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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워싱턴포스트'가 폭로한 매수공작
[김재규 평전 15] 박정희가 유신정권을 유지하면서 가장 두려워 한 것은 미국


▲ 1961년 8월 31일 서울 중앙정보부 남산청사를 방문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대화를 나누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오른쪽). ⓒ 국가기록원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박정희가 유신정권을 유지하면서 가장 두려워 한 것은 미국이었다. 학생들과 재야의 저항은 긴급조치와 용공사건 조작으로 그때마다 미봉할 수 있었으나 미국의 경우는 달랐다.

그동안은 미국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통해 일정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남베트남의 패망 후에는 그런 카드도 없어졌다. 그래서 택한 것이 재미실업가(KCIA 공작원) 박동선 등을 통해 미의회의 반한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도록 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해왔던 공작정치의 일환이었다.

거액의 비자금은 재벌들로부터 거둔 이른바 '통치자금'과 중앙정보부의 공작금이었다. 연간 50만 달러 내지 100만 달러 상당의 뇌물로 수십 명의 미의원 및 공직자를 매수했다고 『워싱턴 포스트』(1976년 10월 24일)가 폭로했다.

이 신문은 FBI와 연방 대심원이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는 수수께끼의 한국인 박동선이라는 40세 된 실업가와 한국계 공작원이 미의회 의원 20명 이상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을 조사중이라고 보도했다.

1면 톱기사로 "한국정부, 미국 관리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뇌물로 제공"이라는 전단 제목 아래 기사를 실었다. 이른바 코리아게이트사건의 시발이다. 이 신문은 연 3일 동안 톱기사로 박정희정부의 매수사건을 보도하고, 다른 언론들도 추악한 코리아게이트사건을 잇따라 실었다. 사설로까지 취급하였다.

한국이 수년 동안에 걸쳐 연간 백만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사용하여, 미 의회 의원과 정부 고관들의 호의를 사려고 했던 공작 계획은 한국의 대통령 자신이 참석한 회의에서 마련되었다고 한다. 그 자금은 "평화를 위한 식량"을 한국에 공급하는 미국의 쌀 판매업자들로부터 거둬들인 커미션으로 충당되었던 것 같다. 외교ㆍ정치적인 충격파는 이제 막 번져가기 시작한 단계이다.

60년대 말에 미국이 베트남이라고 하는 아시아 대륙의 전선 기지로부터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고 한국이 같은 아시아의 전선 기지인 한국으로부터도 미국이 철수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한국이 뇌물이나 그밖에 은혜를 베풀어서 미국에 어떤 '보험'을 걸려고 했던 일은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법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

이러한 수법 자체가 두 나라 우호 관계의 참된 기초가 되는 이상과 자존심을 부패시키는 것이다. 자기 나라의 국민을 억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의 공직자마저 매수하려고 하는 나라를 우리는 왜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고 미국 국민들은 반문할 것이다.
(주석 3)

미국 언론이 온통 박정희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는 등 난리법석을 치는데도 국내는 캄캄무소식이었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볼티모어 선』도 사설을 썼다.

외국 정부가 룰에 따라 미국 내에서 로비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적법한 일이다. 하지만 미국인의 피와 돈을 희생으로 하여 지켜진 한국 때문에 지금 이 룰이 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입장에 관계 없이 모든 미국인을 괴롭히고 있다.

중앙정보부와 워싱턴을 발판으로 한 실업가 박동선 씨 및 통일교회의 문선명 씨 간에 얽혀 있는 비밀스러운 연관 관계는 밝혀져야 한다.

북한의 외교관들이 마약 밀수와 면세품인 술ㆍ담배를 밀매하여 스칸디나비아 4국으로부터 추방되었다고 전해진다. 두 개의 한국 어느 쪽을 지지하건 서구 국민들은 자기 나라 안에 부패가 반입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들 두 정부가 한민족의 문화와 민중을 대표하는 것으로 혼동하지는 않고 있다.
(주석 4)

김형욱이 폭로한 박정희 비리


▲ 최장기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씨의 실종사건을 놓고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생전 김씨의 모습. 최장기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형욱씨의 실종사건을 놓고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생전 김씨의 모습.

김형욱이 미국에 망명하여 외신에 폭로하거나 미하원 국제관계소위원회에서 증언한 박정희(정권)의 비리ㆍ비행ㆍ부정은 어마어마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 박동선은 정보부의 주요 공작원이었다. 1964년 당시의 주미대사 정일권이 박동선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소개했으며 이후 박동선은 이후락의 지령을 받아 미국내의 공작을 맡았다. 처음에는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리지 못했으나 주한미군 철수론이 나온 1970년 미의회를 상대로 매수 회유하라는 특별지령이 나간 뒤로 박동선은 중용되었다. 여기에 필요한 공작금은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쌀대금 가운데서 떨어지는 수수료로 충당되었다.

