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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홈리스가 된 미국 한인 여성들... 이 놀라운 기록
[서평] 책 '뉴욕 한인복지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을 읽고

(뉴욕=오마이뉴스) 윤일희 기자 = 선배는 불혹의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다. 놀라운 결단이었다. 이별은 아쉬웠지만 나는 그의 도전을 지지했고 흠모했다. 물론 그는 나의 선망과 상관없이 낯선 타국에서의 삶에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공부를 마치면 귀국하겠거니 했던 내 짐작과 달리, 그는 그곳(뉴욕)에서 결혼했고 정착했다. 그는 그렇게 코리안 아메리칸이 되었다.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된 그(김영옥)는 미국(뉴욕) 내 한국인 이민자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배우자 민병갑 교수(뉴욕시립대 퀸즈칼리지)는 오랫동안 뉴욕 이민자 커뮤니티를 연구해왔고, 그 역시 공동 노력으로 기여해 왔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들은 미국 내 소수자인 한국 이민자의 삶을 아카이빙 해왔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새 이민법이 발효된 1965년부터 반세기가 훌쩍 지났으니, 그 긴 시간을 지나온 기억은 희미해지고 바래졌을 테니 말이다. 흩어지거나 사라질 기억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뉴욕 한인복지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이라는 기록물이 책으로 나왔다.

'뉴욕의 한인 복지'라니 낯설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게다 '공헌한 사람들'이라니 어쩐지 지위가 있는 사람들의 자서전적 이야기라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에게 공헌하려 했는가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보면,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 이주민 한인의 삶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헌신은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생존해야 했던 경계인으로서의 동질감에서 발원한 것일까. 소수자 한국인 중에서도 더 보이지 않는 존재들(불법 체류자나 홈리스, 위기 가정의 구성원 등)을 향한 그들의 헌신이 뭉클하다.

도미한 한국인이라고 다 성공했을 리도 다 행복했을 리도 없다.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사는 소수자 한국인의 삶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면, 지금 여기 한국에 머물며 불안정한 지위로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 이주자들이나 난민의 삶을 떠올려 보자.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불행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인은 참으로 오랫동안 떠돌았던 난민이 아니던가.

어디에 살든, 이주민의 삶은 고단했다


▲ 책 "뉴욕 한인복지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 ⓒ 북코리아

<뉴욕 한인복지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이라는 책 제목이 주는 건조한 인상으로 아카이빙에 참여한 대부분이 남성일 거라 오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목차를 살펴보면 기록을 남긴 절반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청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타국에 살았던 그들의 삶의 굽이굽이가 뜻밖에도 한국 역사나 사회구조와 교차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기록에 참여한 열 분의 이야기 모두 한인 이민사를 톺아볼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이 중 특별히 내 마음을 잡아끈 건 여성 기록자(김광희, 김은경, 여금현 등)들의 이야기였다. 특히 노숙자 쉼터인 '무지개의 집'을 운영했던 여금현의 증언이 인상적이었는데, 그의 기록은 놀랍게도 미군 기지촌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기지촌 여성들이 그곳에도 있었다.

한국전쟁 후 기지촌 여성들 중 상당수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다.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미국에 도착했던 그들은 '전쟁 신부'(war bride)라 불렸다. 부푼 희망과 달리, "그들이 미국에서 만난 것은 깊은 실망과 자신이 있을 곳은 아니라는 절실한 소외감이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익히 알았던 곤경을 피해 미국으로 왔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곤경들, 즉 가난, 성차별, 인종 차별, 이혼, 심한 외로움 등과 마주치게 되었다."('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중에서).

1950~1989년까지 미군과 결혼해 도미한 군인 아내는 십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이 모두 불행했던 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유색인 이민 여성이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처했을 곤경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1980년 배우자와 두 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여금현이 만난 '국제결혼 여성'은 이들 중 일부였다. 신학 대학원을 마친 배우자가 롱아일랜드 한인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했는데,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러 온 '국제결혼 여성'을 만나게 된다.

한국인의 미군 기지촌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은 미군과 결혼해 도미한 '국제결혼 여성'들을 배척하게 만들었는데, 교회라는 공간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한인과 결혼한 여성들이 '국제결혼 여성'들과 같이 예배 보는 것에 거세게 반발하자, 여금현은 '국제결혼 여성'들을 위한 교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스스로 목사가 되어 무지개 교회를 세운다. '국제결혼 여성'들의 둥지가 마련된 셈이었다.

녹록지 않은 과정 중 무지개 교회를 방문한 문혜림(1986년 동두천 기지촌 여성 쉼터인 '두레방'을 만들었다)으로부터 딱한 처지인 국제결혼 한국 여성의 기사를 전해 받는다. 통역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아들을 죽인 엄마로 기소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던 '송아무개씨 사건'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도 다뤄졌던 사건이었다.

