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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그땐 노무현 탓이라더니, 이젠 모든 게 문재인 탓?
[공개 편지] 광주의 카페 루덴스 배훈천 사장님께


▲ 6월 14일 자 <조선일보> 기사 ⓒ 조선일보

(서울=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 = 카페 루덴스 배훈천 사장님께.

일면식도 없는데 이렇게 불쑥 편지를 보내게 되어 송구합니다. 직접 뵌 기억은 없지만 운영하시는 카페는 익숙한 이름 탓에 이태 전에 얼핏 가본 듯도 합니다. 프랜차이즈 카페 못지않게 제법 규모도 컸고,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 손님들이 유독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난 12일 '문재인 정권의 경제 정책과 호남의 현실'이라는 주제로 광주 4.19혁명 기념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사장님께서 발표하신 내용을 찾아 읽었습니다. 실은 포털의 메인 화면에 종일 걸려있어서 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의 지인들도 저와 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마다 주요 기사로 다뤄지다 보니, 단숨에 이곳 광주에서 가장 '핫한' 인사가 되셨습니다. 요즘 제 주위에 배훈천과 카페 루덴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사장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분들이 대다수이긴 합니다만.

대학 입학 연도로만 놓고 보면 사장님은 제가 가장 존경했던 선배 세대입니다. 90학번인 저는 86학번인 사장님 세대가 이끌었던 총학생회의 솔선과 헌신을 보며 대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공동체를 생각하고 늘 약자의 편에 서서 패기와 열정을 쏟았던 선배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들에게 공감했고 기꺼이 따르며 배우려고는 했지만, 차마 스스로 운동권의 일원이었다고는 말하진 못합니다. 자칫 선배들의 정의롭고 용기있는 실천을 욕되게 할 수도 있다는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그저 집회에 참여해 팔뚝질하며 구호를 따라 외치는 게 전부였으니 말입니다.

운동권

사장님께선 스스로 운동권이었다고 밝히셨습니다. 그것도 당시 모든 운동권 학생들이 모범이자 선봉이라고 우러른 '광주전남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남총련)의 심장 전남대학교(전남대) 출신이시니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 집회 때도 전남대생들이 대거 상경해 시위대의 맨 앞에 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당시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불의에 항거한 선배들과 동기들의 분신 소식은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가슴속에 영원히 갚지 못할 빚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그들의 죽음 위에 발 딛고 선 성취입니다. 운동권이 조롱당하는 걸 참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적어도 전 운동권이라면 이른바 '까방권'(까임방지권)을 인정합니다. 비록 그가 고단한 세상살이에 '초심'을 잃었다고 해도 감히 손가락질하진 못합니다. 정치권의 '86세대' 운동권들이 기득권층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군사독재정권의 후신인 수구 세력들과 어찌 비교하겠습니까.

사장님에 대한 제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얼토당토않다고 나무랄 테지만, 선배 세대의 전남대 출신 운동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장님의 주장에 동의하진 못해도 인정할 순 있습니다. 사장님 말마따나, 광주라고 '5.18 특별법'을 반대하는 시민이 왜 없겠습니까.

덕분에 지금 자영업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고충을 새삼 깨닫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서둘러 보상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임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는 이곳 광주와 호남만의 문제일 리도 없습니다.

사장님의 격정 토로에, 어떻게 하면 경제적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지역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잠시 고민했습니다. 아직 '맞춤형 복지'를 청구하기 전인데, 온누리상품권 구매액을 더 늘려야겠습니다. 이왕이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카페 대신 사장님 가게처럼 동네 카페를 이용해야겠다고도 다짐합니다.

주장

그렇지만, 아무리 편견 없이 읽으려고 해도 사장님의 글이 몹시 불편합니다. 십수 년 전 '모든 게 노무현 탓'이라던 매몰찬 그때가 떠올라서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조리돌리는 게 '전 국민 스포츠'였지만, 과연 당시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온전히 그의 정치적 무능 탓이었던가요.

사장님의 글 역시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장의 얼개는 노무현을 문재인으로만 바꾸면 빼다 박은 듯 똑같습니다. 현재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겪는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바지만, 그 진단과 대안이 하도 황당해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앞뒤 맥락을 무시하고 발췌한 보수언론의 기사만 본 사람들은 내로라는 보수 경제학자들의 평론보다 사장님의 글이 더 명쾌하다는 찬사를 보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이른바 확증편향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정권의 무능을 탓하는 데는 학자들의 고담준론보다 장삼이사의 입을 통한 체험담의 파급력이 훨씬 더 큰 법입니다.

A4 다섯 장이 넘는 만만찮은 분량이지만, 사장님의 주장을 요약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일일이 거론한 뒤, 그것으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결론이 전부입니다. 그러곤 서민을 도탄에 빠트린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며 갈무리하셨습니다.


저임금 근로자 위한다고 최저임금 대폭 올려서 그나마 있던 저임금 일자리까지 씨를 말렸죠? 시간강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강사법 시행해서 시간강사 일자리마저 없애버렸죠? 임차인 권리 강화하겠다고 임대차보호법 시행해서 전세대란을 초래했죠? 집값 잡겠다고 규제와 대책을 남발해서 집값 폭등시켜 서민과 지방 사람들을 벼락 거지로 내몰았죠?

