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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구원의 관점 vs 하나님 나라 관점
[호산나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내 글은 길다. 내용도 그다지 동의하기가 어렵다. 계속 읽다보면 계속 찔린다. 은혜가 되어서 댓글을 달고 싶어도 함부로 달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내 글은 한 마디로 좋은 글이 아니다.

그러나 읽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친구신청을 받지 않는다. 내 글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내가 힘과 영향력을 가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힘과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 오만해진다. 나는 그러지 않을 자신이 없다. 어려서부터 우쭐거리기 좋아하는 내 성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완장 하나 채워주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아무리 시골교회라도 담임목사라는 명함을 가지게 되면 대부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리스도인의 사망이다. 그리스도인이 힘과 영향력을 추구하고 그것을 행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힘과 영향력을 어떻게 하든 추구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가증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마저 없으면 나는 곧바로 넘어질 수밖에 없다. 신앙생활이란 그래서 긴장과 경성의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가증스러워도 유치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리스도인의 목적지가 어린아이가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유치한 이 길을 간다.

그런데 내 글을 읽는 주된 독자는 목사나 전도사와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은 내 글을 읽으면서도 여간해서는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 스스로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일종의 예절이다. 그것이 정말 좋아서 누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누르지 못하는 것은 박사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고 큰 교회 목사도 아닌 나를 의식하는 것이다.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목사가 되면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사망한 그리스도인의 징표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요청을 해 오신 분들 가운데 목사나 선교사는 가급적 수락을 하지 않는다. 그분들은 대부분 힘의 관계에 익숙해진 분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런 분들과의 교제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목사들, 특히 제도권에 있는 목사들과 활동 중에 있는 선교사들을 회피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들이 바라보는 성서와 내가 바라보는 성서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나는 관점의 차이라고 이해한다. 작은 교회의 목사라는 페친 한 사람이 어떤 교수에게 하는 질문을 보았다.

“전통적인 교회들은 성경을 구속사적 관점, 영생의 관점, 사랑의 관점으로 많이 풉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정의와 공의의 관점은 비주류적 관점으로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교수님은 구약의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부터 해서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정의와 공의’를 이루는 관점으로 설명을 하시는데 전통의 관점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더 압축하면 전통적인 교회들은 구원의 관점으로 성서를 바라본다. 여기서 이 사람의 질문에 나오는 정의와 공의의 관점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성서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구원의 관점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동안 수도 없이 써온 글들의 내용이기도 하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에 ‘올인’한다. 그래서 그들이 죽으면 ‘천국환송잔치’를 한다. 그것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런데 정말 그리스도교의 목적이 구원인가. 사람들은 오늘날 교회들에 실망을 넘어 절망한다. 그런데도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 이 사람들이 들어왔던 구원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목적이다. 구원은 종착역이 아니다. 구원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점이다. 역으로 말하면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지 못한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한 것이다.

나는 늘 예수님의 이름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죄에서의 구원이 아니다. 자기 백성이라는 의미가 구원의 목적이다. 죄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자기 백성)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위 질문에서 말하는 정의와 공의이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일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현재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할 수 있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하나를 더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변질(타락)’이다. 그것을 본질의 상실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본질을 상실했다. 그것은 서기 200년 경 교회가 조직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자 교회가 조직이 된 것이다. 교회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바울의 몸의 비유에서 보는 것처럼 교회는 살아 있는 생명체(유기체)다. 교회가 조직이 되는 순간 교회는 생명을 상실한 빈껍데기가 된다. 이미 서기 200년에 교회의 지도자들인 주교들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교회의 조직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남은 생명을 질식시킨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허락한 신앙의 자유(313 밀라노 칙령)였다.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고 교회가 재산을 가질 수 있고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되면서 남아 있던 교회의 생명이 마침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사족과 같이 흔적만 남아 있을 뿐 교회는 더 이상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삶을 마감했다.

그런 교회가 주목한 것이 바로 구원이었다. 그 결과로 교회는 현재적인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영적인 싸움의 대상으로서의 국가를 망각하게 되었다. 오늘날 교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죽어서는 천국에 가고 살아서는 세상의 열락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신앙의 자유였다. 이후로 교회 안에서 예수 복음의 알짬이었던 하나님 나라가 사라지고 구원이 그리스도인의 최종목표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내가 목사들을 회피하는 이유는 이런 내용들을 아무리 말해주어도 그들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를 나는 들은 적이 없다. 최근 들어 하나님나라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는 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수긍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기존의 구원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탄탄해서 그 프레임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입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떠들면서도 결국은 기존의 구원의 관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 교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장례식뿐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구원을 확신시켜주지 못한다면 기존의 교회들은 존재의 뿌리를 상실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아는 것같이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구원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성서는 죽어야 산다는 이미지를 곳곳에서 확인시켜준다. 맞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 하고 세상이 그리스도인에 대해 죽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그 반대를 향해 치닫는다. 그 원동력이 바로 구원의 관점으로 성서를 보는 것이다. 결국 죽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구원의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그것이 제도권 교회의 입장이라는 이유로 오늘날 교회의 목사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새롭게 들어 알게 된 하나님 나라를 다시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교 역사가 남은 자들의 역사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 남은 자들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다. 산상수훈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강령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산상수훈은 사장되었다. 그 이유 역시 동일하다. 구원의 관점이 지배하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교회 개혁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생명이 없어진 교회는 다시 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활을 말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교회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물론 그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성서를 보고 알아듣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 교회는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곳이 될 것이다.
 
 

올려짐: 2021년 7월 26일, 월 4:0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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