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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내 할머니의 남자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 1]




(서울=오마이뉴스) 방현석 기자(소설가)

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오늘 8월 15일 광복절 저녁에 귀향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방현석 소설가의 '홍범도 실명 소설 저격'을 게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조선 최초의 비혼주의자였던 백무아와
그의 남자,
그리고 만주와 연해주,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오지 못한
저격여단의 단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프롤로그

내 할머니의 남자

열두 해 전에 쓰기 시작했던 내 할머니와 내 할머니의 남자 이야기를 이제야 펴낸다. 쓰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뼈가 시리게 고독했지만 단 한 번도 아름답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그들의 생애를 나의 무딘 문장으로 되살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에 시달렸다. 북간도에 남긴 내 할머니의 흔적 앞에서 내 영혼은 사정없이 흔들렸고 눈시울은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방치된 내 할머니의 남자 무덤 앞에서는 솟구치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내가 흔들리고 울었던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삶과 죽음이 읽는 이들의 미지근한 심장을 데우고, 바람처럼 지나간 한 시대를 뜨거운 눈동자로 돌아보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랐지만 내가 쓴 문장은 그것에조차 미치지 못했다.

그들의 삶에서 해명되지 않는 중요한 몇 장면도 뛰어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조선 최초의 비혼주의자였던 내 할머니는 왜 생애의 마지막까지 그 남자를 지키고자 했을까, 사슴 한 마리 쏘지 못해 산을 떠난 내 할머니의 남자는 어떻게 혼자서 467명의 적을 저격하는 스나이퍼로 변신했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운명을 바꾼 그들의 결단과 선택은 대부분 소설적 상상력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서사적 개연성'의 바깥에 있었다. 그들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은 거의 빈칸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그들의 생애를 왜곡하거나 훼손하고 싶은 생각도, 꾸며대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다. 내 할머니는 그렇게 취급되어도 좋을 사람이 아니었다. 내 할머니의 남자는 아무렇게나 소설로 소비되어도 괜찮은 그저 그런 생애를 살지 않았다.

내 할머니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평양과 묘향산, 백두산, 그리고 만주와 연해주, 중앙아시아로 그들의 발자국을 쫓아다니는 동안 항일무장 투쟁 관련 자료는 내 책장 하나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조선 최초의 여성 저격수였던 내 할머니의 무장활동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반대로 내 할머니의 남자에 대한 무장활동 기록은 무수히 많은 파편으로 흩어져 있었지만 그와 내 할머니와의 관계를 밝혀줄 수 있는 개인적인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작은 공적도 크게 부풀리고 없는 공적도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달리,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던 내 할머니의 남자가 남긴 기록이라고는 이력서 수준을 넘는 것이 없었다.

지극히 내밀한 내 할머니의 비망록과 내 할머니의 남자를 둘러싼 역사적 기록 사이에서 길을 잃고 열두 해를 방황한 나에게 <어느 극장 수위의 회상>은 운명처럼 찾아들었다.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그 남자의 수기 <어느 극장 수위의 회상>이 없었다면 그들의 이야기는 끝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어느 극장 수위의 회상>을 입수한 것은 운명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우연이었다.내가 카레얀카 안을 만난 건 두 해 전 가을이었다. 다섯 번째 중앙아시아 방문도 소득 없이 끝난 저녁이었다. 맥이 빠져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동행한 세 사람의 저녁을 해결해주기 위해 민박집 주인에게 카레이스키 살랏을 부탁했다. 채 친 당근을 식초와 고춧가루로 버무린 카레이스키 살랏의 첫맛은 새콤하고 뒷맛은 짜릿하게 매웠다.

내가 만주와 중앙아시아를 다녀올 때마다 부러워하던 세 사람이 마침내 지난 여행에 따라붙었다. 잘 나가던 두 선배가 끝내 유리천장을 뚫지 못하고 비슷한 시기에 실업자가 되자 프리랜서 큐레이터인 후배 민까지 합세했다. 일에만 파묻혀 살아온 그들은 또 허탕을 친 내 속도 모르고 아주 신이 나 있었다. 식용유로 비빈 것같이 느끼한 카자흐 음식을 열흘 내 먹고도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그들을 식당에 데리고 나가기가 귀찮았던 내가 떠올린 것이 바자르시장에서 파는 카레이스키 살랏이었다.내가 카레이스키 살랏을 사다 달라고 부탁한 민박집 할머니가 카레얀카 안이었다. 그녀는 살랏을 직접 만들어주겠다며, 만드는 동안 읽어보아 달라고 원고 한 뭉치를 내밀었다. 기자였던 카레얀카 안이 젊은 시절에 근무한 고려인 신문에 연재됐던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이야기와 역사'라고 했다. 그녀는 죽기 전에 꼭 책으로 묶어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 했다.

