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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단독] 80년 계엄사가 쫓던 프랑스 여성... '전두환 직인' 문건의 전말
[5.18 41주년 특별기획 - 두 여성의 5월 ①] 콜렛 노어는 어쩌다 합수부에 끌려갔나

<오마이뉴스>는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아 1980년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서 작성한 문건을 분석해 세 편의 기사로 싣는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다 신군부의 표적이 된 두 여성을 중심으로 뜨거웠던 그때를 재구성했다. [편집자말]


▲ 한국에서 활동하던 젊은 시절 콜렛 노어의 모습. ⓒ 전진상교육관

(서울=오마이뉴스) 소중한 기자 = 41년 전 만들어진 차디찬 문건. 취재는 그것에서 시작됐다.

16쪽짜리 얇은 문건엔 '합동수사본부장' 직인이 두 개나 박혀 있었다. 직인의 주인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이자, 국군 보안사령관이자,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꿰차고 있던 '쿠데타 수장' 전두환이었다.

이 문건은 여성 두 명을 겨냥하고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아 이 두 여성의 '역사'를 불러오고자 한다. 이 기사는 그 중 한 명인 콜렛 노어(Colette Noir)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혐의, 포고령 위반


▲ 1980년 7월 15일 계엄사 합동수사본부가 외무부장관에게 보낸 프랑스 여성 콜렛 노어에 대한 "수사협조 의뢰" 문서. ⓒ 외교사료관

1980년 7월 15일 합동수사본부(아래 합수부)는 외무부(현 외교부)에 '수사 협조 의뢰'란 제목의 문건을 보낸다. 2011년에야 외교부가 공개한 이 문건은 최근까지도 외교사료관에 잠들어 있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이 문건에는 프랑스인 여성 콜렛 노어가 피의자로 등장한다. 5.17 비상계엄과 5.18 민주화운동의 매서운 시절에도 콜렛 노어의 사례처럼 외국인이 소환조사 대상에 오른 경우는 없었다.

포고령 위반 관련 혐의로 조사코저 하니 해당 대사관과 협조 후 결과 통보 바랍니다.

사실 '의뢰'가 아닌 '명령'이었다. 당시 합수부는 신군부의 핵심 거점이었다. 반면 외무부를 비롯한 행정부는 껍데기만 남은 허수아비, 더 나아가 쿠데타 세력인 신군부에 꼬리를 흔들던 충견에 가까웠다. 협조를 요청하는 듯한 위 문장은 외무부 입장에선 '외국인 한 명을 잡아와야 하니 외교 문제로 불거지지 않게 잘 처리하라'는 '어명'과도 같았다.

합수부는 콜렛 노어를 "외국 수녀, 국제카톨릭여자협조회, 평신도 사도직, 45세 가량"으로 파악하고 있었으나, 실제 수녀는 아니었다. 어쨌든 '외국 국적의 종교인'은 무소불위의 합수부로서도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신분이다. 외교 문제는 물론 종교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콜렛 노어의 소환을 강행했다.


▲ 1962년 9월 콜렛 노어(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한국에서 활동한 국제가톨릭여자협조회(현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들. ⓒ 전진상교육관

문건이 생산된 시점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5월 18~27일) 두 달 후였다. 이는 권력 찬탈 작업을 착착 이어가던 신군부가 '학살의 뒤처리'를 수행하던 때다. 쿠데타를 일으킨 반란군은 민주주의를 요구한 광주시민들을 되레 반란 세력으로 모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진실을 알리려던 이들을 철저히 탄압했다.

신군부에게 콜렛 노어는 광주의 참상을 퍼뜨리는 눈엣가시였다. 때문에 어떻게든 그녀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합수부는 그녀에게 '포고령 위반' 혐의를 씌우며 이렇게 적었다.

1980년 5월 29일 명동 소재 문방구점에서 노동문제상담소 정 마리안나(41세)와 같이 광주사태에 대한 '어느 목격자의 증언'이란 유언비어 원고를 2부 복사해 그 중 1부를 광주에서 상경한 김성용 신부에게 전달함. 이로써 1980년 5월 30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모임에서 40여 명의 신부에게 유언비어를 전파하게 함.

