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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게으르고, 불친절하고... '불량 사법부'를 고발합니다
[서평] 최정규 변호사 지음, '불량 판결문'

(서울=오마이뉴스) 김민준 기자 = 세상에는 시민의 입장에서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판결이 많다. 특히 여러 성착취 사건에 대해 집행유예나 무죄를 내린 모 부장판사가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산 'N번방 사건' 재판을 맡게 된다고 했을 때 매우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주변 사람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해당 부장판사를 재판에서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때, "법감정을 재판에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흔히 '국민법감정'이라고도 불리는 '법감정'은 조롱과 폄훼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법은 절대로 비판할 수 없는 신성한 무엇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판결에 대해 지적하면 '법알못'이란 이야기를 듣고 만다. 그런데 법률가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불량한 법원, 불량한 판결


▲ <불량 판결문> 표지. ⓒ 블랙피쉬
<불량 판결문>(2021)의 저자인 최정규 변호사가 대한민국 법정의 부조리함과 불공정성을 꼬집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사법연수원 1년 차 시절에, 2년 차 연수생이 점심시간도 없이 하루 8시간 판결문을 쓰는 기록형 시험을 마친 뒤에 쓰러져서 세상을 떠난 사건이 있었다. 이후 간담회가 개최되었지만, 교수들은 '사법연수생은 국민에 봉사하는 법원 공무원이므로 8시간 기록형 시험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점심시간도 보장해주지 않는 사법연수원의 8시간짜리 시험에 대한 교수들의 완강한 입장처럼 우리 사회는 상식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법을 뜯어고쳐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강하다. 법이 만들어진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가치를 '법적 안정성'이라고 하는데, 법의 불합리함을 비판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했다.

"법적 안정성은 일개 변호사나 활동가가 고려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적 안정성을 걱정할 만큼 이주 노동자나 장애인의 상황이 느긋하지 않다. 사실 굉장히 다급하다. 당장 오늘도 하루에 10시간 일하고 있는데, 정당한 임금이나 숙소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분들의 피해를 묵인하는 제도와 관행, '지금까지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왔으니 앞으로도 동일하게 유지해나가자'라는 식의 논리는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랑은 조금 결을 달리하는 것 같다. 법적 안정성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이분들의 피해를 빨리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합리한 법이 문제니까 국회를 압박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국회에서 법이 만들어지고 나면, 이후에 법원에서 법이 '해석'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판사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치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하기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판례'는 이후의 판결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저자는 어떤 사건을 접할 때마다 판례를 찾아보는 자신의 행위를 "나쁜 습관"이라고 설명한다. 판례가 힘 있는 자들의 논리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큼에도, 판례를 확인하는 것 외에 생각을 멈추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힘 있는 자들의 논리로 가득 찬 공간인 법원은 심지어 게으르기까지 하다. 재판 시간을 어기거나 일방적으로 미루는 판사, 생략되고 왜곡되기 일쑤인 변론조서, 정확히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는 변론 기일, 불친절한 법률 서비스 등등... 이런 것들이 모여 불량한 법원과 불량한 판결이 생겨나는 것이다. 법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은 누구나 법원이 이렇게나 게으르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다.

법원에 대한 비판은 자칫 사법부의 독립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권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법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또 우리가 존중해야 할 건 사법부가 선고하는 판결이지 불편부당한 서비스가 아닐 것이다. 법원에서 선고하는 판결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을 향한 법원의 불편부당한 서비스는 비난받아야 한다. 높디높은 법원 문턱이 다 사라져 국민들이 지금보다 더 쉽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희망해본다.

고민하는 법원으로 거듭나길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이 이 책에는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사건들과 관련한 판결은 언제나 논란이 됐다. 단순히 '판례가 원래 그래', '감정적으로 바라보면 안 돼'라는 말 앞에서 사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을 그만 두기엔, 판결이 우리의 일상에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래서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판결문을 모니터링하면서 판결문 공개를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판결문은 법원의 전유물이 아니라 공공재여야 한다는 취지인데, 2013년부터 대법원은 판결문을 일부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최 변호사는 "좋은 판결문이 좋은 세상을 만들게 하"는 일에 일조하기에, 판결문 공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 변호사는 이런 "'의도적 눈감기'의 카르텔"을 깨고 싶어서 법조인으로 활동하면서 글을 쓴다고 했다. 평범한 시민들 역시 불합리함 앞에서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 이들이 누군지 끊임없이 지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비상식적 판결을 향해 이 책이 내린 일침이 반가운 이유다.

법정에서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가 없는 판사를 만날 때면 몰래 교재를 꺼내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하던 사법연수생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법조 윤리는 집어 던진 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그저 좋은 성적만 챙기려 했던 그들이 현재 대한민국 법조인으로 국민들의 삶을 망치는 불량 판결문을 내놓고 있다.

또 그들이 앞장서 운영하는 법원이 현재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그 어떤 관공서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불친절한 서비스임은 너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중략) 판사들이 지금처럼 국민을 위해 그 힘을 쓰지 못하고 악용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맡긴 사법 권력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5월 21일, 금 10:3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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