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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비능력과 하나님 나라
[호산나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사실 나도 확 질러버리고 싶은 때가 있다. 소리도 지르고, 일도 저지르고, 무언가를 사버리고 주먹도 내지르고….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 저지르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게 참 다행이다. 직업의식 때문에 이럴 땐 성서의 구절이 생각난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생각해보면 질러버리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분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분이 났을 때 질러버리면 죄가 된다. 그리고 그건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저지르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저지르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것은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가난해지면 근본적으로 질러버리는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남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상황을 미리 예견해야 한다. 누울 자리를 보아도 쉽사리 발을 뻗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마귀는 내게서 틈을 발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요즘은 운전을 하면서 그것을 더 실감한다. 좋은 비싼 차들이 많이 나왔다. 예전 칠팔십 년대에는 차만 타고 다니면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직장 동료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어디를 갈 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풍속이 달라졌다. 물론 중간에 오렌지족들도 있었다. 그들은 여자들에게 "야 타!"라고 소리만 지르면 되었다. 요즘도 전혀 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 그랬다가는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좋은 차들이 운전 하는 모습을 보면 안하무인인 경우가 많다. 자기가 잘못을 하고도 눈알을 부라리는 운전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비싼 차를 타면 사람이 사람같이 보이지 않는다.

전에는 그런 놈들을 만나면 참지 않았다. 대응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차를 멈추라고 하면서 끝까지 쫓아갔다. 대부분 그러면 줄행랑을 친다. 드물지만 차를 세우고 내리는 경우도 있다. 끝까지 집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걸 두려워한다. 물론 내렸다고 다짜고짜 싸움을 하지는 않았다. 욕하지 말고 반말 하지 말고 먼저 상황을 따져보자고 이야기 한다. 그런 후에 싸워야 한다면 얼마든지 싸우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꼬리를 내린다. 그리고 얼버무리며 사과 아닌 사과를 하는 척 했다. 최소한 거기까지는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친다. 오히려 상대방이 쫓아온다. 그래도 쳐다보지 않는다.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제 풀에 지쳐 가버린다. 그러니까 가장 어려운 운전에서도 질러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가난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다. 나는 그렇게 쪼그라들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처럼 가난해지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되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평화주의자의 기조는 따르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옳고 그름을 더 따지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옳고 그름을 특히 따지지 않는다. 옳고 그름이란 언제나 상대적 개념이다. 한 사람에게 옳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옳지 않을 수도 있고, 두 사람이 주장하는 것이 모두 옳을 수도 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돈이다. 권력이다. 교회의 크기다. 학위다. 결국 옳음의 관건은 힘이다. 그러나 힘이 개입하면 옳음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니 가난이 얼마나 감사한 은혜인가.

우리네 인생은 정교한 테피스트리와 같다. 짤 때는 무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완성이 다가오면 새겨진 무늬가 드러난다. 그렇게 짜진 테피스트리는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래서 나는 젊은 사람의 신앙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좀 더 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의 인생의 무늬가 새겨지고 드러난다. 육십 대 후반이 되니 내 인생의 무늬도 어느 정도 형태가 드러난다. 새겨진 무늬가 정교하지 않아도 그것은 나만의 무늬가 된다. 하나님은 그렇게 내 인생을 테피스트리처럼 짜오셨다. 그 무늬를 확인하면서 나는 그분이 얼마나 정교하게 내 인생을 짜 오셨는지를 깨닫는다. 그분의 손길 하나, 하나를 느낄 때마다 나는 새삼 감탄하고 놀라게 된다.

내 자랑을 하는 것 같지만 나는 능력주의에 함몰될 소지가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내가 되기 원하던 방식대로 되었다면 나는 지금 가는 이 길을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게 닥쳐오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이 슬며시 눌러주셨다. 그래서 나는 크게 성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 말이 오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 바로 위의 형이다. 형은 지금도 내가 '크게 될 녀석'이라고 말한다. 형은 내가 큰 교회 목회를 하거나 가장 유명한 신학교 교수가 되었어야 할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형은 신앙의 길을 세상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것이다. 신앙의 길에서의 성공은 커지고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작아지고 무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잘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형의 눈에는 그것이 안타깝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의 사랑은 성공을 사모하는 사랑이 아니라 섬기려하고 종이 되려고 하는 사랑이다. 그 사랑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작아져야 하고 작아지는 비결은 비능력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내 신앙의 두 축은 가난과 비능력이다. 이걸 알게 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받은 은혜 중의 은혜이기도 하다.

최근 36세의 당대표가 탄생했다. 서울 과학고를 나오고 하바드대를 나왔다. 사실 서울 과학고는 예전의 경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자부심은 예전의 경기와 비교할 수 없이 높다. 거기다 하바드대라는 국제적인 자부심까지 더해졌다. 아무도 그의 그런 자부심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것이 문제임을 안다.

얼마 전 그가 한 말을 보았다. 그는 자유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심지어 우리 사회가 정글이 되는 것조차 당연하다는 것이다. 강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것이 정당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렇게 강자가 다 가질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사회이고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고 확신하는 발언을 했다. 엘리트주의와 능력주의가 그의 사고의 기본 토대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정말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을까. 그가 정말 '모든 사람의 종(公僕)'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의 세계관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쨌든 우리 사회가 또 다시 능력주의를 선택했다. 세상이 얼마나 단단한 곳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세상은 막강하다. 세상은 언제나 힘과 권력을 장악하고 '희생의 체제'를 공고히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박근혜 키드'라는 말은 적확하다. 박근혜보다 능력이 있는 만큼 그는 우리 사회를 더욱 공고한 '희생의 체제'로 만들어 갈 것이다. 아직 그가 야당의 대표라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러나 그런 그를 발판으로 능력주의를 지향하는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그건 생각만으로도 끔직한 일이다.

세상은 능력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경쟁을 자유의 전제로 설정한다. 그러면 세상은 소수의 허영과 사치를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생되는 하이어라키를 형성하고 그것은 곧 희생양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는 희생의 체제가 될 따름이다. 능력주의는 필연적으로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희생의 체제로 이어진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런 '희생의 체제'에 대해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희생의 체제'가 아닌 다른 세상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말을 하면 단박에 공산주의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그것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제일 먼저.

나는 능력주의의 표상인 야당 대표의 당선을 보면서 새삼 우리 시대를 위해 비능력이라는 무늬를 내 인생의 무늬로 새겨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된다. 시대가 어둡다. 암울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이런 시대에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 할 수 있도록 나를 준비하셨다.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준비되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비능력의 길을 갈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에게 머물고 우리는 또 다시 그분이 행하셨던 기적과 같은 기적들을 보게 될 것이다.
 
 

올려짐: 2021년 7월 12일, 월 11:4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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