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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일격필살 아울 사냥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 10]




(서울=오마이뉴스) 방현석(소설가)

18

호랑이의 발자국을 먼저 찾은 것은 나였다. 무른 땅을 밟은 발바닥의 크기가 한 자나 되고 깊이도 뚜렷했다.


"흠, 발톱자국은 없네."

여우나 이리도 앞에 네 개의 둥근 발가락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호랑이는 여우나 이리처럼 발가락 끝에 뾰족한 발톱자국이 없었다. 나는 스라소니나 살쾡이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잔털도 없습니다."
스라소니나 살쾡이는 발가락 사이의 잔털 모양을 발자국에 남겼다.

"스라소니나 살쾡이도 눈밭이 아니면 잔털자국이 잘 안 보이기도 해. 그렇지만 발바닥이 한 자나 되는 스라소니나 살쾡이는 없지."

그렇게 큰 발자국을 가진 건 곰과 멧돼지인데 발자국 모양이 완전히 달랐다. 곰은 발가락이 다섯 개고 멧돼지는 앞뒤로 두 개씩의 자국만을 남겼다.

신포수는 손바닥을 펼쳐 호랑이 발자국의 길이와 깊이를 쟀다. 지름은 한 뼘을 훨씬 넘었고 족적의 깊이도 손가락 한 마디씩은 되었다. 100관이 넘는 녀석이었다.

"그놈이야. 아울이가 왔어."

한 번 내달리기 시작하면 아득령에서부터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 숲이 울울창창한 울산까지 내려간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제법 맹수를 잘 다루는 것으로 소문 난 울산의 사냥꾼들에게 쫓기면 다시 사흘밤낮을 달려 아득령으로 올라온다는 아울이었다. 낭림산맥과 태백산맥 자락에서 아울은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만드는 흉포한 이름이었다. 멧돼지 정도는 한 이빨에 숨통을 끊어 놓았고, 농가의 황소를 물고 담을 훌쩍 뛰어넘어 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녀석을 모르는 사냥꾼은 없었지만 아무도 잡지 못했다. 녀석과 대결했던 포수들은 희생되거나 패배했다. 신포수가 지금까지 이기지 못한 유일한 상대도 아울이었다. 발자국에서 물러서며 주변을 살피던 신포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이 발자국은 아니야. 방향을 봐라."

산을 내려가는 방향이었다. 어젯밤 발자국이었다. 호랑이는 바위가 많거나 숲이 우거진 높은 산에서 낮에는 잠을 자고 해가 지면 사냥감을 찾아 저지대로 내려갔다. 어젯밤 지나간 놈을 따라 내려가면 온 종일 헤매다 그놈의 흔적을 쫓아 결국 다시 올라와야 한다.

오늘 아침에 잘 곳을 찾아 올라간 발자국을 찾은 것은 산돌이었다. 두 마리였는데 발자국으로 보아 한 마리는 60관에 조금 못 미치고, 한 마리는 20관가량 되었다.

"뭐지? 이놈에게 새끼가 생겼나."

산돌이는 발자국을 쫓아 능선을 타고 비스듬히 올라갔다. 두 번 발자국을 놓쳐, 발자국이 끊긴 자리로 되돌아와 다시 방향을 잡아 녀석들을 추적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세 번째는 도무지 이동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호랑이는 용력만 엄청난 것이 아니고 은신술과 권모술수도 다른 맹수들과 비교불가였다. 한 자리를 빙빙 돌며 많은 발자국을 어지럽게 남기고 아울은 종적을 감췄다.

"꽃발을 쳤네."

신포수와 함께 어지러운 발자국을 유심히 살피던 산적두목, 김포수가 어깨에 메고 있던 총을 벗으며 단정했다. 신포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울의 교란술이었다. 정해진 숙영지를 만들지 않고 이동하며 살아가는 호랑이는 잠잘 곳에 이르면 추적자를 따돌리기 위해 꽃발치기를 했다. 엉뚱한 방향으로 발자국을 남기고, 발자국이 남지 않는 단단한 땅이나 쌓인 나뭇잎을 딛고 목적지로 이동했다.

신포수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잘라 말했다.

"이 능선 안에서 움직이고 있어."

수십 마리의 까치떼가 능선의 사면을 가로지르며 요란하게 울어댔다. 까치는 숲의 경계병이었다. 호랑이가 숲에서 이동하기 시작하면 떼 지어 날아다니며 위험 신호를 보냈다. 신포수는 포수진을 둘를 나눴다. 나와 신포수가 한 조가 되고, 김포수와 부하 둘이 한 조가 되었다. 남은 김포수의 부하들 여섯과 산돌이, 향산이를 비롯한 풍산개 네 마리가 몰이진을 이루었다. 나와 나이가 같아진 도끼는 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녀석은 몰이진이었다. 몰이진에게 30분 뒤부터 몰이를 시작하라고 일러두고 신포수는 포수진을 이끌고 산등성이로 뛰어올라갔다.

9부 능선 남쪽 목에 김포수와 부하들 둘을 배치하며 신포수가 일렀다.

"저 북쪽 목 아니면 여기야. 이 목을 확실히 사수해. 절대 움직이면 안 돼."

세 포수의 자리까지 정해주고 마지막으로 신포수는 오른쪽 검지를 두 번 앞으로 내밀었다.

일격필살. 두목, 김포수도 익숙한 동작으로 신포수의 동작을 반복해보였다.
나는 신포수를 따라 북쪽 목으로 뛰었다.

목을 잡고 조금 있으니까 3부 능선에서 몰이진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끼가 도끼 뒤축으로 바위를 때리는 소리가 깡깡 능선을 흔들었다. 몰이소리가 점점 우리 쪽으로 가까워졌다.

