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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도 못 사 먹는 1000원으로 할 수 있는 큰 일
이주노동자 치료비 지원 에 10여년, '동행과 행동' 대표 이정기

(서울=오마이뉴스) 민병래 기자 = 지난해 12월 20일 경기도 포천에서 이주노동자 '속헹'이 밤사이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기숙사라 불린 그의 숙소는 난방조차 안 되는 컨테이너박스였다. 그날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는 캄보디아에서 온 그의 몸을 거칠게 파고들었을 것이다. 창문도 없고 보온도 안 되는 방, 잠금장치도 없는 간이화장실, 그가 몸을 뉘였던 곳은 움막이나 다를 바 없었다. 놀라온 것은 속헹이 이런 곳에서 살며 기숙사비까지 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경찰은 국과수 부검 결과 "간경화 합병증이 사인이고 '동사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듣고 "영하 20도에 난방이 안 되는 방에서 한밤중에 숨졌는데 얼어죽은 게 아니라니, 제대로 조사를 한 거야?"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설령 백 걸음 양보해 경찰 발표를 받아들여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는 남는다. 속헹은 사업자등록이 안 된 농가에서 일한 탓에 건강보험조차 들 수 없었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어 간경화를 검사 받고 치료받는 게 힘들었을 터이다. 이런 수준의 사업장에 고용허가를 내줬으니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에 관심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속헹만이 아니라,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의료보험이 없어 질병과 산업재해로 신음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국내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프리랜서나 비정규직의 신음이 깊어지니 이주노동자나 불법체류자에 대한 관심은 더욱 뒤로 밀리는 상황이다.

이러한 때 '이주노동자의 치료비 지원'을 위한 시민단체 '동행과 행동'(www.donghaeng.org)의 이정기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다. 그의 하루는 후원회원을 모으고 지원할 사람을 찾아보고 도움 요청이 들어오면 운영위원들과 회의를 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10여년간 171명의 이주노동자 치료비 지원

▲ 동행과 행동의 대표 이정기 부산 송도에서 그와 얘기를 나눴다. ⓒ 민병래

2010년 결성해서 2021년 4월까지 '동행과 행동'은 총 2억7100만 원 정도를 모아 171명이나 되는 이주노동자의 응급치료비를 지원했다. 모두 가슴 아프고 기억에 남지만 43세 스리랑카인 티론은 그에게 특별하다.

티론은 10년 전 산재를 당해 오른쪽 다리를 무릎 위까지 잘라냈다. 그 상태에서도 포천의 한 컨테이너에서 살며 처와 딸들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했다. 그런데 수술이 잘못되었는지 잘라낸 부위의 살갗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진통제로 버텼는데 상태가 더 나빠져 다리를 더 잘라낼지도 모를 처지였다. 소식을 접한 '동행과 행동'은 서둘러 그의 치료비를 지원했다.

또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37세 프랭크 오세이는 뇌염에 걸렸다. 그는 불법체류 신세였고 병원비가 없어 쓰러질 지경이 되어서야 응급실에 실려갔다. 광주광역시의 이천영 목사가 보증을 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병원비와 시신 보관료가 밀려 장례도 치를 수 없었고 가나에 있는 가족들은 한국에 들어올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이천영 목사의 도움 요청에 '동행과 행동'은 즉각 화답, 화장을 해서 유골이나마 고향으로 돌아가게끔 했다. 이정기는 이렇게 도운 171건의 사례를 깨알같이 적어 홈페이지에 월별로 공개한다.


▲ 스리랑카의 노동자 티론의 상황 다리를 자른 부위의 살갗이 죽어가고 있었다. ⓒ 이정기 제공

부산 영도가 고향인 이정기가 이주노동자에 마음을 쏟게 된 것은 그의 신앙과 관련이 있다. 선박의 기관장이었던 아버지 덕에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낼 뻔했는데 불행은 우연히 찾아왔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수많은 포격이 오간지라 부산 변두리에는 불발탄이 많았다.

