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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내 손바닥에 왕 자" 120년 전 고종 때도 있었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김태웅-황근묵의 손바닥 정치, 결국 교수형으로 끝나


▲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TV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 연합뉴스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국민의힘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왕(王)자가 적힌 손바닥을 내밀어 화제가 되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윤석열 전 총장의 손바닥 정중앙에 엄지손가락 절반 크기의 '왕'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지난 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윤 전 총장은 "같은 동네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열성적인 지지자 입장에서 써준 것"이라며 "지지자가 그렇게 하시니 뿌리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손바닥에 가로로 줄을 긋고 점 세 개를 찍기에 '왕'자인 줄도 몰랐다"며 "세 번째 토론 때 글씨가 커서 왕 자입니까 물었더니 기세 좋게 토론하라는 뜻이라고 하더라"고 해명했다.

그는 주술적 의미를 경계했다. "손바닥 글씨가 왕이나 대통령, 정권교체와 관련이 있다거나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얘기는 억측"이라고 선을 그었다. "주술적 의미가 있었다면 부적을 만들거나 해서 숨겼겠지, 다 보이게 손바닥 한가운데 적었겠나"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1901년 벌어진 손바닥 정치

실제로도 손바닥에 적힌 글씨나 무늬가 주술적으로 해석되는 일은 많았다. 윤석열 사례와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손바닥에 적힌 것이 주술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 차원으로까지 해석되는 일도 있었다. 동학혁명으로 정치질서가 휘청거리고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로 충격이 가해진 직후이자, 일본과 러시아가 대한제국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때인 1901년에도 손바닥 글씨가 정치적 화제가 됐다.

그해 사건들을 수록한 양력으로 고종 38년 5월 29일 자 <고종실록>에 따르면, 이 사건의 기원은 그로부터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학혁명 발생 2년 뒤인 1896년부터 신령한 능력을 갖게 된 김태웅이라는 남자가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그에 관해 수사한 법부대신서리 이재곤은 고종 황제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김태웅은 5년 전에 귀신이 몸에 붙어 움직임이 섬광처럼 빨라졌으며, 고금도에 있을 때는 꿈에서 기이한 아이를 얻었고, (전라도) 광주군에 이르러서는 꿈에서 하늘이 주는 조복(朝服, 관원의 예복)을 얻어 몸에 착용했고 하늘이 장검을 하사하면서 '위험을 없애고 오래 살 것'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자기한테 벌어지는 일들을 신비하게 생각한 김태웅은 기도를 올릴 목적으로 지리산을 향했다. 그가 그대로 지리산에 들어가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했다면, 그 이름이 실록에 거명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지리산으로 가던 도중에 그는 운봉산 근처에서 쉬게 됐고 여기서 황근묵이라는 인물을 만났다. 황근묵은 정치적 야망이 짙은 도인이었다. 김태웅의 이름 석 자가 실록에 거론된 것은 황근묵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만난 김태웅으로부터 꿈 이야기를 들은 황근묵은 김태웅의 얼굴을 살펴본 뒤 '손 좀 보자'고 말했다. 그런 뒤 이렇게 해석했다.

"당신은 하늘이 내려보낸 사람이기 때문에 다가오는 세상에서 천자가 될 사람이오. 내가 관상을 보고 왼쪽 손바닥을 살펴보니 성(聖)자 무늬가 있고 오른쪽 손바닥에는 정(井)자·왕(王)자 무늬가 있으니, 이는 큰 성인의 격(格, ~이 될 자격)입니다."

김태웅에게 확신을 심어준 황근묵은 그를 앞세워 사람들을 규합했다. 김태웅의 실제 성은 김씨가 아니라 정씨이며, 김태웅이 천자가 되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김태웅에게 정도령 이미지를 부여한 뒤 혁명세력 규합에 나섰던 것이다.

황근묵은 김태웅에게 여성도 소개했다. 윤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황근묵은 윤씨가 지리산 산신령으로부터 두 아이를 받는 꿈을 꾸었다면서 윤·김 부부가 동시에 잉태했다는 비과학적인 소문까지 퍼트렸다.

이런 선전에 넘어간 사람이 최소 30명이었다. 이들은 세상이 어수선해지면 김태웅을 위시한 혁명군이 세상을 평정하게 될 거라며, 거사가 성사되면 누구누구가 정승이 될 것이라고들 말했다.

이들에게 확신을 심어준 것은 김태웅의 손바닥에 글씨가 적혀 있다는 황근묵의 해석이었다. 김태웅이 꿨다는 신비한 꿈은 눈으로 확인되기 힘들었지만, 손바닥에 '성'이니 '정'이니 '왕'이니 하는 글자가 적혀 있다는 황근묵의 해석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럴싸하게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확신은 얼마 안 가 허망하게 무너졌다. 이들이 퍼트리는 소문이 지방민들의 네트워크에 포착되고 결국 관헌들이 출동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김태웅은 황제에 관한 불온한 소문을 퍼트렸다는 죄목 등이 적용돼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김태웅의 손바닥에 '왕'자 등이 있다고 소문을 퍼트린 황근묵은 김태웅이 붙들리기 전에 신속히 도주했다.

손바닥 때문에 밝혀진 역모

왕조 전복을 꿈꾸는 이들이 손바닥을 근거로 거사의 성패를 예언하는 모습은 여타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일례로 폐위된 광해군에 대한 대중적 기대감이 아직 남아 있었던 인조시대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다.

광해군 실각 8년 뒤의 사건을 담은 음력으로 인조 9년 2월 3일 자(양력 1631년 3월 5일 자) <인조실록>에 따르면, 승려 출신들을 중심으로 유배 중인 광해군을 모셔온다, 신라 부흥을 내세워 경상도에서 거병한다 등의 논의가 진행되다가 발각된 역모 사건에서도 손바닥 문제가 거론됐다.

이 사건에서는 승윤이라는 승려의 손바닥에 특이한 무늬가 있다는 점이 거론됐다. 사람들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승윤의 손바닥에 붉은 자국이 있으니 매우 기이하다"라는 말을 퍼트리는 가담자가 있었다고 <인조실록>은 전한다.

인조는 사건을 확대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런데도 30여 명이나 사형을 당했다. 곤장을 맞아 죽은 사람은 10여 명, 유배된 사람은 6명, 방면된 사람은 50여 명이었다. 꽤 많은 일반 백성들이 왕조 전복 모의에 가담했다.

이처럼 손바닥에 있는 특이한 무늬나 글자 비슷한 것이 성직자나 도인의 정치적 해석과 결부되어 정치적 파장을 낳은 사례가 종종 있었다. 윤석열 전 총장은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손바닥 무늬나 글씨를 앞세워 천지개벽을 도모했던 사람들이 먼 과거도 아니고, 불과 100년 전에도 있었다.

이는 손바닥 무늬나 글씨에 대해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근거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일이 아주 오래전에 없어진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런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직은 '별것'인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10월 05일, 화 6:1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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