"그동안 우리 집에서 묵고 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걸 책으로 내주겠다고 하고 돌아가서는 아무도 연락이 없었어요."
원고는 러시아어로 되어 있었고, 우리 일행 중에 러시아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들이 그러면 안 되지."
제일 선배인 전직 광고기획사 임원이 한 글자도 읽지 못하는 원고를 들여다보며 호기를 부렸다. 걱정스러워진 내가 물었다.
"그래서?"
"책, 만들어줘야지."
"이걸 어떻게 한국에서 책으로 만들어?"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약속을 안 지켰다잖아. 우리도 그 인간들처럼 입을 닦아?"
나는 기가 찼다.
"그러니까, 왠 오지랖이에요. 지키지 못할 약속 하지 말라구요."
내가 쐐기를 박으려는데 이번에는 막내인 프리랜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끼어들었다.
"여기에 고려인들의 역사가 다 담겨 있다잖아. 대한민국이, 우리가 그것도 못해 줘?"
"우리가 대한민국 외교부야?"
내가 반발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안된다고 하는 나만 아주 나쁜 년이 되는 분위기였다.
"만드는 거야 어떻게 만든다고 쳐도 이걸 누가 번역해? 번역비가 얼마나 드는지 알아?"
"그냥 러시아어로 만들어줘도 돼요."
주방에 있는 줄 알았던 카레얀카 안이 언제 나왔는지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은 그녀의 눈길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물었고, 한마디도 않던 전직 디자이너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해보자."
카레얀카 안이 주방으로 돌아간 다음에야 나는 입을 열었다.
"정말 비싼 샐러드 먹네요."

카레이스키 살랏은 연해주에서 쫓겨온 고려인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한 김치 대용품이었다. 그렇게 해서 무슨 내용인지도 전혀 모르는 러시아어 책이 한국에서 근사한 양장본으로 만들어졌다. 만드는 것보다 더 문제는 그 책 삼백 권을 카자흐스탄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화물로 보내려니 책 정가에 권수를 곱해 세금을 내야 했다. 배보다 배꼽이 컸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에 갈 때마다 신세를 지는 고려인 통역자 미하일에게 부탁해 단체여행객들 편에 들려 보냈다. 사례의 표시로 미하일이 돌아오는 날 나는 공항으로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갔다.

"홍범도란 사람이 대단해요?"
영종대교를 넘어오면서 미하일이 불쑥 물었다. 나는 놀랐다. 내 할머니의 남자, 한국에서도 잊힌 그의 이름을 미하일에게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왜?"
"여행하면서 이 책 대충 봤거든요. 홍범도란 사람 재밌는데 이상해서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고려인 3세인 미하일은 홍범도란 이름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홍범도 얘기가 여기에 있어?"
"예. 제일 길어요."
미하일은 손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여기서 여기까지가 홍범도 장군 이야기에요. 제목이 '어느 극장 수위의 회상'이고, 48회에 걸쳐 <이스끄라 까레이스키>에 연재됐네요."
백 쪽이 넘는 분량이었다. 미하일에게 그 원고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장군이 극장 수위로 살다가 죽을 수가 있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하일에게 나는 대답할 말을 고르지 못했다. 대신 카레얀카 안에게 연락해 이 원고의 한글본이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덮어두었던 내 할머니의 일기를 다시 꺼냈다.

사흘 뒤 미하일은 <어느 극장 수위의 회상>이 원래는 한글로 된 것이었는데 신문에 싣기 위해 러시아어로 번역했고 한글 원고는 남아 있지 않다고 알려왔다. <어느 극장 수위의 회상>은 혼자서도 한 개 여단이었던 내 할머니의 남자가 중앙아시아 크질오르다의 '고려극장' 수위로 쓸쓸하게 최후를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비망록이다. 형용사와 부사가 거의 없는 건조한 비망록이었지만 그래서 더 아득하고 숨이 막혔다.