억울한 송아무개씨의 사정을 알게 된 여금현과 뜻을 같이 한 여성들은 '송아무개씨 석방 운동'을 벌이고, 천신만고 끝에 송아무개씨를 가석방시키기에 이른다. 당시 받은 충격으로 경증의 정신질환을 겪고 있던 송아무개씨가 가석방되었어도 머물 곳이 없자 여금현이 돌보게 된다. 이를 기점으로 여금현은 소외된 한국 이민 여성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 송아무개씨 석방 위원 4명 (왼쪽부터 문혜림, 민경숙, 여금현, 박혜정, 일본 사진작가) ⓒ 저자 제공

거리에 내몰린 한국 이민 여성을 돕기 위해 여금현은 '여성, 평등, 자유'를 내걸고 위기 여성 핫라인 무료 상담 센터를 열었다. 핫라인에 걸려온 제보로 10여 년간 맨해튼 플러싱 한인 타운에서 노숙자 생활을 해 온 한인 여성 노숙자 박아무개씨를 만나게 된다. "한인 여성 노숙자가 있다니". 동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기 어려운 박아무개씨의 곤경을 보고 그는 한인 노숙자 여성들을 도울 방법을 찾는다.

무너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킨 환대의 밥상

미군 남편이나 남편의 가족에게서 내쳐진 '국제결혼 여성'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박아무개씨와 같은 노숙자는 추위, 강간, 폭력의 위험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가장 절박했던 고통은 배고픔이었다. 여금현은 이들을 먹이기 위해 '무지개 환대: 밥상공동체'를 시작한다.

밥을 함께 지어 먹으며 점차 약물중독, 정신질환, 공포와 극단의 외로움 등에서 회복되어 가는 노숙자 여성들의 삶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과정에서 여금현과 자원봉사자들이 노숙자 여성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보인 헌신은 웅숭깊다. 사무실을 개조해 노숙자 여성들이 머물 공간을 만들고 한인 사회의 후원에 힘입어 밥상을 차려냈다.

점차 노숙자들이 늘어나자 더 큰 공간이 필요했다. 거액의 기부자가 나서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나 싶었지만 허사가 되고 무지개 밥상은 붕괴될 위기에 이른다. 여금현의 타격은 말할 것도 없고, 겨우 안정을 찾아가며 다시 살아보려 애썼던 쉼터의 여성들에게도 심대한 위기였다.

여금현은 이 위기를 '무지개 환난'이라 불렀다. 곤경에 처한 무지개 일원은 이가전(이중 문화 가정 목회 전국연합회)의 초청으로 미주리주 평화 동산으로 둥지를 옮겨 그곳에서 밥상을 다시 차리기 시작한다. 재기하는 과정에서 여금현과 동료들 그리고 자매들이라 불리는 노숙자 여성들이 보인 굴기는 역동적이다.

이들은 재기하며 "무지개 자매들뿐 아니라 한국 기지촌 여성들과 혼혈인, 불우한 결혼여성 모두의 친정집이 되게 하겠다"고 결의했다. 자신의 고통을 디디고 갱신하여 마침내 타인의 고통으로 인간애를 확장하는 그들의 성장이 우뚝하다.


▲ 무지개의 집 내 집 마련 입주, 여금현 대표 (1996. 5월. 무지개 집 창립 3주년) ⓒ 저자 제공

<뉴욕 한인복지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독자는 환상적인 아메리칸 드림이 탈각된 이방인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불법 체류자로 신분을 속이고 지내거나, 소수자로 주눅 들어 사는 사람에게 당당히 살 권리란 당연히 따라오는 자격이 아니다.

불법 체류 한인 중 이산가족이 된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이산가족이 분단된 한반도의 남과 북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 들어오며 가족과 연락이 끊긴 경우도 있었고, 미국 내에서도 가족이 흩어지며 연락이 두절된 경우도 있었다.

불법 체류자는 아니지만, 생활이 매우 곤궁해 먹을 것과 잘 곳이 아쉬운 이민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 소외된 이민자들의 삶의 흔적은 한국에 머물며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외국인 이주자나 난민의 삶을 강렬히 환기시킨다. 머무는 곳이 어디든, 정주하는 자로 권리를 획득하지 못한 경계인의 삶의 모습은 지독히도 닮아 있었다.


▲ 뉴욕가정상담소 주최로 열린 침묵행진 (2012, 뉴욕 플러싱) ⓒ 저자 제공

<뉴욕 한인복지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은 철저히 소외된 이들의 관점에서 기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한국인이라는 지위가 소수 민족임을 감안할 때, 그리고 아카이빙에 참여한 분들의 기록이 자신의 부나 명예를 일구는 과정이 아닌 소외된 동료 한국인을 돌보는 연대감으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이 책은 미국 뉴욕 이민사를 조명하는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한국 근현대사의 암울하고 불행한 시기를 관통하며 미국 뉴욕뿐 아니라 타국에서 고단한 삶을 꾸려간 수많은 한국 이주자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또한 망각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를 기록을 책으로 엮어낸 편저자 김영옥 선배의 노력에도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10월 04일, 월 3:0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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