▲ 통일교회 간부인 박보희는 정보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정보부는 그를 접점으로 하여 통일교회를 움직여 왔다.(이상 77년 6월 5일자 뉴욕 타임즈 회견).

▲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기업은 수수료, 리베이트, 혹은 정치헌금이라는 명목으로 총투자액의 5%를 강제적으로 징수당했다. 이 돈은 박정희가 스위스은행에 개설한 비밀구좌에 입금되고 박정희가 스위스 은행에 개설한 비밀구좌에서 대외활동자금 등으로 사용되었다.(77년 6월 6일자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

▲ 박 대통령이 가장 두려워했던 두 개의 세력은 71년 대통령선거 때의 상대후보와 미국 의회였다. 박 대통령은 김대중 문제를 유괴로, 미의회에 대해서는 '박동선에 의한 매수작전'에 의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 박 대통령의 김대중에 대한 감정은 심한 열등감에 기초를 둔 증오에 가까운 것이었다. 공화당정권은 선거법 위반의 혐의를 날조하여 김을 기소했고 1973년 8월에는 동경에서 김을 유괴하였다. 유괴작전의 지휘관은 당시의 이후락 정보부 부장이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이 작전을 지휘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지는 않으나 이같은 중대한 계획이 대통령의 허락 없이 감행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 독재체제를 확립한 박 대통령은 미국이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인지에 괘념하고 있었다. 그는 미 행정부와 의회의 반대가 자기의 독재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반대를 억제하기 위하여 박동선 스캔들이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 당시의 중앙정보부는 미국의 중앙정보부(CIA)와 연방수사부(FBI)의 두 비밀수사기관을 합친 것과 같은 것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설립된 것이다. 나는 1963년부터 69년까지 6년 8개월간 가장 장기간 부장으로 근무한 사람이다. 내가 부장 때에는 미국에는 5인의 정식요원을 주재시켰는데 워싱턴에 2인, 유엔주재 대표부에 2인, 로스앤젤레스에 1인이었다.

그러나 내가 미국에 망명한 73년 이후 그 권한은 강화되어 현재 내가 알고 있는 한 워싱턴에 12인, 뉴욕의 유엔대표부에 4인, 그밖에 로스엔젤레스를 포함하는 미국 각지에 9인, 도합 25인이 있다. (이상 77년 6월 22일 미하원 국제관계소위에서 증언).

▲ 서울 지하철 건설은 프랑스와 일본이 경합했었다. 일본측은 기시(岸信介) 전 수상과 야스기(矢次一夫) 씨가 박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함으로써 공사는 미쓰비시상사에 맡겨지고 당시 주일대사였던 이후락 씨가 한일간의 파이프역을 했다. 미쓰비시상사로부터 리베이트가 기시와 이후락 양쪽으로 건너갔으며, 그만큼 서울지하철 공사비는 비싸게 치였다.(77년 7월 17일, 교또통신과의 회견).

▲박 정권과 일본 자민당간의 '검은 채널'은 김성곤(전 공화당 제정위원장), 이후락, 이병희(전 무임소장관) 등이 그 역을 맡았다. 이병희로부터 자민당의 세이란까이(靑崗會) 멤버에게 선거자금 형식으로 비밀헌금이 여러 번 흘러갔다. 상사관계의 일본 측 창구는 기시 노부스케와 야쓰기 가즈오 두 사람이었다. 미쓰비시, 미쓰이, 이또쭈, 마루베니 등이 한국 측에 거액의 리베이트를 보낸 사실을 알고 있다(77년 7월 16일 마이니찌신문과의 회견). (주석 5)

박정희는 김형욱의 폭로와 폭탄선언에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입을 막고자 여러가지 방법이 동원되었으나 허사였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파리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형욱을 한국 땅에 끌어들이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다했다. 멕시코나 브라질의 대사직 또는 다른 요직을 내걸고 귀국을 권유했다. 김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로부터 1979년 10월 그가 파리의 카지노에서 영구 실종될 때까지 정부는 김종필ㆍ정일권ㆍ백두진ㆍ홍종철ㆍ민병권ㆍ김동조 등을 연달아 김형욱에게 보내 귀국을 종용했다. 심지어는 이철승ㆍ박병배ㆍ고흥문ㆍ노진환 등 야당계 인사들도 그를 찾아가 귀국을 권유했다. 그러나 김형욱은 국내의 이와 같은 애타는 호소를 모조리 거절했다. (주석 6)

주석
3> 『워싱턴 포스트』, 1976년 10월 27일치, 사설.
4> 『볼티모어 선』, 1976년 10월 27일치, 사설.
5> 이상우, 『제3공화국 외교비사』, 177~178쪽, 조선일보사, 1984.
6> 앞의 책, 174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7월 19일, 월 5:5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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