"북쪽으로 간다, 북쪽."

신포수는 단열총에 장탄을 했다. 나도 장탄을 했다. 산돌이와 풍산개들이 선두에서 수색의 폭을 좁혀왔다. 신포수는 호랑이가 들어올 사면의 왼쪽 바위를 엄폐물로 삼아, 나는 오른쪽 바위를 엄폐물로 삼아 저격태세를 갖췄다.

풍산개들과 몰이꾼들이 점점 원을 줄이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호랑이가 이미 빠져나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산돌이가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갑자기 숲속에서 거대한 호랑이가 성큼성큼 우리가 지키고 있는 목을 향해 달려왔다. 나는 녀석의 위세에 눌려 잠시 손이 떨렸다.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광이 척추신경을 마비시킬 것만 같았다. 오른손으로 쏘려면 내 몸 전체를 바위 밖으로 노출시켜야 했고, 그러기엔 호랑이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거대한 머리통을 가릴 만큼 크게 벌린 입, 다섯 치도 넘는 날카로운 이빨은 한 입에 나를 삼킬 기세였다. 빈총으로 연습은 했지만 왼손으로 실제 쏘아본 적이 없었다. 열 걸음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고,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일격필살, 총신을 왼쪽 어깨로 받치고 왼손 검지로 방아쇠를 당겼다. 이마에 정통으로 맞는 것을 보고 다시 장탄을 하며 뛰어나가려는 순간 건너편에 있던 신포수가 소리쳤다. 일발일격이었지만 일격필살은 아니었다. 오른손이라면 자신 있었다. 달려 나가 오른 손으로 놈의 급소에 한 방을 더 먹일 작정이었다.

"나가지 마!"

나는 바위 뒤로 몸을 숨기며 머리만 내밀었다. 주먹만한 눈에서 뿜어내는 시뻘건 불길과 강철처럼 반짝이는 길고 새하얀 수염을 앞세운 호랑이는 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왔다.

"탕!"
신포수가 사정거리 밖에서 쏜 총이었다. 주춤하던 녀석이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달아났다. 녀석의 옆으로 덩치가 반도 되지 않는 작은 호랑이 한 마리가 함께 뛰어갔다. 풍산개들이 호랑이를 쫓았고, 선두에 산돌이가 있었다.

신포수는 사정거리를 벗어난 아울이와 새끼를 눈으로 쫓으며 내게로 건너왔다.

"오줌은 지리지 않았나?"

내 사타구니를 내려다보며 신포수가 싱긋 웃었다. 신포수는 지난밤, 여간 간이 크지 않다는 사냥꾼들도 막상 아울을 맞닥뜨리면 그 흉포한 위세에 중추신경이 마비되어 방아쇠조차 당기지 못하고 오줌을 지린다고 내게 얘기했었다.

"정통으로 맞혔는데."

나는 변명을 하며 눈으로 아울이를 몰아가는 산돌이와 몰이꾼들을 쫓았다. 신포수의 예상대로 아울은 남쪽 목을 향해 산을 타고 올라갔다.

"호랑이 대가리는 뼈가 단단해서 급소에 박지 않으면 바로 넘어가지 않아."
눈과 귀 사이, 오른 손이었으면 측면의 급소에 총알을 박아 넣을 수 있었다.

"..."
"왜 양손 쓰는 연습을 해야 하는지 이제 알았어? 그 왼손이 오늘은 널 반쯤 살려줬지만 다음번엔 널 온전히 살려줄 거야."

신포수는 내 왼쪽 어깨를 두드리고는 호랑이가 달아난 곳을 향해 뛰었다. 뛰면서 길바닥을 살폈다.

"내가 쏜 건 왼쪽 다리에 맞았어."
나도 바닥에 피가 묻어 있는 걸 보았다. 그건 다리를 다쳤다는 걸 뜻했다.

"너한테 대가리도 한 대 맞았고, 남쪽 목에 세 놈이나 있으니까 잡을 거야."

우리는 산돌이가 선두에 선 몰이진을 따라 달려갔다. 나와 신포수가 뒤에 있는 것을 확인한 산돌이는 더 용맹해졌다. 아무리 용맹해도 호랑이와 맞붙으면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충성심 강한 풍산개들은 거침없이 아울을 몰아갔다. 마침내 우리 포수진이 대기하고 있는 남쪽 목으로 아울이 새끼와 함께 들어갔다. 여기서 두 세 발만 더 먹이면 아무리 아울이라도 넘어가고야 말 것이다.

"탕."
그런데 엉뚱하게 포수진의 대기선이 아닌 아래쪽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신포수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우리의 총소리를 듣고 산적들이 마음대로 이동을 한 것이었다. 산적 포수조로부터 측면에서 공격을 받은 호랑이들은 질주하던 방향을 급선회하여 산꼭대기를 향해 질주했다. 쫓아가던 풍산개들이 가속도 때문에 포수들과 호랑이 사이의 사격선에 들어가는 상황이 됐다.

"저런 개새끼들이. 쏘지 마!"
신포수를 따라 나도 소리를 질렀다.

"쏘지 마!"

그러나 이미 늦은 다음이었다. 산적포수들이 아울을 향해 쏜 총알에 산돌이와 뒤따르던 다른 풍산개 한 마리가 차례로 나뒹굴었다. 나는 뒷덜미를 잡는 신포수를 뿌리치고 쓰러진 산돌이를 향해 달려나갔다.

"쏘지 말라고! 개새끼들아."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11월 02일, 화 4:2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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