다 더 정밀하게 미국의 현실을 진단해낸다. 무너져버린 어메리칸 드림,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길 위에서지만 오히려 대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로드무비 형식으로 보여준다.

홀로 떠난 육십 대 여성 펀의 순례는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니다. 펀은 2011년 네바다주 엠파이어의 석고공장이 폐쇄하고 마을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남편도 죽자 낡은 밴을 타고 그곳을 떠난다. 떠도는 길 위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펀의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의 선택은 2008년에 불어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다.

정부의 초저금리 대출 정책으로 집을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은 부동산 거품이 터지자 집을 잃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만의 위기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몰고 왔다.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 펀과 마찬가지로 집을 잃었다. 학위와 전문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던 사람들이 집을 잃고 연금으로 살 수 없게 되자 차를 끌고 거리에 나서게 된 것이다. 600만 명이 그렇게 집을 잃었고 그 사람들 가운데 펀처럼 길을 떠난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 영화 '노매드랜드'의 한 장면. ⓒ 하이웨이먼필름스

펀과 같은 이 사람들은 홈리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다. 집이 없을 뿐 관계마저 단절된 것은 아니다. 자아를 잃은 것도 아니고 가정을 잃은 것도 아니다. 집을 잃었다는 똑같은 과정을 겪은 내겐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집을 잃으면 관계도 함께 잃는다. 그러나 펀은 관계마저 잃지는 않았다.

여기서 나는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의 차이점을 상기하게 된다. 한국의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로 폄훼하는 것은 이유 없는 자기비하가 아니다. 그것은 운전을 할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차를 타는 이들의 무례한 운전을 목격하게 되는 것은, 그것도 너무나 많이 목격하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은 집과 자동차가 그 사람의 인격이 되고,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이 계급장이 된 것이다. 비합리적이고 폐쇄적이기까지 한 자본주의의 꽃이 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매드랜드’는 이보다 더 한층 심각해질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거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순기능이 없는 것이 아니다. 펀은 일인 가정으로 생활하며 가족과 연락을 하고 노동을 좋아한다. 그런 그녀를 볼 때 나는 그녀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매로 집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된 나는 그녀가 누리는 일상을 누릴 수가 없었다. 형제들과 지인들과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우리 가족은 각자가 받은 상처로 누더기가 되었다.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우리 가정이 해체되지는 않았지만 소통에 장애를 가진 가족들이 되었다.

하지만 펀은 우리와 달랐다. 그는 노동을 좋아해 ‘플랫폼 노동자’로 일했고 임시직이지만 일할 수 있었다. 그녀처럼 일할 수 없는 나는 넓은 텃밭을 가꾸는 것으로 노동을 실천했다. 아이들은 지금도 내게 텃밭에서 일하는 아빠가 가장 행복해 보였다고 말한다. 노동은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구성하는 가장 원초적인 요소이다. 노동 하지 않는 인간은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다.

아마존 물류센터나 캠핑장에서 임시로 고용되어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는 노매드(원래의 의미는 유목민)들은 홀로이지만 느슨하게 연대하고 있다. 노매드들은 소유하지 않고, 교환하고 나누며 살아간다. 그런 그들이 낙천적이라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그들에게서 나는 자유를 본다. 소유하지 않아도 살 수 있고, 무엇보다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들에게서 내가 본 것이 바로 순례자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유가 인간을 연대하지 못하게 만들고, 소유가 인간을 염려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게 만들고, 불안과 미래가 없는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소유가 불평등과 특권을 질서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람들이 무조건적인 환대가 아니라 혐오와 배제와 차별을 신앙으로 인식하는 것은 결국 소유가 만들어낸 허상을 복음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노매드랜드’에서 희망을 본다. 교회가 건물에 함몰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집 때문에 함몰되었다. 그 중심에 소유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무소유를 주장하지 않는다. 복음이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공동의 소유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노매드들의 느슨한 연대가 보여준다. 주인공 펀은 망하지 않았다.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렇다. 그리스도인들도 할 수 있다. 우리는 다시 초기그리스도인들처럼 공동의 소유를 실천함으로써 천민자본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불가능한 이상이나 허상이 아니다. 그것을 ‘노매드랜드’가 보여준다. 우리(그리스도인들)는 더 잘할 수 있다. 아니 하나님 나라는 ‘노매드랜드’가 보여준 실험의 답이다. 이제 우리가 다른 삶을 실천할 차례라는 생각이 든다.
 
 

올려짐: 2021년 4월 30일, 금 4:5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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