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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21년 11월 30일, 화 12:44 am
[종교/문화] 문화
 
낭림산맥을 넘어서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 8]




(서울=오마이뉴스) 방현석 기자

16

내가 포수막에서 빈 화승총으로 왼손 연습을 하고 있던 저녁이었다. 총을 손질하던 신포수가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일찍 자고 내일은 등목이나 하러 가자."
"어디요?"
나는 왼쪽 어깨에 붙이고 있던 화승총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압록강이 녹을 때가 되었다."
신포수는 아래 계곡에 가는 것처럼 말했다.

"그거 개마고원 넘어가야 있는 거 아니에요?"
신포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가는 길에 묘향약수도 좀 마시고."

"그렇게 먼 길 가려면 미리 준비부터 좀 해야지요. 양식도 얼마 안 남았는데."
"얼마나 남았는데?"
"이틀 치요."
"그거면 충분해. 자자."

신포수는 자리를 깔고 먼저 누웠다. 이틀 치 양식을 가지고 압록강까지 간다는 건 터무니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걱정은 산돌이였다.

"얘도 같이 가는 거죠?"
"그럼, 우린 한 여단인데."

지난달 늑대무리 일곱 마리를 우리 셋이서 소탕한 다음부터 신포수는 우리를 여단이라 불렀다. 여단,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처음엔 고작 셋이서 무슨 여단? 했지만 들을수록 근사했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묘향산과 압록강이었다. 온 산에 향기가 가득한 천하절경의 명산과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고 물결이 사나운 강. 나는 옆에 누운 산돌이의 목을 만지며 속삭였다. 우리 여단이 압록강에 간대. 묘향산에도.

"여단 출동."
다음날, 이른 아침을 먹고 우리는 낭림산맥을 타고 북으로 향했다. 진달래가 산돌이보다 한걸음 앞서가며 꽃을 피웠다.

묘향약수에 닿기 전에 나는 이틀 치 식량이면 충분한 이유를 알았다. 낭림산맥의 지산들마다 꾼과 쟁이들이 깃들어 있었다. 사냥꾼, 약초꾼, 벌목꾼, 나무꾼, 벌꾼. 숯쟁이와 도기쟁이까지. 열 걸음 앞에 다가가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사냥꾼들의 포수막과 약초꾼들의 초막, 벌목꾼들의 산막, 숯쟁이들의 움집을 신포수는 기가 막히게 알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신포수에게 싫은 내색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허물없이 반겼지만 함부로 하는 사람도 없었다. 묘향산에 들어설 때까지 바랑의 양식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묘향 제1경이라는 상원동에 들어선 것은 노을이 오선봉을 불태우고, 어스름이 용연계곡을 감추기 시작하는 저녁이었다. 병풍처럼 둘러친 기암괴석 위로 잎갈나무가 무늬를 넣고, 외로운 소나무 몇 그루가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재고 있었다. 장관이란 말은 여기에 쓰려고 만든 말이 틀림없었다. 산이 된 바위를 가르고 거침없이 떨어지는 폭포는 웅장했다. 가슴에 쌓인 답답한 응어리들마저 모조리 부수며 쓸어내릴 듯 수직 낙하하는 물줄기는 통쾌하기까지 했다.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것만 같은 묘향의 봄, 상원동의 저녁에 나는 압도되었다.

"여단 숙영지로 오늘은 저기가 어떠냐?"

신포수는 2단으로 떨어져 내리는 폭포와 폭포 사이를 가리켰다. 폭포 사이에 갇혀 다가갈 길이 없어 보이는 아주 작은 암자 하나가 거짓말처럼 바위에 얹혀 있었다. 뒤로는 아득한 절벽, 양쪽으로는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 앞으로는 물길이 휘돌며 철철 넘치는 못이었다.

암자로 가는 길은 폭포 뒤에 숨어 있었다. 떨어지는 물줄기와 암벽 사이를 통과하는 사이, 포말이 된 작은 물방울이 왼쪽 뺨과 어깨를 적셨다.

"봄이 언제 오나 했더니 이제야 왔네, 그려."
나이 지긋한 스님은 합장을 하며 신포수를 반겼다. 나도 신포수를 따라 어색하게 두 손을 맞대고 고개를 숙였다.