광주 탈출한 신부의 기억


▲ 1980년 7월 23일 계엄사 합동수사본부가 외무부장관을 상대로 보낸 프랑스 여성 콜렛 노어에 대한 "조사 결과 통보" 문서. 하단에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직인이 찍혀 있다.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은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이었다. ⓒ 외교사료관

문건에 새겨진 단서들을 징검다리 삼아 당시 사건을 추적했다. 우선 김성용 신부와 연락이 닿았다. 1934년생인 김 신부는 5.18 당시 광주 남동성당 주임사제였다. 그는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작전이 자행된 1980년 5월 26~27일 서울로 탈출해 김수환 추기경과 여러 신부들에게 광주의 참상을 알렸다. 이 때문에 7월에 악명 높은 '서빙고(국군 보안사령부 분실)'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김 신부는 여전히 콜렛 노어를 기억하고 있었다.

"좀 난감한 상황이었죠. 추기경님과 신부들에게 (신군부의) 만행을 알려야 하는데 광주에서 보고 들은 걸론 좀 부족했거든요. 그러던 중 콜렛이 문서 하나를 건네줬어요. 아마 조심하느라고 외국인이 움직였겠죠. 제가 1963년 12월에 사제 서품을 받았는데요. 그보다 1년 전인 부제 시절부터 가톨릭노동청년회(JOC)와 깊은 관계가 있었어요.

JOC는 국제가톨릭여자협조회(AFI, 현 국제가톨릭형제회)와 교류를 많이 했었죠. 콜렛이 AFI에 속해 있어서 이전부터 안면이 있었어요. 아무튼 콜렛이 준 문서엔 상당히 무서운 내용들이 담겨 있었어요. 이거다 싶어 문서의 내용과 제 생각을 덧붙여 추기경님과 신부들에게 말씀드렸죠."

김 신부의 용기는 또 다른 이들의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서울의 여러 신부들이 광주의 진상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탰고, 그 내용이 가톨릭계를 중심으로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이러한 노력은 6월 초 '천주교 광주대교구 사제단' 이름으로 나온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이란 공개 발표문으로 이어졌다. 발표문엔 "군은 한국 근래 사상 유래 없는 유혈사태를 유발해놓고 그 책임을 광주시민에게 전가하기 위해 일체의 보도를 통제하고 사실을 은폐함으로써 광주시민들과 국민 전체의 가슴에 피맺힌 한을 남겨놓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로선 위험천만한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


▲ 전국 13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전국·서울·청주·인천·원주·춘천·수원·마산·안동·부산·전주·광주·수도회)이 1980년 6월 초 발표한 성명서. ⓒ 5.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신부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 발표문이 나오자 전국 13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전국·서울·청주·인천·원주·춘천·수원·마산·안동·부산·전주·광주·수도회)도 "광주대교구 사제단의 발표문이 진실임을 믿는다"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비극의 원인은 현 정부와 일부 군부의 광적인 살인 행위에 기인한 것임을 천명한다"며 "비상계엄 해제와 구속된 민주 시민·학생들의 석방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결국 김 신부와 함께 서울의 신부 다섯 명(오태순·양홍·김택암·안충석·장덕필)도 서빙고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계엄사는 "악질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며 이들의 연행 소식을 크게 발표했고 당시 그 내용이 여러 신문의 1면에 대대적으로 실렸다.

테이프 사건


▲ 1977년 콜렛 노어(왼쪽에서 두 번째)의 모습. 수염을 기른 남성은 함석헌 선생이다. ⓒ 전진상교육관

합수부가 거론한 콜렛 노어의 혐의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1980년 6월 3일 명동 소재 전진상교육관에서 정 마리안나로부터 '어느 목격자의 증언' 내용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1개를 받아 일본 (가톨릭) 정의평회위원회(정의평화협의회의 잘못 - 기자 주) 간부인 송 모에게 송달함. 이로써 그 내용이 일본 각 신문에 인용보도됨으로써 국제적인 물의를 야기함.

여기서 거론하고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윤순녀 평화의샘 대표가 기억하고 있었다. JOC에서 활동했으며 AFI 회원이기도 한 윤 대표는 "직접 '누런 봉투'를 날랐고, 나중에서야 그 봉투에 테이프가 담겨 있단 사실을 알았다"고 떠올렸다.

"5.18 당시에 저는 영국에 머물고 있었어요. BBC 방송에서 광주의 모습을 보고 6월 초 서둘러 귀국했죠. 그리고 정마리안나 언니를 만났는데 언니가 누런 봉투에 뭘 넣어서 미아동성당 양홍 신부에게 전해달라는 거예요. 제가 그 지역 출신이거든요.

