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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세월호 보상금으로 차 바꿨다? 우리 모습을 보세요
[세월호 의인과 꼴통, 김동수 가족 이야기] 큰딸 김예람편 ③ 몸의 이상반응

(서울=오마이뉴스) 변상철-이희훈 기자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7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이런 가운데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과 이들을 지키려는 가족들조차 아직도 매일 악몽을 꾸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파란바지 의인'으로 알려진 김동수씨 가족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 생존자와 그 가족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생히 전해드립니다. 이번 글은 큰딸 김예람씨의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말)

대학교 2학년 때 김녕해수욕장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하루는 해수욕장 특별 야간개장 하는 날이었는데 마침 축제도 함께 열렸거든요. 물 위에 부표를 띄워놓고 춤추고 맥주 마시는 신나는 행사였어요. 그 축제가 엄청 인기였어요. 마침 그날 저는 쉬는 날이라 동생이랑 동생 친구랑 함께 놀러 갔어요.

그날 야간개장 축제가 밤 10시 정도에 끝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행사가 끝나니까 안전요원들은 모두 퇴근해버렸을 것 아니에요. 축제가 끝났다고 사람들이 바로 돌아가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몇몇 사람들이 더 남아서 축제를 즐기고 있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문제가 생긴 거예요.

안전요원이 퇴근하고 나서 남아서 축제를 즐기던 150kg 정도 되는 남자가 물에 빠진 거예요. 여러 사람이 건져내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어둡고 하니까 사람이 물에 빠진 걸 늦게 발견한 거죠. 물에서 건져냈을 때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어요. 동생은 상황실 가서 안전요원들에게 이야기하고, 저는 바로 물에 빠졌던 남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했죠. 그분이 워낙 술을 많이 마시기도 했고, 너무 늦게 건져냈어요. 구급차 올 때까지 CPR을 계속 하고 구급차에 실어 병원으로 갔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결국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는 무서운 것이 없어요. 저희 과 같은 경우는 CPR 연습을 엄청나게 시켜요. 또 교수님이 특별히 성적 좋고 열심히 잘하는 아이들 10명 정도 뽑아서 경찰서나 공익근무요원들 앞에서 강습하도록 내보내기도 해요. 그렇게 연습하고 실전 강습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게 되죠. 물에 빠진 사람 만났을 때도 그냥 무의식적으로 CPR을 하게 돼요.




몸이 말을 듣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아빠가 함덕 집에서 처음 자해했을 때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았어요. 가족이 아닌 사람이 다쳤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막상 내 가족이 그런 상황이 되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그 당시 아빠가 자해한 후 변기에 축 늘어진 상태로 앉아 계셨는데 그 모습을 보니 몸을 쉽게 움직이지 못하겠더라고요. 남이랑 내 가족이 그럴 때 엄청 달랐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아무런 대비도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그런 상태의 아빠를 보는 건 정말 다른 것 같아요. 그 당시 아빠가 많이 힘들어할 때였기 때문에 심정이 더 복잡하고,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어요. 부정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저는 괜찮은데 엄마는 그날 일을 굉장히 미안해하더라고요. 특히 저를 놔두고 아빠 따라서 엄마 혼자 응급실에 간 것을 굉장히 미안해해요. 사실 제가 힘든 건 괜찮아요. 그런데 가족이 힘들어하는 건 힘들더라고요. 가족이 힘든 것이 제게는 너무 힘들어요. 저도 물론 응급실 따라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가 엄마 따라가면 동생이 화장실에서 그 흔적을 볼 것 아니에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똑같이 그랬을 거예요. 그 흔적을 동생이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오로지 동생이 그 장면을 마주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어요.

2015년이었던 것 같은데요. 아빠와 엄마가 세월호 청문회 간다고 육지 올라갔는데 엄마에게서 아빠가 자해했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제가 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어요. 녹색병원으로 바로 갔던 거 같은데 그때 상황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그때 심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래도 엄마와 아빠가 같이 입원했다는 것이 좀 생소했고, 제주병원이 아니라 육지 병원에 있다는 것도 생소했어요. 입원하는 동안 엄마 생일을 맞아서 생일 케이크를 놓고 사진 찍었던 기억도 있어요.

그때는 아빠 때문에 엄마가 조금 지쳐 있을 때라 이참에 엄마도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우리 가족은 그런 상황이라고 다운되거나 그러지 않아요. '그런 일 있을 수 있어' 하면서 항상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해요. 엄마도 아빠도 항상 그래요. "이왕 벌어진 일, 꽁하게 힘들게 있을 필요는 없다"라고 말을 해요.

다만 살면서 우리가 딸이라서, 여자라서 힘들거나 무시당한다는 것이 속상할 때는 있죠. 2016년에 우리가 신촌 집에 살 때 아빠와 엄마가 청소업체인 '클린하우스'라는 회사에서 일을 했거든요. 아빠가 퇴근할 무렵에 정신과 약을 먹고 오면 술 취한 사람처럼 몸을 가누지 못해요. 저희가 2층 집에 살 때라 제가 내려가서 부축하고 올라와야 할 정도로 약에 취해서 와요. 완전히 축 늘어졌다고 보면 될 정도예요. 그런 아빠를 부축해서 올라오면 많이 힘들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집에 오빠나 남자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전에는 안 그랬는데 세월호 터지고 나서 집에 오빠든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더라고요. 아빠가 막 흥분했을 때 딱 잡아줄 남자가 있으면 좋겠어요. 또 어딜 가도 딸들이고 여자니까 상대방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뭔가 키 크고 덩치 큰 남자가 있으면 저렇게 우리한테 함부로 대할까 하는 생각이 들죠.

