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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나는 시드기야입니다"
[읽는설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부한 왕

(올랜도=코리아위클리) 황용기 목사(올랜도새길교회) = 코로나 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이 소득충격을 받자 나라에서 급하게 돕습니다. 수입이 없으니 세금 보고 기록도 없는 극빈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도와야 하는 과제도 있지만, 어떻든 도와야 합니다. 5살과 13살 두 자녀를 둔 가족은 7월부터 12월까지 매달 국세청으로부터 직접 550불을 받습니다.

북한, 쿠바, 중국, 베트남도 정치적 일당독재일 뿐, 경제적으로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눠 가지는 나라는 아닙니다. 하지만 자유세계에서 이웃을 향한 따뜻한 나눔의 이야기는 자주 들립니다. 한 억만장자(億萬長者)가 286개의 비영리단체가 외치는 소리를 전 세계가 들어야 한다며 노고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무려 27억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이러한 나눔은 국가 외에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아무나 억만장자가 아니니까요.

오늘 메시지의 주제는 나눔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할 당시의 마지막 세 왕들을 비교하겠습니다. 아버지 요시야, 큰아들 여호야김, 작은아들 시드기야 왕들 이야기입니다.

먼저 요시야 왕입니다. 재위 18년째 어느 날 성전 수리 중 모세가 전한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낭독자에게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명령합니다. 들으니 망치로 맞은 듯합니다. 자기 옷을 찢습니다. 왕이 개혁에 나섭니다. 신하들을 불러, 우리가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아 우리가 망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떨어지지 않게, 나라와 왕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합니다.

자신은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겠다고 하고 백성도 다 따르기로 합니다. 수백 년 전 사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지키지 않았던 유월절을 처음 지켰다고 합니다. 이른바 요시야왕의 개혁입니다. [열왕기하 23:1-27]

다윗 왕의 계보에서 요시야는 눈부시게 특이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외면하고 재판을 굽게 하는 시대에, 개혁은 금권을 쥐고 있는 상위1%의 저항을 왕이 설득시키거나 배반해야 가능합니다. 특혜를 베푸는 관행을 없애야 개혁입니다. 상위1%가 누리는 호사와 안전을 포기해야 개혁입니다. 약하고 소외된 자를 위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고려, 조선 시대 왕이 죽으면 묘호(廟號)를 붙입니다. 개국과 개혁적인 왕에게 종(宗) 자가 아닌, 조(祖) 자를 붙였습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여 태조가 되고, 영.정조는 붕당정치를 끝장내고자 개혁에 매진한 왕들입니다. 개혁자 요시야왕의 묘호도 '요시야조'로 불렸을 겁니다.

여호야김의 길은 벗어났으나

반면, 큰아들 여호야김은 왕위를 물려받자 유대 사회 상위1%와 결탁합니다. 저들의 금권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개혁 비전을 이어가지 못합니다. 악한 행실과 통치로 회귀합니다. 아버지 요시야가 율법을 발견하고 놀라며 두려워했던 개혁을 망각합니다. 율법의 요구를 순종할 줄 모릅니다. 그는 불의하고 부정했습니다.

큰 집을 지으면서 다락도 올리고 붉은 색칠도 하고 백향목으로 입힌 창문도 달면서, 정작 고용한 이웃에게 품삯을 주지 않고 떼먹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런 왕을 향해 '백향목을 많이 사용한다고 왕권 누수(漏水)가 없겠냐, 망상이다'라고 질타했습니다. (예레미야 22:13-15).

하나님의 언약(율법)대로 통치해야 하는 나라에서 자기 탐욕에 취해 착취를 일삼으면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지 알았던 선지자는 외칩니다. '화 있을진저! 여호야김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22:19]. 사가(史家)들로부터도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고 혹독한 평가를 받습니다. (열왕기하 23:37).

작은아들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의 침략과 예루살렘 함락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에 시드기야는 아버지 요시야 개혁을 따라 해 봅니다. 노비 석방이라는 급진적 제도를 도입합니다. 형제 히브리 사람이 팔려 오면 칠 년 되는 해에 놓아 주어야 합니다.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말라는 율법을 수백 년 동안 못 지켰던 나라입니다. 이제 왕이 하나님의 집 성전 앞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명하고 선포까지 했습니다. 아버지 요시야 왕이 봐도 놀랄만한 개혁이었을 겁니다. 남녀 노비의 해방에 왕, 고관, 노비주인들이 계약 당사자로 참여했고 모두가 순복했습니다. (예레미야 34:8-22).

