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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세월호 참사가 내탓 같다"는 아빠, 일상이 시한폭탄
[세월호 의인과 꼴통, 김동수 가족 이야기] 큰딸 김예람편 ② 변해버린 아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7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이런 가운데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과 이들을 지키려는 가족들조차 아직도 매일 악몽을 꾸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파란바지 의인'으로 알려진 김동수씨 가족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 생존자와 그 가족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생히 전해드립니다. 지난호에 이어 큰딸 김예람씨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편집자말]




(서울=오마이뉴스) 변상철 기자 = 아빠가 탄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엄마한테 듣고는 전화를 끊고 바로 엄마가 있는 농협까지 뛰어갔죠.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엄마가 농협 주차장에 주저앉아 있었던 것 같고, 그곳에서 고모랑 외삼촌을 기다렸어요. 외삼촌이 차를 가지고 오셔서 그 차를 타고 해경 사무실로 갔어요.

해경사무실에는 이미 기자들이 있었고, 뉴스에서는 '전원 생존'이라고 나오고 있었어요. 전원생존이라고 하는데 왜 아빠와는 연락이 안 되느냐고 따졌더니 일단 저희더러 숙직실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아빠는 계속 연락이 안 되고 정말 답답했어요.

시간이 한참 지나서 아빠한테 전화가 왔는데 말없이 끊어지고, 또 전화가 오면 말없이 끊어지고 그렇게 대여섯 번 반복이 되는 거예요. 전화가 그렇게 오니까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마지막 순간이 되니까 가장 미안한 사람한테 전화한 것 아니냐고요.

건물 안이라서 자꾸 끊기는 건가 해서 건물 밖 마당에 나가서 전화를 했더니 아빠와 통화가 되더라고요. 괜찮냐고 하니까 "아빠는 괜찮다. 그런데 아직 배 안에 사람들 많다. 빨리 해경에 말해라"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해경에 가서 "구조 안 됐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더니 전원 구조됐다고 우선 집에 가 있으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죠.

집에 와서도 뉴스를 계속 틀어놨어요. 아빠 말로는 아직 많은 아이들이 안에 있다고 하는데 뉴스에서는 전원 구조라고 방송을 하니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그런데 전원 구조가 점점 실종으로 바뀌더라고요. 그런 걸 보니까 차라리 뉴스에서 생존 이런 말 하지 말고 아직 모르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엄마는 출근하고, 할머니하고 저하고 있었어요. 동생은 나중에 집에 왔어요.

동생하고 저하고 그날 많이 울었어요. 그때 당시로는 세월호 참사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 제주 오현고등학교 아이들이 그 시간에 세월호를 타고 육지로 수학여행 가려고 체육관에 모여 있었다고 들었어요. 동생하고 같은 또래 아이들이잖아요. 그래서 더 눈물이 났어요. 아빠가 살았다는 안도감에 울었던 것도 있고요.

그런데 세월호 기억이 자세히 나지는 않아요. 희미하게 기억이 날 뿐이죠. 예전에 한번 상담하는 분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제가 그렇게 기억을 못 하는 이유가 저 스스로 힘든 걸 잊어버리려고 하는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빠 맞나

세월호 참사 다음 날 아빠가 제주항으로 돌아온다고 해서 마중 나갔는데 놀랐어요. 그렇게 카메라가 많이 있을 줄 몰랐거든요. 아빠를 데리고 빨리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항구에 갔거든요. 아빠가 배에서 내려오자 난리도 아니었어요. 분명히 처음에 엄마, 저, 동생 모두 같이 붙어 있었는데 아빠가 나오자 우리 각자에게 기자들이 몰려서 마이크를 들이대서 완전히 분리되어 버렸어요. 각자 쏟아지는 인터뷰에 정신이 없었어요.

아빠하고 동생이 만날 때 기자들이 엄청 몰렸어요. 그날 교복 입은 동생 사진이 방송과 신문에 크게 나왔죠. 그곳에서 거의 한 시간 정도 잡혀있었던 같아요. 아픈 사람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요.

항구를 빠져나와서 아빠를 한국병원에 입원시켰어요. 마침 동생 친구 할아버지가 병원장이어서 VIP 병동에 들어갈 수 있었죠. 아빠가 입원해 있는 동안 제가 아빠 곁에서 간호하면서 그곳에서 생활하다시피 했어요. 병실도 크고 온돌바닥도 있어 그곳에서 잠도 자고 했죠. 그때부터 4~5년 정도 소방관 공부는 접어야 했어요. 엄마는 일을 해야 했거든요. 낮에는 아빠 돌보고, 겨우 밤에 근처 독서실 가서 공부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한번은 한국병원 있을 때 제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아빠가 사라진 적이 있어요. 얼마 있다가 간호사 선생님이 아빠가 응급실 있다고 해서 가보니 자해를 했더라고요. 그런 일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제가 아빠에게 눈을 떼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아빠가 육지에 있는 병원에 갈 때마다 같이 따라가고 하다 보니까 더욱더 소방 공부를 하지 못했죠.

