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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보안사령관에서 3군단장으로
[김재규 평전 10회]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 / 13회] 보안사령관에서 3군단장으로'좌천'


▲ 김재규 장군 보안의 전문가인 전 보안사령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장군. 뒤의 "보안완벽" 휘호가 김 장군이 보안 전문가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 남산의 부장, 김충식 저

박정희는 김재규 사단장이 학생들의 시위를 잘 막아주었다는 감사의 표시까지 포함시켜서였는지, 1966년 1월 15일 그를 육군 소장으로 진급시키고, 6관구사령관으로 보직을 바꾸었다. 6관구사령관은 후방지역의 군수 및 기타 지원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요직이다. 1968년 2월 방첩부대장으로 전임될 때까지 25개월 동안 6관구사령관을 맡았다.

그동안 정치ㆍ사회적인 변화가 많았다. 1967년 5월 3일 제6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어 박정희가 재선되고, 6월 7일 실시한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3ㆍ15 부정선거를 방불케 하는 부정ㆍ타락선거여서, 야당의 부정선거 규탄과 재선거 실시 요구에 시민ㆍ학생들이 동조하면서 위기가 고조되자, 정부는 전국 28개 대학과 57개 고등학교에 휴교령을 내리는 등 강압책으로 맞섰다.

중앙정보부는 이같은 사회분위기의 전환용으로 이른바 '동베를린 대남공작단사건'을 발표, 104명을 구속하고 윤이상을 비롯한 34명을 기소하여 유죄 판결을 내렸다. 군사정권은 정치ㆍ사회적 위기가 닥치면 어김없이 공안사건을 과대 포장하거나 날조하여 국면전환용으로 써먹었다.


▲ 김신조 등 무장공비 31명의 서울 침투를 보도한 중앙일보 기사(1968.1.22) ⓒ 중앙일보 지면 캡쳐

해가 바뀐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위해 서울에 진입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반공을 국시로 삼고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면서 내세웠던 국가안보가 청와대 인근까지 공비가 들어오는 창담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박정희의 용인술은 김재규를 다시 필요로 했다. 방첩부대장에 임명한 배경이다. 자유당 시절 이승만 휘하에서 군권은 물론 정치에 개입하여 온갖 비행을 자행한 김창룡의 육군특무부대의 후신인 방첩부대의 이미지를 바꾸어 보안사령부로 개칭하였다.

연역을 살펴보면 1948년 5월 조선경비대 정보처 안에 특별조사과가 대공업무 전담기구로 설치되어 1949년 10월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대로 개편되고, 1950년 육본 직할로 특무부대로 독립했다가 김창룡의 독무대가 되었으며, 군사정권에서 방첩부대, 보안부대란 이름으로 공비소탕과 간첩검거 등의 임무를 맡았다.

김재규가 근무할 때의 방첩부대는 간첩검거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정보부의 위세가 막강하여 정치ㆍ사회쪽을 넘볼 처지가 못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보안사령관 재직시기인 1969년 4월 1일 중장으로 진급하여 바라던 별 3개를 달았다. 그리고 17개월만인 1971년 9월 23일 3군단장으로 전임되었다.

보안사령관에서 3군단장으로의 전임은 일종의 좌천이다. 박정희는 장기집권을 위해 1969년 9월 날치기로 국회에서 3선개헌안을 처리하고, 1971년 4ㆍ27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의 신예 김대중을 누르고 제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선거는 관권과 천문학적인 국가예산을 투입한 부정선거의 결과였다. 관권부정선거를 치르지 않으면 정권유지가 어려울 만큼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다.

박정희가 3선에 성공한 뒤 김재규 보안사령관을 교체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4ㆍ27대선의 논공행상에서 밀려난 것이 아닌가 관측된다. 박정희는 이때 대선을 치르면서, 더 이상 국민직선으로는 당선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유신통치체제를 구상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예측불허의 인물이다.

5ㆍ16 쿠데타가 그렇고 3선에 성공한 후 1971년 12월 6일 '느닷없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국가안보를 최우선시하고, 일체의 사회불안을 용납하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는 국민의 자유의 일부도 유보할 결의를 가져야 한다는 등 6개 항의 반헌법적인 특별조치를 발표했다.

대학가의 위수령 발동과 데모 주동학생의 가혹한 처벌로 이미 학원사태가 수그러들었고,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정부의 강경책으로 크게 위축되고 있던 시점에서 나온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그야말로 '느닷없는' 폭거였다.


▲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 소식을 전하는 언론기사(매일경제, 1972. 12. 29)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하고 국회의원 선거법을 개정하여 지역구별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하였다. 이로써 공화당은 전체 의석 2/3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 매일경제신문

박정희는 10여 년 동안 집권하면서 이미 독재권력에 도취되었다. 그가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곧 스스로 죽음을 의미했다. 그래선지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다시 한번 '느닷없이' 군대를 동원하여 헌법기능을 마비시키고 반대파의 정치활동을 전면봉쇄하는 사실상의 친위쿠데타를 감행했다.

박정희는 5ㆍ16쿠데타를 일으킨 지 11년, 3선연임 금지의 헌법을 고친 지 3년, 4ㆍ27대통령 선거로 7대 대통령에 취임한 지 불과 1년 반 만에 또 다시 친위쿠데타로 헌정을 짓밟고, 1인 독재권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로부터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에 의해 암살당할 때까지 7년 동안을 마치 봉건군주처럼 군림하면서 전횡을 일삼았다. 그중에는 "다양한 직업여성 100여 명을 보유"한 중앙정보부가 주선한 엽색행각의 품목도 들어 있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5월 06일, 목 3:1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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