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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21년 11월 30일, 화 12:12 am
[종교/문화] 문화
 
도적질당한 아비의 일생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4]




(서울=오마이뉴스) 방현석(소설가)

7

"홍서방은 어떻게 될까요?"
왕진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김의원에게 물은 건 박서방이었다.

"너무 상했어. 척추와 골반이 아주 조각조각 났어. 어혈은 굳었고, 살은 썩어 들어가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기적이네."
"그럼 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씀이신지요?"
"침을 썼으니 오늘 밤 하루는 좀 편히 잘 거요."
박서방은 더 묻지 않았다.

"약은...?"
김의원은 내가 아닌 박서방을 향해 말했다.
"녹각을 쓰겠소, 웅담을 쓰겠소... 강막골산에서 뜯은 골쇄보는 달여 먹였을 테고."
무슨 말인지 모르는 박서방이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하긴, 이 지경에 골쇄보를 가지고 올 정신이 있었겠느냐."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발끈했다.

"산삼과 골쇄보, 잔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다 장진사에게 가져다 바쳤습니다."
박서방과 갑산댁은 동공이 커졌다. 허-헛, 웃음을 터트리던 김의원이 아비가 누운 방과 갑산댁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이 지경이 되어 누운 사람이 골쇄보를 뜯으러 가겠소, 어쩌겠소... 뭐든 넘길 수 있는 건 끓여 먹이시오. 병으로 죽는 거야 어쩌겠소만 굶겨죽여서야 되겠소."

마을 밖까지 김의원을 모셔다주고 돌아왔을 때 아비는 신기하게 잠들어 있었다. 한 시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아비였다.

"홍서방, 아들 덕에 의원이라도 한 번 봤으니 이제 원은 없겠네."
미음을 끓여온 갑산댁이 혀를 끌끌 찼다.

"네 어미 너 가지고 나서 그렇게 골골할 때 그놈의 삼 한 뿌리라도 먹였으면 얼마나 좋아... 잔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가져다 바치고, 네 에미 죽고 나서야 탄식을 하더니. 그래 이 지경이 돼서도 그걸 다 가져다 바쳤구나. 그런데 골쇄보는 또 뭐야?"

박서방이 갑산댁의 말을 막았다.

"뼈에 좋은 그런 게 있어. 이제 우린 갑시다."

두 사람 뒤에 몸을 감추었던 옥희가 내 눈을 피하며 부엌을 가리켰다.

"불은 내가 넣어뒀어. 장작도 가져다 놨으니 새벽에 방 식으면 더 넣어."

사람들이 돌아가고 방 안은 정적만 가득했다.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 왜 아비에게 그런 투정을 부렸단 말인가. 나도 아비가 내 아비여서 좋았다고 왜 말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런 후회 속에서도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고, 아비의 머리맡에 놓인 감자와 미음 그릇에 눈이 갔고,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갔다. 끝내 그 밤을 넘기지 못하고 감자 두 개를 혼자 다 먹었다. 내가 정말 짐승인 것만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뜬 아비의 얼굴은 평온했다. 다치고 나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궁이에서 데워온 미음도 몇 모금 받아먹었다. 영양 되는 건 뭐든 먹이라던 김의원의 말과 함께 고기 국물이 떠올랐다.

나는 포구총을 가지고 나가 뱁새 두 마리를 잡았다. 작은 돌멩이를 쓰는 새총에 비해서 포구총은 정확도가 훨씬 뛰어났다. 내 포구총 솜씨는 마을에서 최고였고, 백발백중이었지만 새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총알로 쓰는 동그란 포구나무씨는 단단했지만 그것으로는 참새를 잡기도 힘들었다. 가장 작고 낮게 나는 뱁새조차도 아주 가까이에서 정통으로 저격해야만 잠시 기절을 했다. 몸통을 덮고 있는 날개를 맞히면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내리다 다시 푸르르 날아올랐다. 오늘도 포구알 여섯 개를 다 명중시켰지만 머리를 정통으로 저격하는 데 성공한 건 두 번이었다.