"신포가 언제 이런 장성한 아들을 두었나?"
신포수는 빙긋이 웃기만 했고,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내 옆에 선 산돌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 녀석은 또 누군가. 낭림이 새낀가?"
신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낭림이는?"
"보냈습니다."
"어쩌다가?"
"그럴 놈이 한 놈뿐이 더 있겠습니까?"
스님은 혀를 쯧쯧 찼다. 나무관세음보살.

저녁을 얻어먹고 나는 옆방으로 와서 누웠다. 신포수와 스님은 돌부처를 모신 방에 남아서 곡차를 마셨다. 신포수가 돌아오면 낭림이를 해친 놈이 누구인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밤이 깊도록 그는 건너오지 않았다. 칠십 리 길을 걸은 나는 곧 잠이 들었고, 산돌이는 방 앞의 마루 밑에서 밤을 지켰다.

이튿날, 나는 목탁소리에 잠이 깼다. 아직 사방은 깜깜했다. 옥희가 했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절에 가서 비구니나 될까.'

옥희는 정말 절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었을까. 폭포의 물소리, 목탁소리 사이로 옥희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매질을 당하고 광에 갇힌 내게 내주었던 옥희의 무릎과 언 내 뺨을 녹여주었던 따스했던 손길이 얼굴에 느껴졌다. 새벽을 부르는 스님의 염불 소리를 들으며 나는 머리를 깎은 옥희의 모습을 떠올려보려 보았지만 그려지지가 않아 내가 머리를 깎은 모습을 상상해봤다.

"스님, 스님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암자를 떠나기 전에 나는 스님에게 불쑥 물어보았다.

"왜, 머리를 깎아 보시려고. 포수하고 스님은 인연이 먼데."
"그런데 왜 두 분은 친해요?"
스님과 신포수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말했다. 우리 안 친해.

"참, 얘 아니었으면 잊을 뻔했네. 큰스님이 자네 주라고 써놓고 간 것이 있으니 잠시 기다리시게."
스님은 방에 들어가 부적 한 장을 들고 나와 신포수에게 내밀었다.

"지담스님은 잘 계시지요?"
"동안거 끝내고 다녀갔으니까 지금쯤 금강산에 당도하셨겠지. 언제 한 번 금강산으로 찾아뵙게나."

산돌이를 앞세우고 묘향 약수터로 향하던 나는 암자를 돌아보았다. 어젯밤 스님은 왼쪽이 산주폭포고 오른쪽이 용연폭포라고 일러주었다. 향산천을 따라 한참을 더 걷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암자는 모습을 감추고 둘 뿐이 보이지 않던 폭포가 이제는 여섯 개로 늘어나 있었다.

향산천의 문수골 어귀, 서북쪽 골 안에서 흘러나오는 묘향약수는 시리게 푸르고 맑았다. 얼굴을 들이박은 채 시원하게 약수를 마시고 일어선 신포수에게 내가 물었다.

"지담스님은 누구에요?"
어제 저녁부터 궁금했던 것이었다.

"그런 분이 있다."
더 묻지 않았다. 한 번 대답하지 않는 것은 끝내 대답하지 않는 신포수였다.

"낭림이를 해친 건 어떤 놈이에요?"
"그런 놈이 있다. 약수나 마셔."

더 물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낭림이의 행방을 묻는 내게 신포수가 한 대답은 두 가지였다. 보냈다. 아니면, 갔다. 나도 약수터에 얼굴을 박고 약수를 빨아마셨다. 첫 맛은 시큼하고 뒷맛은 달콤했다. 산돌이도 나를 따라 주둥이를 박고 약수를 먹었다.

"저는 몰라도 산돌이는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신포수가 들으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대꾸하지 않는 신포수를 한 번 더 긁어보았다.

"아무리 개라고 해도 원수가 누군지는 알고 살아야지..."
"멀쩡한 날 비 맞았어?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지 말고 약수나 실컷 마셔. 이게 어디에 좋은 약수인지나 알아?"
"알아요. 위, 장, 신, 폐, 혈관, 만병통치잖아요."
"아니지, 아니지. 정말 중요한 건 간과 담이야. 간·담. 포수가 되려면 간담이 커야 하는 거야."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10월 18일, 월 4:0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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