(독재와 싸웠던) 우리끼린 감이 있으니 '이게 뭐냐'고 묻지 않았어요. 혹시나 잡혔을 때 알고 있는 게 많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봉투를 뜯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전달했죠. 나중에 신부님들이 끌려가고 사달이 난 뒤에야 그 봉투에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는 걸 알았죠."

양홍 신부도 당시 가톨릭계를 중심으로 테이프가 돌았던 사실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서빙고로 끌려가서도 테이프에 대한 질문을 받았어요. '불태웠다'고 하니까 그놈들이 손을 대기 시작하더라고요. 뺨을 치며 '이 XX 어디서 거짓말을 하느냐'고 그래요. 그렇게 다섯 놈한테 뭇매를 맞았죠. 그놈들은 그 테이프가 이북으로 넘어갔다고 그랬어요. 완전히 (관련자들을) 빨갱이로 만들어 역모자로 엮어버리려고 그런 작업을 벌이더라고요."


▲ 양홍 신부(왼쪽)와 윤순녀 평화의샘 대표. ⓒ 소중한

함께 만난 안충석 신부는 그 테이프가 일본에 넘어간 정황을 증언했다. 그는 문건에 나오는 '송모'를 떠올리기도 했다. '송바오로'로 알려진 그는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협의회에서 활동하던 1930년생 재일교포 송영순으로 안타깝게도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중간에 송바오로라는 분이 활동을 많이 했어요. 송바오로가 일본에 광주 소식을 전달했고,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협의회를 통해 여러 외신이 받아썼죠. 당시는 박정희 때보다 더 통제를 할 때거든요. 큰 힘이 됐어요."

이러한 사실은 안 신부의 증언뿐만 아니라 당시 외무부 문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1980년 6월 14일 자 외무부 '3급 비밀' 문서(해외 반한단체 동향 및 대책)에는 1980년 6월 5일 진행된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협의회 성명 발표 및 기자회견"이 기록돼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당시 기자회견에서 "광주사태를 목격한 광주의 한 가톨릭교회 신자의 자필 증언서 및 육성 카세트 3벌"이 발표됐고, 이 내용이 "동경발 AFP(6월 8일), 아사히신문(6월 6일 3면), 동경신문(6월 6일 5면)"에 보도됐다. 이에 외무부는 "6월 8일 해외공보관 대변인 명의의 반박 성명이 나갔고 서울발 AFP로 타전했다"고 적었다. 이 사건 역시 신부들이 서빙고로 끌려간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다.


▲ 1980년 6월 14일자 외무부 "3급비밀" 문서(해외 반한단체 동향 및 대책). 1980년 6월 5일 진행된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협의회 성명 발표 및 기자회견"이 기록돼 있다. ⓒ 외교사료관

결국 합수부에 불려가다

콜렛 노어는 결국 합수부에 불려가 두 차례 조사를 받았다. 5.18민주화운동을 전후로 외국인이 수사기관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경우는 콜렛의 사례가 유일하다. 이 사실도 1980년 7월 23일 합수부가 외무부에 하달한 문건에 고스라니 남아 있다. 합수부는 문건을 통해 "유언비어 유포 혐의자에 대한 조사 결과를 통보하니 해당 대사관으로부터 문의 있을 시 오해 없도록 조치 바란다"고 전했다.

콜렛 노어의 조사는 "7월 19일 오전 9시~오후 5시, 7월 21일 오전 9시~오후 1시"에 진행했다고 기록돼 있다. 특히 조사에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됐으며 "프랑스 대사관 영사 장 불라뜨"와 "신부 최세구(프랑스인)"가 입회했다는 내용도 문건에 담겨 있다.

수소문 끝에 '최세구'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제제구 로베르트(Jezegou Robert) 신부의 한국 이름이라는 걸 확인했다. 1930년생인 그는 1953~2013년 한국에 머무르며 민주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를 찾아 프랑스에 있는 제제구 로베르트 신부와 통화할 수 있었다. 60년 간 한국에 있었던 그는 한국을 떠난 지 8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하지만 제제구 로베르트 신부는 "(내가 콜렛 노어의 조사에 동행한) 그러한 사실은 있는데 (구체적으로 그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국 나이로 92세인 그는 기자의 질문이 잘 들리지 않는 듯 "1980년뿐만 아니라 이젠 과거의 기억이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했다.


