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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32년 만에 다시 선 법정... 제가 아직도 북침설 교사입니까?
[재심 결심공판 최후진술문] 야만과 광기의 시대가 남긴 상처, 이제는 보듬어야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2019년 5월 28일 청주지방법원에 재심 신청을 했다. ⓒ 강성호

(서울=오마이뉴스) 강성호 기자 = 6.10 민주항쟁 기념일인 오늘은 저의 재심 결심공판이 열리는 날입니다. 32년을 기다린 끝에 작년 1월 30일 시작한 재심 공판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34년 전 오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우리 국민은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헌법 개정과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주의 공간을 확장했습니다.

그러나 폭압에 맞서 목숨 바쳐 싸운 수많은 민주 열사와 시민들이 이룬 민주화는 노태우 당선과 김영삼 3당 야합으로 뒷걸음 치고 말았습니다. 후퇴한 역사는 평범한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저에게 생각하지도 못한 시련을 안겨 주었습니다.

6월항쟁이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1989년 5월, 당시 초임 교사였던 저는 '북침설 교육'을 했다는 혐의로 수업하다 경찰서로 끌려가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을 저지하는데 필요한 '빨갱이 사냥'에 나선 공안당국이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국가권력과 언론이 총동원해 만든 '북침설 교사'는 교단을 떠난 지 10년 4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2019년 11월, 촛불시민혁명이 이룬 문재인 정부에서 저는 30년 만에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재심을 마무리하는 법정에서 다시 피고인석에 앉은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제가 아직도 북침설 교사입니까?"

2021년, 대한민국 사법부는 이 질문에 과연 어떤 답변을 내놓을까요. 저의 재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을 공개합니다.

[최후진술문] 야만과 광기의 시대가 남긴 상처, 이제는 보듬어야 합니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일 직전에 발생한 북침설 사건은 전교조 결성 저지를 위한 여론 조성용이었음을 증명한다. ⓒ 자료사진

존경하는 재판장님!
32년 만에 다시 선 법정에서 최후진술을 하려니 온갖 생각이 스쳐 갑니다. 2020년 1월부터 오늘까지 1년 5개월 동안 재심 공판이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 피고로서 그동안 공판에 참석하며 느낀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모로 서툰 글이지만 끝까지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32년 전 5월 15일 스승의 날, 3월 첫 발령을 받고 교단에 선 저에게 제자들이 불러준 '스승의 날' 노래입니다. 그날 저는 제자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 내 온 삶을 바치리라…."

그로부터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그해 5월 24일, 저는 수업 하다 교장 선생님이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교장실로 갔습니다. 교장실에는 낯선 남자 두 사람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찰서에서 왔다는 그들은 제 이름을 묻더니 잠시 가야 할 일이 있다며 경찰서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체포영장 제시나 미란다 원칙 고지 등 '형사 절차의 인권 보장 원칙'은 한낱 휴짓조각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경찰서에 끌려간 저는 믿기지 않는 현실과 마주쳐야 했습니다.

밤늦은 시간 대공과 조사실에서 얼굴을 맞댄 제자 세 명은 저를 '북침설'을 가르친 간첩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자 한 제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자가 선생님에 대하여 어떻게 감히 경찰서에 와서까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강 선생님은 분명히 6.25는 남침이 아니고 북침이다고 말하였고, 사진을 보여주면서 북한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잘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1989년 5월 25일 작성한 제천경찰서 피의자신문조서(3회) 205쪽에서 인용

불과 몇 시간 전 교실에서 제가 한 수업을 들었던 제자였습니다. 그런 제자가 스승을 '간첩이라고 생각했다'라느니, '스승 앞에서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느냐?'라며, 제가 6.25 북침설과 북한 찬양 교육을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제자가 하는 말을 듣고 있어야 했던 저는 끝 모를 바닥으로 떨어지는 절망감에 허물어졌습니다. 차가운 유치장 마룻바닥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슬픔과 연민, 절망과 분노로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저는 다짐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내게 주어진 십자가라면 기꺼이 지겠다고, 거짓과 불의에 맞서 진실과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반드시 보여주겠다고 말입니다. 그 믿음 하나로 32년 모진 세월을 견뎌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애초에 제 수업은 법정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잣대로 재단할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초임 교사였던 저는 어떻게 하면 교과 내용을 재미있고 의미 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하다가 담당 과목인 일본어 수업 시간에 장소, 방향, 비교를 나타내는 지시 대명사를 가르치면서 일본 후지산과 백두산, 금강산 사진을 함께 보여주며 아름다운 북녘 산하를 가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전해주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수업을 '좌경의식화교육'으로 뒤집어씌운 당시 학교장 태도는 스스로 교육자이기를 포기한 행위였습니다. 교장이 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한 수업내용을 담당 교사를 불러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경찰에 먼저 고발하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를 우리는 살았습니다.

