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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피범벅 화장실 혼자 닦은 언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세월호 의인과 꼴통, 김동수 가족 이야기] 작은딸 김예나편 ③ 트라우마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7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이런 가운데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과 이들을 지키려는 가족들조차 아직도 매일 악몽을 꾸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파란바지 의인'으로 알려진 김동수씨 가족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 생존자와 그 가족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생히 전해드립니다. 이번 글은 작은딸 김예나씨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말

(서울=오마이뉴스) 변상철 기자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7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이런 가운데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과 이들을 지키려는 가족들조차 아직도 매일 악몽을 꾸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파란바지 의인'으로 알려진 김동수씨 가족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 생존자와 그 가족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생히 전해드립니다. 이번 글은 작은딸 김예나씨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아빠가 세월호 사고 이후 힘들게 버티며 자해를 몇 번 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현장에 갔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뒤였어요. 이미 아빠가 병원으로 이동했거나, 입원하고 나서 제가 아빠에게 갔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은 알지 못해요.

함덕에서 아빠가 세월호 문제로 처음 자해를 했을 때도 저는 그 자리에 없었어요. 우리 윗집에 제 학교 후배가 살았는데 저보다 학년이 낮아 야간자율학습이 먼저 끝나요. 그래서 그 후배가 저보다 항상 집에 먼저 들어와요. 그날도 늦은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는데 윗집 사는 그 후배가 저를 보더니 "언니, 예람 언니 집에 왔어? 언니 집에 무슨 일 있는 것 아니지? 경찰차와 구급차 왔었대"라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얼른 집에 들어갔죠.

집에 가서 언니 얼굴을 보니 방금 전까지 울었던 얼굴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러냐,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도 그냥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해요. 엄마하고 아빠는 어디 갔냐고 했더니 아빠가 아파서 엄마랑 같이 병원에 가셨다고 얼렁뚱땅 둘러대더라고요. 내가 못 믿겠다며 무슨 일이냐고 계속 언니를 추궁했어요.

그러다 제가 화장실을 가려고 하니까 언니가 가지 말라는 거예요. 왜 화장실을 못 가게 하느냐니까 이유는 말하지 않고 가지 말라고만 해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계속 추궁하니까 결국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아빠가 자해를 했고 화장실이 피범벅이었다고요. 엄마 아빠가 병원에서 응급처치 받고 돌아오시기는 했는데 그날 언니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그 피범벅 된 화장실을 혼자서 다 닦아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 생각하면 마음이 그렇죠.




아빠 일 계기로 세상일에 눈 떠

그날 이후 저는 응급실에 손목 자해 환자가 오면 치료하면서 항상 이야기해요. "이렇게 예쁜 손에 흉터 생기게 하지 마세요"라고요. 사실 우리 의료진은 환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안 된다고 배워요. 그런데도 저는 자해 환자들이 들어오면 남일 같지 않아요. 진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요.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 여성들이 아무래도 사는 것이 어려우니 더 그렇지 않을까요?

세월호 사고 후에 아빠 치료차 안산 '온마음센터'에 갔다가 광화문을 간 적이 있어요. 저는 당연히 광화문에 간다고 하니 예쁜 카페 같은 곳에 가는 줄 알았는데, 아빠는 세월호 서명 받는 곳으로 가더라고요. 아빠는 거기서 아는 분 만나 다른 곳으로 가면서 저더러 그곳 이모들이랑 같이 세월호 서명 좀 받으래요. 그래서 얼떨결에 그곳에 계신 분들과 같이 "세월호 서명해 주세요" 하고 서명을 받았어요. 여러 시간 그렇게 보내고 나서 그 분들과 친해져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죠.

그분들과 함께 서명도 받고 청와대 피켓 시위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때가 고3 때였는데 그 경험을 하고 나서 "수능 끝나고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고 다짐했어요. 그때부터 아빠가 어느 곳에 가자고 하거나 집회에 가자고 하면 적극적으로 가게 되었죠.

엄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을 많이 걱정하지만 저는 적어도 대한민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직접 현장을 찾아가서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주에만 있으면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거든요.

조국 전 장관 일로 집회가 있을 때 아빠하고 같이 가서 보고 온다고 했더니 엄마가 굉장히 걱정했어요. 사람들 많은 곳이면 아빠가 또 흥분할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가지 말라고 말렸죠. 그래도 저는 제 눈으로 보고 사람들이 왜,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봐야 진실을 알 수 있다며 아빠하고 같이 서울에 갔어요. 직접 눈으로 봐야 어떤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세월호 관련 활동이나 사회참여를 하는 동안 내 안에서도 상처가 조금씩 생기고 있었더라고요. 우리 과 같은 경우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실습을 나가거든요. 병원실습 나가면서 아빠와 비슷한 자해 환자들을 보게 되잖아요.