2019년에 고대 안산병원에서 의사와 문제가 생겨서 소송을 했을 때 그게 좀 느껴졌어요. 특히 아빠가 아파서 병원에 자주 가다 보니까 병원 보안들하고 자주 부딪히는데 그럴 때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제가 병원 갈 때도 약간 까다로운 문제로 이야기하면 접수처에서 근무하는 남자 직원들이 무시하는 느낌을 받아요. 같은 병원의 직원이 저에게 대하는 태도와 제 남자 친구에게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른 걸 경험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 경우를 당하면 차별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전화 받으면 숨이 턱 막혀

2016년경 제주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11개월 계약직으로 합격해 근무하게 되었어요. 구급상황관리사로 일하는 거였어요. 그곳에서 하는 일은 일단 119 신고가 들어오면 신고 전화를 받고 전화 건 분들에게 응급 치료 방법이나 상황이 심각하면 CPR 방법 등을 알려주는 일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신고전화가 들어오면 책상 앞에 있는 커다란 전구에서 불빛이 번쩍번쩍 나고 모든 근무자가 들릴 수 있도록 벨소리도 엄청 크게 나도록 되어 있어서 깜짝 놀란다는 거예요.

하루는 신고 전화를 넘겨받는데 아빠 자해했을 때가 딱 떠오른 거예요. 숨이 뭔가 턱 막히면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돼버리더라고요. 심장이 엄청 빨리 뛰고요. 이후로도 벨 소리만 듣고 나면 아빠의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몸이 그렇게 반응해요. 원래 제가 하루에 물을 한두 잔 밖에 안 마시는데 그 일을 할 때는 하루에 물을 5~6리터 정도 마셨어요. 거기서 일할 때는 계속 긴장 상태였어요. 결국 한 달도 못 버티겠더라고요. 제가 먼저 못 하겠다고 말을 했어요.

보통 사람은 잘 이해를 못하죠. 그만두는 이유를 말해도 잘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제 성격상 뭔가 시작하거나 맡으면 완벽하게 해내고 끝날 때까지 끝을 봐야 하는데, 그렇게 그만두니 저도 엄마도 당황했어요. 당연히 잘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그만두니까. 저를 잘 아는 친구는 오죽 힘들어했으면 그만둘까 하고 이해해 주는데,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참고 해보지라며 쉽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물론 그것도 이해가 돼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해는 가요. 그렇지만 마음은 좋을 리 없죠.

아빠는 그만두는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어요. 아빠도 대충은 알죠. 말은 안 해도 저에게 엄청 미안해하시는 걸 알죠. 미안함은 항상 가지고 있는데 저에게 표현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혹시라도 아빠가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까 봐 저도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아빠는 소방시험 떨어지는 것도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엄마, 동생, 저 이렇게 셋만 있는 단톡방이 있어요. 그 방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아빠한테 말하는 것이 좋을지, 어떻게 해야 아빠가 덜 상처를 받을지 등을 논의해요. 최근에는 아빠 상태가 좀 진정되면서 세 명 단톡방이 이전만큼 활발하지는 않아요. 제가 시험공부를 하고 있기도 하고, 엄마와 동생이 전화 통화로 바로바로 말해주기도 해서 단톡방을 잘 활용하지 않아요. 아빠에게 뭔가 상황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전에는 소송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빠가 모르는 기사나 아빠가 신경 쓸 기사거리가 올라오면 그런 것 올라왔다며 공유하거나 논의해야 할 일이 많았거든요. 그 단톡방에 아빠는 없지만 단톡방 내용의 90%는 아빠를 위해 논의하는 내용이었어요. 아무래도 아빠가 주목을 받다 보니 우리 가족에 대한 가짜 이야기가 적지 않아요.

예를 들어 아빠가 화물차 보상받은 걸로 차도 바꿨다, 뭐도 바꿨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봤어요. 당시 우리 가족이 함덕 집에 세 들어 살 때인데 외식도 못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고, 세탁기가 고장 나도 고칠 돈이 없어 한겨울에 엄마가 손빨래했을 정도였어요.

또 한 번은 모 신문 기자가 기사를 썼는데 굉장히 악의적으로 썼더라고요.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 기사를 보고 엄마하고 제가 기자에게 전화해서 엄청 뭐라고 했어요. 그래도 그 기자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자기 멋대로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쓰는, 한마디로 말이 안 통하는 기자였어요. 저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했어요.

세월호 참사로 인한 상처도 있지만 사람들의 편견과 거짓 이야기에 더 많은 상처를 받았어요. 세월호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계속 일어날 것 같아요.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6월 11일, 금 3:0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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