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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한국에서 수십 년 살고도... '유령'이 된 아이들
[서평] 미등록 이주 아동들의 삶, 은유 작가의 <있지만 없는 아이들>


▲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 표지 은유가 쓴 <있지만 없는 아이들>(창비) 표지 사진이다. 이 책은 미등록 이주 아동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창비

(서울=오마이뉴스) 김홍규 기자 = 작가 은유가 최근 창비에서 책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펴냈다. 미등록 이주 아동 이야기다. 이주 아동은 "외국 국적이거나 외국 국적의 부모 아래서 태어난 아동"을 말한다(책 85쪽). 부모가 비자가 없어 출생 등록을 못 하면 이주 아동은 '미등록' 상태가 된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에는 이주 아동 다섯 명, 그들과 함께하는 어른들 네 명을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 있다.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것. 내가 나임을 인정받는 것. 제가 원하는 건 그런 최소한의 것들이에요.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 온 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 58쪽

미등록 이주 아동 마리나의 말이다. 그는 2002년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다. 하지만, 비자가 없던 몽골 국적 부모가 출생 등록을 못 해서 '미등록' 꼬리표를 달게 됐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됐다.

왜 이들이 쫓겨나야만 하는가

미등록 이주 아동은 법질서 밖으로 배제된 '있지만 없는' 존재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이며, 랑시에르가 말한 '몫 없는 사람들'이다. 마리나는 20여 년의 자기 삶을 "유령으로 지내 온 거나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미등록 이주 아동은 건강보험, 휴대전화 개통, 수학여행, 자격증 취득 시험 등 신분 번호가 필요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우리나라에 머물 수 있지만, 이후에는 강제로 한국을 떠나야 한다.

마리나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야 하는 현실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5월 법무부에 마리나의 강제 퇴거 중단을 권고했다. 아울러 미등록 이주 아동의 체류 자격을 주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국가인권위원회 2020년 5월 6일 보도자료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5월 미등록 이주 아동의 강제 퇴거 중단과 미등록 이주 아동의 체류자격 부여 제도 마련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부는 올해 4월 국내에서 태어나고 15년 이상 거주한 이주 아동에게 심사를 거쳐 체류 자격을 주겠다고 밝혔다(법무부 4월 19일 보도자료). 법무부는 "아동이 불법 이민 등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4년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제 첫발을 떼었을 뿐 갈 길이 멀다. 모든 장기체류 이주 아동의 인권을 아우르는 실질적이고 항시적인 구제대책 마련은 우리 공동체에 남겨진 숙제가 되었다.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이 오늘이 마지막이겠다는 불안을 베고 잠들지 않을 수 있도록 '존재의 합법화' 경로가 제대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 230쪽

법무부 조치는 그야말로 한시적이다.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지며…"라는 유엔 아동 권리 협약 제7조 1항에 비춰보면 정부의 한시적 조치는 충분치 않다. 우리나라가 유엔 아동 권리 협약을 비준한 해는 1991년이다.

미등록 이주 아동의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자랐다. 외국에서 태어났더라도 오랜 기간 한국에서 생활한 사람들이다. 자신이 자란 곳, 익숙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하다.

"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이 질문을 한 사람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어요. 그럼 왜 당신은 한국에 살고 계시나요? 똑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사는 거죠." - 82쪽

이 말을 한 페버는 1999년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나이지리아 사람들이다. 2008년 나이지리아로 갔던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하면서 체류 자격이 없어졌다. 2017년 강제 퇴거 명령을 받았으나 소송을 통해 2018년 6월 체류 자격을 얻었다. 자신과 상관없이 합법, 불법, 합법을 오가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저희가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간다고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부모님한테 배워서 말만 할 줄 알지 글자도 못 읽고 못 써요. 솔직히 돌아가면 적응을 못 할 것 같아요. 저희는 한국에서 평생을 생활하고 있잖아요. 태어난 건 죄가 없는데 왜 차별당하고 고통받고 꿈도 못 이루고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돼요." -164쪽

우즈베키스탄 부모를 따라 2003년 네 살 때 한국에 와서 생활하고 있는 카림의 이야기다. 카림은 국어와 역사를 좋아한다. 카림의 두 살 아래 동생 달리아는 시인 백석을 좋아한다. 한국 역사를 좋아하고 한국어로 시를 짓는 이들이 국적이 우즈베키스탄이라는 이유만으로 낯선 땅 우즈베키스탄으로 쫓겨나야만 할까?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어른들과 공동체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책임이 있다. 작가의 말대로 자신의 조건과 무관하게 "아이들은 충분히 존중받으며 자라고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어야" 한다(책 36쪽). 미등록 이주 아동을 포함해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돼야 하는 말이다.

보호자가 없어도, 안전한 집이 없어도, 적법한 체류 자격이 없어도, 대단한 매력 자본이나 스펙이 없어도 아이들은 충분히 존중받으며 자라고 무사히 어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사회적 토대를 다지는 일에 이주 아동들의 목소리가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 35~36쪽, 작가의 말

얼마 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변경했다고 한다. 미등록 이주 아동 문제는 경제 규모뿐 아니라 우리의 인권 의식도 선진국에 해당하는지를 가늠할 하나의 지표다. 책에 나오는 인화의 다음 말이 계속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그는 25년을 한국에서 생활한 미등록 이주 노동자이며, 미등록 이주 아동의 어머니이다.

"외국인이지만 이곳에서 아이 잘 키워서 잘 살게 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아요.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에요." - 203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7월 26일, 월 4:3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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