▲ 1953~2013년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에서 활동한 제제구 로베르트(Jezegou Robert, 한국명 최세구) 신부. ⓒ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

이젠 합수부 문건에 콜렛 노어의 한국 주소라고 기록된 "서울 중구 명동 전진상교육관"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전진상교육관은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가톨릭 여학생들의 기숙사(가톨릭여학생관)로 활용됐으며 세계 각국에서 온 AFI 회원들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명동성당으로 가는 비밀통로가 있었을 만큼 민주화운동의 아지트였다.

AFI 회원인 윤순녀 대표를 따라 전진상교육관을 방문했고, 콜렛 노어가 현재 프랑스에 거주 중이란 안내를 받았다. 드디어 그녀와 연락이 닿았다.

"알려야만 했다, 반복되지 않도록"


▲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전진상교육관. ⓒ 소중한

수화기 너머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콜렛 노어는 "1934년 개띠"라며 유쾌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합수부 문건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그녀는 기자가 그 문건을 매개로 자신을 수소문했다는 것에 놀라는 듯했다.

1962년 한국 땅을 밟은 콜렛 노어는 무려 54년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그녀는 2016년 프랑스로 돌아갈 때까지 어둡던 한국 사회 곳곳을 비춰왔다. 독재정권 시절엔 민주화를 위해 힘을 쏟았고, 1990년대부턴 서울 난곡동과 신림동에 거주하며 철거민·빈민들과 함께했다. AFI 회원으로서 가톨릭계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합수부 문건에서처럼 수녀로 불리기도 했다.

5.18민주화운동은 그녀가 알리고자 한 여러 사건 중 하나였다. 콜렛 노어와 한국어로 주고받은 대화 일부를 그대로 전한다.


▲ 2016년 프랑스로 돌아간 뒤 콜렛 노어의 모습. ⓒ 윤순녀

-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왜 알리려고 했나요?
"(많은 사람이) 알아야만 했거든요. 그래야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죠. 광주에서 벌어진 일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전두환의 군인들이 광주에 들어가 사람들을 죽였어요. 하지만 TV, 라디오, 신문에선 (사실과) 다른 이야기만 나왔어요."

- 조사를 받으러 가면서 두렵진 않았나요?
"경찰에선가 한 번 (전진상교육관으로) 찾아왔어요. 같이 가자고 해서 '프랑스 대사관에 알리고 함께 가겠습니다'라고 답하자 버럭 화를 냈어요. 그래도 두렵진 않았어요. 왜냐면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조사할 때 몸에 이것저것(거짓말탐지기) 붙였는데 통하지 않았어요. (사실을 부인하는) 제 말을 (합수부가)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돌아가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라고 그랬고 더는 연락이 안 왔어요."

- 당시 한국 상황을 떠올려보면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나요?
"믿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제 신앙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나를 도구로 생각하고 성령을 믿으니 하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머물며) 내가 아는 좋은 사람들에게 항상 미안했습니다. 난 외국인이라 보호를 받았지만 나쁜 지도자들 때문에 그들이 너무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내 역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을 하루빨리 끝내고 싶었습니다."

콜렛 노어는 자신과 함께 합수부가 노렸던 '41세 정마리안나'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그녀는 "제가 조사받기 전에 이미 (정마리안나는) 잡혀서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마리안나와 함께 서빙고에 잡혀 있었던 양홍 신부도 건넛방에서 들렸던 '소리'로 그녀가 당했던 끔찍한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 정마리안나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 2016년 프랑스로 돌아간 뒤 콜렛 노어의 모습. ⓒ 윤순녀

[취재 도움]

윤순녀 평화의샘 대표
김성용·양홍·안충석 신부
케르모얼 임마누엘 신부(한국명 임경명,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
유혜심 전진상교육관장
정길자·정화숙·신경희씨

[참고 자료]

1980.5.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교황청 반응, 1980-81 (외무부)
1980.5.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관련 해외 반한단체 동향 및 홍보활동, 1980 (외무부)
5.18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제2권 (광주광역시 5.18자료 편찬위원회)
이 사람을 보라 1 (김정남)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5월 21일, 금 10:2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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