어느 날 땅속에 묻힌 포탄을 발견한 아버지가, 당시 고철값이 높아서 이를 파내려다 폭발이 일어났다. 온몸이 숯덩이가 되고 몸이 오그라드는 화상을 입었다. 결국 당신은 좋아하던 배에서 내려왔다. 거리를 헤매다 그는 성당을 찾았고 그의 손에 이끌려 이정기는 세 살 때 '루도비코'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아버지의 다친 마음을 위로해준 성당은 이정기에게 큰 깨달음도 주었다. 예수가 이 땅에 온 것은 하늘나라에서 지상으로 이주를 한 것이고, 사랑과 구원을 위한 이주였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래서인가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민'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남달랐다. 이들과 연대하는 게 예수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정기는 '이주노동자의 치료비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이정기가 2010년 '동행과 행동'을 만들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이 단체는 회비를 올바르게 사용합니까?"였다. 그래서 그는 "후원회비로 운영비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무실 없이 상근 일꾼도 두지 않고 온라인으로 회의해서 결정하는 구조를 택했다.

얼굴 보고 회의하거나 출장을 가게 돼 집행비가 필요할 때는 운영위원들이 조금씩 호주머니를 털었다. 후원금 모금방식도 자동이체만 고집했다. CMS 방식은 후원회원 계좌에서 '동행과 행동' 계좌로 돈이 옮겨질 때 건당 270원과 월정 기본요금이라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지원 전엔 특수학급 교사로 20여년

▲ 부산 송도에서 이정기 60이 넘은 그는 맑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 민병래

이정기는 1980년 충남대 공업교육대학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직업을 잃어 가난에 빠졌지만 형들이 "막내 하나는 그래도 대학을 나와야 하지 않겠냐?"며 밀어준 덕이었다. 첫 발령이 87년 10월, 부임지는 충남 태안에 있는 원이중학교의 이원면 분교였다. 규모가 작아 이원초등학교 한 귀퉁이에 교실을 만든 분교였다.

여기서 이정기는 젊은 교사들과 전교조 결성에 나섰다. 태안, 서산 일대에서 같은 날 행동하기로 했는데 이정기 등 3명이 주도하는 이원분교만 결성되고 나머지 학교는 여러 사정으로 띄우지를 못했다.

방학때 집으로 "2학기부터는 예산의 고덕중학교로 가세요"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강제 전보였다. 고덕중학교에 가서도 그는 교사협의회를 만들고 좋은 선생이 되려 노력했다. 학교장은 이정기에게 근무 시간에 회의를 했다고 시말서를 요구했다. 그 타박을 견뎌내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발령을 받았다.

부산으로 돌아와서 그는 일반교사에서 특수교사로 살아갈 결심을 한다. 아버지가 폭발사고로 좌절하는 것을 본 그는 장애인을 돕는 꿈을 마음 한 켠에 간직했던 것이다. 이정기의 결심에 아내는 '가슴앓이'를 했다. 아이들이 "우리 아빠는 장애학교 선생님이야" 하면 "그럼 너네 아빠 장애인이야?" 하고 친구들이 놀려대던 시절이었다.

이정기는 그 결심으로 97년부터 2017년 퇴직할 때까지 교사생활 31년 중 21년을 특수교사로 재직했다. 물론 어려움이 많았다. 정신지체아들이 다니는 부산 혜성학교 때 일이다. 수업 중에 똥을 지린 아이는 찜찜함에 바지춤으로 손을 넣어 변을 걷어냈다. 손과 책걸상이 변 범벅이 되고 말았다.

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이정기는 아이를 화장실에 데려가 씻겼다. 하필 겨울이고 학교에 온수도 안 나와서 손이 얼어 터질 정도였다. 옷을 갈아입혀 교실로 와보니 아이들이 책걸상에 묻은 똥을 치운다고 애쓰다가 교실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보조교사도 없었던, 지금도 잊을 수 없는 90년대의 일이다.

이정기가 특수학교에서 보낸 21년 세월을 말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특수학급의 운영지침도 없던 시절, 교사회를 만들어 특수학급백서를 만들었고 대학원에서는 '특수교육과 장애인의 취업연관성'을 석사 논문으로 썼다. 이정기는 정년을 5년 앞두고 교직에서 물러났다. 특수교사로서 몸이 힘들었고 '동행과 행동'에 모든 정성을 다하고 싶어서였다.