제자를 시켜 스승을 고발하게 하고, 제자와 스승을 한 법정에 세워, 수업에 결석한 제자가 북침설과 북한찬양 수업을 들었다고 한 거짓 증언을, 경찰과 검찰은 유죄증거로 제출하고, 법원은 유죄판결을 내린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았습니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한 개인이 가진 인격과 양심과 교권을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대를 우리는 살았습니다.


▲ 1989년 10월 17일 <한겨레>는 "전교조 결성 여론 나쁘게 몰아가려 "북침설 발언" 교사 구속시기 조정 경찰 수사기록서 드러나"라고 보도했다. ⓒ 한겨레

존경하는 재판장님!
오늘은 6.10 민주항쟁 기념일입니다. 34년 전 오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우리 국민은 전두환 군부정권에 맞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헌법 개정과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주의 공간을 확장했습니다. 이처럼 폭압에 맞서 목숨 바쳐 싸운 수많은 민주 열사와 시민들이 있었기에 주권재민이라는 헌법 정신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권위주의 정권에서 일어났던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사례는 여전히 진실이 감추어진 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앞서 이원영, 오원근 변호사님께서 최후변론에서 지적하신 대로 제 사건이 발생한 1989년 5월이라는 시대 상황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1989년 9월 이철 의원(무소속)은 청와대 비공개문서인 '교원노조분쇄대책'이라는 문건을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개하였습니다. 이 문서 내용을 보면 당시 노태우 정권은 전교조 결성을 저지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989년 5월 전교조 출범을 앞두고 청와대를 정점으로 법무부, 내무부, 안기부, 문교부, 총무처, 감사원, 문공부 등 모든 국가기관이 참여한 '교원노조분쇄를 위한 대책기구'를 구성한 내용과 전교조 결성 자체를 저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활동 상황이 상세히 적혀있습니다.

오늘 이 법정에는 32년 전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고초를 겪고 정권이 자행한 탈퇴 공작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직까지 당한 여러 선생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지난 5월 27일,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노태우 정권에서 벌어졌던 반인륜적이고 반교육적인 전교조 탄압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결정하고 조사에 본격 착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노태우 정권은 자주적인 교원노조를 결성하려던 선생님들을 '체제전복세력'이라며 교단에서 내쫓았습니다. 전교조 참교육을 '북한 혁명전략에 동조하는 사상'이라며 여론을 조작하였습니다. 통일 의지를 심어주고자 했던 초임 교사 수업을 '좌경의식화교육'이라며 전교조 와해를 위한 홍보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국가권력과 언론을 총동원한 국가폭력 앞에 속절없이 '빨갱이 교사'로 내몰린 스물여덟 청년 교사는 발령 받은 지 석 달도 되지 않아 교단에서 내려와야 했고, 8개월 감옥생활을 마치고 다시 10년 4개월을 학교 밖 교사로 지내야 했습니다.

32년 전 대한민국 법정에서는 제자와 스승이 국가보안법 증인과 피고로 맞서야 했습니다. 피고였던 스물여덟 청년 교사는 이제 정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증인이었던 열여덟 여고생 제자는 오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 스승은 '북침설 교사'라는 낙인이 찍힌 채 인권과 교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자 역시 스승을 고발했다는 멍에를 안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32년 만에 다시 대한민국 법정에 선 저는 간곡히 호소합니다. 야만과 광기가 지배하던 군부 독재 시절, 체제 유지를 위한 희생양으로 짓밟혔던 저와 제자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나라가 아직 양심이 살아있고, 아직도 정의가 다 죽지 않았으며, 아직도 진실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야만과 광기가 지배하던 시대가 남긴 아픔을 치유하고, 이성과 상식이 통하는 시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최후진술을 마치겠습니다.

최후진술을 마치며 여러분께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오랜 기간 공판을 진행하며 공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재판부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내려와 주신 이원영 변호사님, 기꺼이 변론을 맡아주신 오원근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 탄원서를 제출해주신 동료 선생님과 한마음으로 응원해주신 전희영 위원장을 비롯한 전교조 조합원 여러분, 의견서를 전해주신 김병우 충북교육감을 비롯한 열두 분 교육감님, 재심 공판 내내 함께해주신 교육민주화동지회 황진도 회장님, 양운신 사무처장님을 비롯한 동지 여러분, 전교조 충북지부 조합원 여러분, 해직 교사였던 저를 만나 30년을 함께하며 한결같이 힘이 되어준 사랑하는 아내, 든든한 동지인 서유나 선생님, 이 모든 분이 계셨기에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분단 시대가 낳은 인연으로 조금은 편치 않게 만나 뵙게 된 검사님께도 그동안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제 이야기에 끝까지 귀 기울여 주신 판사님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 말씀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21. 6. 10.

피고인 강성호

청주지방법원 제2형사부 재판장님 귀하(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6월 14일, 월 8:4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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