고려극장이 극장 없는 극장이었다는 사실도 나는 <어느 극장 수위의 회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할머니의 남자는 정확히 말해 극장 수위가 아니라 자체 극장이 없는 고려극장의 무대 도구를 보관하는 창고를 지키는 수위였다. 공연이 확정되면 고려인 배우들의 연습장으로 사용된 창고극장을 지키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가 고려극장에서 마지막으로 지켜본 연극의 주인공은 '홍범도'였다. 압록강을 넘나들며 일본군과 친일파를 공포에 빠뜨렸던 '일격필살'의 저격수, 그 남자는 무대에 오른 자신의 지난날을 극장 수위의 제복을 입고 지켜보며 누구를 떠올렸을까. 나는 그 장면에서 그가 떠올린 사람이 내 할머니가 아니면 어쩌나, 너무나 가슴을 졸였다. 하지만 나는 그 '회상'의 마지막 단락을 읽으며 기쁨에 차서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면 그렇지.

그는 나와 내 어머니의 기대를, 내 할머니의 생애를 배신하지 않았다. 거기 내 할머니가 있었다. 그 남자의 여자는 분명 내 할머니였다. 그는 내 할머니의 남자가 될 자격이 있는 인간이었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가치를 지닌 인간이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 할머니에서 내 할머니의 남자로 바뀌었다. 내 할머니와 어머니도 섭섭해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내 할머니가 지키려고 했으나 끝내 지켜주지 못한 그 남자의 최후를 손녀인 내가 지키려는 것을 어찌 내 할머니가 섭섭해하겠는가. 그는 내 할머니의 남자였던 것을, 내 할머니가 생애를 걸고 마지막까지 지켜내려고 했던 남자였던 것을.

하지만 주인공이 그 남자로 바뀌었다고 해서 내 할머니가 묻히거나 밀려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남자의 삶, 그 모든 선택과 결단의 순간에 내 할머니의 눈길이 스며 있다. 이 이야기는 위대한 '장군'의 일대기가 아니다. 나는 항일 무장투쟁사를 바꾼 전설적 영웅의 생애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당당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사랑하는 내 할머니, 그녀에게 심장을 저격당한 한 남자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내 할머니로 해서 더욱 고독했으나 내 할머니로 하여 최후의 순간까지 단독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던 남자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여전히 그 남자의 영혼을 저격한 내 할머니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

나는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그 남자의 심장을 정조준했던 내 할머니의 차갑고도 도저했던 눈빛을 지켜내기 위해 고투했다. 내 문장이 비록 실패했더라도 바람처럼 살다 간 한 남자의 심장을 저격했던 내 할머니의 눈빛을 읽어내는 사람이 당신이기를 바란다. 쓸쓸하고도 아름다웠던 그들의 시대를 조선 최초의 저격수였던 내 할머니의 눈길로 포착하는 사람이 당신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당신의 심장이 저격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기를 또한 바란다. 그들은 자신의 가늠쇠 위에 올려놓은 상대를 그대로 내려놓아 준 적이 없는 일격필살의 저격수였다. '억압'과 '차별'을 향해 발사한 그들의 탄환은 아직 탄착점에 도착하지 않았다.

내일이면 조선을 떠났던 내 할머니의 남자가 대한민국으로 돌아온다. 가슴이 설렌다. 내 할머니를 대신해서 나는 공항으로 나가 내 할머니의 남자를 맞이할 것이다.

* 이 이야기는 러시아어에서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어느 극장 수위의 회상>과 내 할머니의 일기를 재편집해서 합본한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흩어져 있던 장면들을 하나로 모아 재정리하고, 빠진 장면들을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로 보충한 것은 나다. 그러나 마지막 손질은 오래 내 작업을 도와준 작가 현이 맡았다. 많은 단어와 문장을 그가 고치고 다듬고 추가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내 할머니와 내 할머니의 남자, 내 어머니, 나와 작가 현의 공동작업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었음을 밝혀둔다. 현의 강력한 사양에도 불구하고 현의 이름으로 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이유는 이 책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내가 쓴 논픽션을 소설로 바꾼 것은 그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며 소설가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그 다음 문장으로 끝내 남아 있기를 선택한다. 그리하여 백 년 전, 조선 최초의 비혼주의자였던 내 할머니와 내 할머니의 남자가 '억압'과 '차별'을 향해 발사한 탄환이 마침내 탄착점에 도착하는 순간을 지켜보고야 말 것이다. 단언컨대, 일격필살의 저격수였던 그들의 탄환은 빗나간 적이 없으므로 반드시 표적의 정중앙을 관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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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방현석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재포 금지)
 
 

올려짐: 2021년 8월 15일, 일 10:0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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