배훈천 사장님. 진짜로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서 있는 곳에 따라 풍경이 달라 보인다'지만, 사장님의 주장에 동의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최저시급 인상과 동시에 대기업의 '갑질'을 막기 위한 대책이 허술했다는 걸 지적하셨다면 모를까, 시급 6500원일 때가 '알바'에게도 좋았다고 한다면 대체 누가 수긍할까요.

정부를 향해 "시급 6500원을 받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해하는 서민들의 삶을 모른다"고 질타하셨습니다. 사장님의 자녀에게 한 번 물어보십시오. 그 돈에 기뻐하고 감사해하며 일할 수 있는지를. 외람되지만, 제 상식으론 그 돈에 '알바'를 부리는 건 노동 착취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목매단 건 안타깝지만 현실입니다. 이는 이직이 잦고 명예퇴직이 횡행하는 데다 과로가 일상인 민간 기업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급여가 적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고 신분이 보장돼서 공무원을 선호하는 것이지, 공무원 숫자가 늘어난 탓이 아닙니다.

정권

사장님께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우리 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주장에서는, 늘 약자의 편에 섰던 운동권은커녕 과연 대한민국 사람 맞나 의심스러웠습니다. IMF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생채기입니다. 견실한 기업들이 해외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되고 고용 유연성이 강제되었으며, 경제적 양극화로 신음하게 된 참혹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내쫓겼고, 목숨을 끊은 이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데도 민간 부문이 활성화되어 경기가 좋아졌고 일자리가 더 많이 생겨서 서민들이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었다니요. 그건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을'끼리 갈등하는 현실을 나 몰라라 하는 강자의 논리입니다. 내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자처하셨으면서,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는 꼴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공무원, 배달 라이더, 노인 일자리, 이것 말고 뭐 늘어난 일자리 보셨습니까"라고 조롱하셨습니다. 플랫폼 경제는 기술의 진화와 코로나라는 외부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인데 정부와 결부시킨 건 너무 나간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코로나로 전 세계의 경제가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도 견뎌낸 몇 나라 중의 하나라는 해외 언론들의 찬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모든 걸 정권 탓으로 돌리려다 보니 억측이 난무하고 상식과는 동떨어진 망언까지 거침없이 내놓으셨더군요. 공무원들이 지갑을 닫았다며 애꿎은 '김영란법'을 탓하고, 씀씀이가 큰 민간 사업자들이 많아져야 장사가 잘된다는 말씀에선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리베이트가 오가고 룸살롱에서 법인카드 마구 긁어대던 과거의 '접대 문화'를 그리워하시는 것처럼 느껴져서입니다.

아무리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삶이 팍팍해졌다기로서니 "이 정권 들어 조선 시대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규정하는 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상공업을 천시하고 관이 민 위에 군림하는 가렴주구형 신조선 반봉건사회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정녕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토로하신 게 이미 15년 전의 일입니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비유는 아이들조차 그 의미를 알고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서 자본의 위세는 막강합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시장의 실패'가 도를 넘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자본의 막무가내 횡포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사장님께서 절대적 진리처럼 여기시는 자유시장은 '동물의 왕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약자에게 가혹한 사회를 바라는 게 아니라면, 사장님의 분노는 외려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을 부추기는 시장을 향해야 마땅합니다. 하물며 "중국 공안 같은 짓"이라는 표현은 가당찮습니다.

혐오

배훈천 사장님. 스스로 강퍅해진 마음을 다독여주십시오. 사장님께서 그토록 저주하는 문재인 정권의 "운동권 정치 건달들"이 비록 정책 역량이 부족할지언정 늘 약자 편에 서고자 했던 '초심'만큼은 잃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장님께선 "코로나가 문재인 정부의 모든 실정을 가리고 있다"고 열변을 토하셨지만, 이 또한 과연 몇 명이나 공감할 수 있을까요.

부디 맹목적으로 정권을 혐오하는 색안경을 벗으시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시길 권합니다. 사장님께서 소속된 '상식과 정의를 찾는 호남 대안 포럼'이라는 단체 밖 사람들과 폭넓게 교유하시면 좋겠습니다. 해상풍력발전단지 사업 재검토, 탈원전 정책 반대 등 귀 단체에서 내놓은 정책들을 보면, 'ABM(Anything But Moon, 문재인만 아니면 돼)'이 전부입니다.

이런,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사장님 말마따나, 이곳 광주는 좁고 소문이 빨라 이름을 밝히고 공론의 장에 얼굴을 내민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장님처럼 유명 인사는 아니지만, 저 역시 이름과 얼굴이 공개돼 있어 이런 편지글 하나 쓰는데도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운암동 루덴스 카페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듯한 거리에 사는 주민으로서, 기회가 닿는다면 사장님과 끝장 토론을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백면서생일 뿐이지만,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제게도 좋은 성찰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끝으로, 여전히 코로나 와중이지만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 '중견' 교사 서부원 올림.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6월 21일, 월 11:2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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