아빠의 트라우마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사고가 발생하고 3~4년이 지나도 전혀 괜찮아지지 않더라고요. 지금 7주기가 다가오지만 여전히 아빠의 트라우마는 그대로인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정도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오히려 아빠가 자해를 하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니까 트라우마가 무서운 것이구나 싶어요.

이러다가 나까지 아빠와 같은 트라우마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까지 생겼어요. 사실 최근에는 더 늦기 전에 진로를 바꿔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들어요.




나도 트라우마 생길까 걱정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어요. 배우고 싶어 했던 전공이었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거든요. 입학해서 몇 달을 버티고, 또 몇 달을 버티고 하다 보니 1년이 지나고 어느새 3학년이 되었더라고요.

3학년이 되었을 때 응급구조사 국가고시 시험을 봐야 해서 공부했는데 그 공부는 또 재밌더라고요. 병원 실습도 재밌었어요. 병원 실습 때 심각한 환자가 오면 무섭기도 하다가, 또 어떤 환자를 볼 때는 보람을 느끼다가 감정이 왔다 갔다 했어요. 어쨌든 국가고시를 보자 하고 버티며 학교를 다니다 보니 결국 졸업까지 했어요.

사실 응급구조 일이라는 건 오래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래도 지금 하는 일은 그나마 제가 직접 사고 현장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에요. 제가 직접 사고 현장에서 그 처참한 상황을 보지는 않잖아요.

제가 현장에서 그 상황을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언니보다 후유증이 덜한 것 같아요.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제가 마주한 장면은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응급실에 있거나 처치가 된 뒤의 상황이 전부였으니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소방관이 현장에서 조치하고 응급실로 환자를 데려오니까 직접 사고 현장을 보지는 않아요. 언니의 경우는 아빠 사고 현장에 항상 있었기 때문에 그 트라우마가 저보다 더 심한 것 같아요.

그래도 힘든 상황은 매번 있어요. 처음 병원 근무할 때 15살 된 아이가 약 먹고 들어오거나 손에 막 그은 자국을 보면 진짜 너무 힘들었죠. 그런 환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이런 일 안 하면 모른 채로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계속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환자들 보며 많이 힘들었어요.

아빠를 통해 몇 번 그런 일을 겪어 봤잖아요. 보통 그런 분들은 응급처치를 하려고 하면 "나 치료 안 받는다"라고 하거나, 처치나 치료를 해서 정신이 들면 "왜 살렸냐, 죽게 놔두지" 이런 말을 하는데 그런 말 들을 때면 힘들어요. 아빠도 자해를 했지만 그건 자신의 처지가 너무 어려워서 살고 싶다고 한 행동이잖아요. 결국 그 친구들도 살고 싶어 그런 것일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까 왜 저렇게 모진 말을 할까 싶더라고요.

사실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응급구조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소방관 중 진화소방관이 있고, 응급구조대가 있는데 응급구조대에 지원하기 위해 병원에서 경력을 쌓고 있는 중) 최근 들어서는 소방관이나 응급구조사는 진짜 하고 싶지 않아요. 사실 이 이야기만 하면 항상 눈물이 나요. 정확하게 표현하면 소방관이라는 꿈이 이제는 좀 무서워졌어요.

세월호 사고를 당한 후 아빠의 트라우마를 가까이서 봤으니까요. 저도 멋모르던 때는 항상 소방관을 하고 싶었어요. 남들이 멋있다고 인정해주는 직업이잖아요. 그런데 사고가 난 뒤 몇 년 동안 아빠를 보고 나니까 무서운 거예요. 간접적으로 아빠의 경험도 무서운데 내가 직접 그런 상황을 마주하고 나 또한 그런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생각을 하니까 무서워요.

소방관 시험을 보려고 올해부터 조금씩 공부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어요. 한 1년만 쉬자는 생각도 있지만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에요. 엄마한테 가끔씩 농담처럼 "남자 친구가 소방관이니까 집안에 소방관 하나만 있어도 되지?"라는 말을 던지기는 해요. 그런 말을 해도 엄마는 그냥 웃죠.

하지만 한편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에요. 왜냐면 소방관을 하면서 트라우마가 생길지 아닐지는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요. 운이 좋아 비켜갈 수도 있으니까요. 우선 해봐서 힘들면 그때 가서 그만두면 되는 것이니까요.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7월 13일, 화 3:5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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