동행과 행동 회원들은 운영위원들의 지인과 제자들

▲ 동행과 행동 창립 1주년을 기념하는 사진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이정기다 ⓒ 이정기 제공

이정기가 교사로 보낸 시절은 '동행과 행동'의 기둥을 세우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 특수교사 시절 알게 된 동료 교사 서넛이 발기인이 되어 지금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자들과 학부모들이 후원회원으로 호응해줬고 그중 한 명은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굿네이버스나 세이브더칠드런과 같은 단체에 비하면 '동행과 행동'은 알려지지 않은 단체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도 의심을 받았다. 딱한 사정을 듣고 이정기가 먼저 연락하면 "네!? 동행과 행동이 뭐예요? 정말 도와줄 건가요?" 하며 경계의 눈길을 보냈다.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여러 브로커들이 날뛰니 이해할 만하지만 기분은 씁쓸했다.

그래도 활동한 지 10여 년이 지나서인지 지금은 다양한 곳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온다. 그런데 많은 요구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다. 현재 월 후원금 규모가 250만~300만 원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정기는 "월 1억 정도 후원회비를 모은다"는 큰 목표를 세웠다.

사실 산재는 말할 것도 없고 작은 병도 치료시기를 놓쳐 큰 병이 되면 병원비가 천만 원을 훌쩍 넘어간다. 2020년 11월에 지원요청이 들어왔던 우즈베키스탄의 니고라도 자궁의 혹이 크고 염증이 간에까지 퍼졌는데 불법체류자여서 의료보험도 없었다.

병원에서는 큰돈을 내라고 했다. 이런 현실을 보면 한 곳에 천만 원 정도를 지원해야 확실한 도움이 된다. 그래서 월 1억 정도를 모아 한 곳에 천만 원씩 한 달에 열 사람을 도와주는 게 이정기의 꿈이다.

▲ 부산 송도에서 만난 이정기 그는 한달에 1억 정도 이주노동자의 치료비를 모으는 게 목표다 ⓒ 민병래

간식·관심·생명, 이 세 낱말을 이정기는 깃발에 아로새겼다. 한 달에 1000원, 간식비 정도를 기부하면 생명을 살린다는 것이다. 요즘 순대나 떡볶이도 1000원에 사 먹을 수 없기에 시민단체들이 대부분 최소 금액을 5000원 이상으로 하지만 '동행과 행동'은 거꾸로 가는 길을 택했다. 대신 기한이 없는 자동이체를 바란다. 그래서인가 후원회원은 꾸준히 늘어 초등학생과 유치원생도 있다.

이정기는 "인류의 먼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첫발을 떼고 끊임없이 이주를 했다. 우리 모두는 그들의 후예가 아닌가? 서독에 갔던 우리 아버지 세대의 광부들, 그들 역시 이주노동자 아닌가?"라고 묻는다. 한 달 천 원이면 기꺼이 동행하고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 뱅킹을 하고 있다면 몇 번의 클릭만으로 가능한 일이다.

<못 다한 이야기>

① '동행과 행동'의 운영위원은 이정기와 인연을 중심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 이명진(운영위원, 웅상노인복지관, 관장)- 특수학교 교사 시절 인연
- 하수정(운영위원, 경주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특수학교 교사 시절 인연
- 오미경(운영위원, 前 천주교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특수학급 교사 시절 인연
- 이동현(운영위원, 부산해마루학교, 특수교사)- 특수학교 교사 시절 인연
- 오상경(후원회장겸 운영위원, 한국철도공사 기관사)- 일반학교인 부산전자공고 제자

② 특수교사가 근무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일반인 학교에서 장애인학급 즉 특수학급의 교사로 근무하는 경우다. 또 하나는 장애인학교인 특수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는 경우다.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는 다양한 종류의 장애, 모든 학년이 함께 수업을 하는 상황이어서 이런 학급의 교사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런 특수학급의 운영지침도 없었던 터라 이정기가 특수교사회를 만들어 특수학급운영백서를 만든 것이다.

③ '동행과 행동'은 이주노동자를 위한 마중물 외에도 여력이 된다면 다른 두가지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하나는 베트남에 가서 한국군에게 피해를 입었던 양민들과 그 마을을 돕고 싶다. 가서 죄업을 씻고 학교도 세워 그 상처를 어루만지려 한다. 빼놓을 수 없는 또 한가지는 재일조선인학교를 지원하는 일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느라 일본사회에서 배척당함은 물론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 학교에 학용품이며 장학금을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올려짐: 2021년 6월 14일, 월 10:5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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