공무원 시험은 대부분 2~3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고 하는데 제 경우는 2019년도에 동생하고 4~5개월 공부해 본 것이 제대로 공부해 본 전부였어요. 지금은 공부하기에는 지친 것 같아요. 그래도 그 힘든 시간을 버틴 저 자신이 대견해요. 저도 어떻게 버텼는지 정신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아빠가 세월호 참사로 입원했을 때 병원에 기자들이 자주 찾아왔어요. 그때 아빠 심리가 불안하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기자들이 비슷한 질문만 계속하고, 위로해주려는 마음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기자들은 자극적인 기사거리를 만들기 위해 오는데 아빠는 자꾸 그런 기자들을 만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빠에게 기자들 오는 것이 싫다고 했더니 막 화를 내더라고요. 나는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은데 너는 왜 못 오게 하느냐며 화를 내는 거예요. 사람이 화를 내면 눈빛이 변한다는 걸 아빠를 보고 알았어요. 아빠 분노가 폭발할 때 눈빛이 다른 사람처럼 변하더라고요. 세월호 전에는 화가 나도 그러지 않았는데 사고 이후로는 아빠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갑상선 수술 후유증으로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더 몸이 안 좋을 때였어요. 흥분한 아빠를 말리려고 아빠 몸을 잡으면 제 몸이 너무 아픈 거예요. 한 번은 광화문에 간 적이 있는데 아주 잠깐 사이에 아빠가 없어졌어요. 급한 마음에 엄마가 페이스북에 소식을 올리니까 누가 경찰하고 아빠가 싸우고 있다고 알려줬어요. 그래서 바로 달려가서 아빠를 붙잡고 말리는데 몸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제가 쓰러지고 구급차에 실려서 응급실에 가게 됐어요.

세월호 이후로 아빠는 계속 분노에 차 있는 사람이었어요. 시한폭탄 같았어요. 일상이 불안했어요. 아빠는 자꾸 세월호 집회하는 곳이나 사람 많은 곳에만 간다고 하고, 가족들은 못 간다고 반대해요.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가니까요. 갑자기 사라지고 마니까요. 진짜 세월호 참사 나고 한 5년 정도는 하루하루가 불안했어요.




무너져버릴 것 같은 엄마

사실 뒤돌아보면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기도 해요.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지만 결국 집에 남은 건 엄마 때문이었어요. 집을 벗어나고 싶어도 엄마 생각에 못 나갔죠. 그때는 힘들어도 내가 내 자리를 잘 지키고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내가 무너지거나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엄마가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지금은 동생에게도 좀 기대는데 그 당시에는 엄마가 무너지면 가족이 와르르 무너지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각자 자기 자리에서 버티고 있어야 했어요. 서로 힘든 걸 아니까. 말을 하지는 않지만 버티고 있었어요. 눈치 게임 하는 것 같았어요. 내가 힘들다고 칭얼대고 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순간순간 전쟁터 같아서 뒤돌아볼 겨를이 없었어요. 이 순간만 지나가자 하는 생각이었어요.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겠지 하며 버텼는데, 결국 내일은 더 최악이고 모레는 더 최악이고 했어요.

지금은 뭔가 아빠가 괜찮아졌다기보다는 잠시 휴식기 같은 느낌이에요. 오히려 더 불안해요. 이러다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이에요. 아빠는 잘 참다가 한순간 터져요. 뭐든 예고편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러데 아빠는 갑자기 팡 터지니까 가족들이 항상 긴장하고 대비해야 해요. 숨을 쉬는 내내 항상 긴장해요.

아빠가 분노하는 이유는 계속 바뀌어요. 해경이 원인이었다가 국가였다가 또 다른 이유였다가 계속 바뀌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빠가 좋아지거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2014년 4월 16일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전혀 좋아지지 않을 것 같아요. 정책이 좋아지거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더라도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돌아보면 다른 화물기사 삼촌들은 아빠보다 괜찮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아빠는 마음이 더 여리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 대한 아픈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고요. 아빠는 처음부터 세월호 참사가 자기 탓 같다고 하고, 더 많은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어요. 그러다 보니 세월호 고통이 지금까지 더 아픔으로 남아있지 않은가 생각해요. 그러니까 남들 살려고 할 때 혼자 들어가지 않았겠어요?

어쩌다 우연히 세월호 침몰하는 영상을 봤는데 아빠가 혼자 호스를 들고 홀 안으로 직접 들어가더라고요. 그거 보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저렇게 사람들 살리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더 큰 트라우마가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빠는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가 나고 몇 개월 지나서 팽목항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아빠와 갔었어요. 광화문도 많이 갔고요. 광화문에서 세월호 서명도 돕고, 촛불집회에도 참가했어요. 아빠는 뭐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간 거죠. 항상 미안함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전 사실 아빠가 그렇게 가는 것이 싫었어요. 어딜 가도 생존자 가족이 간다는 것이 불편해요. 어쨌든 아빠는 살아왔기 때문에 저는 솔직히 좀 그렇더라고요. 사실 세월호를 아예 잊고 싶었기 때문에 안 보고 안 듣고 하면 괜찮은데 아빠와 있는 동안 그게 안 되니까요. 그런 공간에 가거나 만나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였어요.

우리 가족들에게서 세월호가 떨어져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세월호 사고 난 뒤로 아빠와 같이 있다 보면 아빠가 기자들에게 같은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것이 싫더라고요. 세월호와 관련 없는 사람까지도 만나기 싫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꼭 매년 그 기억을 자꾸 꺼내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힘들다기보다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예요. 전에는 기억을 지우고 싶었는데 자꾸 이야기를 꺼내게 되니 점점 선명해져요.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5월 24일, 월 3:2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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