"전과가 좋네."
집에 신포수가 와 있었다. 그는 노루 한 마리를 메고 먼 길을 왔다. 노루 뼈를 고아먹으면 부러진 뼈에 효험이 크다고 했다.

"강막골산을 손바닥처럼 잘 아는 자네가 어떻게 발을 헛디뎠는가, 그래."
신포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고, 아비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방에서 나왔다.

해질녘이 되어 신포수가 집을 나서며 내 등을 두드렸다.
"필요하면 나를 찾아오너라."

노루 뼈를 고아낸 국물과 미음을 함께 저녁으로 준비했지만 아비는 두어 모금을 삼키지 못했다.

"너, 먹어."
"아비가 안 먹는데 내가 어떻게 먹어."
"그래, 먹자."

아비는 국물 몇 모금을 더 먹다 말고 잠이 들었다. 잠든 아비를 바라보며 윗목에 앉아 후회하고 또 후회하다 나도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아비가 자고 있는 내 손을 잡았다.
"범돌아, 어미 아비를 너무 원망하지 마라. 네 어미도 갓난 너를 걱정하며 눈을 감았다. 아들에게 해마다 산삼을 먹여 키운 아비도 나뿐일 거야."
"..."
"그래, 그 도라지... 그러니 넌 어미처럼 아프지도 말고, 아비처럼 다치지도 말고, 살아."
"제가 잘못했어요. 아비만 일어나면 우리 것 아무것도 없어도 상관없어요."
"아니야. 네가 잘못한 건 아무 것도 없다."
아비는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죽더라도 박서방과 갑산댁을 부모처럼 대해야 한다. 갑산댁이 너에게 유즙을 나눠주지 않았으면 넌 없었다. 옥희, 옥남이를 친형제처럼 돌봐줘야 해. 은혜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아비 말대로 할 테니, 죽지 마."

나는 아비의 손을 잡은 채 후덜후덜 떨었고, 아비는 검게 변한 입술을 깨물었다. 움푹하게 꺼진 아비의 눈우물에 차오른 물기는 눈가로 넘쳐흘렀다.

"네 한 몸 갈 곳이 없어지면 신포수를 찾아가. 네가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한 번은 널 도와줄 거야."
"싫어. 난, 아비하고 살 거야."
"범돌아... 넌 아비처럼 살지 말아라."

다음날 아침 나는 갑산댁과 옥희에게 아비를 부탁하고 강막골로 떠났다. 사흘 뒤 골쇄보를 뜯어 돌아왔을 때 아비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꼴머슴이었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단 하나 달라진 것이 있었다. 바로 나였다.

8

열네 살에 나는 다시 장진사의 사랑채 앞마당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스로 꿇지는 않았다.

"네 놈이 감히 내 삼을 가로채?"

장진사가 나를 향해 호통을 쳤다. 머슴 둘이 내 좌우에서 양 어깨를 짓누르고, 뒤에 선 박서방이 고개를 숙이라고 내 머리통을 눌렀지만 나는 절대 고개 숙이지 않았다.

"어째서 그게 진사어른 것입니까?"
"이놈이. 내 산에서 난 것이 그럼 네놈 것이란 말이냐?"
"낭림산맥과 북대봉으로 이어지는 그 산의 어디까지가 진사어른 땅인지 경계표시가 있습니까. 제가 어디에서 삼을 캤는지 보았습니까."
"그 경계는 네 아비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장진사는 강막골산의 이부 능선도 올라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산자락 맨 아래 있는 묘지까지가 그가 가본 전부였다.

"네 애비가 해마다 캐오던 내 산에서 캐지 않았으면 네놈이 삼을 어디서 캤단 말이냐. 네놈의 애비는 죽는 날까지 한 번도 내 눈을 속인 적이 없거늘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나를 속이려 들어."