유대 사회의 상위1%가 주도한 개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뜻이 변했습니다.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습니다. 상위1% 고관, 지주, 노비주인들이 입은 경제적 손실이 막대했을 겁니다. 왕의 개혁에 동의하지 않은 세력입니다. 저들은 금융시스템 관리를 통해 재물을 선점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빚 갚을 힘이 없는 자들의 신음과 고통에 눈 깜짝하지 않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저들에게 굴복하여 회군하고 배반의 길을 간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알고 처음에 순종하려 했으나 포기한 것입니다. 노비해방이라는 개혁에 결단, 용기, 의지가 부족했던 겁니다. 이것은 혁명 공약을 뒤집는 파렴치한 짓입니다. 개혁의 기회를 걷어찬 것입니다. 결국 큰아들 여호야김의 길, 착취하던 정책을 택하고야 맙니다. 상위1%들의 삶의 방식에 안주합니다.

이에 선지자가 책망하는 문장이 섬뜩합니다. 칼과 전염병과 기근(이라는 비인격체)에게 하나님이 자유를 허락하셨답니다. (예레미야 34:17). 칼춤을 추게 하겠다는 말이죠. 무서운 심판입니다. 상위1%들이 형제와 이웃에게 허락했던 자유를 회수했기 때문입니다. 빚 독촉으로 가난한 자를 착취하며 조롱하는 행위는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고 주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죄입니다. (잠언 17:5). 피할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죄입니다.

이제까지 상위1%들의 대표격인 유다의 세 왕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아버지 요시야는 당대 상위1% 이데올로기를 거부했습니다. 공공의 복지를 위해 왕권을 사용한 왕입니다. 아부하는 상위1%를 배반한 왕입니다. 율법대로 결연한 개혁을 단행한 왕입니다. 큰아들 여호야킴은 상위1%가 누리는 특권과 사치를 향유하는 정책을 선택했습니다. 특권층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임금, 율법을 업신여긴 왕입니다. 작은아들 시드기야는 손가락으로 간을 보는 타입입니다. 아버지 요시야처럼 개혁을 시도했지만 결국 큰아들 여호야김처럼 상위1%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향으로 회귀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네, 오늘 메시지의 핵심은 우리들 대부분이 시드기야 모델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시드기야처럼 우리에게도 율법의 말씀과 신명기의 명령을 읽고 들을 기회는 언제나 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신명기 30:15]. 이 기회가 오면 당연히 잡아야 하고 생명과 복을 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이 선택을 잘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거의 순복할 듯하다가 개혁을 외면하고 화를 자초하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시드기야 모델에서 요시야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제안합니다.

첫째, 자신이 어떤 부류에 속해 있는지 확인하십시다. 만약 내가 왕과 고관들과 노비주인처럼 상위1% 소속으로 확인되면 "나는 시드기야입니다"라고 외쳐봅시다. 시드기야가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히브리어 뜻에 걸맞지 않은 나의 불의함을 인정하자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비추어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 자각하는 것입니다.

둘째, 내가 속한 부류로부터 이탈을 시도하십시다. 새롭게 "나는 요시야입니다"라고 외쳐봅시다. 요시야가 하나님이 지탱하신다는 히브리어 뜻에 따라 상위1%에 지탱되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할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은 남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무관심으로 대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세상도 더럽힐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에서도 멀어질 것입니다.

"그(요시야)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예레미야 22:16).

사회 정의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살펴보고 재보고 따져서 연구한다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웃을 돌보면 그때서야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여호야김 모델은 원치 않겠지요. 개혁에 착수하다가 주저앉는 시드기야 모델도 안 됩니다. 요시야 왕의 모델을 따를까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선택은 우리 몫입니다. 요시야처럼 개혁을 의지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요시야왕, 그는 상위1% 부류의 이탈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교회를 향하여 더 많은 이탈자를 부르십니다.

참고성경구절: 예레미야 22:13-19, 34:8-22; 열왕기하 23:1-27, 24:10-20; 신명기 15:1-18
 
 

올려짐: 2021년 6월 27일, 일 8:1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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