분을 참지 못한 장진사가 버선발로 달려 내려와 내 가슴을 걷어찼다.

"그래서 제 아비가 죽어갈 때 의원 한 번 불러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약 한 첩 못 쓰고 죽은 제 아비에게 묻힐 땅 한 평 내주지 않았습니까."
"이놈, 이 도둑놈의 새끼가 못하는 말이 없구나."
"제가 도둑놈의 새끼라구요. 대체 누가 정말 도둑놈입니까?"
나는 입을 틀어막는 박서방의 손을 뿌리치며 장진사를 노려봤다.

"설사 제가 도둑놈일지는 모르나 제 아비가 도둑놈은 아니지요. 제 아비는 누구의 것을 훔친 적도 빼앗은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 제 아비의 평생을 도적질한 게 누굽니까. 누가 제 아비의 목숨을 빼앗아 가게 만들었습니까."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뺨이 뜨거웠지만 두렵지 않았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이런이런. 종놈이 주둥이가 아직 살았구나."
"제가 왜 종놈입니까. 제 어미 아비는 엄연히 양인이었고, 저 또한 양인입니다."

장진사는 길길이 뛰며 나를 발로 차고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이놈아, 어서 어른께 잘못했다고 빌어."

호통을 치는 박서방을 나는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눈을 껌뻑이며 입모양으로 나를 재촉했지만 나는 따르지 않았다. 양쪽에서 나를 잡은 중머슴들은 입과 코가 터져 피를 흘리는 내 눈을 피했다. 아비가 죽은 다음 나는 누구에게도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상머슴인 아비가 살아있을 때는 내 눈치를 보던 녀석들이 아비가 없어지자 나를 아랫것으로 다루려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고 키가 큰 아이들한테도 절대 지지 않았다. 상투를 틀지 않은 사내들 중에서 나를 건드릴 녀석은 마을에 아무도 없었다. 내가 또래들보다 키가 한 뼘이나 더 크고 힘이 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똥이, 이똥이, 삼똥이, 사똥이, 막똥이. 형제가 다섯이나 되는 놈들이 숫자를 믿고 나를 핍박했다. 한꺼번에 덤비는 놈들과 싸워, 맞기도 했지만 나는 반드시 복수했고 항복을 받아냈다. 그렇다고 나보다 어린 사똥이와 막똥이에게 복수하지는 않았다. 일똥이, 이똥이, 삼똥이가 하나씩 있을 때 나는 번개같이 달려들어 곤죽을 만들었다. 내가 무서워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일똥이가 혼자서는 집밖을 나오지도 못했다.

내가 데리고 다니는 옥희의 남동생 옥남이 역시 건드리지 못했다. 병치레를 많이 해서 몸도 마음도 여린 옥남이를 괴롭히는 녀석은 누구든 가만두지 않았다. 옥남이를 울리고 나를 피해 몰려다니는 이똥이와 삼똥이를 나는 포구총으로 쏘았다. 나보다 세 살 많은 이똥이의 귓볼을 날리고, 한 살 많은 삼똥이를 졸도시킨 다음에 결국 그 아비가 오형제를 다 데리고 와 나에게 잘못했다고 빌었다. 어른들도 그런 나를 '범'이라고 불렀고, 이제는 범돌이란 이름보다 '범'이란 별명이 나에게도 더 익숙했다.

"저놈을 광에 가두고, 죄를 뉘우칠 때까지 굶겨라."

사랑채 마루로 올라간 장진사는 흙투성이가 된 버선을 벗어 던졌다.

어둡고 추운 광에 멍하니 드러누워 나는 생각했다. 대체 장진사가 어떻게 내가 산삼을 김의원에게 넘긴 것을 알았을까. 먼저 절대 비밀로 하자고 했던 김의원이 알려주었을 리는 없었다. 박서방이 눈치 채고 일렀을까. 설사 박서방이 눈치 챘다 해도 장진사에게 이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9월 14일, 화 2:3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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